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호

지옥 같은 결혼도 이혼하면 아쉽다!

깔끔하게 헤어지는 게 가능할까?

  • 최명기 | 청담하버드심리센터 연구소장 artppper@hanmail.net

    입력2015-03-20 09: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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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결혼은 커다란 짐을 지고 오르막길을 오르는 것과 같다. 올라갈수록 짐은 더 무거워진다. 그런데 막상 내리막길로 굴러떨어지고 보니 그 짐은 차라리 보석이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다시 짊어지려 해도 마음대로 되질 않는다.
    지옥 같은 결혼도 이혼하면 아쉽다!

    일러스트·김영민

    사람은 누구나 얻어맞으면 아프다는 걸 안다. 상당히 아플 것이라는 예상도 한다. 하지만 막상 맞아보면 생각한 것보다 더 아프게 마련이다. 이혼도 마찬가지다. 이혼이 힘들다는 건 누구나 안다. 이혼이 힘들 것이라고 예상도 한다. 하지만 결혼생활이 힘들어지고 앞으로 나아질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면 이혼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깔끔하게 이혼하고 새 출발하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이혼은 험난하다.

    남편의 외도가 문제가 돼 이혼하기로 한 커플이 있었다. 남편은 미안한 마음에 처음에 아내가 원하는 대로 재산도 정리해주고 살던 집도 주기로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남편의 말이 점점 바뀌어갔다. 결국은 아내의 약점을 들추면서 싸우게 됐다.

    ‘성격 차이’로 여자가 먼저 이혼 얘기를 꺼낸 커플이 있었다. 처음에 여자는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긋지긋한 결혼생활에 대한 보상으로 무엇인가 손에 쥐고 싶었다. 결국은 남편의 약점을 들추면서 싸우게 됐다.

    약점 찾아내기

    이렇게 밀고 당기다보면 이혼소송으로 이어지게 된다. 소송을 하겠다면 다들 옆에서 말린다. 아무리 감정이 상했더라도 거기서 멈추라고 충고한다. 하지만 ‘이미 진흙탕인데 여기서 더 나빠질 게 뭐가 있겠어’하는 생각에 결국 소송을 하게 된다. 그런데 소송은 그나마 쥐꼬리만큼 남아 있던 정(情)도 완전히 지워버린다.



    총을 잡으면 사람들은 무심결에 방아쇠를 당겨보고 싶어진다. 형식적으로 치러도 되는 시험이지만 막상 시험을 치르게 되면 좋은 점수를 받고 싶다. 소송도 마찬가지다. 소송을 하게 되면 이기고 싶은 것이 본능이다.

    더구나 변호사들은 이겨야 돈을 번다. 그러다보니 소송 당사자들에게 이런저런 증거를 요구한다. 처음에는 왠지 너무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증거를 넘기면서도 “꼭 이런 것까지 법원에 제출해야 하느냐”고 묻기도 한다. 변호사는 “일단 가지고만 있겠다”고 한다. 그런데 상대방의 소장을 보는 순간 뚜껑이 열린다. 어쩌다 한번 소리 지른 것이 허구한 날 소리 지른 것으로 돼 있다. 너무 힘들어서 밥 한번 안한 것이 아내의 의무를 저버린 것으로 돼 있다. 어쩌다 한번 밀친 것이 구타한 것으로 돼 있다. 어쩌다 한번 아이를 학교에서 늦게 데리고 온 것이 상습적인 방치로 돼 있다.

    나는 그나마 배려해주려고 했는데 상대방이 이렇게 나오니 참을 수 없다. ‘그놈’ 또는 ‘그년’이 내게 잘못한 게 뭐가 있었는지 기억해내기 위해 머리를 쥐어짠다. 그러다보면 기억도 뒤바뀐다. 그냥 넘어갈 만한 일도 나쁜 짓이라는 생각이 든다. 변호사가 알아서 걸러주겠지 생각하면서 슬쩍슬쩍 거짓말도 끼워넣는다. 변호사를 닦달해서 이런 온갖 독한 증거를 모두 제시한다. 이렇게 소송을 통해서 서로가 서로를 죽일 ‘놈년’으로 만들면서 소송이 진행된다. 한때 부부였지만 이제는 철천지 원수가 된다.

