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호

“여론조사는 위헌 판단 근거 맞다”

남편 강지원이 본 김영란&김영란법

  • 엄상현 기자│gangpen@donga.com

    입력2015-03-20 16: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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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헌 논란? 참 무식한 이야기
    • ‘언론인’ 빼면 국민이 가만히 있겠나
    • 저항 가장 심했던 곳은 법 안다는 법무부
    • 부패는 경제성장 마이너스…‘청렴대박’ 날 것
    “여론조사는 위헌 판단 근거 맞다”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의 기자회견이 예정된 3월 10일 오전 10시,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건물(다산관) 1층 강당은 기자들로 북적였다. 어림잡아도 200명은 족히 넘어 보였다. 국내 모든 언론은 일주일 전인 3일 국회를 통과한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에 대한 그의 평가에 주목했다. 잠시 후 기자회견장에 모습을 나타낸 김 전 위원장은 예상보다 많은 취재진을 보고 짐짓 놀라는 눈치였다.

    “기자분들, 정말 많이 오셨네요. 제가 대법관 됐을 때보다 더 카메라가 많은 것 같아요. 작은 회의실에서 편안하게 하려고 했는데 분위기가 그렇게 안 돼서 죄송합니다.”

    김 전 위원장은 국회에서 법이 통과된 바로 다음 날 개인 일정 때문에 해외로 떠났다. 그 주 토요일, 예정보다 앞당겨 귀국한 그는 주말 내내 법안 내용을 면밀히 검토했다. 그사이 언론사의 인터뷰 요청이 헤아릴 수 없이 쏟아져 들어왔다. “일일이 답변할 수도, 특정 언론사와만 인터뷰할 수도 없어 결국 기자회견을 준비했다”는 게 김 전 위원장의 설명이다.

    기자회견에 앞서 그는 자신의 의견을 정리한 A4용지 8장 분량의 문서를 배포하고, 또박또박 읽어 내려갔다. 비판의 수위는 강했다. 법안 하나하나 조목조목 지적했다. 그리고 ‘반쪽 법안’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러면서도 국회 법 통과 직후부터 제기된 개정 및 수정 논란과 관련해서는 “시행도 하기 전에 법 개정이나 수정을 이야기하는 것은 성급하다”면서 “이 상태라도 제대로 출발하는 게 중요하다”고 법 시행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논란의 빌미 된 ‘여론조사’



    김 전 위원장이 법안을 고민하고 만들 때부터 이날 기자회견문을 발표하기까지, 그 모든 과정을 옆에서 지켜본 사람은 남편 강지원 변호사다. 김 전 위원장이 ‘김영란법’을 입법 예고하고 정부 각 부처와 조율 중이던 2012년 11월 권익위원장에서 물러난 것은 강 변호사의 대선 출마 때문이었다. 그러니 누구보다 김 전 위원장과 김영란법을 둘러싼 걱정과 고민을 같이할 수밖에 없었을 법하다.

    기자회견 이틀 후, 서울시내 한 카페에서 강 변호사를 만났다. ‘반쪽 법안’을 접한 김 전 위원장의 반응과 그간의 사정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였다. 마침 김 전 위원장의 기자회견 내용 중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직원이 법 적용 대상에 포함된 것이 위헌이 아니라고 밝힌 것과 관련해 논란이 일던 터였다. 문제의 기자회견 내용 중 일부다.

    “우리 국민 69.8%가 사립학교 교직원과 언론인까지 확대된 걸 바람직하다고 평했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과잉입법이라든지 비례의 원칙을 위배했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따라서 이 부분이 위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대목에서 논란의 빌미가 된 것은 위헌 여부를 판단하는 근거로 여론조사 결과를 제시했다는 것이다. 과학적 근거가 미흡한 여론조사를 근거로 위헌 여부를 판단하는 게 과연 대법관까지 지낸 법률전문가로서 적절하냐는 비판이다. 강 변호사는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이 같은 논란 자체에 대해 강한 불만을 쏟아냈다.

    “나의 답변은 이겁니다. ‘참 무식한 이야기다.’ 우리가 위헌성을 판단할 때 비례의 법칙이라는 것을 고려해요. ‘목적의 정당성’ ‘방법의 적정성’ ‘피해의 최소성’ ‘법익의 균형성’ 이 네 가지를 따져서 비례의 원칙에 적합하면 합헌이고 위반하면 위헌이라고 판단하는 것이거든요. 예를 들어 사형제도가 합헌이냐 위헌이냐, 또 간통죄가 합헌이냐 위헌이냐, 이건 정답이 없어요. 간통죄만 하더라도 네 번씩이나 합헌이라고 했다가 마지막에 와서 위헌이라고 했잖아요. 이렇게 바뀔 수 있는 거예요. 결국 법은 누가 만드느냐? 국민이 만드는 겁니다.

