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이 대기업보다 ‘脫한국’ 행보 심각
2018년 이후 제조업 해외직접투자 금액 폭증
해외직접투자 금액 늘 때 국내 투자는 줄어
베트남, 중국 등 인건비 낮은 국가로 대거 이동
기업 탈출 최대 피해자는 취업 앞둔 세대
주 52시간 근무제가 기업이 필요한 인력을 적시에 구하는 데 어려움을 초래하고 있다. [동아DB]
기업들의 ‘코리아 엑소더스(exodus)’가 이어지는 현상도 이런 기업 환경의 변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엑소더스’는 사람이나 자본이 특정 지역에서 대량으로 빠져나가는 현상을 뜻한다. 국내에서 기업을 운영하기 어렵다고 느끼는 기업들이 해외로 기업을 이전하고 있다. 이를 보여주듯 2018년과 2019년 해외 직접투자가 직전 해와 비교해 대폭 증가했다.
중소기업 해외 이탈 심각한 수준
기업들의 해외 진출이 가속화될 때 최대 피해자는 취업을 앞둔 세대다. 11월 7일 부산 사상구 동서대 스튜던트플라자 3층에서 열린 ‘청년 채용박람회’를 찾은 학생과 구직자들이 채용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뉴스1]
앞서 2019년 1분기에는 국내 기업의 해외직접투자 금액이 148.9억 달러로 1년 전에 비해 53% 증가했다. 같은 기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해외직접투자 금액은 각각 109.5억 달러, 36.3억 달러로 2018년 1분기 대비 46.5%, 100.4% 늘었다. 2019년 1분기와 2분기 해외직접투자 금액을 합치면 299.8억 달러로 2018년 상반기보다 30.5% 증가했다. 이 기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해외직접투자 금액은 각각 220.3억 달러, 72.9억 달러로 25.2%, 67.1% 증가했다. 어느 모로 보나 폭증세다.
지난해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2018년 국내 기업들의 해외직접투자 금액은 497.9억 달러로 전년 대비 11.6% 늘었다. 같은 기간 대기업 해외직접투자 금액은 378.8억 달러로 전년 대비 4.8%, 중소기업은 99.9억 달러로 전년 대비 31.4% 증가했다
2017년 1분기와 2018년 1분기를 비교하면 양상은 사뭇 다르다. 2018년 1분기 해외직접투자 금액은 97.4억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28.5% 줄었다. 대기업은 74.7억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36.2%가 감소했다. 그러나 2018년 2분기 이후 대기업, 중소기업 및 전체 해외직접투자 금액이 전년 동기 대비 꾸준히 증가하기 시작했다. 특히 중소기업의 해외직접투자 금액 증가율이 대기업보다 도드라졌다. 이는 중소기업의 해외 이탈이 대기업보다 더욱 심각한 수준임을 방증한다.
한국표준산업분류 대분류를 기준으로 해외직접투자 금액이 10억 달러가 넘은 업종은 제조업, 금융 및 보험업, 부동산업이다. 이 중 2018년 이후 모든 분기에 걸쳐 전년 동기 대비 해외 직접투자금액이 증가한 업종은 제조업이 유일하다.
모든 분기 걸친 제조업 ‘엑소더스’
2019년 1분기에는 국내 제조업 기업의 해외직접투자 금액이 57.5억 달러로 전년 동기와 비교해 14.3% 증가했다. 이 중 대기업의 해외직접투자 금액은 38.2억 달러로 1년 전보다 130.4% 늘었다. 중소기업은 19.3억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무려 231.7%나 폭증했다. 2019년 1분기와 2분기 제조업 기업의 해외직접투자 금액을 합치면 115.7억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55.6% 늘었다. 대기업은 81.8억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36.2%, 중소기업은 32.7억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64.8% 증가했다.
2018년에는 국내 제조업 기업들의 해외직접투자 금액이 163.2억 달러로 전년 대비 84.9% 증가했다. 같은 기간 대기업 해외직접투자 금액은 133.5억 달러로 전년 대비 102.6% 늘었다. 중소기업은 26.2억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28.2% 증가했다. 제조업의 해외직접투자 금액은 2018년 1분기 이후 2019년 2분기까지 전년 동기 대비 계속 증가세다.
기업 붙잡으려면 급격한 임금인상 자제해야
당연히도 기업의 이른바 ‘코리아 엑소더스’는 일자리 감소와 직결된다. 특히 제조업에는 양질의 일자리가 많다. 제조업 기업들의 해외직접투자 금액 전년 동기 대비 증가율이 높았던 2018년과 2019년 제조업 취업자 수는 꾸준히 감소했다. 국내 투자 감소가 일자리 감소로 이어진 것이다.
높은 인건비는 기업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주요 원인이다. 따라서 기업들의 급격한 해외 진출을 막으려면 높은 인건비 부담을 낮춰줄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지난 2018년, 2019년과 같은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을 자제해야 한다. 또 노동유연성을 제고하고 노사가 협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기업들이 급격한 인건비 인상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조치해야 한다.
청년을 위한 일자리 정책
실제로 주52시간 근무제 시행 후 경기 지역 버스업계에서는 초과근무수당 감소분을 보전하라면서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이에 버스기사 임금 인상을 위해 경기 지역 버스요금이 인상됐다. 주52시간 근무제는 기업이 필요한 인력을 적시에 구하는 데 어려움을 초래한다. 그뿐만 아니라 인건비 상승을 통해서도 기업에 부담을 준다.
따라서 정부는 현재 기업들이 요구하는 탄력근무제 단위 기간을 1년으로 확대하고, 내년부터로 예정돼 있는 상시근로자 수 50인 이상 300인 미만 기업에 대한 주52시간 근무제 시행을 유예해야 한다.
또한 기업들의 신기술 개발을 가로막는 각종 규제를 철폐하고 연구 개발 지원을 강화해 국내 투자 확대를 유인할 필요가 있다. 즉 국내시장이 매력적인 투자처가 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주어야 한다는 얘기다.
기업의 해외 진출이 가속화될 때 최대 피해자는 취업을 앞둔 세대다. 정부는 일자리 확대를 위한 사업에 2018년에만 19.2조 원의 자금을 투입했다. 2019년에는 22.9조 원을 추가로 투입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막대한 일자리 자금 투입에도 불구하고 30대와 40대 취업자 수는 되레 줄고 있다. 2019년 9월 30대 취업자 수는 전년 동월 대비 0.2% 감소했다. 40대 취업자 수는 전년 동월 대비 2.7%나 줄었다. 자금 지원을 통한 공공일자리 확대가 아니라 국내에서 성공적으로 경영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야말로 일자리 정책의 기본 중 기본이다. 정부가 가장 시급히 인지해야 할 명제이기도 하다.
[신동아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