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호

“국가자본주의 사고 가진 청와대 참모들 인적청산 해야”

[인터뷰] ‘非당파 진보’ 박상인 경실련 정책위원장의 고언

  • 고재석 기자 jayko@donga.com

    입력2019-11-21 14: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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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민단체, 상대 누구건 비당파·비정파여야”

    • “韓 경제, 최저임금 올려 지속 가능한 구조 아냐”

    • “단기 일자리 위주 재정 투입, 사막에 물 뿌리는 꼴”

    • “청와대 정치참모들, 경제를 정치에 예속화”

    • “김상조, ‘재벌저격수’ 닉네임 즐겼을 뿐 재벌개혁론자 아냐”

    • “독점 구조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불가능”

    • “韓 정치, ‘좌파보수’ ‘우파보수’만 있고 진보 없어”

    [조영철 기자]

    [조영철 기자]

    대관절 21세기에 당파 싸움이 점입가경이니 어찌 된 일인가. ‘우리 편은 무슨 짓을 해도 선(善)’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사회에 독버섯처럼 틈입했다. 지식인은 진영의 치어리더로 전락했다. 시민단체는 정파의 이해에 발목이 잡혔다. 당파성에서 자유로운 지식인의 고언을 통해 난세의 돌파구를 강구해볼 시점이다. 

    박상인(54)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경제학)는 진보 시민단체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정책위원장이다. 그러면서도 진영에 매몰되지 않은 태도를 지닌 지식인으로 꼽힌다. ‘조국 정국’이 한창일 당시에는 조 당시 법무부 장관의 사퇴를 공개적으로 촉구하기도 했다.

    “보수 정권이건 좌파 정권이건…”

    한때 조 전 장관은 자신을 향한 폴리페서(polifessor) 지적에 ‘앙가주망(engagement·지식인의 사회참여)’이라고 응수한 바 있다. 앙가주망은 권력과의 불화(不和)에서 비롯한다. ‘대통령의 측근’이 된 국립대 교수가 고관대작 자리를 꿰찬 것을 앙가주망이라 꾸며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박 교수야말로 앙가주망의 체현자다. 그는 정권과 재벌 등 상대가 가진 권력의 크기를 재지 않고 ‘입바른 소리’를 하는 인물로 정평이 나 있다. 11월 5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그를 만나 후일담(後日談)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조국 전 장관과는 사적으로는 직장(서울대) 동료다. 아예 모르는 사이도 아닐 테고…. 

    “같은 직장에 있는 사람보다 조금 더 잘 아는 편이다. 필요하면 전화도 할 수 있는 사이니까. 조 전 장관 일이 터지고 여러모로 착잡하고 난감했다.” 



    -불편한 마음을 가라앉히면서 조 전 장관의 사퇴를 촉구했겠다. 

    “상당히 곤혹스러웠다. 예전부터 개인적으로는 좋아했던 분이기도 하고. 그래도 저희(경실련)는 시민단체로서 장관 지명 때마다 문제 되는 지명자에 대해 의견을 표명해왔다. 내부적으로 의견이 좀 갈리긴 했지만 경실련 기준에서 볼 때 적합하지 않다는 판단을 했다.” 

    경실련은 9월 8일 입장문을 내고 “조국 후보자의 법무부 장관직 수행은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해 자진 사퇴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조 당시 후보자가 자청한 기자회견(9월 2일)과 국회 인사청문회(9월 6일)가 진행된 후다. 

    “의견표명 안 하는 것도 하나의 의견표명이다. 10월 2일 개인 페이스북에 (조 전 장관이) 사임할 때가 됐다고 썼다. 조 전 장관 임명 당시 굉장히 정파적인 싸움 양상이 엿보였다. 검찰이 의도치 않게 정치 중앙에 서게 됐다. (다만) 그 시점까지는 검찰개혁에 드라이브가 걸렸고 입법 외의 개혁은 빨리 진행됐다. 그런데 그 성과마저 시간이 지나면 없어질 것 같았다. (사임의) 타이밍을 놓치면 안 되리라는 생각이 들어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올해가 경실련 창립 30주년이다. ‘조국 정국’을 통해 시민단체와 정권의 관계를 둘러싼 중대한 질문이 남겨졌다. 참여연대에서도 논란이 있었고. 