    이번에 법 적용 대상에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직원이 포함된 것에 대해 국민의 69.8%가 지지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어요. 그것은 결국 규제의 목적이 정당하다, 방법이 적절하다, 이 정도의 피해는 최소의 것이다, 그리고 언론의 자유라든지 표현의 자유와 같은 법익과의 관계에서도 균형성이 있다고 국민이 판단한 거예요.

    시간이 없어서 이 네 가지를 다 설명하지 못하고 여론조사 결과만 이야기하니까 이게 어떻게 법률적인 이야기냐고 비판하는데, 법률 공부를 조금이라도 한 사람이라면 금방 이해할 수 있는 겁니다. 물론 여론조사 결과를 가지고 법을 제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여론조사 결과가) 중요한 참고자료가 된다는 의미에서 인용한 것인데, 그걸 비판하는 걸 보면서 참 안타까웠어요.”

    법 개정 언급은 ‘레토릭’?

    “여론조사는 위헌 판단 근거 맞다”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은 3월 10일 서강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를 통과한 ‘김영란법’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 김 전 위원장의 기자회견 내용을 보면 굉장히 준비를 많이 한 것 같습니다. 가장 고민스럽거나 안타까워한 부분은 어떤 대목이었나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우선 100만 원 이하의 돈을 받았을 때 직무관련성을 요구한 부분은 납득이 안 간다고 하더라고요. 직무관련성이 있으면 아무리 적은 금액도 이미 뇌물죄로 처벌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그걸 과태료만 부과하겠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죠. 또 언론인을 법 적용 대상에 포함시킨 것에 대해 굉장히 안타까워했어요.

    정부에서 법안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하는 과정을 보면 입법예고와 국무회의 등 국민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도록 시간을 갖거든요. 그런데 국회에서 느닷없이 언론인을 포함시킨 거예요. 결과적으로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못한 거죠. (김 전 위원장이) ‘세상에 어떻게 이렇게 법을 통과시킬 수 있느냐’며 의아해하더라고요.”

    ▼ 정치권에서 법 개정 필요성에 대해 계속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정말 어떤 부분을 개정하겠다는 생각으로 하는 말인지, 그냥 정치적 레토릭(수사)인지 두고 보자고요. 정말 법적으로 큰 문제가 있다면 고쳐야죠. 그런데 지금 시행도 하기 전에 개정할 정도의 흠은 보이지 않아요. 시행해가면서도 얼마든지 고칠 수 있거든요. 만약 국회에서 언론인을 (법 적용) 대상에서 빼기 위해 법을 개정한다고 칩시다. 그게 통과되겠어요? 국민이 가만히 있겠어요?”

    강 변호사는 법이 이미 국회를 통과한 이상 ‘후퇴’하는 방향으로 개정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오히려 ‘거대한 저항’을 뚫고 법이 만들어진 것 자체에 대해 “기적 같은 일”이라고 평가했다. 그만큼 그동안 권력과 기득권 세력의 저항이 상상을 초월할 만큼 거셌다는 것이다. 강 변호사의 기억은 2011년 6월로 거슬러 올라갔다. 김 전 위원장이 국무회의 석상에서 ‘김영란법’에 대해 처음 제안했을 때다.

    “집사람(김 전 위원장)이 권익위원장에 부임한 지 얼마 안 돼 ‘제3자의 청탁금지를 해야 한다’고 하고 ‘공직자들이 직무관련성 없이도 돈을 받으면 다 처벌한다’고 하니까 다 기절초풍한 거예요. 특히 법무부와 행정안전부(현 행정자치부) 이런 데서 엄청나게 반대했어요. 그때 벌써 공직자들의 저항이 시작됐죠.”

    ▼ 김 전 위원장이 ‘김영란법’ 초안을 만들 때 같이 논의했습니까?

    “그럼요. 거의 유일한 상담자이자 토론 상대자였죠. 법안 만들어 가지고 오면 밥상에서 같이 밥 먹으면서 고민했죠.”

    ▼ 그때 어떤 부분이 가장 고민스러웠나요.

    “딱 그겁니다. 이번에 범위가 축소된 ‘제3자 청탁 부분’과 ‘대가성 없어도 무조건 처벌하는 문제’ 이 두 가지였는데, 워낙 강도 높은 규제여서 과연 이게 통과가 될까 싶었죠. 특히 법안을 만드는 과정에 ‘너무 과하지 않으냐’ ‘좀 완화하자’ 이런 요구들이 정부 안에서 수도 없이 많았죠.

