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호

‘벽돌 한 장까지’ 살려낸 도시 재건 모범사례

폴란드 바르샤바

  • 글·사진 조인숙 | 건축사사무소 다리건축 대표 choinsouk@naver.com

    입력2015-09-22 10: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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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유산도시는 대개 고도(古都)다. 바르샤바는 예외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에 철저하게 파괴된 바르샤바는 전후 온 국민의 열성을 모아 완벽하게 재건됐고, 그 노력과 성과가 높이 평가돼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됐다. 바르샤바 재건사업의 구호는 “벽돌 한 장까지!”였다.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역사도시 대부분은 오랜 역사와 독특한 문화를 지닌 고도(古都)다. 2000년 등재된 경주 역사지구나 최근 등재된 백제 역사지구(공주, 부여 등)도 예외가 아니다. 이 점에서 폴란드 바르샤바 역사지구는 독특하다. ‘고도’로서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철저하게 파괴된 옛 도시를 뛰어나고도 총체적으로 재건한 사례로 1980년 세계유산 반열에 올랐기 때문이다.

    1944년 8월 바르샤바 봉기(Warsaw Uprising) 때 독일 점령군은 폴란드인들의 저항을 막고자 바르샤바 구(舊)시가의 90% 이상을 파괴했다. 130만 명이던 도시 인구 중 절반인 65만 명이 사망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가던 1945년 1월, 폴란드는 ‘바르샤바 재건안’을 채택한다. 폐허가 된 바르샤바를 떠나 새로운 곳에 수도를 세우는 대신 도시를 다시 세우기로 한 것. 당시 구호가 ‘벽돌 한 장까지’였다. 1960년대 중반까지 계속된 바르샤바 재건 프로젝트는 이후 많은 유럽 국가에서 벌이던 도시화 및 보존적 도시 개발의 원칙에 큰 영향을 끼쳤고, 20세기 후반 도시의 통합적 재건 및 복구 기술의 모범이 됐다.

    바르샤바 역사지구는 바르샤바 북부의 구시가지와 신시가지, 크라쿠프(Krakow) 교외 거리, 신세계 거리 및 바르샤바 도시 내 궁전들을 포함한다.

    구시가지(Stare Miasto)는 13세기에 형성됐다. 그 중심에는 시장광장이 있는데, 18세기까지 바르샤바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이었다. 주변에는 도시를 둘러싼 도시 성벽인 바르비칸(Barbican) 성벽 등 오래된 건축물이 있다. 15세기에 완공된 성요한 대성당은 원래는 교구 교회(parish church)였으나 1798년 대성당이 됐다. 이 대성당은 본래의 고딕 양식으로 복구됐다. 바르샤바 역사지구의 건물들은 고딕에서 바로크까지 다양한 건축양식이 혼재한다.



    바르샤바 역사지구(Historic Centre of Warsaw)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은, 무엇보다 도시 재건의 우수한 사례임이 인정됐기 때문이다. 1980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세계유산위원회는 ‘바르샤바의 물리적 재건은 폴란드 국가 내부의 힘과 결의를 기반으로 하며, 세계 역사상 찾아보기 힘든 규모로 유산의 재건이 이뤄졌다’고 평가했다. ‘도시 보존 원칙과 실행을 확립하는 데 기여한 유럽의 독특한 사례’로도 평가됐다.

    또 하나 괄목할 만한 점은, 바르샤바 재건에 관한 다양한 기록이 ‘바르샤바 재건사무소 기록물(Archive of the Reconstruction Office)’이란 명칭으로 2011년 세계기록유산(Memory of the world)에 등재된 사실이다. 이 기록물들은 ‘건축가, 보존 전문가, 예술가, 현장 인력 및 사회 현상이 만들어낸 뛰어난 업적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질 뻔한 도시가 천하무적 도시(invincible city)의 상징이 됐다’고 평가됐다.

    기록물의 내용은 재건 기록뿐만 아니라 파괴 기록(1939~1945), 1943년 게토 봉기 기록, 1944년 바르샤바 봉기 기록 등도 아우른다. 이에 앞서 바르샤바 게토 기록물(Warsaw Ghetto Archives, 에마누엘 링엘블름 기록물이라고도 함)이 1999년 기록유산에 등재된 바 있다.

    ‘벽돌 한 장까지’ 살려낸 도시 재건 모범사례

    빌라누프 궁전 박물관.

