2015년 1월호

“사회 기풍 바꾸는 ‘샛빛운동’ 펼치겠다”

정의화 국회의장

  • 구자홍 기자 | jhkoo@donga.com

    입력2014-12-19 17: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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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 탓하기, 제 몫 함께 나누기, 제 할 일 제대로 하기
    • 국회 예산안 법정시한 통과, 앞으로도 계속될 것
    • 北 김영남 상임위원장에게 ‘만나자’ 제안하겠다
    • ‘대통령 외치, 총리 내치’ 분권형 권력구조 바람직
    “사회 기풍 바꾸는 ‘샛빛운동’ 펼치겠다”
    ‘믿다’라는 뜻의 한자는 ‘信’이다. ‘사람(人) + 말(言)’. 사람의 말이 곧 믿음의 기본임을 알 수 있다. 우리 선조들이 언행일치(言行一致)를 사람이 마땅히 따라야 할 도리로 여긴 까닭을 짐작게 한다. 말이 행동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그 사람의 다른 말에도 신뢰가 따라붙는다.

    우리 사회가 신뢰의 위기 속에서 허우적대는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모범을 보여야 할 이른바 ‘사회지도층’, 그중에서도 특히 정치인들이 이해관계의 유불리에 따라 말을 손바닥 뒤집듯 해왔기 때문이다. 국민을 대표하는 대의기구에서 국민 누구나 준수해야 할 법을 만드는 위정자들부터 약속을 지키지 않는 행태가 되풀이되면서 국민 사이에 ‘자기들이 만든 법도 안 지키면서 왜 우리에게 법을 지키라는 것이냐’는 반발이 커졌다.

    그런 점에서 2015년 새해 예산안을 12년 만에 법정시한 내에 처리한 것은 국회가 국민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모처럼 의미 있는 한 걸음을 내디딘 것으로 그 무게감이 크다. 국회가 이렇듯 정상적인 입법기관이자 준법기관으로 거듭난 데에는 정의화 국회의장의 공이 컸다. ‘신동아’는 신년호를 여는 첫 인터뷰 자리에 정 의장을 초대했다. 12월 5일 국회의장실에서 그를 만났다.

    “법치 바로 세우기의 시작”

    ▼ 새해 예산안이 오랜만에 법정시한을 넘기지 않고 통과됐습니다.



    “의장 취임 첫해에 어떤 일이 있어도 법정시한 내 새해 예산안을 통과시키겠다고 다짐했는데, 약속을 지키게 돼 기분이 아주 좋습니다. 대한민국의 법치를 바로 세우는 것은 입법부인 국회가 헌법을 준수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헌법에 명시된 예산안 통과시한을 그간 국회가 지키지 않았다는 게 비정상이죠.

    의장 취임 첫해에 하지 않으면 기회가 없다고 봤어요. 이번에 기한 내 통과시켰으니 2015년에도 가능할 것이고, (2016년에) 다른 의장이 의사봉을 잡더라도 법정시한 내 예산안 통과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새해 예산안이 법정처리시한 내에 통과된 과정에는 정 의장의 치밀한 국회 운영 전략이 단단히 한몫했다. 정 의장은 세월호 특별법 협상 난항으로 국회 공전이 장기화하던 2014년 9월, ‘민생법안’을 직권상정해달라는 새누리당의 요구를 거부했다. 9월 26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정 의장은 법안 직권상정 대신 국회 정상화를 호소한 뒤 기습적으로 산회를 선포했다.

    이후 여야는 9월 30일 극적으로 국회 정상화에 합의했다. 그로부터 두 달 뒤인 11월 말 새해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야당은 ‘논의할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며 연기를 주장했다. 하지만 정 의장은 예산 부수법안을 지정함으로써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의 국회 통과 가능성을 열어뒀다. 결국 여야는 12월 2일 합의를 도출했고, 법정시한 내 새해 예산안 통과라는 이정표를 세웠다.

    예측 가능한 국회

    ▼ 앞으로 어디에 중점을 두고 국회를 운영할 계획입니까.

