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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萬事

지증왕이 순장 금하고 우경 보급한 이유

  • 이강원 동물칼럼니스트 powerranger7@hanmail.net

지증왕이 순장 금하고 우경 보급한 이유

  • ●소젖으로 위스키보다 독한 술 빚는 몽골인
    ●똥도 버릴 게 없는 위대함
    ●지금까지 이런 가죽은 없었다
    ●모든 것 다 주는 소, 그리고 우골탑
지증왕이 순장 금하고 우경 보급한 이유
소는 인류 문명에 크게 공헌했다. 소만큼 인류에게 유용한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한 동물은 없다. 시대에 따라 소가 하는 역할도 변했다. 산업화 이전까지 소의 핵심 역할은 노동력 제공이었다. 산업화 이후 역우(役牛)보다 육우(肉牛)로서의 구실이 더욱 강조돼왔다. 질 좋은 단백질을 제공하는 공급자 역할에 중점을 둔 것이다. 

역우는 일하는 소다. 인력(人力)으로는 한계가 있는 논이나 밭을 가는 일을 대신했다. 소를 이용한 농사법은 생산성 증가로 이어졌다. 이는 인류의 삶을 윤택하게 하고 지속 가능하게 했다. 소의 구실은 대표적 농기계인 트랙터(tractor)가 하는 일과 비슷했다. 소를 이용해 농사짓는 것을 우경(牛耕)이라고 한다.


사람과 차원이 다른 힘

농업경제학자들은 우경의 시작과 보급을 농업 혁신의 변곡점으로 보기도 한다. 고대 우리 역사에서 이런 일을 한 임금은 신라의 지증왕(智證王)이다. 그는 지금의 울릉도인 우산국(于山國)을 신라 영토로 편입한 인물이기도 하다. 

지증왕은 나이가 들어 즉위한 늦깎이 임금이다. 지금 기준으로도 적지 않은 나이인 64세에 왕위에 올랐으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진리를 역사에 남겼다. 지증왕 치세는 화려하지는 않았으되 당시 신라 처지에서 가장 필요한 일을 한 시기다. 

지증왕이 즉위한 500년, 신라의 국력은 삼국 중 약한 편이었다. 국력이 약한 나라가 무리하게 정복 전쟁에 나서면 자멸할 수 있다. 지증왕은 그런 원리를 잘 알았다. 그래서 나라의 내실을 다지는 작업에 몰두했다. 



신라를 포함한 대부분의 고대 국가는 농업국가다. 지중해 패권을 장악하고 교역을 통해 부(富)를 축적한 페니키아 같은 상업국가와 달리 농업국가는 농업 생산량을 증대하는 데 힘써야 한다. 생산이 늘어 잉여 농산물이 생기면 다른 나라와 교역을 통해 필요한 물건으로 바꿀 수 있다. 

농업국가가 번영하려면 기본적으로 수리시설 같은 인프라가 잘 갖춰져야 한다. 또한 그런 농업 인프라를 활용해 농사를 지을 노동력이 풍부해야 한다. 이 두 조건이 결합하면 자연재해가 발생하지 않는 이상 국가의 곳간이 비지 않는다. 

지증왕은 이런 점을 누구보다 잘 파악했다. 농업의 하드웨어(hard ware)에 해당하는 수리시설을 정비했으며 소프트웨어(soft ware)에 해당하는 노동력 개선 작업을 진행했다. 그가 취한 조치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첫째 노동력 손실을 줄였으며, 둘째 질 좋은 노동력을 현장에 대거 투입했다. 

지증왕이 취한 노동력 손실 방지책은 집권 3년차인 503년 실시됐다. 지증왕은 악습인 순장(殉葬)을 폐지했다. 지증왕에게 순장은 아까운 노동력이 사라지는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약소국 신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력이라는 점을 간파한 것이다. 평시에 농사짓는 이들이 유사시 적군과 교전에 투입된다. 국가적 차원에서 이렇게 소중한 노동력을 사자(死者)를 기리고자 순장한다는 것은 끔찍할뿐더러 사치스러운 행위다. 

지증왕의 순장 폐지 결정이 노동력 손실을 막는 조치라면 우경 보급은 질 좋은 노동력을 생산 현장에 투입하는 결정이다. 우경 도입 이전까지 농사는 오로지 사람의 근육에 의존했다. 인간 근육의 힘은 강하지 않아 논이나 밭을 가는 중노동에는 적합하지 않다.


귀하디귀한 쇠고기와 영양 만점 우유

송아지는 우유만 마셔도 매일 1kg 넘게 살이 찐다. 우유는 영양학적으로 우수하고 맛이 좋다. [shutterstock]

송아지는 우유만 마셔도 매일 1kg 넘게 살이 찐다. 우유는 영양학적으로 우수하고 맛이 좋다. [shutterstock]

체중 500㎏의 소는 사람과 차원이 다른 힘을 가졌다. 소가 쟁기질을 하면 사람이 하는 작업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의 많은 일을, 그것도 단시간에 마친다. 이렇게 지증왕은 당시 농업 노동력에 대한 패러다임(paradigm)을 바꿔버렸다. 