    “경실련이 추구하는 목적은 경제정의·사회정의다. 시민운동이 추구하는 목적과 부합하는지 아닌지를 놓고 정책과 인사를 비판해야 한다. 보수 정권이건 좌파 정권이건 따지지 않고 비당파·비정파적 입장을 취해야 한다. 경실련에서 이번처럼 내부 논쟁이 치열했던 적이 옛날에 몇 번은 있었다고 하더라. 하지만 내가 경실련에 몸담은 이후에는 처음이었다.” 

    -언제부터 경실련 활동을 했나? 

    “5년 정도 됐다. 논의 과정에서 (회원들에게) 누구 입에서 나온 이야기인지 따지지 말고 내용을 갖고 평가하자고 말했다. 그렇게 객관적으로 가야만 시민단체가 국민으로부터 지지받을 수 있다. 그것이 시민단체의 존재 이유기도 하다. 일부 (논평에 대해) 반발하시는 분들도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우리가 잘한 것 같다고 말씀하시는 분이 늘고 있다.” 

    이 대목에서 박 교수는 ‘조국 정국’이 야기한 ‘선전선동의 정치’를 문제 삼았다. 

    “검찰개혁은 3가지가 중요하다. 첫째,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다. 둘째, 경제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다. 셋째, 검찰 권력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필요하다. 공수처 등 지금 나오는 수단들이 3가지 목적을 이루는 데 어떤 효과를 낼 수 있는지 여야 간 협상에서 합리적인 논의를 보고 싶다. 하지만 문제를 단순화하고 광장에서 선동을 부추기는 식의 경쟁을 한다. 굉장히 파괴적이다. (정치인들이) 제 얼굴에 침 뱉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화제를 박 교수의 전공 분야인 ‘경제개혁’으로 돌릴 때다. 이와 관련해 ‘88만원 세대’ 저자이자 진보 성향 학자로 분류되는 우석훈 박사는 8월 27일 ‘주간동아’ 인터뷰에서 “그간 공보(公報) 논리가 너무 강했다. 최저임금 올린 것 말고는 개혁한 게 없다. 조 후보자를 내세운 것도 공보 논리로 가다 보니 이미지 좋은 사람을 앞세운 것”이라고 일갈했다.

    “최저임금 올리면 지속 가능할 수 없다”

    -우석훈 박사는 문재인 정부 경제개혁을 평하며 공보 논리를 문제 삼더라. 

    “공보 논리가 강했다는 말에 동의한다. ‘경제의 정치화’라는 생각이 든다. 의사결정 과정에서 대통령에게 실질적으로 조언하는 그룹이 있는 듯한데, (거기에) 경제 전문가는 없는 것 같다. 정치 참모들이 최종적인 의사결정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모든 걸 정치적 임팩트로 평가하게 된다. (정권이) 단기 성과를 보여주기 위해 무리하게 되고, 장기적으로 중요한 이슈는 묻히는 일이 반복됐다. 단기 성과 위주 정책들은 관료가 잘하니 자꾸 관료를 중용하게 된다.” 

    박 교수는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으로도 일했다. 국민경제자문회의의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이다.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활동하며 문 대통령에게 이런 쓴소리를 할 기회가 없었나? 

    “대통령 모시고 두 차례 회의를 했다. 2017년 12월 말 국민경제자문회의가 결성됐고, 청와대에서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 경제 분야 장관과 관련 위원들까지 모여 대규모로 회의를 했다. 기회가 있어 10분 정도 발언했다. 일단 당시(2017년) 경제가 너무 좋았다.” 

    -반도체 호황 국면을 타고 있기도 했고…. 

