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발주자 한국의 급부상
NRC 설계인증을 받는 일은 김명기 소장이 이끄는 한국수력원자력(주) 중앙연구원의 신형(新型)원전연구소가 담당했다. 이 연구소는 2014년 1년 동안 미비하다고 지적받은 12가지 문제를 보완하는 데 전력을 기울이고, 12월 23일 다시 서류를 제출했다. 그리고 올해 3월 5일 NRC로부터 ‘서류는 다 갖췄다. 본심사를 받을 수 있다’는 통보를 받았다. 프랑스와 일본 기업도 하지 못한 서류 완비를 한국이 해낸 것인데, 이를 기자는 ‘사전 침투 성공’이라고 표현했다.
미국 진출을 위해 노력하는 프랑스와 일본의 원전 회사는 각각 아레바와 미쓰비시다. 한국 회사는 한수원과 한국전력 컨소시엄이다. 명목상 세 회사는 똑같이 본심사에 올라갔지만, 서류를 다 제출한 것은 한국뿐이니 가장 유리한 처지다. 비유해서 말하면 한국은 처음으로 원서를 낸 고3생이고, 아레바와 미쓰비시는 7년째 원서를 넣은 8수생인데, 고3생이 8수생을 제치고 앞에 나선 것이다.
NRC는 3월부터 본심사를 한다고 했으니 약간의 준비기간을 추가하면 한국은 2018년 말 설계인증에 대한 결과를 받아볼 수 있다. 그런데 NRC는 관문 하나를 추가해놓았다. 주민 동의를 받는 것이다. 주민 동의는 미국에서도 중요한 것으로 여겨지기에 NRC는 설계인증 내인가를 받은 회사는 6개월간 공청회를 열어 자사 원전의 안전성을 주민에게 설명하고, ‘지어도 좋다’는 동의를 받도록 했다. 이 공청회에서 반대가 많이 나오지 않아야 정식 설계인증을 내준다. 따라서 최종 설계인증은 2019년 중에 나올 것으로 보인다.
설계인증을 받으면 한국 컨소시엄은 미국 웨스팅하우스나 제너럴일렉트릭과 같은 자격을 가진 회사가 된다. 그러나 미국의 국수주의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기에, 한국은 웨스팅하우스와 협력하기로 했다. 웨스팅하우스는 한국 최초 원전인 고리 1호기(경수로)를 공급한 회사다. 반면 제너럴일렉트릭은 한국이 전혀 운영하지 않는 비등수로만 제작해왔기에 한국과 협력하려야 할 수가 없다.
한국과의 협력은 웨스팅하우스에도 이익이 된다. 웨스팅하우스는 100만KW인 AP-1000 으로 설계승인을 받았는데, 한국이 내놓을 원전은 이보다 출력이 40%나 큰 140만KW의 APR-1400이다. 한국과 협력하면 웨스팅하우스는 100만과 140만KW 두 개 모델을 가진 회사가 된다. 100만KW짜리를 원하는 전력회사에는 자사의 AP-1000으로 도전하고, 더 큰 원전을 짓고자 하는 전력회사에는 한국과 협력한 APR-1400으로 응시하는 것이다.
2019년 설계 승인을 받는다면 APR-1400은 ‘폭풍의 눈’이 될 수 있다. 가장 많이 짓고, 가장 많이 가동했기에 안전성이 실증된 원전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아레바가 설계인증을 신청한 원전은 160만KW인 EPR-1600인데 현재 3기가 건설되고 있다(프랑스, 핀란드, 중국). 미쓰비시가 설계인증을 신청한 170만KW의 APWR은 지금까지 단 한 기도 건설되지 않았다. 신형원전은 자국에서 제일 먼저 지었어야 하는데, 후쿠시마 사고로 일본은 신규 원전 건설을 금지해버렸기 때문이다. 미국 웨스팅하우스는 미국과 중국에서 각각 4기의 AP-1000을 짓고 있다. 그러나 제너럴일렉트릭이 설계승인을 받은 ESBWR은 한 기도 건설되지 않은 상태다.
한국 원전은 가장 많이 건설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한국에서 6기, UAE에서 4기를 동시에 짓고 있는 한국의 APR-1400이다. 이 공사들은 한국이 NRC로부터 설계승인을 받을 것으로 보이는 2019년 전후 완료될 것이므로, 2020년 이후 한국 컨소시엄은 웨스팅하우스와 더불어 설계인증을 받은 원전을 가장 많이 지어 운영해본 회사가 된다. 이러한 실적은 원전의 안전성을 입증하는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니 웨스팅하우스와 손잡은 한국 컨소시엄은 ‘미국의 원전 랠리’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게 된다.
지금 한국은 한국형 고등훈련기인 T-50을 미국에 수출하기 위해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T-50이 미국에 진출하고, 2020년대 중반 한국 원전이 미국에 건설된다면, 이는 한국이 미국의 핵심 산업에 진출한 기념비적인 업적으로 기록될 것이다. 한국의 반핵단체는 월성1호기 계속운전 승인에 대해 시비를 걸지만 세계는 조금씩 한국원전을 인정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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