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폐청산을 시대 정의로 수용해야 협치의 싹 틔워”
“기소권 없는 공수처는 또 하나의 경찰일 뿐”
“내년 총선까지 이기면 혁명보다 더 큰 혁명”
“2030, 발탁 아니라 스스로 정치권 뚫고 들어와야”
“지금은 386 시험대, 작두날 위에 선 심정으로 몰두”
“유승민의 보수 · 안철수의 중도, 황교안의 극우와 너무 멀어”
총선 관련 “조국, ‘내버려두라’ 요청…‘페인트 모션’ 아냐”
[박해윤 기자]
난다 긴다 하는 여의도의 ‘선수들’ 누구도 이런 결과를 예측하지 못했다. 그 직전까지 이 원내대표는 3선임에도 ‘당직 운’이 없다는 소리를 들어왔다. 언론은 그의 당선을 두고 ‘비주류의 반란’이라 평했다. ‘전대협 초대 의장 이인영’이 30여 년 만에 여권 의중을 반영하는 핵심 정치인으로 거듭난 셈이다.
언론은 진부한 표현을 터부시한다. 하지만 상징성이 도드라지게 큰 인물을 평할 때는 불가피하게 타 언론사와 수식어를 공유할 수밖에 없다. 이 원내대표에게는 ‘386 대표선수’라는 낱말이 그렇다. 덕분에 그와의 대화 테이블에는 ‘검찰개혁’ ‘총선 전망’ ‘보수통합’ ‘386 기득권 논쟁’ 등 첨예한 쟁점이 두루 올랐다.
마침 서울 여의도 국회 원내대표실에서 그를 만난 날은 11월 4일이었다. 문재인 정부 임기 반환점(11월 9일)을 코앞에 둔 때였다.
“검찰개혁 열망 수용 못하면 갈등·대결만”
- 집권여당 원내대표로서 보기에 문재인 정부 임기 절반 동안의 최대 성과는 무엇인가요?“포용과 평화 아닐까요? 사회복지 차원에서 우리 사회가 만성적으로 안고 있던 양극화를 조금 더 치유하는 포용의 성과가 있었어요. 저임금 생활자나 비정규직, 어르신, 육아·보육, 소득격차 문제에 임하는 과정에서 성과가 있었죠. ‘문재인 케어’(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도 추진했고요. 물론 사회적 포용의 성과를 어떻게 경제적 포용의 차원으로 발전시킬 것이냐의 과제는 남아 있죠.
평화는 지금 진척이 더뎌 보이긴 하지만 2년 전 상황에 비해서는 확실히 개선된 것 아닙니까? 정세적 평화를 구조적이고 안정적 평화로 만들 것이냐의 과제는 남았을지언정 전쟁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난 점은 성과였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 야당은 최근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실행한 점을 문제 삼고 있습니다만.
“평화 구조와 비핵화, 제재 해제 등 3박자가 다 맞물려 (북핵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는 불가역적 상황으로 들어가기 시작하면 그런 것들은 많이 줄어들지 않겠어요?”
- 적폐청산 기조 장기화가 야당의 반발을 자극해 협치와 공존을 어렵게 했다는 주장도 있는데요.
“야당도 일정하게 적폐청산 과정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해요. ‘최순실 사태’ 이전으로 돌아가자고 얘기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어요? (다만)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과정에서 적폐청산이 어떻게 우리 삶에 남은 낡은 관행, 작은 특권을 해체하는 데로까지 나아갈 것이냐의 문제는 남아 있죠. 그 부분까지 만약 자유한국당이 부정한다면 그건 모든 걸 과거로 되돌리자는 것이기 때문에 국민들이 동의하기 어렵겠죠.”
이와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은 10월 21일 청와대에서 종교지도자들을 만나 “국민통합과 협치를 위해 노력해왔지만 크게 진척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 그렇다면 협치에 진척이 없다는 문 대통령 발언은 어떤 의미로 봐야 할까요?