    이렇게 힘든 과정을 거쳐 이혼했다면 어찌됐건 상대방을 잊고 잘 살아야 한다. 하지만 막상 이혼해도 상대방을 인생에서 깔끔하게 도려내기란 쉽지 않다. 여자 측이 먼저 요구해서 이혼한 경우 남자들은 대개 아내를 잊지 못한다. 외도가 문제였든 경제적으로 무능했든 술 때문이든, 문제를 지니고 있는 경우 지금 처지에서 아내만한 여자를 구할 수 없다. 그렇다보니 이혼한 아내에게 집착한다. 여자가 생각날 때마다, 돈이 필요할 때마다, 술에 취할 때마다 전화를 한다. 하지만 아내의 반응은 싸늘하다.

    남자, 잘 바뀌지 않는다

    평생 욕하고, 때리고, 지속적으로 바람 피운 나쁜 남자들은 오히려 적반하장이다. 이런 남자들은 이혼 얘기가 나올 때부터 공격적이다. “이혼을 해도 내가 하는 것이고, 같이 살기로 해도 내가 결정하는 것”이라면서 뭐든지 자기 마음대로 해야 직성이 풀린다. 여자가 벌어다주는 돈으로, 여자를 종처럼 부리면서, 심심하면 화풀이를 한 경우 이혼을 하면 경제적으로도 힘들고 화풀이 대상도 사라진다.

    여자를 학대하는 남자들 중 직업이 번듯하고 돈이 많은 경우도 드물게 있다. 하지만 대부분 보잘것없는 이들이다. 집안에서는 왕처럼 군림하지만 사회생활에선 능력도 없다. 여자를 깔보면서 자존감을 유지하는 남자의 경우 여자를 잃으면 세상을 잃는 것 같다. 하지만 ‘꼴같잖은’ 자존심 때문에 절대로 빌지 않는다. 따라서 이혼 과정이 지저분하기 짝이 없다. 남자는 어떻게든지 이혼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여자는 어떻게든지 남자로부터 벗어나려 한다. 그러다보니 잘못은 남자가 저질렀는데 여자가 집도 내주고, 재산도 내주고 몸만 나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도 이 정도는 양반이다. 이혼하고 나서 분을 못 삭이는 남성이 대다수다.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혼을 하고도 억울하다 여기고 승복하지 못한다. 계속 여자에게 화를 내고 협박도 한다. 양육권을 빼앗긴 다음에도 양육비를 제대로 주지 않는다. 설혹 주더라도 한 푼 한 푼 따지고 든다. 이혼하고 나서도 여자를 간섭하고 통제하려 든다. 이혼 후에 여자가 다른 남자를 만나면 안 된다면서 사사건건 간섭한다.

    그러다가 태도를 싹 바꾸는 이들도 있다. 여자 없는 삶이 너무 힘든 것이다. 그래서 아내에게 빌었다, 화냈다 정신이 없다. 그러다보면 여자는 ‘구관이 명관’이라는 생각에 재결합을 결심한다. 이러다가 이혼 재혼 이혼 재혼 이혼 재혼을 거듭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남자들은 잘 바뀌지 않는다. 막상 다시 결합하면 원래 성질대로 돌아간다.

    자신이 먼저 이혼을 요구하고 나중에 후회하는 경우도 있다. 여자에게 연락해서 다시 잘해보자고 하는 남자도 있다. 남자들이 이혼을 하고 가장 힘들어하는 것이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것이다. 겉으로는 그럴듯하게 말하지만 결국 생활이 불편해서 전처에게 연락하는 것이다. 노골적으로 살림을 해달라고 하기도 한다. 아이를 키워야 하는 경우 남자들은 더욱 힘들어한다.

