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호

“전희(前戱) 사진 맞잖아요?” “너무 빨리 덮쳤습니다”

간통사건 전문 형사가 들려준 ‘通情 百態’

  • 구무모 전 형사│moomo9@hanmail.net

    입력2015-03-20 17: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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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희(前戱) 사진 맞잖아요?” “너무 빨리 덮쳤습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간통죄가 2월 26일 폐지됐다. 나는 1976년 경찰에 입문해 2007년 퇴직할 때까지 서울 영등포경찰서, 경기 부평경찰서 등에서 근무한 경찰관으로 31년간 3000여 건의 간통사건을 수사했다. 그러니 간통죄가 폐지된 것에 대해 누구보다도 감회가 깊다.

    돌이켜보면 간통죄 역시 다른 범죄와 마찬가지로 위반하면 형벌이 따른다는 심리적 억압으로 인한 억지효과가 없었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바뀌어가면서 이 법은 ‘가정과 혼인관계를 지킨다’는 입법 취지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므로 폐지해야 한다는 압력을 계속 받아왔다. 나 역시 1997년 ‘간통을 기다리는 남자’라는 책을 출간하며 간통죄 폐지를 줄곧 주장해왔다.

    “좀 더 기다리시지…”

    나는 법조인도 아니고 학계에서 간통죄 관련 법률을 연구하는 사람도 아니며, 오로지 일선에서 그 수사에만 종사한 사람이다. 따라서 이 법률의 모순이나 악용 사례를 그 누구보다도 잘 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주장이 그 어떤 통계나 학설보다 현실감 있다는 것을 알아주는 사람이 많았다. 나는 간통죄 폐지가 너무 늦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 법을 현실에 적용하는 데 어떤 모순과 문제가 있다는 말인가. 우선 형법은 죄와 벌을 정한 것인데, 형법상 간통죄는 죄와 벌 자체에 큰 문제가 있다.



    첫째, 죄부터 따져보자. 간통죄 유형은 단 한 가지다. 성기끼리의 접촉인 ‘성교’만 이에 해당된다. 그 어떤 유사성행위를 한 경우라도 혐의가 인정되지 않는다. 성교 행위보다 비난의 여지가 더 큰 행위일지라도 해당되지 않는다.

    제법 큰 음식점을 경영하는 아내가 교통경찰관과 바람이 났다. 남편이 낌새를 채고 뒤를 쫓았다. 어느 여름밤, 아내가 상대 남자와 식당에 딸린 내실로 들어가는 광경을 포착하고 창밖에서 살폈다. 방 안에선 두 남녀가 두런대는 소리, 각자 샤워하는 소리, 침대에서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아내의 신음소리가 들렸다. 아내의 그 특이한 신음소리가 언제 나는 것인지를 너무 잘 알고 있던 남편은 때가 됐다고 판단하고 순식간에 창문을 열어젖혔다. 그러고는 소리 나는 쪽을 향해 카메라 플래시를 연속해서 터뜨렸다.

    경찰에 잡혀온 두 남녀는 한사코 간통하지 않았다고 했다. 화가 난 남편이 증거가 있다며 사진을 뽑아왔다. 우연이었겠지만, 카메라 앵글은 여자의 얼굴 쪽을 정확히 겨냥했다. 금방 샤워해 물기가 촉촉한 머릿결, 지그시 감은 눈, 그리고 ‘야동’에서 더러 볼 수 있는 오럴 성행위 장면이 클로즈업돼 있었다.

    “무혐의 증거를 수집하셨네요.”(형사)

    “성교 전 전희 장면이 분명하잖아요.”(남편)

    “좀 더 기다리시지…너무 빨리 덮쳤습니다.”(형사)

    이 남녀는 즉시 석방됐다.

    “전희(前戱) 사진 맞잖아요?” “너무 빨리 덮쳤습니다”

    ‘성교’ 행위만 처벌하는 간통죄는 현대인의 법 감정과 괴리된 규율이었다.