    “민생법안을 제때 통과시켜 국회가 국민을 위해 일하는 모습을 국민께 보여드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래서 2015년부터는 예측 가능한 국회가 될 수 있도록 요일별로 상시국회가 열리도록 할 계획이에요.”

    정 의장은 국회 운영 계획이 담긴 2015년 일정표를 보여줬다. 언제 어떤 상임위가 열리는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깔끔하게 정리돼 있었다.

    “의장에 취임한 뒤 국회개혁위원회를 만들어 ‘일하는 국회, 예측 가능한 국회, 상시 국회’를 만들기 위해 10개 정도의 국회법 개정안을 만들어 운영위원회에 올렸어요. 그 법안이 통과되면 과거와 크게 달라진 국회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겁니다.”

    ▼ 국회가 어떻게 달라질지 기대가 큽니다.

    “국회의 제1차 기능은 입법입니다. 비(非)입법 기능 중에는 정부를 견제하는 책무가 중요하고요. 거기에 더해 국가적으로 필요한 어젠다를 개발해 국민 여론을 형성하는 것도 국회가 해야 할 일이라고 봅니다. 어제(12월 4일)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인성교육진흥법이 통과돼 앞으로 일선 학교에서 인성교육이 실시됩니다. 그에 발맞춰 국회 차원에서 우리 사회의 기풍을 바꾸는 사회정신운동, 가칭 ‘샛빛운동’을 펼칠 계획입니다.”

    ▼ 샛빛운동?

    “제 탓하기, 제 몫 함께 나누기, 제 할 일 제대로 하기와 같은 ‘3제’ 실천이 핵심 가치입니다. 우리 사회가 혼란스러운 이유 가운데 하나가 ‘남 탓’하는 풍조가 만연하다는 점이에요. ‘제 탓하기’는 주권자인 국민이 주인의식과 시민의식을 고양하기 위해 꼭 필요한 정신입니다. ‘제 몫 함께 나누기’는 공동체 의식을 복원하는 데 초점을 맞췄고요. 어느 한 사람이 크게 성공했을 때 혼자 잘나서 그렇게 됐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입니다. 사회와 국가의 도움 없이 개인이 혼자서 성장하고 성공하는 게 가능하겠어요? 그런 점에서 자기가 이룬 부와 성과를 사회, 국가와 함께 나누려는 노력이 꼭 필요합니다.

    또한 요즘 크게 논란이 된 청와대 문건 파동 같은 건 ‘제 할 일 제대로 하기’가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입니다. 비서가 비서로서 맡은 일을 정직하고 성실하게 했다면 그런 일이 일어날 수가 없죠. 청와대나 공직에 몸담은 사람은 국가와 정부에 헌신하고 봉사하겠다는 정신 자세가 가장 중요합니다.”

    정 의장은 사회 기풍을 바꾸지 않고서는 대한민국이 활력을 잃고 시들어가는 흐름을 바꿔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저출산·고령화와 양극화가 커다란 사회문제로 불거지고, 분단 70년이 다 되도록 남북이 제대로 교류하지 못하는 상황은 우리나라가 시들어간다는 방증입니다. 이 문제를 제때 해결하지 못하고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기약하기 어렵습니다. 시들어가는 대한민국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라도 사회 기풍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노력이 절실합니다.”

    외과의사 출신인 정 의장은 그간 우리 사회가 떠안은 고질적 병폐를 치유하는 데 앞장서 왔다는 평가를 듣는다. 그가 ‘건강 사회’를 만들기 위해 가장 먼저 ‘메스’를 댄 곳은 지역감정 해소.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 지역화합특별위원장(2004년)을 맡았고, 2006년엔 국회 여수엑스포 유치추진특별위원장도 역임했다. 그는 여수엑스포 유치에 기여한 공로로 명예 여수시민증을 받았다. 2008년 11월에는 한나라당 의원 최초로 명예 광주시민이 됐다. 2009년, 광주에 있는 조선대가 정 의장에게 명예정치학 박사학위를 준 것도 ‘영남 출신 정치인으로 드물게 호남지역 발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일한 공적’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그런 정 의장에겐 ‘지역화합 전도사’라는 별칭이 따라붙었다.