    어떤 이혼남들은 아내가 없다는 것 자체를 너무 힘들어한다. 생각보다 외로움이 크다. 그리고 이혼하기 전에는 안 좋은 일을 할라치면 말리는 아내라도 있었는데 아내가 없으니 엉망이 된다. 특히 알코올 의존증이나 게임중독의 경우 생활이 도저히 관리되지 않는다. 아내가 없으면 죽을 것 같다.

    여자, 鄕愁심리에 빠진다

    여성의 경우는 어떨까. 이혼한 남성이 의식주에서 당장 비상사태가 발생하는 것에 비해 여성은 남편이 없어도 당장 큰 불편은 느끼지 않는다. 그런데 시간이 가도 심리적 상처가 치유되지 않는 이들이 종종 있다. 심하게 싸운 경우 마음이 엉키게 된다. 이혼하는 과정에서 상대방의 마음을 뜯어내다보면 내 마음이 너덜너덜해진다. 나와 상대방의 마음이 분리되지 않은 상태여서 그렇다. 이혼하고 마음이 망가지면서 자아 경계가 허물어진다.

    언어적, 신체적 공격은 마음을 찌르는 창(槍)과 같다. 그런 날카로운 창으로 반복적인 공격을 받다보면 나라는 자아의 경계가 군데군데 손상된다. 좋건 싫건 나를 괴롭히는 상대방이 내 마음속에 흔적을 남기고, 심지어는 나의 일부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떼어내기가 힘들다. 억지로 한참 만나지 않더라도 내 안에 남아 있는 그 남자의 일부가 계속 마음을 후벼 판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만나는 게 마음이 편할 것 같다. 그 무렵에 우연히 남자에게서 연락이 오면 마음이 동해서 만나게 된다. 남자를 다시 만나는 순간 인생이 망가진다는 것을 안다. 다시 만나면 안 된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자꾸 생각이 난다. 미운 정, 고운 정이 들어서 헤어지고 나서도 잊지 못한다.

    사사건건 싸우던 부부도 막상 헤어지면 마음이 묘해진다. 그동안은 상대방으로 인해 받은 고통만 떠올랐지만, 이제 끝이라고 생각하면 좋았던 순간이 느닷없이 떠오른다. 노스탤지어, 즉 ‘향수(鄕愁)심리’가 작동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살다가 미국으로 이민 가면 한국이 살기 더 좋은 것 같고, 그래서 다시 한국으로 오면 미국이 더 살기 좋았던 것 같다.

    아무리 싸우고 비난했더라도 아이가 아프거나 급히 어딘가로 움직여야 할 때 남편이 아쉽다. 밖에서 무시라도 당하면 이럴 때 남편이 있었다면 내 편이 돼줬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썩은 기둥이라도 없는 것보다 낫다는 말처럼 막상 남편이 없으면 서럽고 외롭고 아쉬운 점이 너무 많다.

    양육비를 놓고 전남편과 다투게 되면 진짜 치사하고 더럽다. 아이 아빠는 양육비란 온전히 아이를 위해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를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키는 데 써야만 한다는 거다. 아이 엄마가 살림살이를 사거나 옷을 사는 경우 꼬치꼬치 따지면서 일일이 영수증을 확인하자고 한다. 아이 엄마가 학원비가 모자라다고 하면 꼭 거길 보내야 하느냐면서 따지기도 한다.

    어떤 아이 아빠는 아이를 만났을 때 아이가 갖고 싶다고 한 장난감을 사주고 그걸 양육비에서 제하자고 한다. 장난감을 사주면 아이는 아빠가 사줬다는 것을 분명히 기억한다. 아빠는 아이가 좋아하는 걸 보며 흐뭇해한다. 그런데 양육비를 줬을 때 “아빠가 준 돈으로 생활하니까 아빠에게 고마워하라”고 아이에게 알려주는 엄마는 없다. 그러기는커녕 아빠가 돈을 덜 부쳐줘 우리가 이렇게 힘들게 사는 거라고, 엄마가 아이를 세뇌할 것이라 지레짐작한다. 그래서 아이가 원하는 것을 직접 사줘서 아이의 점수를 따려고 한다.

