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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수록 쪽박’ 면세점, 대기업도 백기 투항

中만 바라보다 ‘황금알 낳던 거위’ 죽었다

  • 나원식 비즈니스워치 기자 setisoul@bizwatch.co.kr

‘할수록 쪽박’ 면세점, 대기업도 백기 투항

  • ● 한화·두산 계열사 3년 만에 시장 철수
    ● 중소·중견 면세점, 시장에서 도미노 철수 가능성
    ● 정작 정부는 시내 면세점 신규 설치키로
    ● 中 단체관광객 과도 의존한 게 패착
2015년 12월 28일 서울 영등포구 63빌딩에 문을 연 한화갤러리아의 ‘갤러리아면세점 63’에 중국인 관광객들이 쇼핑을 하기 위해 들어서고 있다.[동아DB]

2015년 12월 28일 서울 영등포구 63빌딩에 문을 연 한화갤러리아의 ‘갤러리아면세점 63’에 중국인 관광객들이 쇼핑을 하기 위해 들어서고 있다.[동아DB]

“그때는 정말 아쉬웠죠. 그룹의 사활이 걸렸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보니까 떨어진 게 천만다행이었어요. 한화·두산까지 포기하는 걸 보면, 세상일이라는 게 어떻게 될지 몰라요.” 

그때는 아무도 몰랐다. 이렇게까지 될 줄 누가 알았으랴. 2015년 6월 서울 시내 면세점 두 곳에 대한 신규 특허 입찰전에 국내 유수 기업들이 너도나도 뛰어들었다. 롯데와 신세계, 현대, HDC신라, 한화 갤러리아, 이랜드, SK가 도전장을 내밀었다. 훗날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1차 면세 대전’이라 칭했다. 

당시에는 이 재벌 그룹들이 단순히 또 하나의 신사업에 진출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는 듯한 분위기가 형성됐다. 1차 면세 대전에서 고배를 마신 한 그룹 관계자의 말처럼 그룹의 사활이 걸린 듯 공을 들이는 모습이었다. 

면세점은 ‘황금알’을 낳는 산업으로 불렸다. 이 사업을 누가 가져갈까. 각 그룹 오너의 자존심이 걸렸다는 표현이 딱 맞아떨어지는 분위기가 연출됐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은 면세점 입찰 기업 프레젠테이션 심사가 진행된 인천 영종도 인천국제공항공사를 깜짝 방문해 눈길을 끌었다. 이처럼 오너가 얼굴을 내밀고 전면에서 사업을 챙기는 모습이 흔한 일은 아니다. 

전쟁의 결과 HDC신라와 한화갤러리아가 최종 승자가 됐다. 언론은 오너의 리더십이 빛났다거나 승부수가 통했다는 둥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한화·두산이 내놓은 철수의 변

서울 중구 두타면세점 전경. [동아DB]

서울 중구 두타면세점 전경. [동아DB]

축제는 오래가지 않았다. 지금 면세점 시장에는 ‘승자의 저주’라는 말이 돈다. 승자 중 한 곳인 한화는 4월 면세점 시장에서 철수하겠다고 밝혔다. 2015년 9월 진행된 ‘2차 면세 대전’에서 승기를 잡은 두산 역시 10월 면세점 사업에서 손을 떼기로 했다. 

한화와 두산은 면세점 시장에서 ‘선두 그룹’으로 꼽히지는 않는다. 국내 면세점 시장은 롯데와 신라, 신세계가 전체 매출의 80%가량을 점유하고 있다. 그렇다고는 해도 대기업 계열사가 사업 진출 3년 만에 백기를 든 건 이례적인 일이다. 

두 업체가 내놓은 ‘철수의 변’은 한마디로 ‘지금까지 계속 어려웠는데, 앞으로도 어려울 것 같다’는 것이다. 

갤러리아면세점은 “최근 3년간 1000억 원 넘는 영업손실을 기록했고, 이는 갤러리아 전사의 미래 경쟁력을 위해 극복해야 하는 난제로 여겨졌다. 사업을 지속하더라도 이익 구조 전환이 어려운 상황을 감안해 한시라도 빨리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영업을 종료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두산의 두타면세점 역시 “규모의 한계 등으로 운영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올해는 다시 적자가 예상되는 등 중장기적으로 수익성 개선이 어려울 것으로 판단했다”는, 한화와 대동소이한 변을 내놨다. 

