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사태’ 거치며 ‘품격의 저격수’ 타이틀
안경환 혼인무효 판결문 폭로로 낙마시켜
딸 표창장, 아들 인턴 증명서는 曺 사임 ‘스모킹건’
檢 “장관에게 당했다” 말 듣고 ‘조국 통화’ 직감
단군 이래 공직자 중 이런 위선자가 있을까
국민은 데이터와 팩트로 승부 내는 ‘품격’ 원해
‘조국 동생을 주시하라’ 제보가 단서
국민보다 조국 살핀 文, 정무수석의 오만
[박해윤 기자]
11월 5일 국회에서 만난 주광덕 자유한국당 의원은 씁쓸하게 웃어넘겼다. 그는 이른바 ‘조국 사태’를 거치며 ‘저격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풍부한 자료를 바탕으로 한 정치한 문답은 ‘조국 국면’에서 여러 새로운 사실을 밝혀냈다. 조국 법무부 장관이 자택을 압수수색한 검사와 통화한 사실, 가족이 투자한 사모펀드가 처남 등 가족 펀드라는 것도 세상에 알렸다. 딸의 표창장과 아들의 ‘인턴십 활동증명서’ 위조 의혹을 제시하며 검찰 수사를 이끌어낸 건 조 장관 사퇴의 ‘스모킹건’이 됐다. 당황한 여당은 “단순한 피의사실 유출이 아니라 내통한 것”(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이라며 주 의원과 검찰의 유착 의혹을 제기했다.
조국 사건은 역사적 큰 전환점
그도 그럴 것이, 주 의원은 2017년에 또 다른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낙마시켰다. 조 전 장관 스승인 안경환 후보자(서울대 명예교수)가 과거 교제하던 여성의 도장을 위조해 혼인신고를 했다가 혼인무효 판결을 받은 판결문을 공개한 것이다. 문재인 정권의 염원인 ‘검찰개혁’을 위해 대통령이 ‘최고의 적임자’라고 내세운 2명을 날려버렸으니, 여권의 심정도 십분 이해된다.사제(師弟)를 동시에 낙마시키면서 주 의원은 홍준표 전 대표, 주성영 전 의원 이후 자취를 감춘 보수 정당의 저격수 명맥을 이었다는 평가다. 그러나 과거 저격수와는 결이 조금 달랐다. 인사청문회든 대정부질문이든 그는 상대에게 존댓말을 쓰고 차분하게 질문한다. 답변을 충분히 들은 뒤 정곡을 ‘저격’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결국 조 장관은 사퇴하고 아내 정경심 동양대 교수는 구속됐다.
“‘조국 사건’은 역사적으로 큰 전환점이 됐다고 본다. 평소 정의의 화신인 듯 말해온 인사가 알고 보니 정의와 도덕성에 더 취약했고, 우리나라 입시 제도를 가장 잘 아는 교수 부부가 자녀 ‘황제 스펙’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은 위선자였음이 밝혀졌다. 단군 이래 고위공직자 중에 이런 위선자가 또 있었을까. 국민들이 균형 있게 판단하는 데 일조했다는 사실에 보람을 느낀다.”
- 9월 26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당시 조 장관이 자택을 압수수색한 검사와 통화한 사실을 밝혀냈다.
“사실 나도 깜짝 놀랐다. 장관 자택을 압수수색했으니 검찰 간부가 직·간접적으로 전화해 ‘수색을 신속하게 해달라’는 뜻을 전했을 거라고 추측했다. 앞서 법무부의 김오수 차관이나 이성윤 검찰국장이 대검 간부들에게 ‘윤석열 검찰총장을 제외한 특별수사팀’ 구성을 제안하지 않았나. 그런데 장관이 직접 전화했다고 하니, 나도 상상 못했다.”
- 여당은 ‘주 의원이 검찰과 내통했다’며 반발했고, 일부 언론은 주 의원이 윤석열 검찰총장과 사법연수원 동기(23기)여서 ‘친하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기가 찼다. 신림동에서 함께 공부하고 1박2일 여행을 다녔다는 둥 온갖 거짓말이 쏟아지더라. 그날 대정부질문에서 ‘전화했느냐’고 물었을 때 조 장관은 ‘안 했다’거나 ‘내가 한 적 없다’’고 답변할 줄 알았다. 그래서 다음 질문으로 ‘그럼 누가 (전화)했나요’라고 물으려던 참이었다.”
