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 소 : 한국프레스센터 프레스클럽
■ 패 널 : 안경환 서울대 명예교수, 전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낙성대경제연구소 이사장
■ 사회·정리 : 김진수 기자 jockey@donga.com
사회 ‘신동아’의 대담 초청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른바 ‘정윤회 사건’으로 나라가 들썩입니다. 양파껍질처럼 벗겨지는 연쇄 폭로에 가히 총체적 난국이라 할 만합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조망하자면 최고 통치자의 리더십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집권 3년차를 맞는 박근혜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과 우리 정치문화 현실을 어떻게 보십니까.
이영훈 통상 1945년 8월 15일 일제로부터 해방된 때를 우리 역사인식의 원점이라 생각하죠? 저는 ‘광복’ 대신 ‘해방’이란 용어를 씁니다만, 어쨌든 역사인식의 출발점이 70년밖에 안 된다고 보는 데 문제가 있어요. 한국 지성사회가 지닌 총체적 지적능력 속에서 정치적 리더십이 탄생하는 것이지, 어느 한두 개인의 문제가 아니란 거죠.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을 발가벗겨 비판하기보다 그들의 리더십이란 게 결국 우리 정신문화의 소산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왜 하필 해방 70년입니까. 일제강점기 35년은 긴 역사에서 보면 극히 짧은 기간이에요. 저는 적어도 300년쯤 되는 역사적 지평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가령 18세기 영·정조 때 10년, 30년 단위로 무슨 일이 어떻게 있었다는 정도는 지성사회가 상식으로 여겨야 한다는 거죠. 일제 치하 35년을 비판하기 위한 역사의식은 매우 단견적입니다. 이건 어느 누구의 잘못이라기보다 한국 사회의 정신문화적 한계 탓이죠.
정치적 리더십은 시대적 과제를 꿰뚫는 예리한 지성의 능력입니다. 정치는 대중을 설득할 수 있는 예지와 용기 두 가지가 결합된 높은 품격의 인간성이고요.
그런데 박 대통령에겐 그게 없어요. 제가 비록 ‘우파’로 분류되지만, 현 정부나 이전 정부를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어요. 노무현 정부도 마찬가집니다. 역대 모든 정부가 시대정신을 꿰뚫는 예지와 용기를 보여주는 리더십에선 근본적 한계를 지녔다고 봅니다.
안경환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탄생시킬 수 있었던 역사적 배경은 광복과 대한민국 탄생 이전부터 이미 우리 민족이 갖고 있던 겁니다. 조선이란 나라가 500년 지속된 가장 큰 이유는 절대왕정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임금과 신하 간에 주고받는 소통 구조가 있었어요. 그게 나중에 문민정부와 그 후 한국 민주주의의 뿌리가 된 거죠.
그런 자산에 대해 우리는 청산해야 할 과거처럼 여길 뿐, 현재의 민주정치에 적용하려는 생각을 못합니다. 불모의 나라에서 국제사회에 유례없는 발전을 이룩하는 과정에서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이 적절히 결합해 이만큼 성공한 거잖아요. 따라서 급한 마음에 가시적 수치상으로만 선진국 진입을 바라는 건 경계해야 합니다. 지난 세월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사회적으로 얼마나 무리가 따랐습니까. 이젠 그 무리했던 부분을 꼼꼼히 따져야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있어요.
대통령의 리더십도 물론 중요하죠. 하지만 기본적으로 한 개인의 리더십은 사회 전체 시스템을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리는 것 아니겠어요? 그런 점에서 박 대통령은 한국 민주주의 시스템을 적극 활용하고 권장하는 습관과 경험이 부족합니다. 대통령은 국가원수이지만 행정부 수장인 동시에 국회와 협력해야 할 파트너입니다. 군림하는 존재가 아니에요.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의 체질을 그대로 현 시스템에 적용하려는 듯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