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호

마티스를 사랑한 미국 여인들의 유산

볼티모어 미술관

  • 최정표 |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jpchoi@konkuk.ac.kr

    입력2015-04-23 14: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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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티스의 그림을 가장 많이 보유한 미술관은 파리나 뉴욕이 아니라 엉뚱하게도 미국 동부의 자그마한 항구도시 볼티모어에 있다. ‘인텔리’ 콘 자매는 피카소 등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과 교유하면서 유독 마티스에 빠져 그의 작품을 무려 500여 점이나 수집, 볼티모어 미술관에 물려줬다.
    마티스를 사랑한 미국 여인들의 유산

    볼티모어 미술관은 존스홉킨스대 캠퍼스 안에 있다.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 1868~1954)를 흠모한다면 꼭 가봐야 할 미국 중소도시가 있다. 워싱턴DC에서 북동쪽으로 60km가량 떨어진 항구도시 볼티모어다. 볼티모어는 메릴랜드 주에서 가장 큰 도시로 인구는 270만 명 정도다. 우리에겐 의과대학으로 유명한 미국의 명문 사립대 존스홉킨스 대학이 바로 이 도시에 있다. 존스홉킨스대의 넓은 숲 속에는 예쁜 석조건물 하나가 자리 잡고 있는데, 바로 볼티모어 미술관(Baltimore Museum of Art)이다. 세계에서 마티스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한 미술관이다.

    대학 캠퍼스 내에 있지만 볼티모어 미술관은 시민들의 정성과 땀으로 세워진 공공 미술관이다. 이곳 기업과 문화인들은 10여 년간 꾸준히 노력해 1914년 미술관을 설립하게 됐다. 하지만 설립 당시엔 독립 건물도 없었고, 소장 그림도 단 한 점에 지나지 않았다. 1917년이 돼서야 존스홉킨스대로부터 현재 위치에 미술관을 지을 땅 제공을 약속받았고, 다시 10년이 지난 1927년에야 공사를 시작, 1929년에 완공했다.

    개관 행사는 볼티모어 시의 큰 축제였다. 하지만 전시 작품 대부분은 이 지역 미술품 소장자들로부터 빌려온 것들이었다. 특기할 점은 이때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The Thinker)’이 전시됐다는 사실. ‘생각하는 사람’을 포함해 개관 당시 빌려온 작품은 대부분 미술관에 기증됐다. 이후 소장품은 급속히 늘어났고 미술관도 계속 증축해나갔다. 2014년에는 미술관 설립 100주년을 맞아 큰 행사가 열렸다.

    콘 자매와 거트루드

    볼티모어는 미국의 발전과 궤를 같이해온 오래된 역사도시다. 1706년 시작된 담배 무역을 바탕으로 1729년 마을이 들어서고 1797년에 정식 행정구역이 됐다. 미국 건국 초창기엔 뉴욕 다음으로 이민자가 많이 상륙하는 도시였다. 그러나 제조업이 쇠퇴하면서 제조업을 중심으로 성장한 볼티모어도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현재는 서비스업 중심으로 새로운 탈출구를 찾고 있지만 1960년대 이래 인구는 계속 감소하는 추세다.



    볼티모어는 흑인 인구 비중이 유난히 높다. 1950년에는 23.8%였는데 1970년에는 46.4%까지 올라갔다. 1968년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암살됐을 때는 폭동이 일어나 도시 전체가 큰 피해를 입었다. 2009년 기준으로 흑인 인구 비중은 63.2%에 달한다.

    이러한 특성을 감안할 때 볼티모어 미술관은 볼티모어에서 매우 의미 있는 장소다. 미술관이 볼티모어에 ‘문화도시’라는 새로운 이미지를 심어주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미술관 개축 및 확장 프로젝트가 계속 진행 중이고, 동시대 작품(contemporary art works)을 소장하고 전시하는 데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세계에서 마티스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한 미술관이 파리나 뉴욕이 아닌 이름도 낯선 볼티모어에 있다니 의아하지 않을 수 없다. 볼티모어 미술관은 어떻게 해서 20세기 최고 거장으로 통하는 마티스 작품을 많이 소장할 수 있었을까? 이 의문은 ‘콘(Cone)’이라는 성(姓)을 가진 자매의 이야기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클라리벨 콘(Claribel Cone · 1864~1929)과 에타 콘(Etta Cone·1870~1949)은 테네시 주에서 식료품 잡화상으로 백만장자가 된 부모 슬하에 태어났다. 부모가 1871년 볼티모어로 옮겨와 사업을 했기에 콘 자매는 이 도시와 인연을 맺게 됐다. 언니 클라리벨은 의사가 됐고 동생 에타는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며 언니네 가사를 도왔다. 클라리벨은 개업하는 대신, 존스홉킨스 의대 실험실에서 일했다. 자매는 단짝친구처럼 늘 함께 붙어다녔다.