“曺, ‘직접 통화’ 발언에 깜짝 놀랐다”
- 당시 이낙연 국무총리 등 여권은 ‘여성만 있는 집에 남성들이 11시간 동안 뒤지고 식사를 배달해 먹었다’며 거세게 비난했다.“9월 23일 압수수색 후 24, 25일 여권과 언론이 검찰을 맹비난했다. 마치 ‘해결사’들이 남 집에 들어가 행패를 부린 것처럼 과잉 수사라고 했다. 이후 밝혀졌지만, 당시 조 전 장관 집에는 부인과 아들, 딸 그리고 남성 변호사 2명이 있었고, 검사와 수사관 6명 중 2명은 여성이었다. 변호인이 이의를 제기하니 검찰이 두 차례 추가 영장청구를 해 시간이 꽤 걸린 거다. 이 과정에서 들은 게 ‘압수수색 나간 관계자들이 억울해한다’ ‘조 장관에게 당했다더라’는 말이었다.”
- 조 장관에게 당했다? 누가 전했나.
“어딜 가든 조직 돌아가는 분위기를 전하는 정보통은 있기 마련이다. 이 말을 전해 듣고 생각했다. ‘장관에게 당했다’는 하소연은 ‘장관 측으로부터 어떤 언질을 받아 나름대로 배려하면서 수색했는데, 이후에 뒤집어씌우니 억울해하는 거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법무부에서 어떤 ‘요청’이 있었을 거라고 추론해 물어봤고, 조 장관이 덥석 받았다. 그런데 여당 최고위원(박주민 의원)은 나와 윤 총장이 친하고, 1박2일 놀러 다닌 사이라며 소설을 쓰더라. 아무리 아프다고 해서 거짓말을 하면 되나. 그래서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바로 (박 의원을) 고소했다.”
아들 ‘인턴십 증명서’ 미스터리
주광덕 자유한국당 의원이 9월 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아들의 ‘인턴십 활동증명서’ 위조 의혹을 제기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안철민 동아일보 기자]
“내가 수집한 자료에 따르면, 동양대 총장 명의 상장 원본과 조 전 장관 딸이 받았다는 표창장은 일련번호 표기 등 양식이 달랐다. 아들의 인턴십 증명서도 활동 4년이 지난 2017년 10월 16일 발급됐는데, 그동안 다른 사람에게 발급된 증명서와 대조했더니 양식이 달랐다. 아들 증명서에는 유일하게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 직인이 찍혔고, ‘학교폭력 피해자의 인권 관련 자료조사 및 논문 작성’을 했다고 돼 있더라. 고교 2학년이 인턴십 하면서 논문을 작성할 수 있을까. 강한 의심이 들었다. 여기에 아들이 다니는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일반대학원에는 ‘대학 입학 이후 경력’만 인정돼 고교 시절 증명서는 제출할 이유가 없다. 제출했더라도 평가해선 안 된다. 그런데 아들은 2017년 (전반기에 치러진) 후기 대학원 입시에 불합격하고, (2017년 후반기에 치러진) 2018년 전기 입시에 재도전했는데, 처음 지원할 때 쓰지 않던 증명서를 두 번째 지원 때는 제출해 합격했다. 그렇다면 4년 뒤 발급받은 증명서 용도는 두 가지로 추론할 수 있었다.”
- 어떤 추론인가.
“우선 로스쿨에 지원했을 가능성이다. 로스쿨에는 이 증명서가 유효하기 때문에 증명서를 발급받고 로스쿨 입학 지원에 사용했을 수 있다. 그리고 이 증명서가 필요치 않은 연세대 대학원에 제출한 것은 ‘블라인드 테스트’를 회피하기 위한 것 아닌가 하는 합리적 추론이 가능하다.”
- 대학원 입학 전형에서 면접위원들에게 증명서를 낸 사람이 조 전 장관 아들이라는, 일종의 ‘암시’였다?