    “오럴만 했다” “鷄姦만 했다”

    혼인 제도를 보호하기 위해 성적 정절을 요구하는 법이 어떻게 단 한 가지 유형의 성행위만 문제로 본단 말인가. 그렇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간통은 세계 곳곳에서 고대부터 처벌해왔다. 우리나라의 경우 고조선의 8조금법에 간통죄가 포함됐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여자의 간통만을 처벌했다. 이것이 간통죄 출생의 역사다. 남편의 간통은 처벌 대상이 아니었다. 고대 봉건사회는 여자를 소유의 대상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혈통’을 지키기 위해 ‘성교’ 행위만을 처벌한 것이다.

    수사 현장에서 당사자들은 흔히 애무만 했다, 오럴만 했다, 혹은 계간(鷄姦)만 했다고 주장한다. 이게 사실이라면 혐의가 없기 때문이다. 현대인의 법 감정과 괴리된 규율임이 분명하다.

    둘째, 벌을 살펴보자. 간통죄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즉, 벌금형이 없다. 대부분 형법 조항은 ‘몇 년 이하의 징역 또는 몇 백만 원 이하의 벌금’ 이런 식으로 형량을 규정한다. 벌금형 없이 징역형만 규정한 죄목은 주로 강력범죄 등 책임이 막중한, 극히 일부의 범죄에 국한된다. 과거 헌법재판소가 간통죄에 대해 4차례나 합헌 결정을 했을 때도 일부 재판관들은 처벌 규정이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배돼 헌법에 불합치한다고 주장했다. 즉, 다른 죄에 비해 처벌이 과도하다는 것이다. 1905년 구한말의 형법대전, 일제 강점기의 조선형사령 규정을 그대로 계승한 형국이었다.

    2008년 이전에 일어난 사건을 하나 소개한다. 빈둥빈둥 무위도식하는 남편이 있었다. 아내는 남편과 두 자녀를 먹여 살리려고 식당 종업원으로 일했다. 아내는 남편이 주점 여종업원과 바람피운다는 소문을 들었지만, 생업이 바빠 증거를 잡으러 다닐 겨를이 없었다. 이것도 모자라 남편은 공연한 의처증에 술에 취한 날이면 어김없이 아내를 구타했다.

    이런 남편을 존경할 순 없는 노릇이므로 부부의 애정은 이미 식었다. 식당 단골손님 중에 독신 남자가 이런 아내를 따뜻하게 대해줘 아내는 그 남자를 좋아하게 됐다. 인지상정으로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여길 수도 있을 상황이다. 그러나 적반하장으로 남편이 아내를 미행해 ‘현장’을 잡았고, 간통죄로 신고하기 전에 아내와 상대 남자를 심하게 구타해 아내는 갈비뼈 3개에 금이 가는 골절상을 입었다.

    결국 아내는 부상을 치료받은 뒤에 구속됐다. 형법에 징역형만 규정돼 있다는 것은 구속 수사를 하라는 의사가 내재된 것이기에 대부분 구속 수사를 한다.

    남편에 관대, 아내엔 가혹

    간통죄는 고소의 조건에도 문제가 있다. 형사소송법 제 229조는 ‘간통죄는 이혼이 되었거나 이혼소송을 제기한 후에 고소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한다. 즉 혼인관계의 불존속과 이혼소송의 계속을 고소 요건으로 한다. 가정의 기초인 혼인관계를 보호하기 위한 법이 혼인관계 유지를 위해 노력하는 흔적은 없고 오히려 ‘혼인관계를 깨고 고소하라’고 주문하는 것이다.

    간통죄 존폐 논란과 관련해 초기에는 여성단체에서 간통죄가 상대적으로 취약한 여성을 보호한다고 주장했지만, 내 생각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여성단체 추천으로 1999년에 제1회 남녀평등경찰상을 받았을 정도로 여성의 처지를 옹호하는 성향의 수사관이었다. 그런 내가 오히려 간통죄가 여성에게 도움이 안 된다고 주장한 데는 이유가 있다.

    간통죄는 1953년 형법 개정 전까지는 여성만 처벌하는 단벌주의였던 것이, 평등을 이유로 남성도 처벌한다는 쌍벌로 바뀌었다. 하지만 고대로부터 여성만 처벌하던 법이 남성을 끼워 넣었다고 평등하게 적용된다는 것은 착각이다.

