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대한민국號 70돌 <신동아-미래硏 연중기획 / 국가미래전략을 묻는다>

“정치주체 ‘지적 능력’ 부족해 ‘선언’만 있고 ‘처방’ 안 나와”

‘공진(共進)국가’ 구상하는 박형준

  • 대담·구해우 | 미래전략연구원장 정리·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정치주체 ‘지적 능력’ 부족해 ‘선언’만 있고 ‘처방’ 안 나와”

2/5
오바마 공감 이끈 MB

▼ MB가 미국 대통령과의 개인적 친분을 동맹 강화에 적절히 활용했다는 말로 들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인간적 측면의 접근에서는 미흡한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미국의 한 기관이 우리 영토 관련 지명을 잘못 표기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 정서상 중요한 문제였는데, 부시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해결해줬습니다. G20에 가입할 때 중국과 일본은 ‘한국이 무슨?’ 하면서 탐탁지 않게 여겼습니다. 프랑스도 의문을 표했고, 경쟁자이던 네덜란드 같은 국가들도 반대했고요. 부시 대통령이 영국, 호주 등을 움직여 한국이 G20에 가입한 겁니다. 경제위기 때 통화스와프에도 중국과 일본은 소극적이었습니다. 미국이 먼저 나서 우리와 스와프 협정을 체결했습니다.

정상들이 나누는 대화가 한미동맹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여럿이 대화하는 공식 회담 말고 단둘이 얘기할 때 얼마나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느냐가 핵심이죠. 서로 다른 나라의 정상이 깊은 친분을 쌓는 것은 성격이 맞았을 때가 아니라 두 사람이 자신의 가치, 비전, 콘텐츠를 갖고 대화를 나눴을 때 얘기해볼 만한 상대구나, 인식이 비슷하구나 하는 생각을 가졌을 때입니다. MB가 오바마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3만 명 넘는 미군이 이름도 모르는 나라에서 적과 싸우다 죽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도와준 나라 가운데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실현한 곳은 한국이 유일하다. 대한민국은 경제 발전과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했다. 미국이 신봉하는 가치가 옳았다는 점을 입증한 사례다. 따라서 한미동맹은 가치동맹이다.’



오바마가 이 말에 깊은 공감을 표했습니다. MB는 이렇게 덧붙였죠.

‘한국은 온 국민이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결국 집이 가난해 뻥튀기 장사를 하던 소년이 대통령이 될 수 있는 나라가 됐다.’

오바마에겐 이 말도 무척 인상적이었나봅니다. 그 후 가는 곳마다 한국 교육을 언급했어요.”

▼ 정상회담에서 ‘가치동맹’이란 표현이 나온 게 그때가 처음입니까.

“예전에도 개념적으로는 사용하던 표현입니다. 보편적 가치에 호소하는 게 외교에 큰 도움이 됩니다. 미국 자동차산업 노조가 한미 FTA의 걸림돌이었습니다. 제조업 노조가 미국 민주당의 지기 기반이잖아요. 오바마가 미국 자동차산업의 이해관계를 오랫동안 설명했는데, MB가 한미동맹은 가치와 비전을 공유하는 가치동맹이므로 산업의 이해관계를 넘어선다고 설득했습니다. 이후 FTA 협상이 상당히 순조롭게 진행됐습니다.”

객관적 현실 vs 희망적 추론

▼ MB 회고록 중 많은 비판을 받는 내용이 대북정책입니다. 임태희-김양건 회담 내용을 주관적으로 해석해 서술하거나 중국 원자바오 총리의 북한 관련 발언을 불필요하게 누설한 것 등은 전직 대통령 회고록으로서는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제가 얘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닙니다. 회고록을 쓸 때 공개 수준을 놓고 늘 그런 문제에 부딪힙니다. 내부에서 많은 논의가 있었을 겁니다. 그 정도는 공개해도 무방하다고 판단했겠죠. 어쨌든 MB 정부는 대화 자체를 목적으로 삼아 북한 정권에 직접 현금을 주는 식으로 움직이거나 물밑에서의 음성적 거래를 통해 문제를 푸는 것을 지양하면서 남북관계를 새롭게 정상화하려고 했어요. 결과물이 미흡했던 건 무척 아쉬운 대목입니다.”

▼ 회고록 집필 과정에서 ‘MB 정부 내에서도 한쪽으로 경도된 견해를 가진 이들이 과도하게 주관적으로 해석해 서술한 부분이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북한이 100억 달러를 요구해 정상회담이 무산됐다는 등의 내용이 대표적입니다. 협상에 직접 나선 당사자는 회고록 내용과 다르게 말하고요.

“옆에서 지켜보기는 했지만…. 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닙니다.”

▼ MB정부의 대북정책이 실패한 주원인의 하나는 핵심 당국자들이 객관적 현실이 아닌 희망적 추론(wishful thinking)을 기반으로 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북한을 봉쇄하면 정권을 붕괴시켜 통일을 이뤄낼 수 있다는 식의 우파 이념에 바탕한 주관주의적 정책 추진이 문제였다고 생각해요. 2010년 상반기까지는 우파 주관주의에 경도된 사고를 가진 이들이 대북정책의 헤게모니를 확실하게 장악하지 못하다가 천안함 폭침과 5·24조치를 거치면서 주도권을 잡았습니다. 한쪽으로 경도된 이들이 대북정책의 헤게모니를 장악한 배경과 이유는 무엇입니까.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 천안함 폭침이 일어나 상황이 그렇게 흘러간 것이고, 아무래도 그런 사건이 일어나면 강경파가 주도권을 잡게 되죠. 권력 내부의 불가피한 과정이라고 봐야 해요. 북한 붕괴를 전제로 정책을 수립해 대북정책이 강경으로만 치달았다? 그렇게만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MB정부는 이전 10년간의 대북정책은 북한의 전략을 저지하지 못하면서 북한 정권의 유지·강화를 돕는 쪽으로 기능을 했으며, 남북경협 또한 왜곡됐다고 인식했습니다. 비정상적인 상황을 정상화해야 한다고 여겼으며, 북한은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우리는 밑밥을 대주는 일은 안 된다고 생각한 겁니다. 북한 핵무기를 용인한 상태에서 다른 부분을 열어젖히는 것은 불가하다고 여겼고요. 압박·공세 정책을 구사한 것은 틀림없지만, 활로를 뚫으려고 정상회담도 시도했습니다.

천안함 폭침은 북한의 전술적 선택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이 말을 잘 안 들으니 도발한 것이죠. 천안함 폭침 이후 청와대는 강력한 대응을 하지 않으면 향후에도 비슷한 일이 발생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2/5
이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목록 닫기

“정치주체 ‘지적 능력’ 부족해 ‘선언’만 있고 ‘처방’ 안 나와”

댓글 창 닫기

2023/0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