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 년 걸릴 연산 200초 만에 끝낸 양자컴퓨터
5년, 10년 내로 상용화
미국, 중국이 벌이는 제2의 핵 개발 경쟁
IBM 큐 시스템 원. [Flickr]
IBM 큐 시스템 원이 주목받은 이유는 상용화 목적으로 출시된 첫 양자컴퓨터라는 점에서다. IBM은 협력 기업들과 이 양자컴퓨터를 활용해 다양한 상용화 프로젝트를 진행할 계획이다. 삼성전자도 상용화 협력사로 참여하고 있다.
1만 년→200초
올해 10월 구글이 주목할만한 논문을 ‘네이처(Nature)’에 등재했다. 논문 제목은 ‘프로그래밍 가능한 초전도 회로 활용의 양자 우위(Quantum Supremacy Using a Programmable Superconducting Processor)’. 이 제목에서 ‘양자 우위’라는 표현이 중요하다. 양자 우위는 양자컴퓨터가 최고 성능을 가진 슈퍼컴퓨터를 앞지르는 시점이다. 그러려면 양자 컴퓨팅 능력이 50큐비트에 도달해야 한다.지금껏 IBM과 구글만이 양자 우위에 도달한 양자컴퓨터를 선보였다. 구글의 네이처 논문 이전까지 양자 우위를 증명한 연구 결과는 없었다. 구글이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IBM의 최고 성능 슈퍼컴퓨터로 1만 년 걸릴 연산을 구글의 양자컴퓨터로 200초 만에 끝냈다. 다만, IBM은 구글의 논문을 반박하고 있다. 해당 연산은 IBM 슈퍼컴퓨터로 이틀 반이면 끝낼 수 있다는 주장이다. IBM의 반박이 사실이더라도 구글의 양자컴퓨터는 양자 우위를 입증한 것이다.
일부 전문가는 “구글의 양자컴퓨터가 해당 연산에 맞게끔 고안됐기 때문에 양자 우위가 가능했다”고 분석했다. 특정 연산에서만 양자 우위를 기록한 것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더라도 낙담할 필요는 없다. 구글, IBM 두 회사 공히 양자컴퓨터 상용화 가능성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꿈의 컴퓨터’가 눈앞에 다가온 것이다. 시장조사 전문기관 가트너(Gartner)는 “5년, 10년 내로 양자컴퓨터가 상용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양자컴퓨터는 물리학에서 발견한 양자를 컴퓨터 연산에 활용한 것이다. 1900년 막스 플랑크(Max Planck)가 양자 이론을 처음으로 제시한 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이 광양자 이론을 발표했으며, 1913년 닐스 보어(Niels Bohr)는 양자를 포함한 새로운 원자 모형을 제시했다.
1900년 막스 플랑크가 발견
양자컴퓨터 상용화는 1900년 양자 발견 이후 100년을 기다려온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양자컴퓨터는 ‘꿈의 컴퓨터’로 불린다. 양자가 가진 특성을 활용해 연산 능력을 기하급수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양자의 특성 중 하나가 중첩(Superposition)이다. 기존 컴퓨터는 이진수 방식으로 연산을 처리한다(0과 1의 값으로 정보를 저장해 직렬로 처리). 양자컴퓨터는 중첩을 통해 값을 병렬 처리할 수 있다. 이진수 정보 처리는 ‘비트 방식’, 중첩 정보 처리는 ‘큐비트 방식’이라고 칭한다.
예컨대 2비트가 가진 정보량은 2의 제곱근(00, 01, 10, 11)이다. 기존 컴퓨터는 00, 01, 10, 11 중 하나밖에 저장하지 못한다. 00, 01, 10, 11을 모두 저장하려면 4번의 직렬 처리가 필요하다. 양자컴퓨터는 00, 01, 10, 11을 중첩해 한 번에 저장할 수 있다. 병렬로 한 번에 정보를 다루는 것이다.
기존 컴퓨터의 연산 능력은 트랜지스터의 수에 비례해 발전했다. 기존 컴퓨터의 연산 능력은 특정 면적 안에 트랜지스터를 더 많이 넣을수록 향상된다. 트랜지스터가 전류의 흐름, 끊김을 이용해 0과 1로 비트 정보 처리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반도체에서 트랜지스터를 얼마나 경량화하느냐가 중요했다. 트랜지스터가 나노미터(nm·10억 분의 1m) 수준으로 작아지면서 경량화가 한계에 도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양자컴퓨터는 기존 컴퓨터가 직면한 연산 능력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
기존의 슈퍼컴퓨터는 엄청난 수의 트랜지스터를 내장하기에 차지하는 면적이 크고 에너지 소모도 심하다. 일례로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슈퍼컴퓨터인 중국의 텐허 2호는 축구장 절반 면적을 차지한다. 텐허 2호의 에너지 소비량은 1만 가구가 사용할 수 있는 24메가와트(MW)에 달한다.
