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호

아주 사적인 타인의 리뷰

레슬링 국가대표 황정원이 본 영화 ‘당갈’

16년 정상 무적의 레슬러 자카르타에 뜬다

  • 입력2018-06-06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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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당갈’은 인도 최초의 국제경기대회 여자레슬링 종목 금메달리스트 ‘기타 포갓’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2016년 인도 개봉 당시 역대 1위 흥행 기록을 세웠고 4월 말 국내 개봉했다. ‘당갈’은 레슬링을 뜻하는 인도어다. 한국의 여자레슬링 선수는 이 영화를 어떻게 봤을까. 8월 자카르타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진천선수촌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황정원 선수를 만나 영화 ‘당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레슬링 국가대표 황정원. [홍태식 기자]

    레슬링 국가대표 황정원. [홍태식 기자]

    ‘난 여기 굳건히 설 거야/ 최고를 꺾을 거야/ 엄마 배 속에서 무덤에 갈 때까지 인생은 레슬링 경기이니/ 레슬링을 하게 레슬러여 (중략) 모든 도전은 미친 코끼리와 같아/ 너의 앞에 우뚝 서서 널 노려보지/ 정면으로 맞서게/ 그것이 당신의 숙명이니/ 레슬링을 하게 레슬러여.’ 

    영화 ‘당갈’ 주제가 가사다. 내용을 음미하다 보면 인도인이 왜 그토록 레슬링을 사랑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레슬링은 그들에게 인생의 축소판인 것이다. 거리의 흙바닥에서든, 실내 매트 위에서든 일단 레슬링이 시작되면 물러서지 말아야 한다. 어떤 꼼수도 없이 오직 근육의 힘에 의지해 상대와 맞서며, 누군가 한 사람이 쓰러질 때까지 정면 승부를 펼쳐야 한다.

    한국 여자레슬링의 살아있는 전설

    “레슬링의 매력은 무승부가 없는 거예요. 이기든 지든 결국 승부를 가려야 하죠.” 

    지난 16년간 그 결전의 현장에서 살아온 황정원(35) 선수가 한 얘기다. 여자레슬링이 국제 대회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지는 얼마 안 됐다. 아시아경기대회의 경우 2002년 부산 대회가 처음이다. 우리나라는 그해 최초로 여자레슬링 국가대표팀을 꾸렸고, 당시 용인대 1학년 학생이던 황 선수가 국가대표팀 막내로 이 대회에 출전했다. 16년이 흐른 지금도 그는 여전히 대표팀 선수다. 8월 열리는 자카르타 아시안게임에 여자레슬링 최고참으로 출전할 예정이다. 그렇게 오랜 세월 국내 최정상의 자리를 지켜왔지만, 그의 얼굴이나 이름은 대중에게 꽤 낯설다. 여자 레슬링 선수가 국민 영웅으로 등극한 영화 ‘당갈’을 본 소감이 어땠을까. 그는 “내가 아는 사람들 얘기가 영화에 나오는 게 좀 신기했다”는 말부터 꺼냈다. 

    “기타 선수가 지금은 은퇴했지만 선수로 뛰는 동안 국제 대회에서 자주 만났다”는 것이다. 황 선수가 극장에서 처음 느낀 감정이 ‘신기함’이었다면 두 번째 느낌은 ‘익숙함’이었다고 한다. 기타와 비비타가 체력을 단련하려고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쉴 새 없이 달리고, 남자 선수들과 치열한 몸싸움을 해가며 자웅을 겨루는 모습, 그리고 반복되는 승리와 패배 속에서 조금씩 단단해져가는 과정이 모두 그의 삶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운동을 이틀 이상 쉬면 불안해요”

    2017년 촬영한 여자레슬링 국가대표팀. 정중앙이 황정원 선수다. [황정원 제공]

    2017년 촬영한 여자레슬링 국가대표팀. 정중앙이 황정원 선수다. [황정원 제공]

    정말 그렇게 고되게 운동을 하시나요? 

    어쩌면 국가대표 선수에게 하기엔 바보 같은 질문이었는지 모른다. 황 선수는 휴대전화를 켜고 선수촌 훈련 일정표를 열어 보여줬다. 

