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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탐구

15년 기다려 ‘곗돈’(2인자 자리) 받은 ‘은둔의 킹메이커’

이병기 대통령비서실장

  • 허만섭 기자│mshue@donga.com

15년 기다려 ‘곗돈’(2인자 자리) 받은 ‘은둔의 킹메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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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윤병세가 외교장관 되는 데 일조”
  • ● “YS 위해 김기춘 남겨둬”
  • ● “87년 대선 YS·DJ 단일화 막으려 노력”
  • ● 6·29선언, 천막당사 이벤트 기획자
  • ● 朴대통령이 미리 끌어 쓴 ‘임기말 카드’
15년 기다려 ‘곗돈’(2인자 자리) 받은 ‘은둔의 킹메이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청와대를 떠났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병기 국가정보원장을 그 자리에 꽂았다. 김무성 대표 말마따나 ‘장고(長考) 끝에 홈런’일까. 이 실장은 ‘나름 마당발’이라고 하지만, 많은 사람은 그를 모른다. 그는 ‘흔한’ 국회의원 한번 안 했다. 구석진 자리로, 언론의 눈에 안 띄는 자리로 돌았다. 새로운 ‘권력 2인자’ 이병기 실장이 어떤 인물인지, 그를 중심으로 정권 내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아봤다.

“현명관이란다, 젠장”

2월 26일 밤 청와대 관계자가 술자리에서 말했다.

“내일 오전 발표한대.”

설 연휴 이전부터 끌어온 김기춘 실장 후임자 발표에 대한 이야기였다. 일행 중 한 명이 “내일 한대? 누구?”라고 묻자 이 관계자는 불만 섞인 투로 말했다.



“현명관이란다, 젠장. 난 내일 출근 안 하려고….”

이 관계자는 말을 이었다.

“내일 오전에 회의 먼저 하고, 회의 후에 발표한대. 현명관에게 충성할 이유를 찾을 수가 없어.”

그는 같은 자리에 있던 한 기자에게 “기사 쓰지 마”라고 했다.

다음 날 오전 한 언론매체에 ‘새 비서실장 현명관’제하의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떴다. 한 통신사가 검증해 후속 보도했다. 기정사실이 되는 듯했다. 그런데 이후 몇 시간 동안 반전이 일어났다. 여권 내에서 ‘현명관 불가론’이 거세게 불거졌다. 부정선거 논란으로 공천권을 박탈당한 문제, 삼성 출신이 인사혁신처장에다 대통령비서실장까지 꿰차는 문제, 정윤회 의혹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한국마사회의 회장이 하필 비서실장이 되는 것에 대한 비판…. “여론에 또 두들겨 맞겠네”라는 전망도 나왔다.

오후로 발표가 늦춰졌다. 인사권자의 마음이 바뀌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몇 시간 뒤, 예상을 깨고 이병기 국정원장의 비서실장 임명이 발표됐다.

여권 관계자 A씨는 “급하게 찾다보니 ‘플랜B’ 이병기 원장이 낙점된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박 대통령이 잘되려고 그리 됐다. 그간 청와대에 ‘마(魔)’가 끼었는데 여기서 벗어나려는 모양”이라고 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일각에선 ‘돌려막기’라는 비난이 나왔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잘 선택된 인사”라는 박지원 새정연 의원의 말로 일축되는 듯하다.

“그간 ‘마(魔)’가 끼었는데…”

이 실장은 1974년 외무고시로 공직에 들어와 1998년 국가안전기획부 2차장을 끝으로 공무원 생활을 잠시 접었다. 2001년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 안보특보로 정계에 입문했으나 2012년까지 당 여의도연구소 고문 같은 한직(閑職)에 주로 머물렀다. 그러나 2013년 박근혜 정부 출범 후엔 주일대사(13개월), 국가정보원장(7개월)을 거쳐 대통령비서실장으로 승승장구한다. 박 대통령의 신임이 각별한 것으로 짐작된다.

여권 인사들에 따르면 이 실장은 인간관계가 원만해 평판이 좋은 편이라고 한다. 다음은 이 실장의 지인 B씨와의 대화다.

▼ 이 실장의 성격적 특성은 어떤가요.

“임태희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홍사덕 전 국회 부의장을 합쳐놓은 케이스랄까…. 임 실장은 해 떨어지면 일과시간에 못 받은 전화에 다 반응해줘요. 이 실장도 그런 편이었죠. 엄청 부지런히 사람 관리해요. 홍 부의장은 영국 신사처럼 어떤 일을 당해도 거친 표현을 안 쓰는데, 이 실장도 그만큼 우아해요. 그래서 인심을 안 잃었다고 할까….”

▼ 이 실장은 정계 입문 후 비례대표가 된 적도, 공천을 받은 적도 없네요.

“정치하는 사람은 국회의원이 꿈이죠. 이 실장도 마찬가지고. 그러나 이 양반은 ‘저 사람 대신 나 시켜달라’ 이렇게 요구하는 스타일이 못 돼요. 15년을 기다렸다가 이번에 ‘곗돈’, 그러니까 ‘2인자 자리’를 한번에 받은 거죠.”

여권 인사들에 따르면 ‘사람과 척지지 않으려는’ 이러한 성격은 야당 인사 등 ‘반대편’ 사람들과 교류하는 데에도 도움이 됐다고 한다. 다음은 이 실장이 언젠가 주변 사람들에게 털어놨다는, 야당 인사 등과 관련된 일화들이다.

“김근태, 조영래와는 고등학교 때부터 베스트 프렌드였다. 영어공부 서클에서 만났다. 내가 청와대에 있을 때 김근태가 인천 사태를 주도했다. 노태우 대통령 집무실에 들어가 ‘부탁이 있습니다. 김근태라고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입니다. 풀어주십시오. 빨갱이도 아닙니다’라고 했다. 노 대통령이 민정수석에게 바로 지시를 내려 풀어줬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후) 내가 일본으로 (객원교수로) 떠날 때 근태가 나를 부르더니 봉투를 주더라. ‘이거 가지고 책 사봐’ 하면서. 300달러를 꼬깃꼬깃 넣었더라. 내가 그걸 보고 울었다.”

“(1997년) 안기부 2차장 시절 권영해 당시 부장이 대통령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DJ에 대한 북풍사건 얘기를 처음 꺼내더라. 나는 반대했다. 대만 출장 끝나고 돌아오니 난리가 났더라. 황모 검사가 ‘저희 목표는 차장님이 아니고 부장을 모시는 건데 중간에 차장님을 빼먹으면 마치 저희한테 밀고해서 살아남은 것처럼 오해받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절차를 밟는 것이니 이해해주십시오’라고 하더라. 한 시간 만에 조사가 끝났다. 내 위아래로 한 6명 잡혀갔는데 나만 살았다. 그때 나를 도와준 사람이 민주당의 정동영, 설훈인 것으로 안다.”

“고3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집안도 어려워졌다. 학교 주변에서 소설전집을 파는 아르바이트를 해 30만 원을 모았다. 그 돈으로 집을 구해 살았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도 젊었을 때 카레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하더라. 젊었을 때 고생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와 더욱 친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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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만섭 기자│mshu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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