초지능 AI
양자컴퓨터는 연산 속도가 구글이 발표한 논문처럼 기존 컴퓨터보다 수만 배 빠른 데다 차지하는 면적과 에너지 소모도 적다. 양자컴퓨터는 인공지능(AI) 기술 개발의 촉매제로도 활용될 수 있다. 양자의 중첩을 활용한 병렬 처리는 복잡한 요인을 계산해야 하는 AI에 매우 유용하다.알파고를 예로 들어보자. 알파고는 바둑판에 둬야 할 경우의 수(250의 150 제곱근)를 딥 러닝을 통해 줄임으로써 인간에게 승리했다. 놀라지 마시라! 바둑판에서 경우의 수는 우주의 원자 개수보다 많다. 그런데 양자컴퓨터는 딥 러닝마저 필요 없게 할 수 있다. 모든 경우의 수를 계산해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양자컴퓨터가 가져올 AI 기술 발전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양자컴퓨터와 AI가 만났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현재로서는 예측하기 어렵다. 인류가 통제할 수 없을 정도의 사고 능력을 가진 AI가 등장할 수도 있다.
양자컴퓨터는 현재의 암호체계도 위협할 수 있다. ‘대칭 암호 알고리즘’과 ‘비대칭 암호 알고리즘’이 현재 사용되는 암호체계다. 대칭 암호 알고리즘은 하나의 열쇠로 특정 내용을 암호화하거나 복호화(디지털 신호를 전송할 때 송신 측에서 입력 데이터를 임의 부호로 변환해 전송한 후 수신 측에서 임의 부호로부터 원래 데이터를 복원하는 것)할 수 있다. 네트워크 통신에서도 해당 열쇠를 교환해 통신 내용을 암호화하고 복호화할 수 있다. 이 같은 방식은 열쇠가 노출될 경우 해킹이 가능하다.
암호화폐도 뚫는다
눈앞에 다가온 양자컴퓨터 상용화가 암호화폐 비트코인 위기론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NeedPix]
공인인증서를 예로 들어 설명해보겠다. 공인인증서는 비밀 열쇠 보관함이다. 공인인증서로 ‘나’임을 확인한 후 은행에 ‘내’가 가진 공개 열쇠가 전달된다. 은행은 전달된 공개 열쇠를 이용해 금융거래 내용을 암호화해 ‘나’에게 전달한다. 암호화된 내용은 ‘내’가 가진 비밀 열쇠로만 풀 수 있다.
양자컴퓨터는 공인인증서를 해킹할 수도 있다. 공개 열쇠에 적용된 암호화를 풀어 비밀 열쇠를 추출해내면 된다. 해커가 양자컴퓨터를 갖고 있다면 개인과 은행이 통신하는 과정에서 금융거래를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이다. 공인인증서를 탈취할 수도 있다. 해커가 비밀 열쇠를 확보했다면 그것으로 본인 식별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양자컴퓨터의 등장은 암호화폐에도 적신호다. 비트코인 시세는 앞서 언급한 구글 논문 발표 직후 9% 하락했다. 일부 분석가는 양자 컴퓨팅이 비트코인 시세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봤다. 암호화폐는 암호체계를 활용해 개발됐기 때문이다.
비트코인 거래는 비대칭 암호 알고리즘을 통해 이뤄진다. 수신자의 공개 열쇠를 활용해 코인을 암호화한 후 송금하는 구조다. 수신자의 공개 열쇠로 암호화되기에 수신자의 개인 열쇠로만 송금 내용을 풀 수 있다. 그런데 앞서 설명했듯 해커가 양자컴퓨터로 공개 열쇠를 해킹해 수신자의 개인 열쇠를 알아낼 수 있다. 이는 코인 송금을 중간에 가로챌 수 있다는 뜻이다.
양자컴퓨터는 비트코인 데이터의 무결성(데이터의 정확성과 일관성을 유지하고, 결손과 부정합이 없음을 보증하는 것)도 위협한다. 블록체인의 무결성을 견고하게 하는 암호화 알고리즘을 공격하려면 이론적으로 2의 130승만큼의 연산이 필요하다. 현재 컴퓨팅 파워로는 천문학적 시간이 소요된다. 필자가 개산해본 결과 2조5000억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양자컴퓨터는 수분 만에 블록체인 내에 저장된 정보를 위조할 수 있다.
양자컴퓨터는 제2의 핵 개발 전쟁
미국 싱크탱크 허드슨연구소(Hudson Institute)는 양자컴퓨터 개발을 제2차 세계대전 때의 핵무기 개발 경쟁에 빗댄다. 앞서 설명했듯 양자컴퓨터가 기존 암호체계를 무력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허드슨연구소는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양자컴퓨터 기술이 발전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제2의 핵 개발 전쟁을 벌이는 셈이다.양자컴퓨터는 기존의 정보통신기술(ICT) 체계를 송두리째 바꾸는 혁신형 기술이므로 국가의 산업 경쟁력과 밀접하다. 또한 사이버 전쟁, 즉 국가 안보에도 중요하다. 한국도 양자컴퓨터가 가져올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