    그때마다 집에 와서 고민을 하더라고요. 그래도 초지일관 밀고 나갔죠. 본인의 소신이 워낙 강하니까요.”

    권익위가 김영란법을 입법 예고한 것은 2012년 8월이다. 하지만 다음 해 5월 권익위와 법무부가 최종 합의한 법안은 당초 원안에서 대폭 축소됐다. 공직자가 업무와 관련이 있는 사람으로부터 금품이나 향응을 받았을 경우에만 처벌할 수 있도록 수정된 것이다. 당초 ‘직무관련성이 없는 사람으로부터 금품을 받으면 처벌할 수 있다’는 원안 내용은 사라졌다(국회에서 최종 통과된 법안은 100만 원 초과 금품 수수의 경우 직무관련성이 없어도 처벌받도록 규정했다).

    “이럴 바에 왜 만드나!”

    “제가 대선에 출마하는 바람에 (김 전 위원장이) 그만뒀잖아요. 그러고 나서 국무총리가 직접 나서서 부처 간 의견 조정을 했는데, 그때 가장 심하게 반대한 곳이 법을 좀 안다는 법무부예요. 결과적으로 법무부가 끝까지 반대해서 정부안에 직무관련성을 집어넣은 거죠.”

    ▼ 정부안을 본 김 전 위원장의 반응은 어땠나요.

    “언론에 대고 공개적으로 말은 못해도 ‘이럴 바에 왜 만드느냐, 아무 소용없는 법이다’면서 집에서 분개하고 성토했죠. 한번은 ‘당신이 대통령 출마 안했으면 내가 이 법 기어코 만들고 나오지 않았겠느냐’고 하더라고요.”

    ▼ 정부안이 국회로 넘어간 이후 논의과정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저나 집사람이나 정치권의 저항으로 봤어요. 처음에는 공직자들이 저항했고, 국회로 가서 정치권의 저항이 이어진 거죠. 이 법에 의하면 국회의원에게 함부로 청탁 못하게 돼 있어요. 국회의원들도 돈 받고 돈 뿌리지 못하게 돼 있거든요. 버틸 만큼 버티다 여론의 빗발치는 주문이 있으니까 마지못해 통과시킨 것이라고 봐요. 정말 여기까지 온 것만도 기적 같은 일이에요.”

    죽기 전 ‘청렴대박’ 보고 싶어

    ▼ 그런데 이번 법안에서 공직자 이해충돌방지 조항은 통째로 빠졌지 않습니까.

    “이 조항은 좀 복잡한 면이 있습니다. 범위라든지 유형이라든지. 여기에는 ‘국회의원이 보좌관을 쓰는데 자기 친인척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느냐’ 이런 문제도 걸려 있어요. 이 법에선 완전히 금지되죠. 공개채용을 하게 돼 있거든요. 그런 것 때문인지 보류됐는데, 이해하기 어렵죠. 곧 추가로 처리하겠다고 말은 하고 있으니 기대는 해볼 수밖에요.”

    ▼ 김 전 위원장이 ‘김영란법’에 대해서 초보적인 단계의 부패방지법안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는데요. 앞으로 어떤 조치들이 추가적으로 필요할까요.

    “집사람이나 저나 같은 생각인데요. 이 법의 통과는 시작일 뿐입니다. 이 법이 만들어졌다고 해서 대한민국이 갑자기 청렴국가가 되는 건 아니거든요. 전 국민이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치열한 자기혁신이 필요해요. 공직자는 공정하게, 기업은 투명하게, 언론은 정직하게 변화해야 한다고 봅니다. 얼마나 변화하느냐에 따라서 우리나라의 운명이 좌우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치면서 많은 갈등과 대립이 생겼는데, 이제 반부패 청렴국가, 화합하는 국가가 되는 게 이 시대의 과제입니다. 반부패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경제도 통일도 다 ‘모래 위의 성’이 될 수밖에 없어요. 부패지수가 경제성장에 미치는 마이너스적인 영향이 엄청 크거든요. 우리 사회가 청렴해질 때까지 피눈물 나는 노력을 해서 그렇게 되면, 경제가 꽃피는 ‘청렴대박’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검사 시절 부패의 한가운데 있었어요. 집사람도 판사니까 검사보다는 덜했겠지만 이런저런 청탁에 시달렸죠. 그래서 청탁이나 금품수수와 같은 것은 절대로 안 된다, 이것만은 죽기 전에 꼭 없어지는 것을 보고 싶다, 그런 심정으로 이 법을 만든 것일 겁니다. 저는 그렇게 이해하고 지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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