    그 무렵 콘 자매의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한 사람이 등장한다. 거트루드 스타인(Gertrude Stein·1874~1964)이라는 피츠버그 태생의 여인이다. 그녀 역시 아버지가 철도회사를 경영한 대부호였는데, 부모가 일찍 타계하는 바람에 오빠가 사업을 이어받았다. 오빠는 여동생 거트루드에게 많은 재산을 떼주면서 볼티모어에 있는 외가 식구들과 함께 살도록 했다.

    콘 자매는 당시 유행하던 사교 모임인 살롱을 운영했는데, 거트루드가 거기 참여하며 서로 가까워졌다. 이들은 토요일마다 만나 친목을 도모하며 세상사에 대한 의견도 나눴다. 부잣집 출신으로 고등교육을 받은 신여성인 만큼 예술과 문화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눴다. 거트루드 역시 보스턴 명문 여자대학인 래드클리프대를 졸업하고 2년간 존스홉킨스 의대를 다닌 인텔리였다.

    거트루드는 1903년 파리로 건너가 평생 거기서 살았다. 그녀는 파리에서 콘 자매의 살롱과 같은 사교 모임을 이끌었고 파리 사교계의 유명인사가 됐다. 특히 현대미술에 대한 탁월한 식견으로 명성을 날렸다. 1904년부터는 오빠 레오 스타인도 파리로 건너와 함께 현대미술 수집에 나섰다. 1913년까지 10여 년간 수집을 계속했기 때문에 이 남매는 현대미술 수집가로 명성이 높았다. 그림을 보는 거트루드의 안목은 예리했고, 곧 미국 신문에 자주 거론될 정도로 미국에서도 유명인사가 됐다.

    공격적인 그림 수집

    마티스를 사랑한 미국 여인들의 유산

    500여 점의 마티스 작품을 볼티모어 미술관에 기증한 콘 자매.

    거트루드와 오빠 레오는 당시 파리의 최고 미술상이던 볼라르(Vallard)의 화랑에서 많은 그림을 구입했다. 주로 고갱, 고흐, 세잔, 르누아르, 마티스, 피카소 등의 작품이었다. 이들 작품은 지금은 값으로 따질 수 없을 정도의 걸작이지만, 당시는 무명 화가의 그림에 불과했다. 거트루드의 이러한 그림 수집에 동참했던 이들이 바로 콘 자매다.

    콘 자매는 1901년부터 거의 매년 유럽 여행을 떠났다. 1905년부터는 파리에 머물며 거트루드와 자주 만났다. 이때 동생 에타는 거트루드로부터 피카소를 소개 받았고, 1년 뒤에는 마티스를 소개받았다. 에타는 곧 마티스에 빠졌고, 한평생 마티스 그림을 수집했다. 당시만 해도 마티스는 유명 화가가 아니어서 에타는 그를 도와주는 차원에서 그림을 사줬다. 더러는 거트루드를 통해 싼 가격에 구입하기도 했다. 피카소 스튜디오에서는 내버려진 드로잉을 한 점당 2~3달러에 사기도 했다. 요즘 기준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다.

    콘 자매는 거트루드의 자문에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견문을 쌓아가면서 그림 수집에 나섰고 강한 개성을 발휘했다. 언니 클라리벨도 구매에 공격적이었다. 마음에 들면 거액도 기꺼이 내놨다. 마티스의 ‘블루 누드(Blue Nude)’를 12만 프랑에 구입했고, 세잔의 ‘생빅토아르 산(Mont Sainte-Victoire seen from the Bibemus Quarry)’은 41만 프랑에 구입했다.

    에타는 언니보다는 보수적이었다. 주로 1만 프랑 안팎의 작품을 구입했다. 그렇게 좋아하는 마티스의 작품에도 언니처럼 큰 금액을 지불하진 않았다. 1929년 언니가 사망한 뒤에는 에타도 공격적으로 그림 구매에 나섰다. 1935년에는 마티스의 ‘누워 있는 큰 누드(Large Reclining Nude)’를 구입했다.

    마티스를 사랑한 미국 여인들의 유산

    마티스의 ‘블루 누드’ (Blue Nude, 1907).