    통계만 봐도 알 수 있다. 외도는 보통 여자보다는 남자가 많이 하는 것으로 알러졌다. 그러나 간통죄로 기소된 여성은 51%, 남성은 49%다. 이는 우리 사회가 여전히 남편의 간통에 관대하고 아내의 간통에는 상대적으로 가혹하다는 증거다.

    일선 수사에서도 이런 일을 많이 겪었다. 즉, 아내가 남편을 간통으로 고소했다가 금방 취소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여성이 경제적 자립이 힘들어 궁여지책으로 취소하는 것이지만, 그 이면에는 ‘남자는 외도할 수도 있다’는 역사적 통념이 묻어난다. 반면 아내를 간통죄로 고소한 남편들은 쉽게 취소하지 않는다.

    또한 이 법은 인간의 존엄성을 너무 크게 훼손한다. 훼손 정도가 아니라 아예 인간 존엄성을 말살한다. 내가 여기서 언급한 존엄성은 법조인들이 말하는 행복추구권이나 성적 자기결정권과는 전혀 다른 얘기다.

    간통의 증거는 성교의 증거다. 그 내밀한 부분을 증명하려면 남녀가 벌거벗고 있는 침대를 덮쳐 사진을 찍어야 하고, 어떻게 몇 번 성교했는지를 물어 조서에 기재해야 한다. 여성 경찰이나 초임 경찰관은 쑥스러워 구체적인 질문을 못하기도 한다. 하물며 당사자, 특히 여성은 어떤 기분일까. 이게 과연 법이 인간에게 할 수 있는 일인가.

    다음은 내가 간통 수사를 하면서 가장 가슴 아팠던 사건이다. 개인택시를 모는 남편과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 둘을 둔 여자가 있었다. 남편은 술과 도박을 좋아했고, 쉬는 날엔 아예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툭하면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했다. 남편이 집 근처 호프집 여주인과 바람났다는 소문을 듣고 부부싸움이 잦았다. 여자는 호프집 여주인을 만나 애원하기도 했다. 하지만 남편은 그 여주인을 데리고 집을 나갔다. 수원 모처에서 그 여자와 살며 택시운전을 한다는 소문이 들렸다.

    ‘호적상 부부’만 보호?

    여자는 아이들을 친정어머니에게 맡기고 생계를 위해 식당에 취직했다. 바쁜 일상에 남편의 행방을 찾을 엄두를 내지 못한 채 몇 년이 흘렀다. 차츰 생활의 안정을 찾은 여자는 공휴일엔 운동 삼아 집 근처 공원에서 배드민턴을 배웠다. 그러다 독신의 배드민턴 강사와 사랑에 빠져들었다.

    요즘이라면 ‘아내의 간통을 남편이 종용(사전 동의)한 것으로 본다’라고 하여 고소할 수 없겠지만, 2008년 이전에는 이혼합의서를 작성한 경우 등 극히 예외적으로만 종용을 인정했다.

    아내가 수상쩍다는 소문을 들었는지, 느닷없이 나타난 남편은 아내를 미행해 복개천 주변에 세워둔 강사의 승합차량에서 둘이 ‘사랑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남편은 신고를 받고 현장에 온 경찰에게 ‘현재 일이 진행 중이니 소리 내지 말고 조용히 접근하라’고 당부했다. 경찰은 친절한(?) 남편의 안내로 차창을 통해 안을 들여다본 후 현행범으로 둘을 연행했다.

    여자는 적반하장 격인 남편의 고소에 분개하며 극심한 모멸감으로 치를 떨었다. 원수 같은 남편과 경찰관이 가장 사적인 일을 몰래 들여다보고 있었다니…. 남편이 아내와 가정을 유기하다시피 한 저간의 사정을 들은 내 부하 경찰관은 여자를 불구속으로 석방했다. 그러나 여자는 근처 아파트 14층에서 투신자살했다. 그러자 그 담당 경찰관은 “차라리 구속했다면 죽지는 않았을 텐데…”하며 후회했다.

    사실 이런 경우 호적상의 부부일 뿐, 이미 부부관계가 파경 상태임은 분명하다. 나는 간통 수사를 하면서 “간통죄는 호적상 부부만을 보호하는 법”이라며 쓴웃음을 짓곤 했다.