    ‘지역화합 전도사’

    “사회 기풍 바꾸는 ‘샛빛운동’ 펼치겠다”

    국회가 법정처리시한인 12월 2일 새해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2014년 국회의장 취임 이후 정 의장은 남북 문제와 국민통합을 위해 또 한번 메스를 꺼내 들었다. 그는 샛빛운동으로 우리 사회 기풍을 바꿔나가는 것과 함께, 좀처럼 해빙 기미가 없는 남북 경색을 푸는 데에도 주도적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2015년 1월 1일 신년사를 통해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에게 남북 국회회담 논의를 위한 만남을 제안할 생각입니다. 김 위원장이 (서울에) 오거나 내가 (평양에) 가거나, 그것도 아니면 개성에서 만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겠지요.”

    ▼ 남북 국회회담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건가요.

    “국민의 대표기구인 국회가 앞장서서 남북 간 대화의 숨통을 틔워야 한다고 봅니다. 다만 정부와 밸런스는 맞춰 추진해야겠지요. 궁극적으로는 남북 정상이 만나 남북 문제 해법을 논의할 수 있도록 국회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다 할 생각입니다.”

    ▼ 정치권 일각에서는 개헌의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개헌은 꼭 필요합니다. 1987년 체제가 벌써 한 세대 가까이 지나지 않았습니까. 세월이 많이 흘렀으니 이제는 우리 실정에 맞는 권력구조로 바꿀 필요가 있어요. 그런데 대통령 4년 중임제, 분권형 대통령제, 내각책임제 등 3가지 권력구조 중 어느 것으로 정할지는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 어떤 권력구조가 바람직할까요.

    “개인적인 생각은, 안보와 외교는 대통령이 책임지고 내치는 총리가 맡는 분권형 대통령이 우리 실정에 맞다고 봅니다. 다만 개헌을 하더라도 당장 2017년 대선 때부터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요. 2017년 대선을 준비하는 분들이 권력구조 개편에 참여하는 것은 제척(除斥)사유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권력구조 개편은 차차기, 즉 2022년 20대 대통령선거부터 적용하는 것으로 합의하고 개헌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권력구조를 제외한 경제, 사회, 문화 등 다른 분야에 대한 개헌 내용은 곧바로 적용할 수 있겠죠.”

    지난 11월 개헌추진 국회의원 모임 소속 의원 35명이 ‘헌법개정특별위원회’ 구성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하는 등 개헌에 대한 공감대는 여야를 떠나 정치권 전반에 폭넓게 형성돼 있다. 그러나 최근 헌법재판소에서 현행 선거구제가 위헌이라는 판결이 나오면서 개헌 논의는 다소 주춤해진 상황이다.

    ‘발등의 불’ 선거구제 개편

    “헌법재판소 위헌 판결로 선거구제 개편 문제가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됐습니다. 현행처럼 소선거구제를 유지할지, 아니면 중대선거구제로 바꿀지 선거구 획정 문제를 논의하다보면 개헌 논의는 아무래도 뒤로 밀리지 않을까 싶네요.”

    ▼ 선거구제 개편에 대해 여러 가지 의견이 나오는데요.

    “현행 소선구제에서는 ‘영남당’ ‘호남당’이라고 할 만큼 지역별로 지지도가 극명하게 갈리지 않습니까. 국민 화합과 통합을 위해서는 중대선거구제로 개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요. 중대선거구제로 바꾸면 자연스럽게 지지세가 섞여 다당제가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다섯 개 정당이 고른 지지를 받게 되면 어느 한 정당이 독자적으로 정부를 꾸리기 힘듭니다. 서너 개 정당이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소수 정당에도 장관 자리를 배분하고, 또 서로 좋은 정책을 받아들여 힘을 합해 추진하면 지금보다 효율적으로 정부를 운영할 수 있다고 봅니다.”