최근 3년간 쌓인 두타 면세점의 영업적자 규모는 600억 원가량이다. 특히 두산에서는 오너 일가 4세인 박서원 전무가 면세점 사업을 챙겨왔기에 더욱 뼈아픈 결정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업계에서는 중소·중견 면세점 중심으로 사업 철수가 도미노처럼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 동화면세점과 SM면세점의 경우 지난해 각각 106억 원, 138억 원의 적자를 내며 궁지에 내몰리고 있다. 

한쪽에서는 ‘승자의 저주’가 그림자를 드리우는 사이 다른 한쪽에서는 축포를 터뜨리는 기묘한 상황이 벌어지는 데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내 면세점 시장 특유의 ‘양극화 현상’이 그것이다. 

이른바 빅3 면세점인 롯데와 신라, 신세계면세점은 올해 상반기 각각 4조4332억 원, 2조9701억 원, 2조930억 원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빅3 매출액을 합치면 9조4963억 원에 달한다. 2015년 국내 전체 면세점 업체들의 연간 총매출이 9조2000억 원가량이었음을 고려하면 증가세가 가파르다. 빅3에 한해서만큼은 여전히 면세점이 ‘황금알’을 낳는 사업처럼 보인다. 

왜 같은 시장에서 이렇듯 상반된 실적이 나타난 것일까. 먼저 ‘규모의 경제’에 따른 결과라는 분석이 있다. 롯데와 신라, 신세계는 각각 2~3곳의 시내 면세점을 운영하는 데다 백화점 등 유통 관련 사업을 영위한다. 이에 더해 해외 점포도 늘리는 추세다. 따라서 면세점 사업 성공을 위한 핵심 요인이라 할 수 있는 해외 명품 브랜드나 국내 화장품 등의 라인업을 갖추는 데 유리하다. 명품, 화장품 등 브랜드를 상대로 한 협상력이 강하다는 의미다. 

반면 두산의 두타면세점은 단일 사업체로 협상력을 키우는 데 한계가 있다. 두타면세점이 사업 철수를 발표하면서 “단일점 규모로 사업을 지속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양극화 현상이 나타난 또 다른 이유로 거론되는 것은 2017년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이다. 중국 정부의 이 조치 탓에 중국인 단체관광객 유커의 발길이 끊겼고, 이후 따이궁(중국인 보따리상)이 그 자리를 채웠다. 따이궁은 오직 면세품 구매만을 목적으로 두기 때문에 ‘라인업’이 잘 갖춰져 있는 빅3에 몰렸다는 해석이 나온다. 

특히 면세점 업체들은 따이궁에게 줄 송객수수료, 즉 리베이트를 경쟁적으로 올렸는데, 후발 주자나 중소·중견 업체의 경우 이런 흐름을 따라갈 자금 여력이 부족했다. 최근 김영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내놓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시내 면세점이 가이드 등에게 송객수수료로 지급한 액수는 1조3181억 원에 달했다. 

더욱 기묘한 점은 시내 면세점 산업에 ‘승자의 저주’와 ‘양극화 현상’이라는 부정적인 수식어가 붙었는데도 정부가 이를 더 늘릴 예정이라는 데 있다. 정부는 서울 세 곳과 인천 한 곳, 광주 한 곳에 시내 면세점을 신규로 만들기로 했다. 

정부가 시내 면세점을 더 늘리려는 이유로 내세우는 것은 내수 활성화다. 면세점을 늘려 관광 및 면세 산업을 육성해 국내외 관광객의 소비를 늘리겠다는 복안이다. 그렇더라도 업계에서는 한화나 두산 등 대기업 면세점이 철수하는 분위기 속에서 정부가 이런 정책을 내놓은 것에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이미 따이궁 통해 쇼핑하는데…

정부는 면세점 매출이 사상 최고치를 지속해 찍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는 듯하다. 또 중국의 사드 보복 완화로 조만간 유커가 귀환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으로 보인다. 유커가 돌아온다면 면세점 업체가 더는 따이궁에게 높은 송객수수료를 안 줘도 된다. 즉 정부는 면세점이 다시 황금알을 낳는 산업이 되리라 기대하는 눈치다. 