    “진천선수촌에 들어간 뒤로 매일 오전 5시 40분에 일어나요. 6시부터 훈련을 시작하고 마무리 훈련 끝내고 나면 밤 10시쯤 되죠. 훈련을 마치면 세수할 힘도 없을 만큼 녹초가 돼요.” 

    요즘 아시안게임을 앞둔 상황이라 더욱 집중 훈련을 하는 거죠? 

    “꼭 그런 건 아니에요. 저는 국가대표팀에 소집돼 있지 않을 때는 창원시청 선수로 각종 대회에 출전하거든요. 소속팀은 제게 직장이니까 책임감을 갖고 운동을 하죠. 큰 대회가 끝나고 좀 쉴 때도 있지만 보통은 2~3일만 지나도 몸이 흐트러질까 불안해서 마음 놓고 푹 놀지를 못해요.” 

    그가 매순간 얼마나 치열히 훈련하고 있는지는 그의 전국체육대회(전국체전) 성적만 봐도 확인할 수 있다. 황 선수는 각 지방자치단체 운동팀에 소속돼 있는 선수에게는 전국체전이 매우 큰 의미를 갖는다고 했다. 이 대회에서 소속 기관에 메달을 안기는 것이 운동팀을 지원해주는 지역 주민에 대한 보답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종목별 경쟁이 국제 대회 못잖게 매우 치열한데, 황 선수는 그 전국체전에서 지금까지 10번이나 1등을 차지했다. 특히 2004년부터 6년간, 그리고 2012년부터 다시 4년간 1등 행진을 이어가며 ‘무적 실력’을 선보였다. 2016년 오른쪽 무릎 인대 파열 부상 후유증으로 1회전 탈락을 하긴 했지만 이듬해 다시 2위에 오르며 건재를 과시했다. 

    놀라운 건 이 타고난 ‘레슬링 선수’가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유도선수였다는 점이다. 2001년 김해중앙여고 3학년 시절, 황 선수는 유도특기자로 대학에 진학하기를 바랐지만 성적이 기대만큼 나오지 않아 마음을 졸이는 상태였다. 그때 유도팀 코치가 그에게 8월에 열리는 레슬링 전국대회 출전을 권한 게 레슬링에 입문하는 계기가 됐다. 

    “어떤 대회든 입상 실적이 생기면 대학 입시에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셨어요. 대회 일주일을 남겨두고 경남대 남자레슬링부에 가서 기본 기술을 배웠죠. 레슬링 규칙, 점수 계산법 정도를 속성으로 익히고 나갔는데, 그만 그 대회에서 우승을 했어요(웃음).”

    레슬링 천재의 탄생

    대회가 끝나자 웬 ‘아저씨’가 황 선수를 찾아와 용인대 레슬링팀에 들어올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다. 알고 보니 용인대 레슬링팀 감독이었다고 한다. 

    “그때만 해도 저는 유도를 계속 하려고 했어요. 도복 입고 운동하던 처지에 ‘쫄쫄이’를 입는 것도 어색했고요. 그런데 학교 코치 선생님이 다시 한번 저를 설득하셨죠. ‘현재 유도 입상 실적으로는 용인대에 가기 어려울 수 있다. 마침 좋은 기회가 왔는데 유도만 고집하다 놓치는 건 아깝지 않냐. 일단 레슬링 특기자로 진학한 뒤 유도대회에도 나가면 된다’고요.” 

