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호

난임전문의 조정현의 ‘생식이야기’

1등 아닌 2등 정자가 난자 쟁취

남녀 유전자 다를수록 자손 질병 저항력 강해

  • 난임전문의 조정현

    입력2019-12-08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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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야흐로 연말이다. 매년 이맘때면 각 분야마다 실적 발표로 분주하다. 재계는 올해 3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0.4%를 기록하면서 연간 2% 성장은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내다본다. 난임전문의로서 경제성장률만큼이나 연간 출생아 수가 가장 궁금하다. 한국이 전 세계에서 초저출산국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41개월 연속 출생아 수가 기록 경신(최저)을 했다니 보통 문제가 아니다. 혼인신고 건수도 통계 이래 가장 적은 한 해였다고 한다. 한국의 미래를 생각하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어쩌다 1인당 출생 수가 일본(1.4명)을 비롯해 중국(1.7명), 인도(2.2명)와 비교해 가장 낮은 것은 물론이고 전 세계적으로 가장 낮은 수준인지, 암울하기만 하다. 영국 BBC방송은 한국 젊은이들이 역사 이래 매우 이례적으로 결혼, 출산을 기피하고 있다며 유엔(UN) 전망치를 인용해 2100년이 되면 인구가 2950만 명이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1960년대 인구 수준이 된다는 얘기다. 

    한창 불타올라야 할 나이에, 왜 다들 결혼을 기피하는 것일까. 혼자가 편해서만은 아닌 듯싶다. 요즘 젊은이들은 “서로 다른 사람끼리 만나 맞추고 사는 게 힘들다”며 “집도 없고, 월급도 적은데 어떻게 결혼을 하느냐”고 항변한다. 

    단칸방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한 1970~80년대 부부들은 첫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내 집을 마련하는 게 꿈이었다. 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결혼 전에 내세울 게 있어야만 자식도 낳고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1등 신랑·신붓감이 되지 못할 바에는, 또 능력 있는 부모가 되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혼자 사는 게 속 편하고, 경제적으로도 여유로울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정부가 몇 조 원을 들여 신혼부부 주거 문제 해결을 지원한다고는 하지만 과연 그 효과가 얼마나 클지는 미지수다.

    1등 정자의 남모를 희생

    1등과 최고를 지향하는 젊은이들에게 조금 생뚱맞지만 난임의사로서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 자체가 1등이 아니어서라는 사실을 말이다. 흔히들 정자가 난자와 만나 수정이 이뤄질 때, 난자에 가장 먼저 달려온 1등 정자가 수정이 된다고 알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최종 수정에 성공하는 정자는 2등 혹은 3등 정자다. 



    남녀 간의 성행위 시 수억 마리 정자가 사정(射精)이 되지만 난자 옆에 도착할 수 있는 정자는 고작 몇 백 마리에 불과하다. 사정에 의해 여성의 질 속에 들어온 정자들은 질의 산성물질에 의해 상당수가 죽고, 자궁경부 점액층을 무사히 뚫고 들어가면서 자궁의 백혈구들에게 잡아먹혀 버린다. 나팔관까지는 15~20cm밖에 안 되지만 정자로서는 엄청나게 고된 여정이다. 

    정자와 난자의 수정 또한 쉽지 않다. 정자는 하나의 세포로 기능을 하지만 난자는 수많은 세포로 둘러싸인 시스템으로 기능을 한다. 난자는 투명대라는 알 껍질에 둘러싸여 있는데 투명대 밖은 오밀조밀 난구세포가 빽빽하게 둘러싸고 있다. 시험관시술(체외수정) 시 난소에서 성숙난자를 채취해 배양접시에 올려놓고 현미경으로 살펴보면 중앙의 난자를 중심으로 난구세포들이 햇살처럼 팔방으로 퍼지는(corona radiata) 경이로운 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 

    참으로 흥미진진한 것은 난자에 1등으로 도착한 정자들은 힘들게 애쓰다가 남(2등 또는 3등 정자) 좋은 일만 시켜버린다는 것이다. 다된 밥에 숟가락만 올리는 정자는 따로 있는 셈이다. 1등으로 도착한 정자들은 투명대로 돌진하기 위해 난구세포의 간격을 벌리고 조금씩 들어가다가 지치면 뒤따르던 후발 정자에게 바통을 넘긴다. 

    지치지 않은 후발 정자들은 더욱 더 동작이 커진다. 머리를 옆으로 크게 흔들며(흔드는 머리 폭으로 정자의 활동성을 측정한다) 운동성이 빨라진다. 이때 머리 위 모자 모양의 첨체 속에 든 효소들이 방출되면서 투명대를 녹인다. 정자는 이 틈을 이용해 투명대를 뚫고 마침내 난자 속으로 들어간다. 