    20대 총선은 2016년 4월 실시된다. 그전에 선거구제 획정을 매듭지어야 하기 때문에 2015년 한 해는 선거구제 개편 논의가 정치권을 뜨겁게 달굴 것으로 예상된다.

    ▼ 다음 총선에 출마할 생각입니까.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습니다. 국회의장을 명예직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고, 국회의장을 지내면 정치 생명이 끝나는 것으로 보는 사람도 있어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우리나라는 지정학적으로 중·미·러·일 4개국 외교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외교력을 높여 국익을 지키려면 경륜을 갖춘 무게감 있는 정치인의 역할이 꼭 필요합니다. 일본 중의원 중엔 총리를 지낸 4∼5명이 여전히 활동하지 않습니까. 우리 국회는 초선이 많고 중진이 적은 피라미드 구조인데, 달항아리처럼 초선, 중진, 다선 의원이 고루 분포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 지역화합의 전도사로 활동하고 남북 국회회담을 추진하는 정 의장을 두고 ‘통일 대통령’이 되려는 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옵니다.

    “국회의원이 되려면 논두렁 정기라도 타고나야 한다는 농담이 있는데, 대통령은 하늘이 내린다고 생각합니다. 저를 좋게 봐주시는 건 고맙지만 좀 지나친 말씀이고…. 입법부 수장인 국회의장은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과 역할과 기능은 다르지만 그 자리가 갖는 책임의 엄중함은 같다고 봅니다.”

    ‘권력은 쥐고 나면 지옥’

    ▼ 박근혜 대통령과는 자주 연락합니까.

    “직접 연락한 적은 없습니다. 그럴 일도 없었고요. 의장 취임하고 8월에 청와대 가서 만나고, 대통령께서 시정연설하러 국회를 방문했을 때 여기(의장실)서 만났어요. 10월 1일 계룡대에서 열린 국군의 날 행사 전에도 잠시 만나 대화를 나눴죠.”

    정 의장은 입법부 수장과 행정부 수반이 연말에 만나 한 해를 돌아보고 새해 정국에 대해 함께 논의하는 것이 국정 안정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박 대통령을 공관으로 초청했다고 밝혔다.

    “연말에 의장 공관으로 대통령을 초청했어요. 정무수석이 대통령께 보고했다고 하는데 아직 확답은 못 받았습니다.”

    박 대통령이 정 의장의 국회의장 공관 초청에 응해 헌정 사상 최초로 대통령의 국회의장 공관 방문이 성사될지 주목된다.

    ▼ 이른바 ‘정윤회 문건’ 파동으로 연말 정국이 시끄럽습니다.

    “대통령을 보좌하기 위해 청와대에 들어간 비서는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최선을 다해 잘할 생각을 해야지, 헛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검찰 조사로 진위가 분명히 밝혀져야 확실히 알 수 있겠지만, 지금 나오는 얘기처럼 (비서가) 서류를 빼내서 다른 목적으로 이용하려 했다면 사기꾼과 다를 바 없죠. 청와대에 들어갈 때는 국가에 헌신하고 국민을 위해 최선을 다해 봉사하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데….”

    ▼ 공조직과 비선이 권력을 두고 충돌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있습니다.

    “양심껏 일하지 않을 사람이 권력을 쥐거나, 권한 없는 사람이 권력을 행사하려 들면 자신은 물론 사회와 국가에도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합니다. 정두언 의원이 이런 얘기를 했죠. ‘권력은 쥐고 나면 지옥’이라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것이라는 것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 훗날 묘비에 어떤 글귀를 남기고 싶습니까.

    “자신의 신념과 의지로 살다 감.”

    ▼ 그렇게 살고 있습니까.

    “국회의장 임기가 2년인데, 18년 동안 정치를 해오면서 느낀 철학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공공이든 민간이든 의원 외교든, 모든 외교 활동이 한반도 분단을 해소하고 통일을 이루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동시에 품격 있고 선한 대한민국의 이미지를 전 세계에 심고, 문화민족, 문화강국으로서의 진면목을 알리려 노력해야 합니다. 저도 국회의장으로서 전력을 다할 생각입니다.”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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