    빌라누프 궁전 박물관, 정원

    빌라누프 궁전은 얀 소비에스키 3세가 왕비를 위해 지은 여름 별장으로 폴란드 바로크 건축의 백미 중 하나다. 빌라누프는 ‘신도시’란 뜻. 왕은 프랑스 귀족 출신 왕비 마리시엔카를 위해 베르사유 궁전을 본떠 이 궁전을 지었다. 17세기에 건립된 후 후계 왕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증축되다보니 전통적인 폴란드식 중정, 이탈리아식 빌라, 프랑스식 성(chateau) 등이 조합된, 다소 독특한 형태가 됐다.

    궁전 내부 장식은 3개 시기를 반영한다. 가장 오래된 바로크식 로열 아파트는 주 건물에 자리하고, 남쪽 날개 부분은 18세기 양식을 띤다. 19세기 포토키 가문이 꾸민 좀 더 현대적인 방들은 북쪽 날개 부분에 자리한다. 크림슨홀, 에트루스칸실, 보석 세공실, 갤러리 전실 등은 모두 1805년에 조성된 역사박물관 부분이다.

    궁전 외부 공간인 두 단의 정원은 빌라누프 궁전을 에워싸는 틀인 셈인데, 세련된 바로크 정원과 로맨틱한 영국-중국 정원, 영국식 경관 정원, 그리고 네오 르네상스식 정원이 조화롭게 결합한다. 대지의 동쪽은 호수로 에워싸였고, 남쪽에선 폭포가 떨어진다. 정원 전체는 조각, 분수, 건축 모형들로 장식됐다.

    왕궁&잠코비 광장

    The Royal Castle in Warsaw&Plac Zamkowy : Castle Square

    왕궁은 폴란드 왕의 거처이자 의회가 열리는 장소였다. 14세기에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졌다. 1569년 바르샤바가 폴란드의 수도가 되자 지그문트 3세 바사가 이곳으로 거처를 옮긴다.

    1598~1619년에는 이탈리아 건축가들을 고용해 왕궁을 다각형 형태로 재건축했다. 18세기 아우구스투스 3세가 왕궁의 동쪽 부속건물을 바로크 양식으로 바꿨고, 폴란드의 마지막 왕 스타니스와브 포니아토프스키가 왕립 도서관을 증축했다. 18세기가 이 성의 전성기였다고 한다.

    내부는 여러 가지 독특한 가구, 조각상, 그림, 예술품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됐다. 현재는 예술 작품을 전시하는 왕궁박물관으로 활용된다. 왕의 거처, 왕좌(어좌), 이탈리아 화가인 카날레토(Canaletto) 홀, 그리고 렘브란트의 그림 ‘액자 속의 소녀(Girl in the Picture Frame)’와 ‘책상 앞의 학자(Scholar at the Desk)’가 1791년 5월 3일 통과된 헌법과 함께 전시된 상원의원실 등이 볼만하다.

    왕궁 광장에는 지그문트 3세 바사 왕의 동상이 있고 왕궁 측면에는 전쟁으로 파괴되기 전 동상을 받치던 기둥을 보존하고 있는데, 이는 전쟁의 참혹한 상흔을 잊지 말자는 의미라고 한다.



    와지엔키 공원&물의 궁전



    ‘벽돌 한 장까지’ 살려낸 도시 재건 모범사례

    와지키엔 궁전 상층의 집무실.

    와지엔키 공원은 18세기 폴란드의 마지막 왕 스타니스와브 포니아토프스키가 1766년부터 1796년까지 30년에 걸쳐 건설했다. 와지엔키는 ‘목욕탕’이라는 뜻. 당시 이 지역은 귀족들의 수렵장이라 수렵을 마친 귀족들이 이곳에서 목욕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꽃과 나무들로 장식되어 있는 76만㎡의 공원 안에는 수많은 건축물이 있다.

    인공섬에 지어진 와지엔키 궁전(Łazienki Palace)은 ‘물의 궁전’이라고도 불린다. 북쪽의 작은 호수와 남쪽의 큰 호수는 이오니아식 열주다리로 연결된다. 남쪽 정면은 2개 층을 연결하는 거대한 코린트식 기둥과 상부 엔타블러처로 장식됐다. 신화 속 동물 조각을 한 발루스트레이드 장식도 있다. 이탈리아계 폴란드인 건축가 도메니코 메를리니의 작품으로 1683년에 착공해 1689년 완공됐다. 궁전은 현재 국립 박물관의 일부로 활용된다.

    옛 오렌지 온실(Old Orangery)의 내부 동쪽 부분엔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실내장식이 있다. 목조로 된 궁정극장이 그대로 남아 괄목할 만한 객석과 바닥 등의 장식 페인팅을 볼 수 있다. 서쪽에는 하인들의 주거 공간과 손님방이 있다.