농업국가인 신라에서 농업 혁신만큼이나 국가의 내실을 다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지증왕의 이런 정책 덕분에 신라는 그의 아들인 법흥왕(法興王)과 손자인 진흥왕(眞興王) 치세에 국력이 크게 신장한다. 

소는 인류에게 단백질을 공급해왔다. 경제가 발전하면 쇠고기 소비부터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은 급속한 경제 발전을 이룬 나라로서 축산물 소비도 빠른 추세로 늘었다. 1970년 1인당 쇠고기 소비량은 1.2㎏에 불과했지만, 50년이 지난 2019년에는 12.5㎏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1970년의 1.2㎏은 대다수 국민이 쇠고기를 구경조차 못했음을 뜻한다. 부유층만 쇠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는 얘기다. 2019년의 12.5㎏은 마음껏 즐기지는 못해도 쇠고기를 누구나 먹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은 아직도 쇠고기 소비량이 더 늘어날 여지가 있다. 미국은 2017년 기준 1인당 25.8㎏의 쇠고기를 소비했다. 한국인 소비량의 두 배다. 

한국에서 쇠고기가 차지하는 위상은 과거와 다르다. 선조들에게 쇠고기는 쉽게 접하는 음식이 아니었다. 소라는 귀한 동물은 농사짓는 데 필수적인 ‘농기구’여서 함부로 잡아먹기 어려운 존재였다. 쇠고기는 부잣집 도련님이 아닌 이상 잔칫날의 주인공이나, 아이를 낳은 산부(産婦)에게나 주어지는 귀하디귀한 음식이었다. 맛도 좋고 영양가도 풍부해 갈망의 대상이었으나 없어서 못 먹은 것이다. 

소는 온몸을 바쳐 고기를 인간에게 제공한다. 고기뿐 아니다. 영양학적으로 우수하고 맛도 좋은 음식인 우유(牛乳)도 내놓는다. 송아지는 우유만 마셔도 매일 1㎏ 넘게 살이 찐다. 그것만 봐도 영양학적 가치를 알 수 있다. 

우유의 위대함은 무한하게 응용 가능하다는 점에 있다. 서양인에게 우유는 우리 민족의 콩과 같은 존재다. 선조들은 콩을 갈아 두부와 비지를 만들어 즐겼다. 또한 콩을 발효시켜 된장과 간장을 만들었다. 이렇게 만든 장(醬)은 한식을 만드는 데 가장 기본적인 양념이다. 


치즈. [shutterstock]

치즈. [shutterstock]

서양에서는 우유에 들어간 단백질을 응고시키고 발효시켜 다양한 종류의 치즈(cheese)를 생산했다. 치즈는 서양 요리에서 약방의 감초처럼 사용된다. 우유 속 지방을 이용한 버터(butter)도 요리마다 다양하게 사용된다. 동아시아인이 주식으로 쌀로 지은 밥을 먹는다면 밀가루에 우유, 달걀, 버터 등을 넣고 만든 빵이 서양인의 주식이다. 

생존을 위해 동물을 키운 유목민은 우유로 술을 만드는 요술을 부렸다. 싸구려 금속으로 금을 만들겠다는 중세의 연금술사를 연상시킨다. 아무리 노력해도 금을 만들어내지 못한 연금술사와 달리 몽골의 유목민은 우유로 술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42도 우유술’ 나이주(奶酒)

몽골인들이 ‘나이주’를 마시고 있다. [shutterstock]

몽골인들이 ‘나이주’를 마시고 있다. [shutterstock]

몽골인이 만든 우유술을 나이주(奶酒)라고 하는데 알코올도수가 42도에 달한다. 영국 위스키가 40도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 술이 얼마나 독한지 짐작할 수 있다. 러시아 보드카가 추위를 극복하는 데 도움을 주듯이 몽골의 나이주도 초원의 추운 밤을 지내는 데 도움을 준 것 같다. 

농경민족은 술 원료로 쓰이는 쌀이나 고량(高粱) 같은 곡물을 쉽게 접하지만 유목민은 곡물을 구하기 쉽지 않다. 유목민에게 곡물은 귀한 존재이므로 술을 담가 먹기에는 아깝다. 대신 흔하게 접하는 재료인 우유로 술을 만드는 게 경제적이고 간편했을 것이다. 그래서 동물의 젖을 활용해 술을 빚은 것으로 추정된다. 

몽골인의 응용 능력은 우유술을 만드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우유로 술을 만들 수 있다면 다른 동물의 젖으로도 술을 빚을 수 있을 것 아닌가. 초원의 자동차인 말의 젖을 활용해 만든 술이 몽골어로 아이라그(айраг), 터키어로 크므즈(kımız)로 불리는 마유주(馬乳酒)다. 이 술은 발효된 말의 젖을 증류해 빚는다. 아이라그도 나이주처럼 알코올도수가 높은데 이 역시 추위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모든 동물은 피부, 그러니까 가죽을 갖고 있다. 소의 가죽은 우피(牛皮)다. 이 세상 가죽 중 산업적으로 가장 가치 있는 게 단연 우피다. 우피를 제외한 다른 가죽은 우피만큼 대량생산되지 않는다는 치명적 단점을 가졌다. 원료가 대량으로 공급되지 못한다는 것은 대중성과 상당한 거리가 있음을 의미한다. 