“적폐청산 과정에서 나오는 새로운 개혁 과제가 있잖아요. 이를 시대적인 정의로 수용하고 개선하는 데 동의하면 공존과 협치의 싹은 틔울 수 있어요. (하지만) 이걸 전면적으로 부정하면 대결과 충돌밖에 없는 것 아니겠어요? (문 대통령의 표현은) 그 부분이 지체되는 것에 대한 아쉬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노태우가 전두환보다 나았다?”
적폐청산과 협치를 화제로 다루는 대목에서 이 원내대표는 말머리를 검찰개혁으로 돌렸다. 그는 “검찰은 두 가지 면에서 개혁해야 한다. 권력으로부터의 독립과 비대해진 권력의 분산 및 민주적 통제”라면서 말을 이었다.“앞의 개혁은 자기들(검찰)이 해나가고 뒤의 개혁은 하지 않으면서 생긴 충돌, 이것이 ‘조국 전 장관 파동’에도 꽤 크게 (영향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물론 이와는 또 다른 측면에서 ‘우리 사회가 공정한가’에 대해 젊은이들이 상실감을 느낀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서초동에) 검찰개혁의 촛불을 들고 나온 데서 개혁 열망이 크다는 걸 확인할 수 있죠. 이를 정치가 수용하지 않으면 계속해서 갈등과 대결만 남지, 공존과 협치로 발전해나가진 못하잖아요.”
검·경 수사권 조정과 관련해 쟁점 중 하나는 경찰 권력 비대화 가능성이다. 6월 항쟁을 다룬 영화 ‘1987’은 고(故) 박종철 씨 고문치사 사건의 전후과정을 핍진하게 다룬다. 박종철 씨 사건은 경찰의 큰 과오다. 당시 항쟁에 적극 참여한 이 원내대표에게 “ ‘영화 1987’만 보더라도 이른바 ‘적폐’를 일삼은 건 경찰 아닌가’ ”라고 묻자 그는 “당시 검찰과 경찰 둘 다 경험한 입장에서 그때 ‘검찰이 경찰보다 나았었다’는 건 마치 ‘노태우가 전두환보다 나았었다’ 정도의 얘기”라면서 말을 이었다.
“본질은 명백히 비대화한 검찰 권력을 어떻게 분산하고 민주적 통제의 범위로 돌려놓을지, 또 권력기관 간 상호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하도록 할지에 있습니다. 조직적으로는 공수처와 검찰로 나눠 견제와 균형을 이루도록 해야 해요. 권한에서는 수사권을 경찰한테 되돌려주고 검찰은 기소권과 영장청구권 등을 갖고 검·경 간 견제와 균형을 이룰 수 있는 해법을 모색하는 것이 지금 시점에서 필요합니다.”
-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검찰의 직접수사권 축소와 수사, 기소 분리를 요구하면서 다른 입으로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동시에 갖는 새로운 괴물 조직을 창설하자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이라고 했습니다.
“(공수처는) 괴물이 아니라 견제와 균형 차원에서 검찰을 수사하고 기소할 수 있는 조직이죠. 일반 국민은 잘못하면 40%가 기소되는데 검사는 0.1%만 기소된다는 통계가 의미하는 게 많잖아요. 국민 눈에 검찰의 99.9%가 지고지순하고 깨끗해서라고 보일지, 아니면 기소권을 갖고 ‘셀프 방어’하는 검찰 특권의 문제로 보일지 자명하다고 생각합니다. ‘수사권만 가진 공수처’는 또 하나의 경찰 아닙니까? 경찰이 굴하지 않고 검찰을 수사해도 검찰이 기소하지 않고 끝나는 경우가 왕왕 있었잖아요.”
인터뷰를 하던 11월 4일, 이 원내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의원 정수 확대를 우려하는 국민 여론을 감안해서 현 의원 정수(300명) 범위 안에서 선거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 오늘 발표하신 내용을 봤습니다만,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지역구 의석을 줄이기 쉽지 않다는 현실론에서 의원 정수 10% 확대안을 제시했는데요.