“그렇다. 블라인드 테스트를 회피하기 위해 요청하지도 않은 서류를 일부러 냈을 수 있다. 누군가가 ‘그 애를 합격시켜라’는 메시지를 줬다면, 첨부된 ‘증명서’를 보고 누구인지 특정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면접위원들의 점수표를 확인해야 했다. 중요 단서였다. 그런데 문제 제기를 한 후 검찰이 압수수색했더니 점수표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2016~18년 1학기 입학자 전원의 면접 점수표가 통째로 사라진 거다. 이게 말이 되나. 이 사건도 검찰 수사를 지켜봐야겠지만, 나는 조 전 장관 아들의 연세대 대학원 입학 과정에서도 부정이 있었다고 확신한다. 이 내용을 물을 때 조 전 장관 목소리는 떨렸고, 태도도 달랐으니까.”
- 어떻게 달랐나.
“9월 6일 인사청문회 때 아들이 연세대 대학원 입학 전에 ‘로스쿨에 입학지원을 한 적 있느냐’고 물었더니 ‘지원했는데 떨어졌다. 무슨 의혹이 있느냐’며 대들면서 답변하더라. 이러한 답변 태도는 경험상 뭔가를 숨기고 싶어 한다는 증거다. 청문회든 대정부질문을 하든 눈빛이나 표정, 목소리의 떨림 정도로 거짓말 여부를 직감할 수 있고, 이때 다른 자료를 내밀면 당황하면서 실토하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 아들은 지방 소재 로스쿨 두 곳에 응시했고, 이 증명서를 활용한 게 밝혀졌다. 로스쿨에 지원하려고 급히 서류를 위조했을 가능성도 확인했다. 내통, 내통 하는데, 실제 내통한 건 검찰이 아니라 조 전 장관의 목소리와 눈빛이다.”
- 경험에 의한 추론이 바탕이 된 거 같은데.
“그렇다. 조 전 장관 가족이 투자한 ‘조국 펀드’에서 처남 가족이 투자했다는 사실도, 웅동학원 공사대금 문제나 동양대 표창장 위조 의혹 등등 모두 기초 자료를 바탕으로 한 추론이었다. 사실 지난 8월 문 대통령이 장관 지명할 때만 해도 ‘사노맹 사건’(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목표로 한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사건으로 조 전 장관은 징역 1년을 선고받고 6개월 수감됐다) 외에는 뭐가 있겠나 싶었다. 그런데 튼튼한 댐이라도 작은 구멍에서 무너지듯, 작은 제보나 힌트가 큰 폭풍을 만들었다.”
작은 제보가 만든 큰 폭풍
- 어떤 제보였나.“부산 지역의 한 인사가 ‘조국 동생을 주시해보라’고 귀띔했다. 큰 단서가 됐다. 동생 주변을 살펴봤고, 웅동학원 관련 소송 판결문을 입수해 분석했다. 교육청에도 자료 요청을 하고, 현장에서 지역 주민들을 상대로 정보를 수집했다. 그랬더니 (조 전 장관) 동생과 이혼한 제수씨가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어 웅동학원을 상대로 공사대금 소송을 한 내용도 파악했고, 위장이혼이라는 확신도 가졌다. 안 밝힌 자료도 많다. 두 달 동안 서너 시간 자면서 집중하다 보니 어떨 때는 ‘조국 자신보다 내가 더 조국을 잘 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좌관들 수고가 많았다.”
- 주 의원은 2017년 6월 조 전 장관 스승인 안경환 후보자의 판결문을 공개했다. 당시 민정수석이던 조국 전 장관 사퇴를 주장했는데.
“당시 판결문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11시간 만에 안 후보자는 사퇴했다. 그때 조국 민정수석의 ‘검증 수준’을 알게 됐고, 사퇴를 요구한 거다.”
- 검증 수준이라면….
“대통령이 장관을 지명하면 청와대는 민정수석이 검토한 청문요청서를 국회로 보낸다. 거기에 후보자 제적등본도 포함돼 있는데, 등본에는 혼인무효 확정판결 사실이 나온다. 이혼도 아니고 혼인 자체가 무효라는 건데, 좀 이상했다. 예전에는 동성동본 간 혼인이 금지(2005년 민법개정으로 동성동본 금혼 규정 폐지)된 터라 혼인무효 사유로 동성동본 간 결혼했거나 근친혼을 떠올렸다. 그래서 의정자료 전자유통시스템을 통해 대법원에 판결문 사본을 요구해 30분 만에 제출받아 확인했다.”