    폴린-폴란드계 유대인 역사박물관

    POLIN-Museum of the History of Polish Jews

    ‘벽돌 한 장까지’ 살려낸 도시 재건 모범사례

    폴린 내부에는 유대인 전통을 되살려 목제 볼트 및 비마를 설치해놓았다.

    게토(Ghetto)란 강제 격리된 유대인 거주지역을 가리킨다. 무라노프에 있는 게토 유적지에는 폴린(POLIN)이라는 폴란드계 유대인 역사박물관이 있다. 바르샤바 유대인 게토 봉기가 일어난 장소에 건립된 신축 건물로 기념비와 마주해 있다.

    2차대전 당시 바르샤바엔 유럽 최대의 유대인 공동체가 있었다. 독일군은 바르샤바의 모든 유대인을 이 게토로 몰아넣었다. 강제수용소로 이송되기 전날인 1943년 4월 19일, 750명의 유대인이 무장 봉기를 일으켰다. 약 한 달 후 이들은 모두 진압돼 죽임을 당했다.

    폴란드는 2005년 박물관 건립위원회를 발족했고, 2007년 공사가 착공돼 게토 봉기 70주년 기념일에 맞춰 2013년 4월 19일 준공했다. 박물관은 아우슈비츠에 가려 조명되지 않았던 폴란드계 유대인의 삶과 문화, 1000년 역사를 소개한다. 박물관 내부에는 목제 천장 볼트(vault) 및 목제 비마(Bimah·유대교 제례 시 경전을 읽는 제단) 등을 복제·설치해 잊혀가는 유대인 전통을 되살려놓았다.

    박물관은 민관 협력으로 마련됐다. 폴란드 문화부, 바르샤바 시, 폴란드계 유대인 역사연구회가 참여했다. 공공 영역에서 6000만 달러의 건립비 및 운영비가 조성됐고, 민간 영역에서는 전 세계에 걸쳐 4800만 달러가 모금됐다고 한다. 사회교육 및 공공 프로그램 지원비로 650만 달러가 별도 투입됐다고도 한다.

    문화과학궁전

    Pa ł ac Kultury i Nauki

    ‘벽돌 한 장까지’ 살려낸 도시 재건 모범사례
    조인숙

    1954년 서울 출생

    한양대 건축학과 졸업, 성균관대 석·박사(건축학)

    서울시 북촌보존 한옥위원회 위원, 문화재청 자체평가위원회 위원, 서울시 건축위원회 심의위원

    現 건축사사무소 다리건축 대표, 국제기념물 유적협의회 역사건축구조 국제학술위원회 부회장, 국제건축사연맹 문화정체성-건축유산위원회 국제공동위원장


    ‘스탈린의 선물’ 문화과학궁전은 1952년 착공해 1955년 완공된 사회주의 시대의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원래는 모스크바 국립대를 모델로 한 대학을 세우려고 했으나, 폴란드가 문화과학센터를 더 원해 건물 용도를 변경했다고 한다.

    건물은 스탈린 양식이지만, 디테일의 대부분은 건축가가 폴란드를 여행하며 전통 건축에서 영감을 얻어 디자인했다. 지붕 경사면의 장식은 크라쿠프 직물회관의 양식을 본떠 만들었고, 탑의 상부는 폴란드 도시 ‘Chełmiec’의 시청탑 복제이며, 천장은 크라쿠프 바벨 성의 인테리어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라 한다.

    ‘벽돌 한 장까지’ 살려낸 도시 재건 모범사례

    석양 무렵의 바르샤바 왕궁

    ‘벽돌 한 장까지’ 살려낸 도시 재건 모범사례
    ‘벽돌 한 장까지’ 살려낸 도시 재건 모범사례
    ‘벽돌 한 장까지’ 살려낸 도시 재건 모범사례
    1 문화과학궁전은 사회주의 시대의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2 빌라누프 궁전에서 공부하는 바르샤바 학생들.

    3 왕궁 광장에는 전쟁의 상흔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전쟁 전 동상을 받치던 기둥이 보존돼 있다.

    4 와지엔키 궁전 남쪽의 파사드.

    5 왕궁의 한구석.

    6 왕궁 안에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 동상이있다.

    ‘벽돌 한 장까지’ 살려낸 도시 재건 모범사례
    1 왕궁 내부의 화려한 장식.

    2 왕궁 앞 잠코비 광장과 지그문트 3세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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