“70% 가까운 국민이 의원 정수 늘리지 말라고 했는데 의원 정수 늘려 선거를 치를 수 있다는 게 과연 가능한 상상력일까요? 심 대표나 정의당 입장에서야 쉬운 문제일 수 있지만 집권여당이자 거대 정당 입장에서 대다수 국민의 동의를 받지 않고 일방적으로 할 수는 없죠. 모든 정당이 힘을 합쳐 이야기해도 국민이 동의하기 쉽지 않은 문제인데….”
- 한국당은 반대로 의원 정수 축소를 들고 나왔습니다.
“그건 어깃장이잖아요. 마치 국회의원 숫자를 줄여 개혁적인 당처럼 (국민에게) 보이고, 국회의원을 ‘지역구에서 직접 뽑겠습니까, 정당에서 알아서 뽑도록 하겠습니까’ 이렇게 질문을 유도하면 직접 뽑는 걸 선호하지, 정당에서 알아서 뽑도록 하겠습니까? 착시효과를 유발하는 정략적 주장이죠. 순수하지 않아요.”
- 진보 진영은 문재인 정부 들어와 보편적 복지와 경제민주화에 별 진전이 없다고 혹평하고 있습니다.
“보편적 복지의 영역은 확장됐습니다. 국민취업지원제도의 경우 취업을 돕는 역할에 더해 실업급여의 범위를 늘렸습니다.”
국민취업지원제도는 문재인 정부 국정과제인 ‘한국형 실업부조’의 명칭이다. 노동시장에 새로 진입하는 청년, 경력 단절 여성, 자영업자 등 고용보험 사각지대에 있는 저소득층 구직자를 위한 고용 안전망이다. 관련 법안은 지난 9월 10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이 원내대표가 부연했다.
“재벌이 경제민주화 수용하는 시간의 문”
문재인 대통령이 10월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2020년 예산안 시정연설을 마치고 퇴장하며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뉴스1]
11월 9일 김종대 정의당 대변인은 “경제민주화와 노동 존중 없는 평등과 공정은 공염불에 불과하다는 것을 무엇보다 문재인 정부가 잘 알고 있다”고 비판했다. 앞서 10월 24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창립 30주년 기념 토론회를 열고 문재인 정부의 재벌개혁이 미진하다는 점을 꼬집었다. 진보 진영의 이와 같은 지적에 대한 이 원내대표의 변론은 이렇다.
“공정경제 질서를 만들고자 나름대로 노력해왔다고 생각해요. 납품단가 후려치기나 일감 몰아주기 같은 행위에 단호하게 대처하며 시장 질서를 바로잡으려고 해왔습니다. 물론 최저임금 산입 범위를 조정한다거나 주52시간 근무제 도입 후 탄력근무제에 손대려 한 것이 (진보 진영의 시각에는) 후퇴로 보일 수도 있지만 골격은 흔들지 않는 선에서 경제 상황과 관련해 불가피한 영향을 보완하는 수준으로 갔기에 큰 진전으로 봐야죠.”
- 한편으로 진보 진영은 대통령이 삼성을 방문하고 이재용 부회장 등과 만나는 것을 두고 재벌개혁 의지가 사라졌다고 비판하는데요.
“재벌개혁이 대기업의 역할을 없애버리자는 얘기는 아니잖아요. 재벌 대기업의 역할은 그것대로 존중하고, 경제민주화는 엄격하게 가는(병행하는) 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재벌과 과하게 타협하는 게 아니냐’ ‘재벌 품으로 회귀한 것 아니냐’ 이렇게 말하는 건 옳지 않아요. 오히려 조금 더 지나면 재벌이 경제민주화를 수용하는 시간의 문이 열리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내년 총선이 중요합니다.”
대화의 물줄기는 자연스레 총선으로 옮아갔다. 2016년 치러진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현 한국당)은 민주당에 12년 만에 원내 1당 자리를 뺏겼다. 이후 민주당은 2017년 대선과 2018년 지방선거에서 연이어 한국당을 제압하며 3연승을 했다. 내년 총선까지 민주당이 승리할 경우 한국 정치에서 전례 없던 ‘한 정당의 선거 4연승’이 현실화한다.