- 당시에도 여권은 ‘검찰과 내통’ 의혹을 제기했는데.
“그러니까. 그때도 내가 ‘초스피드’로 판결문을 입수했다며 ‘내통했다’고 하더라. 어이가 없었다. 참 답답한 게, 43년 전 판결문이라도 PDF 파일로 이미 전산화돼 있어 사건번호와 사건 당사자, 판결 법원 등 키워드를 많이 입력하면 금방 찾는다. 청와대가 준 제적등본에 관련 키워드가 다 나온다. 단박에 알 수 있는 문제를 민정수석은 검토를 안 한 건지, 알면서도 눈감아줬는지 모르겠다. 결국 안 후보자가 사퇴하자 ‘부실 검증’ 비판이 쏟아졌다. 당시 청와대 관계자는 ‘박근혜 정부 인사검증시스템으로 검증하다 보니 걸러내지 못했다’고 하더라. 그럼 청와대가 준 자료를 가지고 걸러낸 우리는 ‘신의 손’인가. 조 전 장관 검증 수준이 이러니 ‘인사 참사’가 잇따를 수밖에….”
- ‘조국 사태’로 국론이 분열됐는데 책임지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문 대통령은 10월 14일 조 장관이 검찰개혁 방안을 발표하고 사퇴하자 “결과적으로 국민들 사이에 많은 갈등을 야기한 점에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도 “오늘 조 장관이 발표한 검찰개혁 방안은 역대 정부에서 오랜 세월 요구돼왔지만 누구도 해내지 못했던 검찰개혁의 큰 발걸음을 떼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대통령이나 여권 지도부 사과도 형식적이었고, 상응한 조치가 없었다. 근원적으로 보면 문 대통령이 ‘나는 할 만큼 했다’는 시그널을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닌가 생각한다.”
국론 분열, 책임 안 지는 이유
- 할 만큼 했다?“생각해보라. 문 대통령은 조 장관 사퇴 이후에도 연일 그에게 ‘훈장’을 달아주는 말을 여러 번 했다. 국민이 분노하는데도, 청년들이 시위를 해도 국민보다는 조국 심리를 살피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조 전 장관이 검찰개혁에 큰 디딤돌을 놓은 것(청와대 관계자 발언)으로 평가한다. 결국 조 전 장관이 대통령과 가족, 측근 관련 의혹과 약점을 잘 알기 때문에 사퇴 이후에도 훈장을 달아주는 게 아닌가 싶다. 물론 야당의 견제 기능이 약하고, 대통령과 여당의 떨어진 지지율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오만함도 작용했다고 본다. 청와대의 오만함은 (11월 6일 국회 운영위원회의 청와대 국정감사에서) 강기정 대통령정무수석이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가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에게 질의하는데) 벌떡 일어나 고함치고 삿대질한 데에서도 잘 드러난다.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고, 분노 이전에 굉장히 실망했다.”
- 평소 ‘핏대’를 세우는 성격은 아닌 거 같다. 주 의원 기사 댓글에는 ‘치열하게 싸워도 상대를 배려하고 품격 있는 언어를 쓴다’는 평가가 많던데(주 의원은 ‘제7회 국회를 빛낸 바른정치언어상’ ‘제5회 국회의원 아름다운 말 선플상’을 받기도 했다).
“기본적으로 여든 야든, 사람을 존중하는 마음이 없다면 정치를 해선 안 된다. 기업인이든 노동자든 그분들의 성취와 기여에는 존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고,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배타적으로 대해선 안 된다. 자극적인 말로 모멸감을 느끼게 하는 게 아니라 구체적인 데이터와 팩트로 상대를 꼼짝 못하게 해야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다. 국민들은 품격 있는 사회와 문화를 원한다.”
- 호통치지 않고 ‘차분한 페이스’를 유지하는 비결은 뭔가.
