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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산도시를 걷다

핏빛 ‘개혁’에도 살아남은 중세 영국의 종교예술혼

영국 켄트州 캔터베리

  • 글·사진 조인숙 | 건축사사무소 다리건축 대표

핏빛 ‘개혁’에도 살아남은 중세 영국의 종교예술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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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로 우리 귀에 익숙한 캔터베리엔 피비린내 나는 헨리 8세의 종교개혁이 끝내 삼키지 못한 중세 영국의 흔적이 상당 부분 남아 있다. 로만 가톨릭, 도미니칸, 프란치스코 등 여러 가톨릭 종파가 캔터베리로 흘러들었고, 성당과 수도원 등 유적을 남겼다. 옛 로마인들의 무덤이었다는 언덕에서 캔터베리 성당을 바라본다. 영국의 겨울은 음산하지만 아름답다.
영국 동남부 켄트 주 스타우어(Stour) 강변에는 캔터베리(Canterbury)라는 소도시가 있다. 캔터베리는 제프리 초서가 14세기 말에 쓴 영문학의 걸작 ‘캔터베리 이야기(The Canterbury Tales)’로, 1972년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가 직접 출연하며 제작한 동명의 영화로도 그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다.

지난 1월 켄트대학교에서 주관한 세계유산 관련 콘퍼런스에 참석한 것은 무엇보다 콘퍼런스 내용이 중요해서였다. 하지만 세계유산도시 캔터베리에서, 게다가 대성당 경내 호텔(Cathedral Lodge)에서 콘퍼런스가 열린다는 데 대한 호기심이 컸던 게 사실이다. 영국의 겨울은 특유의 잿빛 대기에 낮보다 밤이 긴 음산한 시즌이다. 꽃 피고 새 지저귀는 때였으면 더 아름다웠을 테지만, 험한 계절을 직접 체험하는 것도 결코 나쁘지 않았다.

몰아치는 비바람도 아랑곳하지 않고 캔터베리 인근 마을 도버(Dover)에서 딜(Deal)을 거쳐 샌드위치(Sandwich)까지 해안가 성(城館, Castle)과 역사마을을 탐방했고, 파버샴에 있는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맥주회사 셰퍼드 앤드 님므(Shepheard and Neame near Faversham)도 방문했다. 하지만 지면 사정상 세계유산도시 캔터베리를 집중 소개한다.

캔터베리 대성당

Cathedral and Metropolitical Church of Christ at Canterbury




캔터베리 대성당은 영국성공회의 총본산으로 잉글랜드 지방에서 가장 오래된 기독교 시설 중 하나다. 공식 명칭은 ‘캔터베리 크라이스트처치 주교좌 대성당’. 처음 건축이 시작된 때는 597년이라지만 지금은 당시의 모습이 전무하다. 이후의 성당 건립은 상자 기사와 같이 대략 5단계로 구분된다.

성당은 애초에 로만 가톨릭이었으나 영국성공회로 종파가 변경된 뒤 1070년 봉헌돼 1834년 최종 개축된 것으로 간주된다. 시간의 흔적이 쌓이면서 로마네스크와 고딕 건축이 경이롭게 혼합된 건축물이 됐다. 동쪽 로마네스크 양식의 지하묘실과 초기 고딕 양식을 대표하는 12세기 성가대석, 14세기 신랑(身廊·nave, 교회당의 내부 중앙 부분), 중세 스테인드글라스 등이 대표적인 건축유산이다.

캔터베리 대성당과 역시 캔터베리에 있는 세인트 마틴 교회, 세인트 오거스틴 수도원 유적 세 곳이 198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됐다. 이 세 기념물은 종교개혁 이전 영국 기독교의 이정표이자 대영제국 종교사의 상징이기도 하다. 이들 기념물은 세계유산 등재 당시 뛰어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를 판단하는 평가 기준 중 (i) (ii) (vi)를 충족시킨 것으로 인정됐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이렇다.

(i) 캔터베리 대성당, 특히 스테인드글라스가 있는 동쪽 구역은 독특한 예술적 창작품이다.

(ii) 세인트 오거스틴 베네딕트회 수도원이 구심점이 되어 중세 영국 왕실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면서 동시에 켄트와 노섬브리아(Nothumbria) 경계 너머까지 기독교가 퍼져나갔다.

(vi) 위 세 곳의 건축유산은 유형 유산으로 앵글로-색슨 왕국에 기독교를 소개한 역사와 직접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세계유산 등재를 계기로 캔터베리 대성당은 한때 ‘위험에 처한 유산 목록’에 기록될 뻔한 위기를 극복하고 대대적인 모금이 이뤄져 유지·관리를 다시 할 수 있게 됐다. 동남쪽 익랑(翼廊·transept, 십자형 교회당의 팔에 해당하는 부분)은 지금도 보수 중이다.

나는 콘퍼런스 마지막 날 오후에 ‘이븐송(Evensong)’이라는 저녁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보수 중인 익랑에 설치된 임시 통행로를 거쳐 성당 내부로 들어갔다. 예배당에는 여러 번 들어갔지만 이븐송 참석은 처음이었다. 성가대 합창 덕분에 대성당 공간의 규모를 훨씬 잘 느낄 수 있었다. 다만 촬영이 금지돼 아쉬웠다.

핏빛 ‘개혁’에도 살아남은 중세 영국의 종교예술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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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조인숙 | 건축사사무소 다리건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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