“이번만큼은 ‘쫙’ 가서 바꿔야”
[박해윤 기자]
“총선에서 민주당이 승리하면 세상을 바꾸기 시작하는 힘이 만들어진다고 봐요.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에 권력은 교체했지만 사회적 패권은 재편하지 못했어요. 언론의 주도권은 ‘조중동’이 가져갔고, 지식인 세계의 패권도 보수 혹은 뉴라이트로 치장된 쪽에서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근 광화문광장에 나온 전광훈 목사, 저는 알지도 못하던 분인데 그런 분들이 마치 대한민국 기독교를 대표하는 것처럼 (행동)하는데 정말 그런 건지 (궁금해요). 재벌도 시장에서 패권을 마음껏 휘둘렀다고 생각합니다.
정치권력이나 국회 의석수의 변화는 있었을지 모르나 사회적 패권이 재편돼 새로운 균형을 취했던 건 아니지 않습니까?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까지 완전한 정치적 사이클의 한 바퀴를 돌려놓을 때 새로운 문은 열린다고 봅니다. 전례가 없다고 얘기할 수 있지만, 그런 사례를 만들어 혁명보다 더 큰 혁명을 이루고 겉으로 드러난 정치권력만이 아니라 속살의 사회질서까지 바꿔내는 것이겠죠. 그간에는 중간에 한 번씩 끊기면서 그때마다 좌절했잖아요. 이번만큼은 ‘쫙’ 가서 바꿔야하는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 그러려면 새 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사람들이 전면에 나서거나 당에서 발굴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밀레니얼 세대가 10~20년 후 사회를 대표할 사람들이니까 (그들에게)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권한을 줘야죠. 그들을 ‘루저’나 ‘아웃사이더’로 만들지 않고 디자이너나 코디네이터, 크리에이터로 만들어가는 건 굉장히 중요한 일이죠. 그런데 나이만 젊다고 되는 문제는 아니지 않습니까? 이슈를 섭렵하고 주도할 수 있어야죠. 우리가 여태까지 진보정치를 평화정치, 복지정치로 이야기해왔다면 (밀레니얼 세대는) 디지털 경제, 디지털 정치는 무엇인지 답할 수 있어야죠. 미국의 서른 살 연방 하원의원 오카시오 코르테스가 ‘그린 뉴딜’을 주창하듯 우리는 ‘미세먼지 없는 세상’, 탈석탄·탈원전 등의 문제에 어떻게 대처할지 (밀레니얼 세대가) 답할 수 있어야 하고요. 수많은 ‘미투’의 외침을 정치가 어디로 발전시켜가야 하는지, 그러면서 20대 초반 남성들이 가진 역차별에 대한 문제의식과 정치적으로 어떻게 균형을 취하며 다룰 것인지 대안을 갖고 얘기해야죠.”
- 정치권에 새로운 사람들이 등장하려면 필연적으로 기존의 사람들이 물러나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당장 오늘 조간에도 ‘물갈이’라는 단어가 등장했습니다.
“그건 뭐 정치에서만의 문제는 아닐 겁니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겠죠. ‘니들이 뭘 알아. 내가 해봐서 아는데’로 접근해서는 젊은 사람들의 창조성과 역동성, 다양성과 충돌하겠죠. 어른들이 마음을 열고 젊은 세대와 함께할 수 있으면 더 큰 에너지로 발전하는 것이고, 그러지 못하면 장강의 뒷물이 앞물을 밀어내듯 기성세대가 되기 시작한 우리가 밀려나는 거죠. 잘못한다고 평가받으면 젊은 세대에게 우리의 전략적 거점을 내주고 그들이 더 역동적인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뒷받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0대가 뚫고 들어오면 받아들이면 돼”
386세대 학생운동 지도부는 2004년 17대 총선에서 대거 국회에 진출했다. 당시 열린우리당(현 민주당) 소속으로 당선된 전대협 간부 출신 인사는 12명에 달했다. 39세이던 이 원내대표를 비롯해(이하 당시 나이) 최재성 의원(39세), 우상호 의원(41세), 김태년 의원(39세), 오영식 전 코레일 사장(39세), 정청래 전 의원(39세), 백원우 민주연구원 부원장(38세), 한병도 전 청와대 정무수석(36세), 복기왕 전 대통령 정무비서관(36세) 등이 이때 처음 ‘금배지’를 달았다. 38세이던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재선을 했다.보수정당 소장파의 대명사이자 역시 386세대인 원희룡 제주지사와 남경필 전 경기지사도 30대에 국회의원이 됐다. 현재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의 맏이가 30대 후반임을 고려하면 이들의 제도권 진출이 얼마나 빨랐는지 알 수 있다.