정부가 원하는 대로 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들은 그렇지 않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유는 이렇다. 유커의 빈자리를 따이궁이 채웠으니 다시 따이궁이 빠지고 유커가 그 자리를 채우면 될 것 같지만 현실은 다를 수 있다. 그간 중국인들이 한국에 관광을 왔던 이유는 주로 쇼핑을 하기 위해서였다. 지난해 발표된 외래 관광객 실태조사에 따르면 쇼핑은 한국을 관광지로 선택하는 요인 중 67.8%를 차지했다. 그런데 지금은 따이궁을 통해 충분히 쇼핑할 수 있는 상황이 됐다. 그렇다면 한국으로 굳이 단체관광을 올 유인이 없다. 이런 분위기가 지속되면 국내 면세점의 미래 역시 어둡다. 

최근 롯데와 신라가 해외 진출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까닭도 이런 업계 상황과 무관치 않다. 국내시장서 강세인 두 업체가 전망이 불투명한 국내에 의존하기보다 미리 해외로 발을 넓혀 미래 먹거리를 찾으려 한다는 뜻이다. 

얼마 전 싱가포르 창이 국제공항의 담배·주류 면세점 사업권을 따낸 롯데는 현재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일본 등 7개국에서 면세점 사업을 하고 있다. 롯데는 지난해 해외 매출액 2500억 원을 기록했다. 올해는 8000억 원, 내년에는 1조 원 돌파가 목표란다. 

신라 역시 홍콩과 싱가포르, 일본, 태국 등에서 면세점을 운영하고 있다. 최근에는 글로벌 1위 기내 면세업체인 미국 ‘스리식스티’ 지분을 인수하는 등 발 빠르게 움직이는 모습이다. 신라의 경우 롯데보다 한발 앞서 해외 매출 1조 원 고지를 밟았다.


무작정 뛰어들다 쓴맛 보다

이렇듯 대기업과 중소·중견 기업 공히 국내 면세점 시장의 미래에 회의적 시각을 보이고 있다. 이에 업계에서는 이번 시내 면세점 입찰 역시 흥행에 실패할 거라는 의견이 대다수다. 일각에서는 유찰 가능성도 점친다. 실제 롯데나 신라, 신세계의 경우 11월 14일 마감하는 입찰에 참여하지 않았다. 

현재 강남에만 면세점을 두고 있어 강북 지역에 점포를 추가할 필요가 있는 현대백화점마저 마지막까지 입찰 참여를 고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백화점의 경우 지난해 말 처음으로 강남에 점포를 개장한 터라 당장 이 점포부터 안정적 궤도에 올려놔야 한다는 부담도 있다. 

빅3 업체들은 시내 면세점보다 상징성이 크고 수익성에서 더 나을 수 있는 인천국제공항 면세점 입찰 참여에 더 공을 들이는 모습이다. 인천국제공항은 12월 제1터미널 면세점 8개 구역에 대한 입찰을 진행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시내 면세점 입찰전은 더욱 외면받을 가능성이 크다. 

아울러 정부의 계획처럼 시내 면세점을 추가할 경우 경쟁이 더욱 심화해 중소·중견 업체의 경쟁력이 더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이처럼 면세점 시장에서 나타나는 일련의 문제들이 2015년 시작된 1~3차 면세 대전 때부터 예견된 일이라는 분석이 있다. 당시 면세점 산업이 승승장구하고 있긴 했다. 하지만 합리적 투자의 관점에서 보면, 중국인 단체관광객에 과도하게 의존하던 면세점 산업은 불안 요소가 많은 투자처였다. 그런 불안은 사드 보복이라는 ‘한 방’으로 현실이 됐다. 이런 사업에 무작정 뛰어든 대기업이나 이를 부추긴 정부 모두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두산과 한화는 빅3 업체들과 달리 유통이 그룹의 주력이 아니라는 공통점이 있다. 업력(業力)이 부족한 데도 무작정 뛰어들어 쓴맛을 봤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정부 역시 1차 면세 대전 때부터 사업성을 꼼꼼히 따지기보다는 눈에 보이는 매출 증가세만 보고 입찰 흥행에만 골몰한 면이 있다. 

한 대형 면세점 관계자는 “두산·한화 면세점 철수와 시내 면세점 입찰 흥행 실패 등을 계기로 정부가 국내 면세점 시장에 대해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기업들 역시 과거와는 다르게 면세점 사업 진출이나 확대에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제 국내 면세점 사업은 하기만 하면 이익을 얻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더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신동아 12월호




신동아 2019년 12월호

나원식 비즈니스워치 기자 setisoul@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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