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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詩는 神을 기억하는 작업”

현역 최고령 시인 황금찬

  • 원재훈 | 시인 whonjh@naver.com

“詩는 神을 기억하는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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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 많아진 글쟁이들

선생이 걸어온 길은 항일(抗日)기와 광복, 분단과 전쟁, 개발과 독재의 지난한 길이었다. 일제강점기인 1918년 태어난 선생은 김구 선생과 이승만, 윤보선과 박정희, 전두환과 노태우, 김영삼과 김대중, 노무현과 이명박, 그리고 박근혜 정부를 살았다.

이들이 나라의 지도자라면 선생은 시인으로 우리에게 정신의 메시지를 보냈다. 확성기에 대고 하는 말도 아니고, 때로 듣는 이가 아무리 적어도 한 번 멈춘 적이 없다. 선생은 문단에서도 야인이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된 적도 없고, 이른바 주류 출판사에서 주목받는 화려한 시집을 내지도 않았다. 시인은 욕심 없는 사람이라는 세론이 있다면, 선생은 그 말에 가장 어울리는 사람이다. 언젠가 선생에게 시인이란 무엇인지를 물었다. 선생은 이렇게 대답했다.

“산다는 건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시인으로 산다는 건, 그건 시를 쓰는 일을 하는 거예요. 시를 쓴다는 건, 가난한 마음으로 사는 겁니다. 그런데요…, 요즘은 글쟁이들도 너무 욕심이 많은 것 같아요. 가난하던 시절에는 오히려 욕심이 없었어요. 요즘은 부유해졌는데도 더 욕심이 많아진 것 같아요.”

그럼 욕심이 없다는 것은 무엇인가. 선생은 단언한다.



“욕심은 악마와 같은 겁니다. 시인은 악마와 만나면 죽어요. 시는 신(神)을 기억하는 작업입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하는 대답이라기보다는 종교를 초월한 삶의 자세에 대한 말로 들렸다. 신을 기억하는 순간 우리는 적어도 순해진다.

살아 있다면 사는 이야기를

요즘 문단이 표절 시비로 시끄럽다는 뉴스를 전해드렸다. 선생은 “누구? 누구?” 라고 물으셨다. 누구라고 대답했더니, 아, 그러냐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아무런 말씀이 없다. 잠시 창밖을 바라보니 사람들이 무심하게 지나간다. 선생이 문득 박희진 시인을 말씀 하신다. 동문서답과 우문현답의 인터뷰는 이런 식으로 진행됐다.

“얼마 전에 박희진 시인이 별세했어요. 참 허무해요. 그이가 많이 아프다고 연락을 받았는데, 집이 근처인데, 가보질 못했어요. 병원에 입원하고 좋아졌다고 하다가 다시 입원하고 그만 가버린 거지요. 고자도 아닌데…허허허, 평생 결혼도 하지 않고 살다가 외롭게 간 거지요. 참 허무해요.”

박희진 시인은 지난 3월 향년 85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백발과 멋진 수염을 지니고 풍채가 좋았던 선생의 육성이 들려오는 듯했다. 선생이 사시는 동네에 시인이 많이 살았다고 자랑하셨다. 그들과 어울리면서 살아온 세월이 행복하신 모양이다. 그중에서도 박희진 시인과는 인사동 공간시낭송회(구상, 성찬경, 황금찬 등)를 함께하며 각별하게 지냈다.

긴 세월 선생은 수많은 죽음을 보았다. 특히 따님이 이화여대에 입학하고 병으로 죽자, 사모님도 몇 해를 앓다가 돌아가셨다. 당신도 위험한 순간을 많이 넘겼다.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언젠가 자식은 절대 먼저 보내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을 하시면서…, 우셨다. 나는 선생이 그 많은 죽음을 당신의 삶과 어떻게 연결시켰는지 궁금했다.

“선생님, 수많은 사람을 먼저 보내셨는데 그때마다 외로웠지요?”

선생은 일부러 그런 것인지 다른 말씀을 하셨다.

“음, 여기 도봉구는 말이지요. 옛 시절엔 도적구라고 했어요. 도둑놈이 많다고 말이지요. 왜 그러냐면, 무덤이 많았어요. 길은 없고 그러니까 도둑들이 자주 나왔나봐요. 어려운 시절이니까 말이지요. 내가 53년도에 강릉에서 서울로 넘어왔어요. 그땐 미아리에서 살았지요. 아, 서울이 말이지요. 정말 많이 변했어요. 판잣집에서 아파트, 그리고 이 건물들을 봐요. 눈물 나게 고마운 거예요.”

선생의 말씀을 유추하자면, 무덤이 많았던 동네를 지나 사통팔달 아스팔트가 깔린 동네에 살고 계신다. 지금 살고 있는 번화가 역시 그땐 논과 밭이었다고 한다. 지금 눈앞에 펼쳐진 거리를 보고 과거를 회상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죽음을 이야기한다는 건 의미 없다. 살아 있다면 사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 동네 이야기일지라도.

할 이야기가 없다면

선생은 지금 40번째 시집을 준비하고 계신다.

“1963년에 첫 시집을 내고 지금까지 서른아홉 권의 시집을 냈는데 이젠 마흔 권 채우고 가야지요. 요즘엔 시가 짧아져요. 그동안 자연을 보고 말을 많이 나눴는데, 이젠 나이를 먹으니까 자연도 말을 잘 안 듣는 것 같아. 늙은 놈이 뭘 하려고 하냐고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자꾸 잊어버려 사람 이름, 강 이름 자꾸 잊어버려….

시가 짧아지는 건, 이젠 할 말이 자꾸 줄어든다는 거야. 시인이 할 말이 없으면 그만 쓰는 거지. 다행스러운 건지는 몰라도 나는 아직 조금은 할 말이 있는 것 같아. 짧은 시를 쓰니까 말이야. 그거 하면 좋겠어. 그거 할 때까지만 살았으면 하는데 말이야. 그런데 말이야, 할 말이 없는데 자꾸 쓰려고 하면 문제가 생겨. 병이 들고 말이야. 시인은 그만 쓰는 순간이 생명이 다하는 거야. 나머지는 여생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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