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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가 핫이슈Ⅰ ‘청와대-새누리당 전쟁’ 후폭풍

행정부 우월주의에 빠진 수직형 ‘여왕 리더십’

박근혜 ‘승부사 정치학’ 연구

  • 최진 |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

행정부 우월주의에 빠진 수직형 ‘여왕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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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느림’ vs 서울시장 ‘빠름’

박근혜 리더십을 이야기할 때 흔히 언급되는 것이 ‘청와대 18년’이다. 구중궁궐 속에서 무려 18년간이나 공주로 지냈으니 오죽 폐쇄적이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간과한 부분이 있다. 바로 청와대 18년에 이은 ‘은둔 18년’이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다음해인 1980년부터 1998년 대구 보궐선거를 통해 정계에 입문할 때까지 무려 18년 동안 은둔생활을 하면서 어떻게 보냈는지는 인간 박근혜의 삶과 정신세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대목이다.

그 기나긴 세월 동안 독신 박근혜는 세상 사람들과의 접촉을 최소화하면서 매일 밤 장문의 일기를 써내려갔다. 아버지를 배신한 자들에게 치를 떨면서 많은 책을 읽었다. 이때 중국의 ‘손자병법’이나 ‘육도삼략’ 같은 병서(兵書)를 두루 섭렵했다고 한다. 때로는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간편복 차림으로 다산 정약용 선생의 유배지가 있는 전남 강진과 같은 유서 깊은 지역이나 명승 고찰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 18년과 은둔생활 18년을 합해 장장 36년 동안이나 ‘닫힌 생활’을 해온 셈이다. 닫힌 삶, 닫힌 생활, 닫힌 인간관계가 몸에 뱄기 때문에 오히려 열린 삶, 열린 생활, 열린 인간관계는 불편하고 어색할 법하다. 박근혜 리더십을 이해하는 데 이 36년 세월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특히 은둔생활 18년 동안 박 대통령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내공을 강화했으리라.

어떤 위험 상황이 닥쳐도 바위처럼 흔들리지 않고, 어떤 돌발 상황이 생겨도 눈도 깜짝 않는 안정성은 박근혜 리더십의 최대 장점으로 꼽힌다. 여성답지 않은, 아니 남성을 훨씬 능가하는 그의 내공은 2012년 12월 대통령으로 등극하는 힘이 됐다. 박 대통령 앞에만 서면 한없이 작아지는 참모들, 박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친박계 의원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어 유 전 원내대표를 끌어내리게 만든 힘의 원천도 내공에서 비롯된다.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기 5년 내내 설화에 시달리며 좌충우돌하던 것과는 극히 대조적이다. 노 전 대통령의 리더십이 이리저리 너울거리는 ‘버드나무’였다면, 박 대통령의 그것은 꿈쩍도 하지 않는 ‘바윗덩어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장점인 리더십의 안정성은 집권 3년차인 요즘 가장 큰 단점으로 비판받는다. 흔히 소통 부족, 불통 논란을 빚는 박근혜 리더십의 폐쇄성은 당·정·청 간의 대화 부족, 여야 간 대립으로 이어졌다.

폐쇄적인 리더십은 흔히 느림의 정치, 침묵의 정치로 연결된다. 폐쇄성과 느림과 침묵은 이웃사촌과도 같다. 굳게 닫혀 있으니 느릴 수밖에 없고,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이 2014년 세월호 사건과 성완종 사건, 메르스 사태에 이어 유승민 파동에서 여실히 보여주고 또한 비판받은 것은 느림과 침묵이었다. 세월호 사건 당일 7시간 공백 논란과 메르스 사태 때 드러난 정부의 늑장 대응, 그리고 총리와 정무수석 인사의 난맥상과 오랜 공백이 단적인 사례다.

