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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詩는 神을 기억하는 작업”

현역 최고령 시인 황금찬

  • 원재훈 | 시인 whonjh@naver.com

“詩는 神을 기억하는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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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는 神을 기억하는 작업”
선생은 이런 분이다. 먼저 우시던 어머니 같은 분, 사람을 대하는 자세가 겸손하고 항상 가난한 사람을 생각하며 눈물겨워 하는 꽃잎 같은 분이다. 선생과 대화를 나누고 나서 좋은 뉴스가 들려왔다. 선생이 올해 대한민국예술원상 문학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이다. 선생은 ‘동해안의 시인’이라는 별명과 함께 해변시인학교 교장으로 사람들을 만났다. 그동안 월탄문학상, 한국기독교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서울시문학상, 대한민국문화예술상 등을 수상하셨다. 선생은 천재가 아니라 거장이다.

인생은 문(門)이다. 인생의 문은 여러 형태로 다가온다. 가장 열기 쉬운 인생의 문은 책이다. 문학과 역사, 철학의 문을 열고 먼 길을 간다. 두 번째가 타인의 죽음이다. 타인의 죽음은 내 인생의 문이다. 그 길고 어두운 터널로 이어진 문을 열고 누구나 지나간다. 세 번째가 바로 오늘이라는 문이다. 오늘의 문을 열지도 않고 미래로 가려고 하지 마라.

선생과 마주하는 동안 나는 좁은 문을 보았다. 선생이 열고 지나온 그 좁은 문들, 그것이 바로 선생이 걸어온 길로 연결되어 있었다. 이제는 자택의 대문을 열고 나오는 것도 조심스럽다. 결국 사람은 집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문을 거치기 마련인가.

황무지의 피아노 소리

선생은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노인이 되어 난청이지만 음악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소년처럼 즐거워하신다. 마리아 칼라스를 위해 시를 적은 적도 있고, 어려운 시절을 견디기 위한 방편처럼 시와 음악은 항상 선생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해방 전에 이북에서 처음 클래식 음악을 만났지요. 맹인 선생이었는데 이 분이 음반과 좋은 유성기를 가지고 있었어요. 우리 집에서 2km쯤 떨어진 곳에 사셨는데. 한겨울에 눈이 참 유난스럽게 많이 내렸지. 눈이 펑펑 내리는 걸 보고 있으니 갑자기 음악이 듣고 싶어 무작정 걸어서 갔어요. 눈을 맞으면서 철길을 걸어가다가 기차 오는 소리도 못 듣고 그만 죽을 뻔한 일도 있었어. 그 고생을 해서 그분 집에 가서 쇼팽의 피아노곡을 듣고 그 어려운 시절에 꿈과 희망을 가질 수 있었지요.”

감정의 과잉이랄까, 선생의 음악 사랑은 들뜬 소년과도 같아 보였다. 왜 음악은 선생에게 그토록 눈물겨운 것이었을까. 피아노에 대한 추억은 또 있었다.

“쓸쓸한 이야기지만, 53년에 강릉에서 서울로 이사를 왔는데 토요일 아침에 피아노 소리가 들리는 거야. 집주인이 말하기를, 음악 선생이 이사를 왔는데 미혼이고 대학교수였어. 그때 들은 음악도 쇼팽의 즉흥환상곡이야, 좋은 연주였어요. 내가 눈물 나게 잘 들었다고 하니까. 그 사람이 그런 말을 하는 거야. 들어주는 분이 있어서 고맙다고. 그래서 내가 왜 결혼을 안 하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피아노와 결혼을 했다는 거야.”

우리 詩의 원형

피아노에 얽힌 이야기는 각기 다른 시대 배경을 갖고 있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이 끝나고 나서다. 황무지와 같은 시대에 들려온 피아노 소리는 어쩌면 선생에게는 ‘천상의 레시피’일 수도 있다. 선생이 꿈꾸는 사람 사는 마을은 바로 피아노와 바이올린, 첼로가 서로 어울려 협주하는 마을이다.

선생이 그간 발표한 8000편이 넘는 시 중에서 감히 한 편을 독자에게 소개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이 글을 쓰다가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다. 선생은 서울 집에서 나와 강릉 집에서 자제분과 계시다면서 전화를 받았다. 내 질문에 선생은 주저 없이 ‘경주를 지나면서’라고 대답하셨다. 이 작품은 1953년 ‘문예’지에 추천된 등단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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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재훈 | 시인 whonj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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