    이렇게 최후의 승자(정자)가 난자 안으로 들어가면 난자는 세포벽 쪽에 있는 수많은 알갱이를 터트려 바리케이드를 치고, 따라오던 나머지 정자들을 더는 들어오지 못하게(cortical reaction) 막는다. 수정이 끝났을 때 현미경으로 수정란을 들여다보면 투명대에 붙어 있는 무수히 많은 불쌍한 정자들을 볼 수 있다. 이들 가운데 1번 주자였던 정자도 있을 것이다. 생식의 세계에서도 타이밍과 운이 매우 중요하다. 1등 그룹 정자들이 살신성인을 한 덕분에 2등 그룹의 정자들이 운 좋게 난자의 세포막과 결합하게 되는 것이다. 최후의 승자는 1등 정자와의 간격을 두고 따라가던 지구력이 있고 운동성 좋은 정자임을 기억하자.

    결혼 상대 유전자 궁합으로 찾는 이색 미팅 문화

    우리 모두가 건강한 생명체로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은 부모뿐 아니라 얼굴도 모르는 여러 조상의 업적 덕분이다. 유전학적으로 자식은 부모가 만들어낸 예술품이다. 난자와 정자에 있는 23개의 전핵이 결합해 46개의 염색체를 가진 배아가 형성된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모든 세포 하나하나에 46개의 염색체가 있고 그 속에는 유전물질인 디오시리보핵산(DNA)이 들어 있다. DNA야말로 우리 몸의 모든 형질을 결정하는 유전자로 모든 DNA에는 부모에게서 받은 인자가 들어 있다. 

    즉 내가 죽어도 자식이 있는 한 핵산이 끊이지 않고 영원히 흐른다고 볼 수 있다. 어디 그뿐인가. 생명이 잉태되는 순간 열성인자를 배척하며 끊임없이 우성인자를 찾아가는 여정이 시작된다. 근친결혼만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난임환자가 있었다. 그들의 얘기로 자기 나라에서는 친척끼리 결혼하는 경우가 많고 그래서인지 아기를 못 갖거나 이상한 아기를 출산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본인도 부모가 8촌간이라서 그런지 난임이라고 밝혔다. 이 환자의 경우 난자를 여러 개 키우기 위해 배란유도를 했는데 아무리 고용량을 처방해도 반응이 잘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는 친척도 가족이라는 큰 개념에서 근친결혼을 금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동성동본 금혼 제도야말로 유전학적 관점에서 우수한 문화였다고 볼 수 있다. 

    요즘 젊은이들은 결혼 조건에서 유유상종을 더 선호한다고 들었다. 조금이라도 마음이 불편한 것을 피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주목해야 할 연구 결과가 있다. 남녀의 유전자가 서로 다를수록 그 자손은 다양한 질병에 저항성을 지닌다. 그래서인지 남녀는 무의식적으로 다른 유전자를 가진 파트너에게 훨씬 더 끌리고 매력을 느낀다는 분석도 나온다. 남녀가 느끼는 사랑의 감정은 어쩌면 더 나은 유전자를 찾기 위한 본능이라고 볼 수 있다. 

    최근 일본에서는 이색적인 미팅 문화가 유행하고 있다. 유전자 궁합을 보고 결혼 상대를 찾는 것인데, 이러한 맞선 프로그램 ‘DNA 곤카쓰(婚活·결혼에 필요한 활동)’가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다. DNA 미팅은 면역을 담당하는 HLA 유전자를 기반으로 남녀의 궁합을 판단하는 것이다. 유전자 형태가 다를수록 상대방에 대한 호감도는 더욱 높다. 과연 남녀가 직업, 연봉 등은 전혀 밝히지 않고 유전자 궁합만으로 상대를 선택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모쪼록 12월에는 애인 없는 젊은이들이 혼밥·혼술 하지 말고, 이성 간 의미 있는 만남을 가져보길 바란다. 기혼자들 집 안에도 새해에는 갓난아기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면 좋겠다. 먹고사는 문제가 중요하지만 후세를 보는 일만큼 의미 있는 일이 또 있을까. 엄마 아빠 닮은 예쁜 아기를 잉태할 수 있도록, 뜨거운 밤을 보내는 부부가 많아지면 좋겠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이 보통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손해 보는 일은 더더욱 아님을 나이가 들면 저절로 깨닫게 될 것이다.


    조정현
    ● 연세대 의대 졸업
    ● 영동제일병원 부원장. 미즈메디 강남 원장. 강남차병원 산부인과 교수
    ● 現 사랑아이여성의원 원장
    ● 前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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