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호

김정은 비핵화 방정식

“핵무장 능력 가진 ‘북한판 덩샤오핑’이 목표”

  • 입력2018-05-20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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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일성-마오 시대 ‘혈맹’으로 복원된 북·중동맹

    • 대동강변 ‘트럼프월드’ 가능할까

    • 북·중동맹 아닌 한미동맹이 개혁·개방 이끌어야

    • 美軍 대한해협 밖으로 밀어내는 게 中 전략목표

    [사진=동아DB]

    [사진=동아DB]

    여기, 북한에서 발신된 엇갈린 신호(signal)가 있다. 

    ①조선중앙TV가 5월 10일부터 황금시간대인 오후 8∼10시에 36부작 중국 드라마 ‘마오안잉(毛岸英)’을 방영하기 시작했다. 배우 추자현 남편으로 한국에도 이름이 알려진 중국 배우 위샤오광(于曉光)이 주연이다. 시청률이 가장 높은 시간대에 이 드라마를 방영하는 것은 북·중 혈맹을 강조하려는 선전·선동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오성홍기에는 조선 열사들의 선혈이 배어 있다”는 마오쩌둥(毛澤東)의 발언은 무게감이 크다. 마오안잉은 6·25전쟁에 참전했다가 미군 폭격으로 전사한 마오쩌둥의 아들이다. 평안남도 회창군 인민지원군 열사 묘에 유해가 묻혀 있다. 마오안잉은 북·중 혈맹의 상징 같은 존재다. 

    북한과 중국은 1961년 7월 ‘북·중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조약’을 체결했으나 화해와 친선, 갈등과 반목이 반복됐다. 6·25전쟁 때 전시작전권을 가지려는 중국과 북한이 부딪쳤으며 문화대혁명(1966~1976) 시기에도 충돌했다. 1992년 한중수교는 평양에 배신감을 안겨줬다. 1990년대 식량난으로 아사(餓死) 사태가 벌어졌을 때도 중국은 북한에 특별한 지원을 하지 않았다.

    “김정은의 다거(大哥), 시진핑”

    평양은 전통적으로 베이징을 믿지 않았다. “북·중관계가 우호적인 상황에서 결정적 계기를 거치면서 나빠지는 게 아니라 두 나라 간 전략적 불신의 뿌리가 상당히 깊다”는 게 이희옥 성균관대 교수의 설명이다. 고모부 장성택 숙청과 이복형 김정남 독살을 중국과 연결 짓는 시각도 있다. 



    전통적으로 중국을 불신하던 북한이 중국을 ‘후견국’으로 여기는 듯한 모습을 연출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부활절 주말(3월 31일∼4월 1일) 극비 방북하기 직전(3월 25~28일) 베이징을 방문해 시진핑 주석과 정상회담을 했다. 폼페이오가 국무장관이 된 후 5월 9일 두 번째로 평양을 방문하기 이틀 전(5월 7일)에도 다롄(大連)으로 가 시진핑을 만났다. 

    다롄에서 열린 북·중 정상회담은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일종의 ‘전략회의’ 형식으로 진행됐을 공산이 크다. 중국이 북한에 가이드라인을 내놓았고 평양이 이를 수용했으리라는 관측이 많다. 다롄에서 평양으로 돌아가는 길에 김정은은 “경애하는 습근평(시진핑) 동지께서 부디 건강하시기를 삼가 축원한다”는 내용의 감사 편지를 보냈다. 

    김정은이 시진핑을 다거(大哥·형님)로 여기는 듯한 형국이다. 북·중 관계 전문가인 박종철 경상대 교수는 “김일성-마오쩌둥 시대 혈맹 신화를 재현하는 모습을 연출한다”고 진단했다.

    “‘평양시간’ 베이징에 맞추려 했다”

    ②5월 5일 0시 한국과 북한의 표준시가 같아졌다. 북한이 30분 빠른 한국 표준시에 맞춘 것이다. 

    조선중앙통신은 “최고영도자 동지께서 북남 수뇌회담 장소에 평양시간과 서울시간을 가리키는 시계가 각각 걸려 있는 것을 보니 매우 가슴이 아팠다고 하시면서 북남의 시간부터 먼저 통일하자고 언급하시었다”(4월 30일)면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에 의해 평양시간이 고쳐져 정식 실행됐다”(5월 5일)고 보도했다. 

