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과’ 예상하면서 ‘대응 자료’ 만들어 내부 단속
문건, “정보경찰 유지해야 한다” 주장
문건, “자치경찰제 도입 필요성 공감, 시범실시 적극 지원”
문건, “(검찰의) ‘지휘’ ‘명령’ 삭제하거나 ‘촉탁’ ‘요구’로 바꿔야”
문건, “검찰 부패 등 폐단 100년 전 시작됐다”
경찰청 수사개혁단 “검찰발(發) 비판에 대한 경찰 입장 설명한 문건”
수사 경찰 “수사권 조정하지 말아야” 의견도
검찰만큼이나 경찰도 불신
‘신동아’가 입수한 경찰청 수사구조개혁단 문건.
경찰은 국회에서 논의 중인 검찰개혁 관련 법안 통과 추이를 관망하는 듯하다. 검찰개혁 열망이 높은 만큼 가만히 있어도 경찰의 숙원인 수사권 조정 관련 법안이 통과될 것으로 예상하는 눈치다. 국민의 불신을 씻을 만한 강도의 경찰발(發) 자체 개혁안은 좀처럼 나오지 않고 있다.
경찰은 국회에서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형사소송법·검찰청법 개정안에 대해 대외적으로 함구하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속으로는 형사소송법·검찰청법 개정안의 통과를 바라는 모양새다.
‘신동아’ 취재 결과, 경찰 내부적으로는 현재 안(案)에 만족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면서도 수사권 조정안의 구체적 내용 설명과 조정안 반대 의견에 대한 반박 자료까지 내부적으로 공유하면서 집안 단속에 나서고 있다.
‘신동아’가 전직 경찰 고위관계자를 통해 입수한 경찰 내부망 문건은 국회에서 논의 중인 신속처리안건(형사소송법·검찰청법 개정안)을 ‘과도기적 안’으로 규정했다. 이 문건은 경찰청 수사구조개혁단에서 작성한 것이다.
수사구조개혁단은 이 문건에서 “지정된 형소법, 검찰청법 개정안은 검사의 직접수사 범위를 여전히 폭넓게 규정하고 있고, 검사의 송치요구권·징계요구권 등 경찰 수사에 대한 여러 통제 장치를 담고 있어 경찰 수사의 주체성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는 진정한 수사·기소 분리의 실현보다는 대한민국의 형사 사법 시스템이 사법민주화 원리가 작동되는 선진 수사 구조로 변화하기 위한 ‘과도기적 안’으로 볼 수 있다”고 규정했다. 이렇듯 온전히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통과를 바라는 게 경찰 내부 분위기다.
“정보경찰 유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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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또 다른 경찰 내부 문건은 “국회 협의 사항 일부가 법안에 담기지 않았고, 수사 지휘가 폐지됨에 따라 당연히 정비돼야 할 지휘, 명령 등 용어가 남아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문건은 검찰의 수사 지휘 폐지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상황에서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 문건은 “수사 지휘가 폐지된 만큼 이 조항들도 당연히 용어 정비가 돼야 하므로 ‘촉탁’ ‘요구’ 등으로 변경하거나 삭제해야 한다”고 봤다.
경찰 내부 단속도 잊지 않았다.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 비대화 우려 등 대응자료’ 문건은 경찰의 수사권 확보 등에 대한 비판적 지적을 반박할 수 있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수사’와 관련해 수사구조개혁단은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 수사는 현재보다 두텁게 통제”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형소법 개정안에 따르면 검사는 △경찰이 수사한 모든 사건기록 검토 △보완수사 요구 △등본송부 요구 △시정조치 요구 △직무배제 또는 징계요구 송치 요구 등의 경찰 통제 기능을 갖는다는 이유를 들었다.
논란이 있는 자치경찰제 도입에 대해서는 “치안행정의 효율성과 민주성을 구현하고 주민 밀착형 치안 서비스 제공을 위해 도입 필요성에 공감한다”는 견해를 밝히며 “자치분권위에서 법무부 등 관계부처의 의견을 수렴해 마련한 협의안을 바탕으로 연내 시범 실시를 목표로 경찰법·경찰공무원법 개정을 위한 국회 심의에 적극 지원 중”이라고 표현했다. 자치분권위안은 국가경찰 체제를 근간으로 자치경찰을 도입하는 이원화 안으로 2022년까지 자치경찰 사무 이관 범위에 상응하는 인력 4만3000여 명을 단계적으로 이관하는 안이다.
“100년 전 시작된 검찰 폐단” 경찰은 당당한가?