메르스 사태 때 박원순 서울시장의 오후 10시 30분 심야 기습 기자회견은 정부의 느린 대응과 대비되면서 많은 사람의 호응을 받았다. 대통령의 ‘느림’ vs 서울시장의 ‘빠름’이 극명하게 대비되면서 박 시장의 지지도는 순간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침묵의 정치는 한때 권위의 정치로도 통했다. 태양왕으로 불린 루이 14세는 워낙 말이 적어서 한번 입을 열었다 하면 그 자체가 명령이요 권위였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박 대통령은 좀 더 빠르고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오늘날 21세기 감성 시대에는 닫힘보다는 열림, 느림보다는 빠름, 침묵보다는 설득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박 대통령의 심리적 롤 모델이 엘리자베스 1세라면, 인간적 롤 모델은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일 것이다. 1960~70년대 18년 동안 통치한 박정희 대통령은 왕이나 다름없는 절대 권력자였다. 딸은 왕이나 다름없는 아버지를 보고 자랐고, 아버지는 밥상머리에서, 차 안에서 딸에게 제왕학을 전수했다.

하극상 콤플렉스

행정부 우월주의에 빠진 수직형 ‘여왕 리더십’
1974년 어머니 육영수 여사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22세의 어린 나이에 영부인 역할까지 해야 했다. 공주에 이어 왕후 역할까지 체험한 것이다. 그 후 35년의 세월이 흘렀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 관저에 돌아가면, 어두운 밤, 전깃불을 모두 끄고 촛불을 켜놓고 홀로 책이나 자료를 보거나 사색에 젖는다고 한다.

과거 대통령들은 관저에서 가족이나 지인들과 함께 사담을 나누거나 술자리를 갖기도 했지만, 박 대통령은 홀로 지낸다. 특히 여성 대통령이기 때문에, 저녁이 되면 청와대 관저는 금남(禁男)의 집이 되고, 외부인 출입은 완벽하게 차단된다. 그야말로 구중궁궐이다.

박근혜 리더십을 유심히 살펴보면, 아버지의 리더십과 유사한 부분이 의외로 많다. 가장 두드러진 공통점이 2인자를 두지 않는 ‘디바이드 앤드 룰(Divid · Rule)’ 통치 방식, 이른바 분할통치 방식이다. 박정희 정권 시절 이후락 중앙정보부장, 김형욱 중앙정보부장, 정일권 국무총리, 김종필 국무총리, 차지철 경호실장과 같은 막강한 실세들이 있었지만, 2인자로 불릴 만하면 도중하차하거나 한직으로 밀려났다.

김종필 총리의 경우, 자의반타의반 후계자라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지만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견제를 받았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마찬가지다. 김기춘 비서실장이 ‘기춘 대군’으로 불리며 왕실장으로 통했지만, 실제로는 청와대의 3인방에게 견제를 당했다는 소문이 들렸다. ‘김기춘’ vs ‘청와대 3인방’의 견제구도는 40여 년 전 아버지 시절 ‘김종필’ vs ‘공화당 4인방’의 견제 구도를 연상시킨다.

김무성 대표의 경우, 과거 박 대통령의 당 대표 시절 2인자로 떠올랐지만, ‘친박계에 좌장은 없다’는 당시 박 대표의 말 한마디에 힘이 빠져버렸고 이후 멀어졌다. 최근 유 전 원내대표에 대한 찍어 내리기도 2인자 차단 전략으로 해석할 수 있다. 유 전 대표는 ‘박근혜 없는 대구·경북’에서 빠른 속도로 자파 세력을 구축하면서 자기 정치를 해왔다는 따가운 시선을 받았다. 김 대표와 투톱을 이루며 당내 비박 세력을 규합하면서 차기 대권을 향한 행보를 해왔고, 이것이 박 대통령을 분노케 했다는 것이다.

일종의 하극상 콤플렉스라고 할까?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은 5·16군사정변이라는 하극상을 통해 권력을 잡았고, 10·26사태라는 하극상을 통해 세상을 떠났다. 그 때문에 박 대통령이 하극상에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다. 배신은 단순히 배신 자체에 그치지 않고 곧바로 하극상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조기에 그런 조짐을 뿌리 뽑아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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