    북한은 한국과 같은 표준시를 써왔으나 광복 70주년인 2015년 8월 15일부터 표준시를 30분 늦춰 ‘평양시간’으로 명명했다. 평양시간 제정 명분은 일제 잔재 청산이다. 한국 표준시는 일제강점기인 1912년 일본 표준시에 맞춰 변경된 후 지금껏 사용돼왔다. 평양시간은 대한제국 때 쓰던 것이다. 

    행정적 어려움과 비용이 수반되는데도 한국과 시각을 통일한 것은 앞으로 경제·사회 협력 등 교류가 활발해질 것을 대비한 포석이다. 윤영찬 대통령국민소통수석비서관은 “국제사회와의 조화와 일치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의미이자 향후 예상되는 남북, 북·미 간 교류 협력의 장애물을 제거하겠다는 결단”이라고 평가했다.
     
    표준시 변경과 관련해 대북소식통은 이렇게 말했다. 

    “2015년 북한이 시곗바늘을 30분 늦추고 난 후 대체적 관측은 5년가량 사용한 후 30분을 더 늦춰 베이징 시각에 맞춘다는 것이었다. 인적·물적 교류의 대부분이 중국과 이뤄져 시간을 통일하면 이점이 굉장히 많다. 개혁·개방 초기 중국에 들어온 외국 자본의 90%가 화교 자본이었다. 북한에는 중국 자본이 가장 먼저 들어갈 것이다. 북한은 중국 경제에 종속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경계한다. 한국·일본 시각과 통일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외교 소식통은 “한국 정부가 북한 개발과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솔깃할만한 제안을 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5월 11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우리의 우방인 한국과 같은 수준의 번영을 달성하도록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비핵화를 전제로 경제 분야에서 ‘통 큰 지원’을 할 가능성을 내비친 것이다. 5월 13일 ‘폭스 뉴스 선데이’ 인터뷰에서는 “핵 폐기 시 에너지-SOC 등 민간투자로 북한을 도울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 언론들은 5월 10일 김정은-폼페이오 면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새로운 대안’을 제시했으며 “만족한 합의를 봤다”고 보도했다. 새로운 대안은 체제 보장+α를 의미한다. +α는 서방과 국제기구의 자본일 것이라는 분석이다. 폼페이오가 포괄적 보상 패키지를 북측에 제안했으며 평양이 군침을 흘릴만한 ‘당근’을 내놓았다는 것이다. 북한판 ‘마셜 플랜’이다. 

    북한의 위아나이제이션(yuanization)은 심각한 수준이다. 북·중 접경지역에서는 위안화가 북한 원화를 제치고 사실상 공용화폐가 됐다. 달러 결제망으로 진입이 허용돼야 북한이 개방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북한이 핵 폐기를 완성하고 미국과 국교 정상화를 이룬 후 서방 자본에 문을 열면 ‘트럼프월드’가 대동강변에 세워질 수도 있으며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의 자본과 인력이 북한에 들어간다. 헤더 나워트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5월 11일 “북한 경제 개방 문제가 북·미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가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①은 북·중동맹이 주도하는 북한 비핵화 및 개혁·개방 ②는 한미동맹이 주도하는 정상국가화와 연결된다. 북한은 ①, ② 사이에서 줄을 타며 실리를 획득하려 할 것이다.

    “北, 합의문에 CVID 명기할 듯”

    미국은 PVID(영구적이며 검증 가능하고 불가역적인 핵 폐기)로 문턱을 높이는 듯하다가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 폐기)로 되돌아온 모습이다. PVID와 CVID를 혼재해 사용하면서도 CVID에 대한 언급이 더 잦다. PVID와 CVID는 닮은 듯 다르다. 

    검증 가능하고 불가역적이면서 완전한(complete) 비핵화, 즉 CVID는 핵무장 완성을 이루지 못한 국가에 적용하는 개념이다. 핵 능력 순환 주기를 맞춰본 국가는 ‘완전한 비핵화’를 하더라도 재(再)핵무장에 나설 수 있다. 영구적(permanent) 비핵화는 그것마저도 차단한다는 뜻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언론은 아무것도 모른다”면서 극적 긴장감을 높이고 있으나 북·미 정상이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만난다는 것’은 사실상 합의가 이뤄졌으며 세부 조율만 남았다는 뜻이다. 외교 소식통은 “북한이 CVID를 합의문에 명기하고 미국은 체제 보장+α를 단계적으로 보장하는 것으로 북·미가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5월 10일 워싱턴 인근 앤드루스 공군기지를 찾아 북한이 석방한 한국계 미국인 3명을 맞는 자리에서 “한반도 전체(entire peninsula)를 비핵화할 때 가장 자랑스러운 업적이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가 그간 사용해온 ‘북한 비핵화’ 대신 김정은과 시진핑의 용어인 ‘한반도 비핵화’로 언설(言說)을 바꾼 것도 주목할만한 대목이다. 