그런데 386세대는 50대가 된 2016년 총선에서도 524명의 입후보자를 내 역사상 가장 높은 입후보자 점유율(48%)을 기록했다.(이철승, ‘불평등의 세대’ 중) 이에 내년 총선을 앞두고 386을 겨냥한 세대교체론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다. 평소 386 학생운동권 출신 정치인을 만나면 꼭 하고 싶었던 질문을 던졌다.
- 386세대 학생운동 지도부는 30대에서 40대 초반에 국회의원이 됐습니다. 이와 비교하면 후세대의 정치권 진출이 너무 지체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데요.
“저는 스타트업 성공을 이끈 젊은 기업인들의 도전 정신, 창업 정신이 정치권에도 똑같이 있어야 한다고 봐요. 누가 발탁해주는 식이 아니라 (밀레니얼 세대) 스스로 인정받고 뚫고 들어와야 합니다. 그런 힘으로 정치에 진입했으면 좋겠습니다. 기성세대 정치인들의 ‘데커레이션’이 아니고요. 그런 과정에서 저는 얼마든지 디딤돌과 버팀목이 돼주려고 합니다.”
이 대목에서 이 원내대표는 386세대와 밀레니얼 세대가 가진 사회성의 성격이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우리 세대는 집단화된 사회성을 실천했습니다. 대열을 이루고 조직적으로 깃발을 들었어요. 반면 촛불 시민혁명 현장에 가보면 친구, 가족, 연인과 나온 젊은이가 많아요. 그들의 개인화된 사회성 속에 내재한 정의감, 연대감 등의 가치를 어떻게 정치로 만들어낼 것이냐, 이건 20대가 창조해야 할 몫입니다. 우리가 만들어줘야 할 몫은 아니고요. 20대가 그 답을 찾고 (정치권을) 뚫고 들어오면 받아들이면 되는 거죠. 끝으로 더 하고 싶은 얘기는 투표죠. 한 개인이 국회의원 되고 출세하고 입신양명하는 것보다도 젊은 세대가 투표를 통해 통째로 자기 세대의 삶을 바꿔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386의 가치 감당할 기회 얻느냐의 시험대”
- 청와대 주요 참모진, 국회 내 분포 등을 고려했을 때 ‘문재인 정부는 386정권’ 아니냐는 주장도 있는데요. 최근에는 386세대 기득권론을 꼬집는 책도 출간됐고요. 이런 최근의 분위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뭘 할 수 있을 때 평가받고 싶어요. 아직은 선배 세대들을 돕고 뒷받침한 거잖아요. 이제 겨우 우리가 전면에 서서 스스로 모든 걸 책임지고 일하는 시점이 오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다음 사이클로 들어가면 ‘우리냐 아니냐’의 문제일 것 같아요. 그때 더 전면적으로 평가받았으면 좋겠어요. 잘못한 사람들은 미련 없이 정리할 줄도 알아야 하고요. 우리의 정치는 개인의 입신양명을 꾀하거나, 권력과 명예를 개인화하기 위해서 있었던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역할에 최선을 다하되 부족하다고 평가받으면 떠날 줄 알아야죠. 그래서 다른 세대보다 조금 더 멋진 모습으로 우리 세대의 정치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지금이 386정권이라고 얘기하는 건, 그럼 예를 들어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편집국장이 386이기 때문에 동아일보, 조선일보가 386신문이다 이렇게 얘기할 수 있습니까. 그런 문제는 아니지 않겠어요.”
이 대목에서 이 원내대표는 “우리의 가치를 조금 더 전면적으로 감당할 때 평가받고 싶다”며 부연했다.