대량생산되는 제품이나 원료는 품질에 약간의 문제가 있다는 선입견이 있는데, 우피는 그런 선입견마저 무너뜨린다. 우피의 우수함은 내구성에 있다. 특히 소파같이 가죽이 질겨야 하는 제품에는 우피 이외의 다른 가죽을 사용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질길뿐더러 질감도 다른 가죽과 비교해 떨어지지 않기에 구두, 장갑, 지갑, 가방 등의 제품을 생산할 때 사용된다. 양의 가죽인 양피(羊皮)도 용도가 비슷하나 내구성이 약해 우피만큼 오래가지 못한다는 단점을 가졌다. 

소의 뼈는 다른 동물의 뼈와는 다르다. 식품으로 사용되는 것은 물론이고 문화·사회적으로도 상당한 의미가 있다. 한국에서 소뼈와 마찬가지로 돼지뼈도 푹 고아서 그 국물을 먹는다. 하지만 소뼈만큼 대중의 인기를 끌지는 못한다.


소뼈의 위대함에 대하여

한우. [shutterstock]

한우. [shutterstock]

예전부터 소뼈는 보양식의 선두주자였다. 쌀쌀한 날, 뜨거운 곰국에 흰쌀밥을 말아 김치 한 점 얹어 먹는 것은 누구나 누리는 호사가 아니었다. “이밥에 고깃국을 먹는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고급 식재료인 소뼈는 헌신과 봉사의 의미도 가졌다. 한국 부모의 유별난 자식 사랑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한국의 부모는 자식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준다. 

미국 부모는 다르다. 자녀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만 하고 대학에 가면 끊어버린다. 피로 맺어진 혈연은 당연히 변함없지만 경제적으로는 갈라서는 것이다. 미국 대학생은 부모에게 손 벌리는 대신 금융기관에서 대출받거나 아르바이트를 해 등록금과 용돈을 마련한다. 

학자금 대출 탓에 미국 청년은 대학 졸업 후 빚과 함께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다. 주택이나 차량을 구입하면서 빚을 더한다. 은퇴할 때까지 열심히 빚을 갚고 또 갚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미국 청년은 부모 도움 없이 자립하는 것에 별다른 불만이 없다. 그렇게 사는 게 미국 사회의 보편적 모습이다. 

소 한 마리 값이 한 학기 대학 등록금이던 시절이 있었다. 농부들은 자식 대학 공부를 시키느라 소를 팔았다. 서울에서 공부하는 자녀에게 등록금만 필요한 게 아니었다. 등록금보다 더 많은 돈이 생활비로 나갔다. 자식 한 명이 서울로 유학 가면 1년에 대여섯 마리의 소가 가축시장으로 나가야 했다. 서울로 유학 간 자녀가 두세 명이면 등골이 휘었다. 소를 50마리 넘게 키우면 부농(富農) 소리를 들었는데 자녀 둘의 뒷바라지를 마치니 송아지 몇 마리만 남았다는 코끝이 찡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래서 대학을 상아탑(象牙塔)이 아닌 우골탑(牛骨塔)이라고 부른 것이다. 

사람들은 소뼈를 푹 고아 그 국물을 맛있게 마신다. 오랜 시간 가열된 소뼈는 영양분을 아낌없이 내놓는다. 우골탑이라는 낱말에도 부모가 가진 모든 것을 자식에게 남김없이 준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래서 그 말만 들어도 가슴이 먹먹하고 아프다.


인간의 둘도 없는 후원자

모든 동물은 먹으면 싼다. 이는 자연의 법칙이다. 소도 예외가 아니다. 소는 풀을 먹고 소똥을 배설한다. 그런데 소똥은 버릴 게 없는 소중한 자원이다. 농부는 고약한 냄새가 나는 소똥을 차곡차곡 모아 퇴비를 만든다. 

농부는 화학비료가 보급되기 전까지 땅에서 자란 풀로 소를 먹였고, 다시 그 똥을 모아 풀과 함께 삭힌 후 땅으로 돌려보냈다. 이렇게 함으로써 지력 고갈을 막았으며 꾸준한 생산을 가능케 했다. 요즘 유행하는 표현인 지속 가능한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을 실천한 셈이다. 

몽골처럼 건조한 지역에서는 소똥을 땔감으로 썼다. 초원은 말 그대로 풀밭이다. 땔감으로 쓸 나뭇가지 구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소똥이 최고의 연료가 됐다. 젖은 소똥은 불에 잘 타지 않으므로 연료로 사용하려면 건조시켜야 한다. 건조된 소똥은 냄새가 나지 않는 건초(乾草)와 근원적으로 같다. 강력한 화력의 소똥은 유목민에게 따뜻함을 선물한다. 

소처럼 묵묵히 일하면서 모든 것을 아낌없이 인류에게 준 동물은 없다. 소는 인간의 둘도 없는 후원자다.




신동아 2019년 8월호

이강원 동물칼럼니스트 powerranger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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