    “그렇다. 경제성장률이 3년 만에 3% 이상으로 올라갔고 이듬해(2018년) 1인당 소득 3만 달러가 되리라는 게 확실시됐을 때다. (청와대가) 굉장히 고무돼 있었다. (청와대에 가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2011년 이후 제조업 경쟁력 상실이 눈에 보이고 있다. 반도체 슈퍼 사이클과 유가 상승 덕에 경제가 좋아진 것처럼 보이는 착시다. 한국 경제는 원가경쟁력 위주 제조업, 과도한 자영업 두 가지 특징을 갖고 있는데 여기서 최저임금을 올리면 (경제가) 지속 가능할 수 없다’고 말이다. 혁신경제로 구조와 형태를 바꿔야만 최저임금 인상을 (시장이) 받아줄 수 있다. 정작 혁신경제 정책을 옛날식 정부 주도 개발체제 방식으로 펴고 있다.” 

    -‘목표를 설정했다’는 식의 정부 발표만 이어지고 있다. 

    “그런 식으로 혁신경제가 이뤄질 수 없다. 혁신이 일어나려면 3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기회와 유인, 금융이다. 금융에서는 돈이 남아돈다. 결국 기회와 유인의 문제다. 지금 재벌 중심 전속계약으로 경제가 다 블록화돼 있다. 안에서 경쟁이 없고 외부에서 참여할 수도 없으니 기회가 없다. 또 안에서는 기술 탈취에 단가 후려치기가 있어 혁신할 유인도 없다. (청와대에서) ‘경제가 단기적으로 반도체 슈퍼 사이클 덕에 좋아질 때 구조개혁을 단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모두가 알 듯 구조개혁은 이뤄지지 않았다. 박 교수는 “1년 후인 2018년 12월 청와대에 갔을 때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야 했다”고 회고했다. 

    “2018년에 가니까 상황이 많이 바뀌었더라. ‘경제 활력을 제고하겠다’고 하고 ‘제조업이 중요하다’고도 하고. 하지만 방법론적으로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 취했던 정책 수단을 다시 쓰겠다는 것으로 보여 걱정을 많이 했다. 물론 근본적 전환을 한다고 해서 경제가 갑자기 좋아질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런데 이대로 가면 문재인 정부 말기나 다음 정권 초기에 경제위기가 올 수도 있다.”

    “단기 일자리 위주의 땜빵식 대응”

    -하지만 이호승 청와대 경제수석은 한국 경제를 두고 “비교적 선방하고 있다. 위기를 너무 쉽게 얘기하는 것에 대해서는 무책임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던데. 

    “거시 펀더멘털(Fundamental·국가 경제 상황을 가늠할 기초경제 여건), 그러니까 ‘성장률’ ‘국제수지’ ‘외환보유고’ 지표 보니 괜찮다는 거다. 그런데 1997년 경제위기도 거시 펀더멘털이 나빠서 온 게 아니다. 지금은 제조업 경쟁력 상실이 심각해 제조업 기업들의 부실화를 야기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은행 부실도 굉장히 누적돼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정부는 과거 외환위기 때와 똑같이 ‘거시 펀더멘털이 좋다’ ‘위기가 아니다’라고 한다. IMF 관리체제 때도 당국자들이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강연하며 ‘위기 운운하면 진짜 위기 온다’고 했다. 하지만 위기를 경고하는 건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노력이 부족하다는 걸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그걸 갖고 자꾸 ‘경제는 심리’라고 반박하는 자체가 부적절하다. 국민에게 신뢰를 못 주면서 단기 땜빵 정책만 되풀이한다. (단기 정책) 이후 뭐가 바뀔 거냐고 물었을 때 자신 있게 대답하는 경제 관료나 청와대 관계자를 지금까지 본 적이 없다.” 