“지금은 그런 기회를 얻을 수 있느냐 없느냐의 중요한 시험대에 들어섰기 때문에 정말 작두날 위에 선 심정으로 몰두해서 우리가 감당할 일들을 잘 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386다운 정치라면 평화나 복지 분야에서 더 성과를 내고 싶다는 의미인가요?
“그건 누가 뭐라고 해도 우리들이 깃발 들고 밀고 왔다고 생각합니다. 저만 해도 2010년 우리 당 전당대회 때 복지를 통한 진보의 길, 연합을 통한 승리의 길을 매우 분명히 제기했어요. 당시 저보다 더 선명히 그 문제를 제기한 선배들은 없었습니다. 다만 노동이 더 존중받는 복지의 문제로까지 가지 못한 과제가 남아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지 정치를 통해 진보의 외연을 확장하기 위해 우리가 해온 역할을 부정할 수는 없다고 봐요.”
“합리적 보수와 중도가 극우와 함께한다?”
[박해윤 기자]
“저는 과반수로 봅니다.”
- 이낙연 국무총리가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총선에 뛰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많은데요. 구체적인 협의가 있습니까?
“아직 없습니다. 그와 관련해서는 아직 얘기한 바도 없고, 또 진지하게 그 얘기를 전해 들은 바도 없기 때문에 지금 대답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총리는 총리 일에 우선 집중하고 계시고요.”
- 야권에서는 ‘반문’연대를 기치로 황교안, 유승민, 안철수 등의 정치인이 한 정당에 모이는 ‘보수통합’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통합이 되면 여당에 위협이 될까요?
“저는 황교안 대표가 굉장히 극우보수의 길로 가고 있다고 봅니다. 막무가내와 막말로 정치를 끌고 가는 극우 세력과 한두 번도 아니고 반복적으로 결합하면 그건 극우정치 노선이죠. 유승민 의원 같은 분들이 합리적 보수를 표방하는데 글쎄요, (유 의원은) 경제·사회는 진보, 국방·안보는 보수 이렇게 얘기하잖아요? 한국에서 평화를 수용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의미의 합리적 보수일까, 이런 의심은 들지만 어쨌든 유연한 보수랄까….”
- 개혁보수라고 불리기도….
“개혁보수까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안철수 전 의원은 자신이 중도라고 이야기하는데, ‘안철수의 중도’와 ‘황교안의 극우’는 너무 멀어요. 유승민의 합리적 보수가 황교안의 극우 혹은 그보다 더 극우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한다? 제가 볼 때 (그 사이가) 너무 멀어요. 또 중간에 ‘박근혜 탄핵’이라는 큰 유리문이 있죠. 또 안 전 의원과 유 의원이 진로를 놓고 합치해서 결단을 못하고 있잖아요. 이런 걸 보면 (보수통합이) 쉬운 문제는 아닐 겁니다. 개혁적 중도와 합리적 보수의 공존까지는 몰라도 극우까지 같이한다? 그러면 경향적으로는 극우 쪽으로 쏠리게 되지 않습니까? 한국 정치의 장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죠.”
-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명예를 회복하는 길은 총선에서 지역구에 출마해 유권자의 의사를 묻는 것밖에 없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그건 본인도 지금 생각하지 않을 거고, 저로서도 그런 문제로 생각해본 적은 없습니다.”
- 조 전 장관의 총선 출마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 보나요?
“글쎄요, 한 개인의 입장으로 한번 돌이켜보십쇼. 그 나름대로 순수하게 이 과정을 성찰하고 있어야 할 조 전 장관이 정치적인 계산으로 자신의 탈출구가 총선 아니겠느냐 이런 판단을 하고 있다고 바라보는 건 좀 심한 생각 아닐까 싶어요. 그런 식으로 ‘어드바이스’하는 게 조 전 장관에게 진실한 충고나 조언이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지금은 조 전 장관을 그대로 좀 내버려둬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자연인으로 그대로 내버려둔다?
“또 그런 본인의 요청도 있고요. ‘페인트 모션’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조국 정국’ 당시 민주당 금태섭, 박용진 의원 등이 당 주류와 다른 의견을 말해 대통령 열성 지지층으로부터 문자 폭탄을 받았습니다. 이러니 여당 의원들이 ‘콘크리트 지지층’을 지나치게 의식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는 말도 있는데요.