    기증작 가치 1조 원 넘어

    마티스는 남프랑스 지중해 연안 니스에서 많은 작품을 그렸는데, 콘 자매는 니스 시절의 마티스 작품을 특히 좋아했다. 니스에는 마티스의 작업실이 기념관으로 보존돼 있다. 하지만 필자가 2008년 방문했을 때는 관광객도 잘 찾지 않는 다소 쓸쓸한 장소로 보였다. 마티스 작품도 몇 점 없었다. 대개 작가의 기념관에는 그 작가의 작품이 많지 않다. 좋은 작품은 이미 다른 사람들 손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콘 자매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독신녀 비율이 약 10%에 불과하던 시절에 자매 둘 다 결혼하지 않은 것이다. 에타는 한때 거트루드의 오빠 레오와 연인 사이였다고도 하는데 결혼은 하지 않았다.

    콘 자매가 구입한 작품들은 볼티모어에 있는 그들의 아파트에 빼곡하게 전시됐다. 에타는 때때로 소장품을 볼티모어 미술관에 빌려줘 전시하게 했다. 클라리벨은 동생에게 자기 소장 작품들을 물려주며 볼티모어 미술관이 현대 작품을 평가할 만큼 수준이 높아지면 기증하라고 유언을 남겼다.

    1940년부터 미국의 여러 미술관이 콘 자매의 수집품을 기증받으려고 서로 경쟁했다. 그러나 1949년 에타마저 세상을 떠나면서 클라리벨의 유언에 따라 콘 자매의 수집품 3000여 점은 볼티모어 미술관에 기증됐다. 오늘날의 가치로 따지자면 10억 달러(약 1조1000억 원)가 넘는다고 한다. 1957년부터는 미술관 내에 ‘콘 전시관’이 따로 마련됐다. 전 세계 유명 미술관들이 이 작품들을 빌려가서 전시하기도 한다.

    콘 자매의 소장품 중엔 마티스를 비롯해 피카소, 세잔, 고갱 등의 작품이 많다. 마티스 작품은 500여 점에 달하고, 피카소 작품도 100점이 훌쩍 넘는다고 한다. 콘 자매는 그림 외에 카펫, 보석, 가구 등도 다수 수집했고 아시아 작품, 이집트나 아프리카 조각품, 중동 카펫, 인도 금속공예, 일본 판화 등도 수집했다. 이들 수집품도 대부분 볼티모어 미술관에 기증됐다.

    볼티모어 미술관과 인연이 깊은 또 다른 자매가 있으니 메이 자매다. 세이디 메이(Saidie Adler May·1879~1951)와 블란체 메이(Blanche Adler May·1877~1941)는 독일에서 볼티모어로 이민 온 유대계 독일인의 딸들로 콘 자매의 인척이기도 했다. 메이 자매의 아버지는 볼티모어에서 구두 제조업으로 큰돈을 벌었다.

    메이 자매는 명문 사립학교를 다니면서 유복하게 자랐다. 사업차 자주 독일을 방문하는 아버지 덕에 메이 자매도 함께 유럽을 여행하며 당시 앞서가는 유럽 문명에 익숙해졌다. 세이디는 결혼해 주부로 지내다 남편과 이혼하고 미술 작품 수집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세이디는 언니 블란체와 함께 프랑스를 자주 여행하며 당시 인상파 등 전위예술가들과 친분을 맺었다. 이들은 인상파 후원자로 그림을 많이 사줬다.

    콘 자매가 수집품을 볼티모어 미술관에 기증할 계획이라는 것을 알게 된 메이 자매는 콘 자매의 수집품과 보완 관계에 있으면서 미술관을 더 발전시킬 수 있는 작품들에 관심을 가졌다. 메이 자매는 콘 자매 수집품보다 더 현대적인 작품들을 수집해 미술관에 기증했다. 블란체는 미술관에서 큐레이터로 자원 봉사했고, 훗날 이사회 부의장을 지내기도 했다. 세이디는 미술관에 큰돈을 기부했다.

    볼티모어 미술관은 현대미술과 조각 분야에서 특히 볼거리가 많다. 필자가 방문한 2011년 가을엔 아쉽게도 동시대 작품관(Contemporary Wing)이 공사 중이었다. 다행히 2층에 자리한 콘 전시실은 열려 있어 많은 마티스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다.

    마티스의 대표작인 2점의 누드는 결코 놓쳐서는 안 될 작품이다. 바로 ‘블루 누드’(1907)와 ‘누워 있는 큰 누드’(1935)다. 28년의 간격을 두고 제작됐기에 마티스의 누드 그림 변화상을 비교하며 감상할 수 있다.

    마티스를 사랑한 미국 여인들의 유산

    마티스의 ‘누워 있는 큰 누드’ (Large Reclining Nude, 1935).