    이와 관련해 김상조 정책실장은 11월 1일 국회 운영위원회에 나와 “한국 경제의 축소적 악순환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단기적으로 적자재정을 감수하고서라도 확장재정을 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상조 실장은 축소적 악순환 운운한다. 정부가 위기라는 지적에는 ‘위기 아니다’라고 반박하고, 재정지출이 필요할 땐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한다. 앞뒤가 맞지 않는 것 아닌가? 

    “맞는 말이다. (아마 청와대는) 세계경기가 수축 국면이니 재정을 투입해서 총 수요를 부양해 (국면을) 빠져나오면 된다는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 것 같다. 지금은 그런 식으로 빠져나올 수 있는 사이클이 아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을 두고 ‘정부 재정지출 자체는 그다지 확장적이지 않았지만 실질적으로는 확장재정을 했다’는 학계 평가가 있었다. 캠코(한국자산관리공사) 등을 통해 부실자산을 사들여 구조조정하는 데 큰 재정이 투입됐기 때문이다. 즉 그와 같이 구조조정의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돈을 쓰면 효과가 있다. 지금 같은 단기 일자리 위주의 땜빵식 경기변동적 대응은 사막에 물 뿌리는 꼴이다. 흔적이 없고 저수지 물도 점점 말라드는 상황으로 갈 수밖에 없다.”

    정치참모와 경제참모

    2017년 7월 11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 시작 전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현 청와대 정책실장)이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현 주중대사)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17년 7월 11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 시작 전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현 청와대 정책실장)이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현 주중대사)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년 반 동안의 청와대 경제 관련 인사는 어떻게 진단하나? 

    “장하성 전 실장은 경영학자이고 소액주주운동을 쭉 하셨던 분인데, 정책실장으로서 경제 전반에 대한 이해나 비전이 있었을지…. 뭐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전혀 보여주지 못했고, 본인이 주장하지도 않은 최저임금 문제에 발목 잡혀 끝나버렸다. 김수현 전 실장은 아예 비전문가였고. 김상조 실장이 그나마 전문성이 있지만, 색깔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경제정책에 대해 대통령의 신임을 받고 힘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어 보인다. (경제가) 정치의 종속변수처럼 돼서 체감할 수 있는 성과를 내고 나빠지지 않게 관리하는 식의 기조가 있다. 누가 가더라도 그런 기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이 대목에서 박 교수는 “(대통령의) 핵심 참모 중 정치참모만 있고 경제참모는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청와대 경제참모들의 한계를 이렇게 진단했다.
    “전통적으로 현 여당(민주당)에 가까웠던 경제학자 중에는 비주류 경제학자가 많다. 이분들이 주로 운동권 정치참모들과 대학교 때 선·후배 관계였다. 비주류 경제학자의 시각은 상당히 좁다. 일부는 국가자본주의론자다. 국가자본주의론자들은 외국 자본이 가장 나쁘다고 본다. 외국 자본을 막기 위해 재벌을 보호·육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반외세 친재벌’이다. 관료도 친재벌이지 않나. 지금 상황에서는 재벌개혁이 일어나기 어렵다. 문재인 정부가 초심으로 돌아가 제대로 된 개혁을 하려면 인적청산이 필요하다. 대통령 주위의 참모들부터 청산해야 한다.” 

    -정치참모부터 청산해야 하나? 

    “정치참모들이 남아 있는 이상 경제도 정치에 예속될 수밖에 없다. (한편으로) 세계 12위 경제대국인데도 ‘박정희 개발주의자’와 생각이 일맥상통하는 국가자본주의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포진해서 정책을 끌고 간다는 건 굉장히 큰 문제다. 이를 바꿀 수 있는 인적청산이 있어야 한다. 자유한국당 쪽에 정책 어드바이스하는 분들 중에는 굉장히 극단적이고 보수적인 학자가 많다. (반면) 여기는(민주당) 거의 비주류의 국가자본주의 사고를 지닌 분이 다수다. 공통점은 친재벌이다.(헛웃음)” 

    박 교수는 “청와대와 문 대통령 측근의 절반 정도는 개혁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나머지 절반 정도가 국가자본주의적 사고를 갖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자가 이니셔티브를 쥐었다면 2년 반 동안 이룰 수 있는 개혁의 성과는 많았을 터. 그가 부연했다. 