“그런 문자 폭탄은 저도 종종 받습니다. 그분들(열성 지지층) 표현 그대로 ‘문자 참여’라고 받아들이려 합니다. 물론 그 과정에 있는 욕설과 막말은 성숙한 시민으로서 개선해야 한다고 봅니다만, 하나의 의견으로 받아들일 수 있죠. 본인(정치인) 스스로 얼마나 균형 있게 볼 것이냐의 문제겠죠. 그렇다고 그분들(열성 지지층)이 자유한국당 입장을 지지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우리 안의 다양성을 만들어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존중하고 포용해야죠. 그것이 우리 당의 다수 의견도 아니고요. ‘경직된 친문’ ‘극문(極文)’ 이런 의견에 휘둘리는 것 아니냐는 식으로 볼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 당은 큰 중심을 잡아가는 건강성을 가지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어요.”
역대 최악의 국회
- 국회의원뿐 아니라 지지자들을 두고도 ‘친문’이냐 ‘비문’이냐 분류합니다.“그분들 안에서의 차이가 광화문에서 태극기를 흔들고 ‘가짜 애국’을 외치는 분들과의 차이보다 크겠습니까? 치열하게 치고받되 큰 전선 앞에서는 같이 촛불을 들고 박근혜 탄핵, 최순실 국정농단을 규탄했던 세력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결정적인 차이의 문제로 해석할 필요는 없습니다.”
- 불출마를 선언한 이철희 의원이 “당 대표의 리더십에 문제가 있다”면서 이해찬 대표 책임론을 꺼냈는데요. 이 의원의 작심 발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제가 그 발언은 확인하지 못했고, 진위도 무엇인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이철희 의원이 이해찬 대표를 만나 흉금을 터놓고 쇄신과 혁신에 대해서 건의했고 이 대표도 마음을 열고 경청했다고 하니까요. 그 문제를 ‘정치적인 저격’ 식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습니다.”
소설가 김훈은 ‘연필로 쓰기’에서 “말이 병들면 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 듣는 자가 있어야 말이 성립되는데, 악악대고 와글거릴 뿐 듣는 자는 없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 여의도에는 ‘병든 말’을 칼로 삼아 상대의 목을 겨누는 행태가 일상이 됐다. 국회 운영위원장이기도 한 이 원내대표에게 물었다.
- 20대 국회를 두고 역대 최악의 국회라는 지적이 나오는데요. 법안 처리율도 극히 저조하고, 막말과 고성이 TV에서 보이는 일이 너무 잦습니다.
“제가 원내대표 되고 보니까 그런 게 너무 많아요.”
- 왜 그런 걸까요?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상황이죠. ‘내 책임은 없어’ 이렇게 말할 마음은 없습니다. ‘조국 정국’의 운영 과정뿐 아니라 원내대표로서 패스트트랙의 상처를 안고 (임기를) 시작하는 과정에서 더 경청하고 포용하며 공존의 정치를 했느냐 (제게) 물으면 그러지 못한 점이 많이 있다고 자성합니다. 국회의원으로서 국회가 국민들께 실망 드린 점에 대해 여당 원내대표로서 많은 책임의식을 느끼고 송구스럽단 말씀도 종종 드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존과 협치는 포기할 수 없는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패스트트랙 정국이 앞으로 또 남아 있잖아요. 남아 있는 과정에서부터 최선의 노력을 다해보는 수밖에요.”
늦은 오후에 시작한 인터뷰는 1시간여 이어지다 어둠이 깔려서야 끝났다. 직장인들이 고달픈 하루의 밥벌이를 끝내고 퇴근길에 나설 무렵이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치의 본질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이 원내대표는 인터뷰 이틀 후인 11월 6일 “서민의 꿈이 국회에서 다시 결실을 볼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 땅의 장삼이사들이 더 풍족히 살 수 있다면야 386이건 밀레니얼이건 누군들 문제랴. 집권여당과 386세대가 경세제민(經世濟民)의 시험대 위에 올랐다.
[신동아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