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경제로 풀어쓴 현대사

체급, 체력 제각각 산으로 가는 EU號

‘그리스 사태’ 잉태한 ‘유로존’

  • 조인직 | 대우증권 도쿄지점장

체급, 체력 제각각 산으로 가는 EU號

2/3
이윽고 1971년 12월 미국은 당시 EC 국가들과 스미소니언 협정을 맺고 환율 변동폭을 ±2.25%씩, 즉 위 아래로 최대 4.5%의 폭을 용인하는 변동환율제를 도입했다. EC 국가들은 여기에 ‘터널 안의 뱀(Snake in the Tunnel)’이라는 독자적 제도를 보완했다. 즉 미 달러 대비 환율 변동은 터널로 보고 ±2.25%를 유지하되, EC 회원국 간의 통화 변동폭은 터널 안에 들어간 뱀처럼 인식하자는 취지에서 ±1.125%만 허락한 것이다.

하지만 1973년 1차 오일쇼크로 달러가 폭락하자 ‘터널’은 사실상 의미를 잃은 채 뱀의 움직임만 제한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연쇄적으로 자국 통화가 타격을 입는 상황에서 유럽만 억지로 변동폭을 제한하기는 어려웠다. 영국, 프랑스, 덴마크, 스웨덴, 이탈리아는 터널이 사라진 ‘스네이크 체제’에 이탈과 복귀를 반복하며 자국 통화를 방어했다.

1979년 환율이 불안정해지면서 독일과 프랑스가 다시금 문제점을 공유하고 스네이크 체제를 보완한 유럽통화제도(EMS, European Monetary System)를 도입했다. EMS는 유로 전(前) 단계의 통화라 할 수 있는 유럽통화단위(ECU, European Currency Unit) 및 환율조정메커니즘(ERM, Exchange Rate Mechanism) 체제 도입 등이 핵심이다.

ECU는 EC 회원국의 통화를 각국 국내총생산(GDP) 및 무역 점유율 등으로 보정해 가중 평균한 일종의 통화 바스켓 혹은 계산 단위라고 말할 수 있는데, 통화 그 자체는 아니라는 점에서 지금의 유로와는 차이가 있다. ECU를 구성하는 통화 비중은 5년마다 갱신되도록 정해졌다. ERM 체제는 역내 2개국 간 환율의 통화폭을 ±2.25%씩으로 기존의 2배로 늘렸으며, 예외적인 경우 ±6%까지 허용키로 했는데, 이탈리아는 줄곧 ±6% 변동폭을 고수했다.

英 · 伊 뒤흔든 ‘統獨 쇼크’



1992년 영국 파운드와 이탈리아 리라는 ERM 체제에서 이탈할 수밖에 없었는데,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한 것은 1990년 10월의 독일 통일이다. 통일 독일은 동서독 격차를 최대한 빨리 줄이기 위해 동독과 서독 마르크의 교환비율을 1대 1로 정하는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산업경쟁력이 약한 동독의 체급을 무리하게 올려서 평가하는 바람에 그 상향평가의 대가로 인한 통화 발급 부담은 고스란히 서독이 짊어져야 했다. 이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발생했고, 아울러 동독에 대한 적극적 재정 지원으로 인한 재정 부담마저 가중되자 독일 정부는 고금리를 통한 금융긴축정책 카드를 꺼내 든다.

이는 당시까지 유럽에 퍼져 있던 ERM 체제의 관성과는 정반대의 양상을 불렀다. 당시 독일은 일본처럼 공업국으로서의 강화된 위상을 바탕으로 경상수지 흑자 기조가 공고하게 유지됐다. 따라서 넘치는 돈을 가둬둘 필요 없이 저금리로 방치하는 전략을 썼다. 투자자들은 마치 2000년대 초중반 ‘엔 캐리 트레이드’(Yen Carry Trade, 엔화를 팔고 상대적 고금리 통화를 구입해 운용 수익을 높이는 전략)처럼, 마르크를 팔고 대신 고금리인 이탈리아 리라나 스페인 페세타, 영국 파운드를 사서 운용하는 전략을 고수했다.

1992년은 영국 파운드화에 치욕의 한 해였다. 조지 소로스가 이끄는 헤지펀드 ‘퀀텀펀드’에 공격당해 통화가치가 급격히 하락하는 바람에 ERM 체제에서 탈퇴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퀀텀펀드는 ‘경제의 기초체력(펀더멘털)에서 벗어난 외화 가치는 언젠가 수정될 수밖에 없다’는 철학을 갖고 있었다. 마침 높은 물가상승률과 강성 노조, 과도한 사회복지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워 이른바 ‘영국병’을 앓고 있던 영국은 좋은 먹잇감이었다. 경제 체력 저하에 따른 환율 저하 요인이 분명함에도 시장 참여자들이 그동안은 ±2.25%의 변동만을 허용하는 ERM 체제, 즉 유럽 역내의 정부 간 합의 때문에 행동에 나서길 주저했다.

독일의 고금리 정책에 따라 시장참여자들이 ‘파운드 매도, 마르크 매수’로 방향을 전환할 것이란 확신을 가진 퀀텀펀드는 1992년 9월 보유하던 영국 파운드를 시장에 투매하며 일거에 파운드 하락을 부추겼다.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이 자국 기준금리를 3일새 10%에서 12%, 15%까지 올렸으나 여타 기관들까지 동참한 연쇄투매를 막기엔 역부족이었고, 파운드화 가치는 금세 20% 가까이 폭락했다.

영국의 선택은 옳았다?

퀀텀펀드는 특히 차입과 공매도(空賣渡)를 통해 2주 만에 10억 달러, 2년 동안에 20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 이익률을 낸 것으로 유명하다. 쉽게 말하면, 빌린 돈으로 파운드화 매도 포지션(수중에 파운드가 없지만 먼저 시장에 내다팔 수 있는 일종의 옵션 상품)을 잡고, 파운드가 실제로 하락하면 하락한 가격으로 파운드 현물을 다시 사들여서 포지션을 청산하며 이익을 남기는 방법이다. 옵션 상품 거래는 특히나 차입효과를 큰 폭으로 배가하는 지렛대 전략을 쓸 수 있다는 점에서 파운드화의 타격은 예상보다 더 컸다.

영국은 결국 퀀텀펀드의 공격 3일 만인 1992년 9월 17일 항복을 선언했다. ERM 체제 탈퇴를 공언하고 완전한 변동환율제 이행을 발표한 것이다. 비슷한 공격으로 환율 가치가 폭락한 이탈리아 역시 영국과 함께 ERM 탈퇴를 선언했다. 이 사태로 특히나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원조 기축통화국’ 영국은 이후에는 기준금리를 다시 큰 폭으로 낮추고 파운드화의 저하를 받아들이며 다시금 국내 산업을 재건하는 구조조정과 개혁에 고삐를 죄기 시작했다.

2/3
조인직 | 대우증권 도쿄지점장
목록 닫기

체급, 체력 제각각 산으로 가는 EU號

댓글 창 닫기

2021/10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