    “문제는 국가자본주의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핵심이라는 점이다. 이 사람들이 (정권을) 장악하고 있다고 보인다. 그래서 인적청산이 필요하다.”

    “김상조, 원래 재벌개혁론자 아니다”

    한국의 재벌개혁운동 전선에는 크게 두 가지 흐름이 있다. 거칠게 단순화하면 점진개혁 노선과 구조개혁 노선이다. 전자를 대표하는 인물은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다. 후자를 대표하는 인물이 박상인 교수다. 

    -정권 초 김상조 한성대 교수가 공정거래위원장으로 갔다.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에서 성과가 나리라는 예상이 많았는데. 

    “글쎄. 아마 김 실장이 공정위원장 때 인터뷰였나. ‘재벌개혁에 대해 바뀐 것 아니냐’는 질문에 (김 실장이) ‘바뀐 게 없다’고 답했다. 나는 그 말 맞는다고 본다. 김 실장을 재벌개혁론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가? 김 실장은 그 브랜드로 계속 살아왔는데. 

    “사실 (김 실장이) 재벌개혁이란 말을 한 적이 별로 없다. 남들이 그렇게 얘기하는 걸 듣고 가만히 있었던 거다. 그러면 자신이 한 일은 재벌개혁이 아니라 소액주주운동이라고 미리 말을 했어야지. 김 실장과 장하성 전 실장은 소액주주운동 하면서 재벌개혁을 기업지배구조 개선으로 탈바꿈해버렸다.” 

    -소액주주운동은 재벌개혁 이슈에서 작은 부분이긴 하다. 

    “그렇다. 미국은 주인 없는 전문경영인 체제라 전문경영인이 엉뚱한 짓 할까봐 주주들이 견제하고 감시하는 기업지배구조 메커니즘을 갖췄다. 그거(미국식 기업지배구조)를 한국에 도입하자고 주창하신 분들이다. 그러다 보니 ‘갑을 이슈’로까지 (문제의식이) 확장됐는데, 기본적으로 (김 실장은) 경제력 집중에 대한 문제의식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재벌개혁 이미지는 소액주주운동하면서 삼성전자 주총에서 소리 지르고 사진 찍히고 하니 ‘재벌저격수’라는 닉네임이 붙으면서 생겼다. 본인(김 실장)은 (재벌저격수라는) 오해를 즐긴 거고. 이분은 기업지배구조 개혁에만 관심이 있다. 우리 같은 소유·지배 구조하에서는 미국식 사외이사 제도가 작동 안 되는 건 20년 동안 입증이 됐다. 지금 와서 보면 (김 실장은) 재벌에 의해 생기는 제조업의 위기에 대한 문제의식도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박 교수는 “지금도 김 실장은 솔직하지 않다. 재벌개혁 한 게 하나도 없다”고 일갈했다. 

    -김 실장은 주로 재벌의 자발적 변화를 기다리겠다고 말하곤 했다. 

    “지금 와서 순환출자가 없어지는 걸 성과라고 하는데, (그조차) 문재인 정부에서 한 게 아니다. 박근혜 정부 때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했기 때문이다. 당시 나도 (박 정부가) 기존 순환출자를 건드리지 않았다고 비판을 많이 했다. 그럼에도 신규 순환출자가 금지돼 (기업들이) 지주회사 체제로 갔다. (하지만) 경제력 집중이 지주회사로 가면서 해소됐나? 아니다. 황제경영 없어졌나? 역시 아니다. 즉 본질적인 부분이 전혀 바뀌지 않았다.”

    “지금 상황에서는 정규직 안 뽑아”

    경제 현장은 난마처럼 얽혀 있다. 문재인 정부는 복잡다단한 현실에 단순화된 레토릭으로 접근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라는 슬로건이 그렇다. 