    양육비를 아이에게 용돈으로 직접 주겠다고도 한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고, 이혼을 하고 시간이 지나면 양육비를 주다 안 주다 하게 마련이다.

    재혼? 아이 핑계는 대지 말라!

    자녀를 아내에게 빼앗겼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남자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양육비 지급을 중단한다. 아이 엄마와 갈등이 생기면 복수하듯 양육비를 끊기도 한다. 다른 여자가 생기거나 재혼을 하면 양육비 지급을 뚝 멈춘다. 아내가 경제적 능력이 있거나 처갓집이 잘사는 경우 “내가 더 힘들다”고 하면서 양육비를 내놓지 않는다. 이렇게 한 번, 두 번 미루기 시작하면 끝없이 미루게 된다. 아내는, 처음에는 어떻게든지 받아내야겠다고 생각하지만 자꾸 다투다보면 치사해서 안 받고 말겠다는 생각이 든다.

    따라서 양육비 중 일정 액수는 일시불로 받는 것이 현명하다. 하지만 남자들은 어떻게든 양육비를 목돈으로 주지 않으려고 한다. 아이 엄마가 그 돈으로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의심에서다. 매달 돈을 줄 때는 아내와 자녀를 통제할 수 있는데 목돈을 주면 그 맛도 없다는 거다.

    이혼한 여성들이 돈보다 더 힘들어하는 건 섹스다. 남자들은 이혼한 후 휘황찬란한 대한민국 밤문화를 통해 성욕을 해소하곤 한다. 물론 아내도 성인 나이트클럽에 가서 ‘원나이트’를 꿈꿀 수 있다. 여성을 상대로 하는 호스트바도 있다. 하지만 그것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여성은 남성만큼 편하게 성욕을 해소할 수 없다. 돈도 쪼들리고, 외롭고, 성적으로도 욕구불만인 경우 남자들에게 자꾸 눈길이 간다. 그러다 친해지면 함께 살게 된다.

    하지만 돈 때문에, 섹스 때문에 남자와 산다고 생각하면 스스로도 비참하다. 그래서 아이들 핑계를 댄다. 아이에게는 아버지가 필요하다는 식이다. 과거에 모질게 당했던 학대는 잊어버린 채 아이에겐 아빠가 필요하다고 하면서 전 남편에게 연락해 다시 합치기도 한다.

    그러나 아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뭘까. 재혼하는 것도 좋다. 전남편과 합치는 것도 좋다. 하지만 아이를 핑계로 대서는 안 된다. 내가 재혼을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지, 아이를 위해서라고 핑계를 대서는 안 된다. 아이는 굶어 죽을지언정 새아빠하고 살기 싫다. 자신을, 그리고 엄마를 때리고 욕하던 아빠와 다시 사는 것은 죽기보다 더 싫다.

    결혼은 커다란 짐을 지고 오르막길을 오르는 것과 같다. 걸으면 걸을수록 짐은 더욱 무거워진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짐이라는 생각에 내려놓는다. 그런데 막상 내리막길로 굴러떨어지고 보니 그 짐은 커다란 보석이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등에 다시 짊어지려고 해도 쉽지 않다.

    옛날에는 쓰러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한 걸음 한 걸음 버티었지만, 한번 내려놓은 짐을 또다시 짊어지고 다시 걸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허리도 펼 수 없다. 결혼생활도 마찬가지다. 살아갈 때는 지옥 같던 결혼생활도 막상 이혼하면 아쉽다. 함께 살아가는 동안에는 어떻게든 버티지만 다시 시작하려면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이혼할 때는 신중해야 한다. 하지만 일단 이혼하면 뒤돌아보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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