    여성에게 불리하고 인간 존엄을 해친다는 것 말고, 가정적인 사안에 공권력을 너무 허비한다는 점에서도 간통죄는 문제가 많았다. 가정의 문턱 내에 있는 일을 수사하는 것은 너무 어렵고 힘들다. 형사들은 간통죄 수사를 아주 싫어한다.

    그래서 순번대로 돌아가며 사건이 배당된다. 형사들은 성교 행위를 밝혀내기 위해 여성을 산부인과에 데려가 정충반응검사를 받게 하고, 현장에서 발견된 휴지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의뢰해 혈액과 일치하는지 유전자 검사를 하기도 한다. 강력사건 수사에 필요한 과학수사 기법이 간통 사건에도 모두 동원된다. 그렇게 하고도 밝혀내지 못하면 고소인으로부터 질책을 받기 일쑤다. 별의별 방법을 동원해 밤새워 사실관계를 밝혀내고 구속했지만, 아내나 남편이 고소를 취소해 즉시 석방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간통죄는 친고죄다). 그래서 형사들 대부분은 간통죄가 폐지되기를 그동안 간절하게 바라왔다.

    相姦者 손배청구를 확대하라

    “전희(前戱) 사진 맞잖아요?” “너무 빨리 덮쳤습니다”

    헌법재판소는 네 차례 합헌 결정 후 다섯 번째인 이번에야 간통죄를 위헌으로 결정했다.

    간통죄가 폐지에 이르기까지 괄목할 만한 역할을 한 것은 이른바 ‘옥소리 사건’이다. 헌법재판소는 지금까지 총 4차례 간통죄에 대해 합헌 결정을 했다. 1990년, 1993년, 2001년에는 정족수(재판관의 3분의 2) 이상이 합헌이라고 판단했지만, 2008년에는 재판관 9명 중 4명이 위헌, 1명이 헌법불합치 의견으로 사실상 ‘위헌’ 의견이 더 많았다. 당시 헌재에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한 이들 중에는 배우 출신 옥소리 씨도 포함됐다.

    2008년 헌재의 판결 내용은 일선 수사에 영향을 미쳤다. 간통죄가 곧 폐지될 것으로 예상하고 형사들은 수사를 소홀히 하면서 대부분 ‘혐의 없음’으로 처리했고, 간혹 혐의가 인정돼도 구속하지 않았다. 법원도 징역형 대신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만일 가까운 장래에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할 경우 그동안 간통죄로 구금된 사람들에게 소급해 보상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반인도 고소해봤자 실익이 별로 없기 때문에 고소 자체를 하지 않는 등 간통죄는 점차 사문화해갔다. 과거에는 대도시 소재 경찰서 1곳에서 연간 200여 건의 간통 사건을 처리했지만, 최근에는 10건 이하로 줄었을 정도였다.

    간통제 폐지는 이미 세계적인 추세다. 덴마크, 스웨덴 등은 1930년대에 폐지했고, 보수적인 대륙법을 가진 일본도 1947년에 폐지했다. 독일(1969년), 프랑스(1975년), 스페인( 1990년) 등도 우리보다 훨씬 앞서 폐지했다. 미국의 일부 주(州)와 대만 등 일부 국가에 아직 간통죄가 남아 있으나 사실상 사문화했고, 아랍권에서는 아내의 간통을 여전히 처벌하지만 이는 종교적 성격이라 논외로 봐야 한다.

    일각에선 간통죄가 폐지돼 간통 행위가 급증하지 않을까 우려한다. 그러나 간통죄가 폐지됐다고 그 행위가 합법하다는 것은 아니다. 형법상 죄가 아닐 뿐, 간통 등 부정한 행위로 이혼하는 경우 유책 배우자는 그 책임을 지게 된다. 나는 이와 관련한 이혼 위자료를 대폭 상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상간자(相姦者)에게도 가정 파탄의 책임을 물어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한데, 인정되는 수준이 아직은 미미하다. 이를 확대해야 한다. 혼외정사를 즐긴 타이거 우즈가 우리 돈 9000억 원의 위자료를 물게 돼 신세를 망친 것이 남의 일이 아님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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