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월 27일 현대차 울산5공장 생산라인을 찾은 보후슬라프 소보트카 체코 총리를 안내하는 정의선 부회장(오른쪽에서 두 번째).
이제 현대기아차는 글로벌 800만 대 생산체제를 갖추고, 명실상부 세계 자동차업계 5위권으로 인정받으며 경쟁사들의 시샘 어린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 이제 글로벌 3위권 회사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차원의 정밀한 전략이 요구된다.
향후 15년간 세계 자동차업계와 현대·기아차 앞에는 새로운 영업 환경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 인터넷 영향력이 보다 확대되고, 과학기술의 발전 속도가 훨씬 빠르게 전개되는 것이 변화가 불가피한 근본 원인이다. 과거 15년간 유무선 인터넷의 발달은 눈부실 정도이지만, 긴 관점에서 보면 이제 겨우 IT(정보통신기술)가 인류에게 보편화하면서 기본적인 도구로 사용되는 첫 단계에 도달한 수준이다.
IT 보편화 따른 정밀전략 필요
IT의 발달은 정보와 지식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유통되는 환경을 만들어냈고, 이는 △로봇 자동화에 따른 제조업 혁명 △셰일오일 개발에 따른 에너지 혁명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의 중요성 확대라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로봇 자동화와 에너지 혁명은 과거 15년간 이어 BRICs 중심의 세계경제 중심축을 미국, 유럽, 중국, 인도 중심으로 옮겨가고 있다. 에너지와 자원 중심의 경제성장 패턴을 유지해온 러시아, 브라질 및 신흥국은 성장이 둔화할 가능성이 높은 반면, 미국의 압도적인 정보기술과 국방력이 가세하면서 새로운 ‘팍스 아메리카나’ 시대를 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 자동차산업에서 미국 시장의 중요성이 새삼 부각될 것으로 보이는 이유다. 에너지 혁명은 유가 및 원자재 가격의 하향 안정화로 이어지면서 과거 소형차 위주의 라인업에서 럭셔리 중대형차, SUV, 픽업, 밴 등 보다 다양한 차종의 중요성이 높아지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과거 15년간의 글로벌 경제 환경은 어쩌면 현대차그룹의 기업 문화에 절묘하게 부합하는 것이었다. 현대차그룹의 기업 문화 핵심은 ‘선 굵은 추진력과 끈끈한 응집력’이라고 볼 수 있다. 과거의 경제 환경에서는 외부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기보다는, 장기 목표를 설정하고 밀어붙이는 현대차그룹 특유의 기업 문화가 그야말로 ‘찰떡궁합’을 이뤘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장차 정의선 부회장이 지휘하게 될 현대차그룹은 이제까지 유지해온 조직 문화의 장점을 기반으로 외부의 변화를 민감하게 감지해내는 세밀함과 이를 신속하게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유연성을 보강해야 한다. 자동차 보급률이 낮은 신흥국에 공장을 짓고, 품질 좋은 제품(자동차)을 만들기만 하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던 ‘800만 대 시대’를 뒤로하고, 정면승부의 장인 미국과 유럽에서 존재감을 각인시켜야 하는 과제가 놓여 있다.
과거 50년간 자동차산업의 기술혁신은 대량생산과 품질관리에 맞춰졌다. 이 과정에서 자동차 생산시스템은 다른 산업보다 경직된 구조를 갖추게 됐다. 2015년 이후로는 유가와 환율이 급변동하면서 자동차 기업들에 ‘생산 시스템의 유연화’라는 난제를 요구할 것이다. 유가 변동에 따라 세단과 SUV 비중, 파워트레인 구성을 자유자재로 변화시켜야 하며, ‘히트 상품’이 나오면 생산량을 과거처럼 20~30% 증가시키는 게 아니라 2~3배 증가시킬 수 있는 유연한 생산 시스템이 요구된다. 최근 6개월 동안과 같이 유가와 환율 등 거시경제 지표가 짧은 기간 급변하는 상황에는 생산 시스템도 민첩한 대응이 가능하도록 생산 유연성을 높여야 한다.

1월 미국 디트로이트 모터쇼에 참석해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정의선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