    2점의 ‘대표’ 누드화

    ‘블루 누드’는 실제 인물을 그린 작품이 아니다. 누워 있는 여자를 진흙으로 만들려고 하다가 물기가 마르지 않고 망가져버리는 바람에 진흙 누드상을 상상하면서 이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울룩불룩한 모양에 파르스름한 색조를 띤 모습이 매우 도발적이다. 이 그림으로 마티스는 야수파(Fauvism)의 원조로 불리게 된다. ‘블루 누드’가 처음 공개됐을 때 관객들은 매우 당혹해했다고 한다. 1913년 뉴욕 아모리쇼(Armory Show)에 출품됐을 때는 국제적 비난의 대상이 됐다. 마티스는 나중에 이 그림을 청동조각으로 만들어 ‘누워 있는 누드I(Reclining Nude I)’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일명 ‘핑크 누드’라고도 불리는 ‘누워 있는 큰 누드’는 사실주의와 추상주의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으려는 마티스의 고뇌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모델 리디아(Lydia Delectorskaya)가 큰 방의 소파에 누워 있고, 옆 의자에 꽃병이 놓여 있다. 마티스는 6개월에 걸쳐 22번이나 이 그림을 고쳐나갔다. 주로 배경과 누드의 크기를 바꾸는 일에 몰두했다. 고칠 때마다 그 과정을 사진으로 남겼다. 몸의 형태를 바꾸고, 꽃병과 의자를 단순화했다. 방과 소파도 평면으로 만들었다. 마침내 길고 매끈하게 쭉 뻗은 누드가 완성되면서 마티스가 처음 시도한 누드와는 다른, 추상화한 누드가 탄생했다.

    마티스는 1868년 프랑스 북부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887년 파리로 상경해 법률을 공부, 법률가가 됐지만 내면 깊숙이 자리 잡고 있던 예술적 감성을 깨달은 후 화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아버지의 실망에도 마티스는 1891년부터 파리에서 미술학교를 다니며 본격적으로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마티스는 스물다섯에 모델과의 사이에서 딸을 얻었지만 결혼은 다른 여자와 해 두 아들을 얻었다. 딸과 첫 아내는 마티스의 모델로 화폭에 자주 담겼다.

    1906년 4월 마티스는 피카소를 만난다. 이후 둘은 평생 친구이자 경쟁자로 지낸다. 마티스는 자연에서 영감을 얻는 반면, 피카소는 상상력에 크게 의존하는 예술가였다. 이 둘은 파리의 사교모임 스타인 살롱(Salon of Gertrude Stein)에 나갔고, 거기서 10여 년 동안 거트루드 스타인과 그녀의 두 오빠 레오와 마이클, 그리고 마이클의 부인, 콘 자매 등 미국인들과 교유했다.

    거트루드 식당의 운치

    콘 자매가 볼티모어 미술관에 기증한 마티스 작품 중 ‘Purple Robe and Anemones’(1937), ‘Seated Odalisque, Left Knee Bent, Ornamental Background and Checkerboard’(1928), ‘Interior with Dog’(1934), ‘Interior, Flowers and Parabeets’(1924), ‘Festival of Flowers’(1922) 등은 놓치지 말아야 할 작품들이다. 미술관에 마티스 작품이 너무 많아 일부는 전시돼 있지 않을 수도 있지만, 볼티모어 미술관을 찾는다면 전시 여부를 꼭 확인해봐야 한다.

    또 하나 놓쳐선 안 될 작품은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다. 워낙 유명하고 세계 도처에 전시돼 있는 작품이지만, 1929년 현재 자리에 미술관 건물이 개관할 때부터 소장한 작품이라 이 미술관으로선 의미가 특별하다. 다른 조각 작품들은 정원에 놓여 있지만, 이 작품은 실내에 전시돼 있다.

    로댕은 1880년 작은 크기로 처음 ‘생각하는 사람’을 만들었고, 1902년 큰 사이즈의 ‘생각하는 사람’을 만들어 1904년 처음 공개했다. 큰 사이즈는 그 이후 많이 복제됐는데, 이곳 작품도 그중 하나다.

    마티스를 사랑한 미국 여인들의 유산
    최정표

    1953년 경남 하동 출생

    미국 뉴욕주립대 박사(경제학)

    공정거래위원회 비상임위원, 건국대 상경대학장

    저서 :‘재벌들의 특별한 외도’ ‘한국재벌사연구’‘공정거래정책 허와 실’‘한국의 그림가격지수’ 등

    現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경실련 공동대표


    볼티모어 미술관은 건물을 둘러싼 조각 정원과 그 정원이 내려다보이는 식당으로도 유명하다. 유명 요리사 존 실즈가 운영하는 거트루드 식당(Gertrude′s Restaurant)이다. 동부의 작은 해안 도시에서 마티스를 감상하고, 또 조각 작품이 가득한 아름다운 정원을 바라보며 식도락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이 미술관은 민간 기부와 정부 지원에 힘입어 2006년 10월부터 무료로 개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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