    결국 그는 레슬링 규칙도 잘 모르는 레슬링 특기자가 돼 용인대에 진학했다. 처음엔 기회가 생기면 유도로 돌아가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그의 ‘천재적 레슬링 재능’이 또 한 번 황 선수의 발목을 잡았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실시된 여자레슬링 국가대표팀 선발전에서 국가대표로 뽑힌 것이다. 한국 최초의 여자레슬링 국가대표 선수였다. 그는 대표팀 첫 소집이 있던 그해 3월 31일을 아직도 선명히 기억한다. “얼떨떨하면서도 놀랍고 자랑스러워서 잊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황 선수의 ‘행운’은 거기까지가 전부였다. 국가대표팀에서 ‘레슬링 규칙을 모르는 천재 레슬러’는 살아남기 어려웠다. 그는 훈련 때 유도 기술을 쓰려 한다는 이유로 숱하게 꾸중을 들었고, 혹독한 체력 훈련도 받아야 했다. 황 선수는 “진짜 레슬링 선수가 되려면 내 몸에 남아 있는 유도의 흔적을 다 지워야 했다. 평소에는 괜찮은데 연습 경기 중 위급한 상황이 오면 나도 모르게 상대를 움켜잡거나 경기장에 드러눕는 유도 기술이 나왔다. 매트에 등이 닿으면 레슬링에서는 바로 지는 거다. 그것 때문에 ‘너는 레슬링할 자격이 없다’며 경기장 밖으로 쫓겨난 게 여러 번이었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건 더 열심히 훈련해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는 것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때는 정말 힘들었죠. 하지만 돌아보면 제가 서른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 계속 좋은 성적을 내며 운동할 수 있는 건 그때 체력을 다져놓은 덕분인 것 같아요. 여기 이 복근도 스무 살 그때 매일 울면서 만든 겁니다.” 

    황 선수가 싱긋 웃으며 한 얘기다.

    “부상 없는 완주가 목표”

    인도의 레슬링 명문가인 ‘포갓’ 가문 가족 사진. 맨 오른쪽이 영화  ‘당갈’ 주인공 기타 포갓이다. 세 여동생도 모두 유명 레슬링 선수다. [SNS 캡쳐]

    인도의 레슬링 명문가인 ‘포갓’ 가문 가족 사진. 맨 오른쪽이 영화 ‘당갈’ 주인공 기타 포갓이다. 세 여동생도 모두 유명 레슬링 선수다. [SNS 캡쳐]

    부단한 노력으로 첫 고비를 넘긴 뒤부터 그는 레슬링 실력 면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우리나라 최정상이 됐다. 그러나 국제 대회에서는 매번 불운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처음 출전한 부산아시안게임에서는 올림픽 여자레슬링을 4연패한 일본의 이초 가오리와 경기하다 오른 손목뼈가 골절되는 부상을 입었다. 2008년 아테네 올림픽 때는 대회 출전권 확보 경기 직전 우리나라 선수와 부딪치면서 코뼈가 부러졌다. 그는 그 상태로도 대회 출전을 강행했지만 마지막 한 경기를 남겨두고 부상이 악화하면서 끝내 눈물을 삼켜야 했다. 

    “2008년엔 그 부상을 입기 전까지 제 몸 상태가 정말 최고였거든요. 사고가 너무 어이없이 발생했기 때문에 마음에 큰 상처가 됐죠. 이후 한동안 아예 국가대표선발전에 나가지 않았어요.” 

    그러다 2015년 마음을 고쳐먹었다. 문득 ‘내가 머잖아 은퇴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체력이나 기술 면에서는 여전히 자신 있었지만, 무리한 뒤 몸을 회복하는 속도가 예전과 다른 게 느껴졌거든요. 그냥 이렇게 매트를 떠나도 될까 저 자신에게 물어보니 아쉬움이 남더라고요.” 

    그렇게 출전한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그는 다시 1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부산아시안게임의 좌절을 자카르타 아시안게임에서 만회하고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그는 “이번에 선수촌에 들어오면서 스스로 정한 목표는 일단 ‘절대 부상당하지 않기’”라며 활짝 웃었다. ‘당갈’의 기타처럼 국제 대회에서 우승해 국민 영웅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는지 물었다.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지금은 성적 욕심이 정말 전혀 없어요. 오랜 세월을 돌아 다시 국제 대회에 나가게 된 만큼 부상 없이 훈련하고, 스스로 잘 준비된 상태로 경기장에 설 수 있기를 바랄 뿐이죠. 그러면 메달은 저절로 따라오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더불어 황 선수의 또 다른 목표가 있다. 후배 국가대표들에게 오랜 세월 쌓아온 자신의 노하우를 남김없이 전수하는 것, 그리고 후회 없는 경기를 통해 레슬링이 정말 재미있고 멋진 운동이라는 걸 많은 이에게 알리는 것이다. 그는 “레슬링 선수로 사는 건 무척 고통스럽지만, 그걸 넘어설 만큼의 재미와 보람도 있다”며 좀 더 많은 사람이 레슬링을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6년간 최고의 레슬러로 살아온 황 선수가 자카르타에서 펼칠 승부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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