    -문재인 정부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목표로 선언했다. 그런데 ‘정규직화’만이 길인가? 비정규직 처우를 올려주는 방식 등 다양한 대안이 가능하지 않나? 

    “정부가 단순하게 생각한 거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재벌 독점이 더 강화됐다. 하청 구조가 전속계약으로 바뀌었다. 원청, 1차, 2차 이렇게 쭉 내려간다. 전속계약 안에 들어오는 기업들은 살 만하다. 밖에 있는 기업은 죽을 맛이다. 안에 들어온 다음에 거래를 지속하면 원청이 하청의 원가 정보를 거의 파악한다. 그때부터 단가 후려치기를 시작한다. 그러면 원가 경쟁력이 생긴다. 덕분에 (해외에) 나가서 잘되는 것처럼 보인다. 이 시스템이 2010년 넘어서부터 작동이 안 됐다. 중국이 추격하면서 ‘로 엔드’에서 원가 경쟁력이 밀리기 시작했다. ‘하이엔드’에서라도 혁신을 통해 신제품이 나와야 하는데, 전속거래 구조 안에 있으니 혁신이 어렵다. 그러니 샌드위치 신세가 됐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묻는 질문에 박 교수가 원·하청 구조로 운을 뗀 이유가 있다. 그가 부연했다. 

    “‘러프’하게 말해 현대차 원청 수익이 100이라면 1차 하청은 60, 2차 하청은 30이다. 이것이 대기업과 중견기업, 중소기업의 임금격차다. 지금 대기업은 정규직 안 뽑고 비정규직을 뽑는다. 그렇게 되면 대기업 비정규직과 중소기업 1차 하청 정규직이 경쟁하는 노동시장이 된다. 이에 대기업 비정규직 월급 수준이 중소·중견 기업 정규직 수준으로 떨어진다. 이 구조를 두고 (문재인 정부가 주장하듯)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건 불가능하다. 최저임금 올리는 것도 마찬가지로 불가능하다. 최저임금 영향을 받는 건 가장 밑에 있는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다. (시장이) 흡수할 수 없는 정책을 쓴 것이다. 그러니 자회사 통해 ‘비정규직 같은 정규직’을 만드는 편법이 나온 거 아닌가.” 

    구조(構造)의 사전적 의미는 ‘부분이나 요소가 어떤 전체를 짜 이룸. 또는 그렇게 이루어진 얼개’다. 박 교수는 “재벌독점 구조가 많은 사회문제를 야기한다”면서 대화의 물줄기를 자영업으로까지 이끌고 갔다. 

    “대기업이 원가 경쟁력 위주의 경영을 하니 인적 자본의 중요성이 떨어졌다. 50대 초·중반 되면 상무 주고 다 내보낸다. 50대에 나와서 65세까지 국민연금 받으려면 10년 넘게 기다려야 한다. 퇴직금 갖고 나와서 뭐 하나.”

    “구체제 찬성하면 그건 다 보수다”

    박상인 서울대 교수는문재인 정부에서‘경제의 정치화’양상이 짙어졌다고 우려했다. [조영철 기자]

    박상인 서울대 교수는문재인 정부에서‘경제의 정치화’양상이 짙어졌다고 우려했다. [조영철 기자]

    -자영업에 뛰어들겠지. 

    “자영업하면 3년 안에 망한다. 그러면 노인 빈곤 상태에 들어간다. 그런 상황에서 단기 일자리를 만들어 노인 빈곤을 해소하겠다? 재정 유지 가능할까? (문재인 정부가) 이런 정책을 쓰고 있다. 이 구조를 두고 자영업에 대한 어떤 정책을 써도 단기적인 효과밖에 안 난다.” 

    -국민은 그와 같은 단기 처방이 ‘진보적 정책’이라고 인식한다. 처방 효과가 없다면 진보에 대한 환멸로 이어질 수 있다. 

