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먼 길을 날아와 찢어진 날개로 나뭇잎에 앉은 한 마리 나비처럼, 선생의 기억은 여기저기 해진 수도승의 가사처럼 남루한 것인가. 인생을 수능 문제 풀듯이 풀어대고자 하는 정신으로는 선생과 이야기를 나눌 수 없을 것이다. 선생은 나의 단순한 질문에 깊은 대답을 하셨다. 잘 적어놓았다가 인생 노트에 새겨놓으면 그 자리에 꽃이 필 것이다. 마른 꽃으로 피어난 시 한 편을 바라보았다. 몇 년 전 선생의 자택을 방문했을 때, 선물 받은 흰 도자기에 새겨진 시를 제법 오랜 시간 바라보았다. 백자 항아리는 항상 저 자리에 있었다.
길
지금 그 길은
행복으로 가는 찬란한 길은
아닌 것 같다.
이렇게 저기로 걸어가는 것
선생님과 한담을 마치고 길 건너 자택으로 모시고 가는 길에 선생에게 물었다. 한 손에 지팡이를 짚고, 다른 한손은 어린 후배의 팔에 의지하고 천천히 걸었다. 걸음걸이가 느리지만 갈 길은 정확하게 아신다. 생은 이렇게 저기로 걸어가는 것인가 싶었다. 결국 사람은 자신이 이전에 살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인가. 잠시 친구를 만나기 위해 약속시간에 나와 커피를 마시고 집으로 가는 것처럼.
“선생님,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시곤 하세요?”
“뭐? 뭐라고?”
역시 잘 알아듣지 못하신다. 나는 선생의 귀에다 대고 소리를 질러 더 단순하게 질문했다.
“선생님. 사람이 죽으면 간다는 천당과 지옥이 있을까요?”
“음. 천당과 지옥은 잘 모르겠고, 시인이 죽으면 조금 다른 곳에 가는 것 같아.”
“어떤 곳일까요?”
“그러니까, 피천득 선생이 돌아가셨을 때 내가 한 말이지. 시인이 죽으면 다른 세계에 간다고 말이야. 살아서 사람들이 친하게 동네에서 어울리는 것처럼, 비슷한 영혼들이 함께 어울려 있을 거야. 아마도 그곳은 조용할 거야.”
나는 이 말씀을 메모하고 빌라의 화단에 잠시 앉았다. 날이 더워 꽃들이 키가 크게 자란다. 어느 순간 나는 노트와 연필을 내려놓고, 먼 산을 바라보듯 선생을 바라보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선생과의 인연이 짧지만 깊다. 6년 전이던가, 모 방송국에서 선생의 말씀을 육성으로 남긴다는 기획으로 한국 문학에 대한 선생의 회고를 들었다. 그땐 라디오 문학방송 진행자로서 선생의 말씀을 듣는 도중에 힘든 인생을 살다간 선배 시인들의 이야기에 눈물이 나서 녹음 방송의 마이크를 끈 적이 있다. 선생은 눈물이 많다. 지나온 인생의 길이 눈물로 찍어 그린 그림과 같은 것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