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능하다면 자비를 좀 베풀어라. 거리로 내몰린 이들에게.
모두 당신과 같은 사람들이니.
-뮤지컬 ‘레미제라블’ 수록곡 ‘look down’ 중에서
# 2월 19일 오후 10시 서울 관악구 신림동 한 마트
“여기 우유 있나요? 아, 그, 그, 그거 초코과자랑…. 아, 그 휴지도요.”
온 가족이 모이는 설날 밤. 검은색 낡은 점퍼를 입은 40대 남성이 정신을 쏙 빼놓을 정도로 분주하게 마트 안을 오갔다. 아이, 아니면 조카의 선물을 고르는 것인지 그는 이런 일이 익숙지 않은 사람처럼, 어색하게 마트 안팎을 오갔다.
5분쯤 지났을까. 그는 부산한 몸짓을 멈추고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카운터에 올려놓았다. 그러고는 물건을 담은 봉투를 들고 문밖으로 휙 나가버렸다.
‘바깥에 내놓은 물건을 가지러 간 거겠지….’
가게 주인은 그를 1분이 넘게 기다렸지만 그는 들어오지 않았다. 어느덧 창밖에 남자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자, 불안해진 가게 주인은 카드를 긁어봤다. 결제가 되지 않았다. 남자가 내놓은 카드는 다른 사람 명의의, 거래가 정지된 카드였다.
뒤늦게 남자를 쫓아가보지만 그는 이미 모습을 감춘 뒤. 남자가 훔친 상품은 3만5000원어치. 품목은 이러했다. 담배 3보루, 우유 1000mL, 비누 한 개, 소주 1병, 딸기맛 웨하스과자 1개….
# 2월 13일 낮 12시 서울 강남구 개포동 모 아파트 경비실
‘저거 한 박스면 돈이 얼마야…. 근데 저거 하나 없어졌다고 티가 날까?’
설 연휴를 앞두고 택배 아르바이트에 나선 40대 가장 이모 씨. 경비실에 다른 택배기사가 던지듯 맡겨두고 간 갈비, 굴비 상자를 보고 짧지만 깊은 고민에 빠졌다. 한때 서울 강남에서 술집을 운영했지만 최근 경기가 안 좋아 한동안 집에 생활비도 못 갖다준 지친 가장. 그의 눈앞에 갑자기 가족들의 얼굴이 어른거렸다.
‘이번 설에는 집에 선물도 하나 못 하는데….’
결국 이씨는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저질렀다. 다른 사람의 택배 상자에 손을 댄 것. 곧이어 그는 딸에게 줄 심산으로 마스크팩이 담긴 택배 상자도 하나 훔쳤다.
보름 만에 이씨는 경찰에 붙잡혔는데 그의 집 냉장고에는 굴비 20마리와 갈비 2.4㎏가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마스크팩 역시 전혀 사용하지 않은 상태. 그는 경찰 조사에서 이렇게 말하며 고개를 떨궜다.
“양심의 가책 때문에 먹을 수가 없었어요. 그 순간 미쳤던 것 같습니다.”
저 어둠 너머로 달아나는 죄수. 신께 버려진 타락한 자
신께 맹세코 포기 않으리. 마주칠 날까지.
도와주소서, 그를 찾아서 단죄토록.
너를 잡기 전엔, 쉬지 않으리. 별에 맹세하노라.
-‘레미제라블’ 수록곡 ‘별(Stars)’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