    “진보라는 이름으로 잘못된 정책을 펴는 게 굉장히 문제다. 진보는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자는 말 아닌가. 우리는 박정희 개발체제로 성공했다. 성공의 대가로 개발체제가 기득권이 됐다. 진보라면 기득권의 알을 깨서 새로운 체제로 도약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걸 못하면서 자기들이 진보라는 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거다. 한국 정치엔 친재벌 좌파, 친재벌 우파만 있고 진보는 없다. 재벌 중심이란 구체제에 찬성하면서 ‘정권교체’ ‘선수교체’ 경쟁만 한다. 그건 다 보수다. 좌파 보수, 우파 보수일 뿐이다. 진정한 의미의 진보가 개혁을 이루지 못하면 중남미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중남미라면 베네수엘라 같은…. 

    “중남미 국가가 우리보다 더 좌파 성향처럼 보인다. 실제로 보면 근본적인 개혁을 할 생각을 전혀 안 한다.” 

    -명찰만 좌파인 건가? 

    “그렇다. 거기는 친기득권 좌파, 친기득권 우파만 있다. 친기득권 좌파는 재정 풀어 부양하고, 친기득권 우파는 규제 풀어 기업들에 나눠준다. 그러다 정권교체하고 한 번씩 망한다. 그게 중남미 사이클이다. 중간에 있는 많은 사람은 희망을 잃고 각자도생한다. 떠날 수 있는 사람은 떠나고.” 

    -한국 정치는 공기업·공공기관을 놓고 엘리트들이 펼치는 일자리 싸움 같다는 조소가 있다. 

    “그런 양상이 일어나고 있다. 한국 정치는 프로파간다 정치였다. 사람들 솔깃하게 해서 표를 받고 나서는 자기들끼리 나눠 먹기한 정치였다. 그것이 기득권 좌파, 기득권 우파다. 이런 정치 구조를 깰 수 있는 유권자 운동이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 임기 절반을 지나면서 지식인의 역할이 무엇이냐는 질문이 나온다. 우리 사회에는 정파에 밀착된 지식인이 너무 많은 것 아닌가? 

    “테뉴어(정년보장) 받은 교수는 세 갈래 길을 간다. 일단 공부하던 걸 계속 하시는 분들이 있다. 두 번째로 공부는 조금 접고 사외이사 등 대외활동을 많이 하는 부류가 있다. 대부분 여기에 속한다. 세 번째로는 이제부터라도 한국사회문제에 착근해서 공부해보겠다는 부류가 있다. 극히 소수다. 첫 번째, 두 번째 그룹에 비해 유인이 너무 적어서다. 나 역시 한국 경제에 관심 갖고 10년을 공부했다. 10년 동안 못했던 것이 굉장히 많다. 좋은 논문 쓸 수 있는 기회 많이 놓쳤다. 돈 벌 수 있는 기회 굉장히 많이 놓쳤다.(웃음) 한국 사회 문제에 천착할 수 있는 유인을 좀 더 줘야 한다. 한국연구재단에서 한국 문제에 천착할 수 있는 연구 과제에 대해 연구비를 지원하는 식으로 정책적·제도적 유인체계를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지식인의 죽음

    그러면서도 박 교수는 “유인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사람이라면 지식인을 자처하지 말아야 한다”며 이런 말을 덧붙였다. ‘지식인의 죽음’이 회자되는 시대에 되새겨볼 대목이 많다. 

    “우리나라 교수들은 외국에 비해 경제적 처우가 나쁘지 않다. 사회적인 존경은 정말 많이 받는 편이다. 받은 건 굉장히 많은데 지식인으로서의 역할에 대해서는 너무 무관심한 경우가 많다. 반성해야 한다. 경제학자가 그렇게 많은데 한국 문제 물어보면 ‘저는 잘 몰라서요’ 같은 대답으로 자기 회피를 한다. 거기에 대해 마음이 편하지 않아야 한다.”

    '신동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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