문건은 정치 관여와 사찰로 문제가 된 정보경찰을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 수사구조개혁단은 “치안행정을 목적으로 필요한 정보를 수집·작성·배포하는 것은 공공안녕에 대한 위험의 예방과 대응을 위해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정보경찰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강화하고 업무 영역을 공공안녕과 질서 유지로 한정하는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문건에 따르면 경찰청은 2019년 상반기 정기인사에서 정보경찰 정원의 11.3%를 감축하고 준법지원계 신설 등 정보국 조직 개편을 실시했다. 정보경찰 인력 현황도 공개되지 않은 상태에서 감축 수치만 놓고 보면 정보경찰 폐지 주장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으로 비칠 수 있다.경찰청 수사구조개혁단 관계자는 문건과 관련한 ‘신동아’의 질의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국회에 제출한 것인지, 설명자료인지 어떤 용도로 만들었는지 지금은 확인이 안 된다. 대응자료는 경찰 비대화 우려 대응이라고 해서 엄청난 공작을 한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은데 내용을 보면 그렇지 않다. 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이 비대화되는 게 아니라는 논리를 설명한 것이다. 검찰 측에서 신속처리안을 비판하는 문건을 많이 작성하고 언론에도 나왔다. 검찰발(發) 비판에 대한 경찰의 입장을 설명한 자료로 보면 된다.”
경찰 지휘부는 강력한 내부 개혁 없이 검찰로부터 ‘빼앗을 또는 되찾아올’ 수사 권력에만 치중하는 모습이다. “100여 년 전 일제강점기에 시작된 검사 지배형 수사 구조는 그간 부정부패, 권한 남용 등 많은 폐단을 낳았다”고 비판하면서 “이제 검찰개혁과 수사권 조정은 시대적 과제가 됐다”고 밝힌 경찰 내부 문건에는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공간, 역대 정권에서 행한 경찰의 잘못에 대한 성찰이나 고민은 찾아볼 수 없다. 경찰개혁 없는 검경 수사권 조정은 공염불이 될 수 있다.
수사 초보 사법경찰관이 지휘, 베테랑 사법경찰리는 수사보조
“누가 누구를 지휘하느냐”
“수사권 조정하지 말아야 한다.”
한 현직 경찰의 자조 섞인 말이다. 수사 경찰들 사이에서는 경찰의 수사권 강화가 부메랑이 돼 경찰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견해도 나온다. 경찰 수사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외면한 상태에서 가져온 수사권으로 인해 경찰 신뢰도 하락, 내부 갈등이 더욱 심각해질 것이란 주장이다.
“제발, 수사 좀 아는 사람이 팀장, 과장이 돼야 한다”고 상당수 수사 경찰이 지적한다. 수사 경찰은 보통 경찰공무원 시험 합격자로 순경 계급에서 시작한다. 순경에서 네 단계 진급해야 경위로 수사팀장이 될 수 있다. 간부후보생 출신, 경찰대 졸업생이 수사팀장의 대다수를 차지하게 마련이다. 잔뼈가 굵은 수사 경찰들은 미숙한 팀장의 지시 및 수사 지휘와 관련해 고충을 토로한다. 수사 경력이 짧은 팀장이 경장, 경사 계급의 경찰에게 수사 절차, 법령, 집행 방법을 물어보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와 관련해 경찰은 8월 수사 과·팀장의 수사지휘 역량평가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개혁안에 따르면 수사팀장 자격은 최근 10년간 총 수사 경력 5년 이상 또는 죄종별 수사 경력 2년 이상이어야 한다. 특정 수사 경력 2년 이상이면 사실상 팀장을 맡을 수 있어 실효성이 의심된다. 수사과장의 경우 총 수사 경력 6년 이상 또는 죄종별 3년 이상이다. 순경에서 팀장 직급인 경위까지 근무기간에 따른 자동진급 연수가 15.6년인 구조에서 경찰이 내놓은 개혁안은 내부 특정 집단을 위한 방안으로 비칠 수 있다. 일선 수사 경찰들 사이에서 “누가 누구를 지휘하느냐”라는 뒷말이 나오는 이유다.
형사소송법상 사법경찰관·리를 구분하는 것도 논란이다. 현행법상 사법경찰관은 경위 이상이며 경사, 경장, 순경은 사법경찰리다. 현행법은 “사법경찰관은 범죄의 혐의가 있다고 인식한 때에는 범인, 범죄사실과 관련해 수사를 개시해야 한다” “사법경찰리는 수사의 보조를 해야 한다”고 명시한다. 경찰 내부에서 실제 수사를 진행하고 관련 문서 작업까지 책임지는 수사 경찰이 경사, 경장 직급인 현실과 맞지 않는다. 특히 수사의 ‘주된’ 역할을 수행하는 인력을 단순 ‘보조자’로 명시함으로써 경찰 인력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순경 출신 경찰의 의욕을 떨어뜨리고 있다.
사법경찰관·리의 구분은 특히 현실 수사와도 동떨어진 제도다. 긴급체포, 압수수색 등 강제처분의 경우 사법경찰관의 수사 지휘가 필요하나 급박한 현장 상황에서 수사팀장 부재 시 경사, 경장, 순경의 판단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다. 범인이 눈앞에 있는데 어느 경찰이 가만히 보고 있겠느냐는 말이다. 전직 경찰 간부는 “사법경찰관·리 제도는 일제강점기 잔재로 수사 경찰은 수사관으로 통합하는 게 옳다”며 “현재 규정대로라면 검사는 사법경찰관을, 사법경찰관은 사법경찰리를 지휘하는 다층 지휘 구조로서 실제 현장과 동떨어진 제도”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