    북한은 1990년대 초반부터 ‘조선반도 비핵지대화’를 주장하면서 미군 핵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 금지와 핵우산 철폐, 주한미군 철수 등을 요구해왔다. 비핵화 과정에서 제재 완화와 체제 보장은 물론이고 한미 연합훈련 축소, 주한미군 감축 혹은 성격 변화, 전략무기 한반도 전개 축소 등이 논의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은 한미동맹을 ‘냉전시대 유물’이라고 여긴다. 한미동맹·미일동맹으로 이뤄진 한·미·일 연대에서 가장 약한 고리인 한국을 중국 쪽으로 끌어당기려 노력해왔다. 한반도 전체를 중국 영향력 아래 두는 동시에 미국을 태평양 동쪽으로 밀어내는 게 베이징이 가진 전략 목표다. 북한 비핵화 과정에서 중국은 이 같은 전략 목표의 관철을 시도할 공산이 크다.

    핵무력건설병진노선의 위대한 승리?

    북한은 2018년 4월 20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3차 전원회의에서 핵·경제병진노선의 결속을 선언했다. 전원회의가 내놓은 결정서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병진노선의 위대한 승리를 선포함에 대하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핵무기 병기화를 믿음직하게 실현했다는 것을 엄숙히 천명한다. 핵시험과 대륙간탄도로케트 시험발사를 중지할 것이다. 핵시험 중지를 투명성 있게 담보하기 위해 공화국 북부 핵시험장을 폐기할 것이다. 우리 국가에 대한 핵 위협이나 핵 도발이 없는 한 핵무기를 절대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며 그 어떤 경우에도 핵무기와 핵 기술을 이전하지 않을 것이다. 나라의 인적·물적 자원을 총동원해 강력한 사회주의경제를 일떠세우고 인민생활을 획기적으로 높이기 위한 투쟁에 모든 힘을 집중할 것이다. 사회주의 경제 건설을 위한 유리한 국제적 환경을 마련하며 조선반도와 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기 위하여 주변국들과 국제사회와의 긴밀한 연계와 대화를 적극화해나갈 것이다.” 

    전직 정보 당국 고위인사의 설명이다. 

    “핵·경제병진노선의 승리를 선언한 북한은 핵무장이라는 전략 목표를 폐기한 적이 없다.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할 가능성은 90%가 넘지만 그것이 완전한 비핵화는 아니다. 북한과 트럼프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성공한 것처럼 포장되겠으나 결과적으로는 동결과 비확산 중심으로 상황이 전개될 소지가 적지 않다. 완전한 비핵화가 아니라는 현실을 인정하고 그다음 단계를 준비해야 한다.”

    현실인가, 망상인가

    미국 정보기관 일을 한 대북소식통은 “김정은은 핵무장 능력을 갖춘 상태에서 북한판 덩샤오핑(鄧小平)이 되기로 결심했다”고 단언하면서 “비핵화의 북소리가 울린 뒤 이뤄질 북한의 개혁·개방 과정이 한미동맹 중심으로 전개되느냐, 북·중동맹 중심으로 이뤄지느냐에 따라 한반도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북한의 핵무력은 ‘과거 핵’(핵물질·핵탄두) ‘현재 핵’(핵시설) ‘미래 핵’으로 나뉜다. 핵실험장 폐쇄 후 완성된 핵무기와 ICBM을 해체해 반출할 것이나 일부를 은닉할 수도 있다. ‘과거 핵’과 ICBM을 모두 해체해 외부로 반출하고 현재 핵을 포기하더라도 기술과 과학자가 남았으므로 ‘미래 핵’은 남는다. 핵과학자 전체의 해외 이주는 옵션이 되기 어렵다. 

    올해 1월 김정은의 신년사로 시작된 한반도의 격변은 6월 12일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일단락된 후 다음 단계를 맞이할 것이다. ‘영구적 비핵화’인지, ‘완전한 비핵화’인지 ‘적당한 비핵화’인지는 훗날 증명된다. 핵무장 능력을 갖춘 채 개혁·개방에 나서겠다는 김정은의 목표는 망상인가. 현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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