“원래 성품도 격정적이지 않다(웃음). 초임 검사 시절에 스님 한 분을 만났는데, 검사로서의 어려움을 토로했더니 ‘피의자에게 존댓말을 하면서 단전호흡을 해보라’고 하더라. 따라 해보니 조사 시간은 조금 더 걸렸지만, 결국 자백을 받아냈고, 평정심도 유지되더라. 대신 사전 조사를 더 많이 해야 한다. 그래야 여유가 생긴다.”
‘빈농의 아들’이 깨우쳐준 세상
- 한국당 의원들은 종종 ‘욱’하거나,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발언으로 구설에 오른다.“국민과의 공감·인지 능력이 떨어지는 거다. 이 문제는 다짐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절실한 마음으로 국민에게 다가가 공감해야 한다. 나는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초등 5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당시만 해도 아버지가 안 계시면 무시당하는 것은 물론 전체 집안 노동력의 80%가량이 사라진다. 그래서 어릴 적부터 논농사 밭농사는 원 없이 했다. 아랫집 아저씨가 10만 원 내고 사온 송아지를 2년간 키워 추석 때 장에 팔아 판매금의 절반을 나눠 가지기도 했다. 2년간 소 키우느라 고생한 가족들에 비해 자본가의 이득이 많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성장하다 보니 ‘자동적으로’ 사회 약자, 서민 눈높이에서 세상을 보게 됐고, 서민과 약자를 대변하는 정치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18대 국회 개혁 성향 초선 모임인 ‘민본 21’에서 활동했고, 2011년 말 당 비상대책위원으로 임명됐을 때는 박근혜 당시 비대위원장에게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 포기’ ‘헌정회 연금 포기’ 등 특권 내려놓기를 요구해 주목받았다.
“국민 시각으로 보면 의원이 얼마나 특권을 누리는지 다 보인다. 그리고 나는 계파가 없고, 계파 수장들이 불러준 적도 없다. 그래서 비교적 자유롭다. 어느 당이든 소장파 의원들이 제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인터뷰 말미에 기자는 ‘이태원 살인사건’에 관해 물었다. 의원실 서재에 꽂힌 ‘이태원 살인사건, 나라가 눈물 닦아 주어야!’라는 제목의 ‘2018년 국정감사 자료집’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이태원 살인사건’은 서울 이태원의 한 패스트푸드점 화장실에서 대학생이던 고 조중필 씨(당시 22세)가 수차례 흉기에 찔려 살해된 사건이다. 당초 검찰은 미국인 에드워드 리와 아더 존 패터슨 가운데 리를 범인으로 기소했지만 그는 1998년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이 사건은 ‘피해자가 존재하고, 둘 중 하나가 살인범인 것은 확실하지만 둘 다 풀려난 이상한 미제사건’으로 남았다. 그러던 중 2009년 9월에 이 사건이 영화(‘이태원 살인사건’)로 만들어지면서 국민적 관심을 끌었고, 결국 패터슨은 2015년 9월 23일 인천공항을 통해 송환돼 2017년 1월 징역 20년형이 확정됐다.
‘이태원 살인사건’ 진범, 법정에 세우다
주 의원은 2009년 9월 ‘오리무중’이던 패터슨이 미국에서 재판 중이라는 보도를 보고는 국정감사와 대정부질문을 통해 ‘서둘러 범죄인인도요청 청구서를 작성하라’고 강하게 몰아붙였다. 2009년 12월 2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록에는 그가 당시 이귀남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미국으로부터 (이태원 살인사건 피의자 패터슨이) 동일인임을 법무부에서 확인한 것이 (2009년) 10월 15일인데 왜 두 달간 법무부에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느냐”며 강하게 몰아붙이며 범죄인인도요청 청구서 작성을 약속받는 모습이 생생히 담겼다. 그러나 이후에도 진전은 없었다. 패터슨의 거주지를 모르는 데다, 정부도 미온적이었다. 주 의원은 패터슨이 재범을 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일일이 미국 법원의 재판기록을 확인하던 중 그가 2011년 5월 폭행 혐의로 구금된 사실을 처음 확인했다. 이 사실을 정부와 언론에 알렸고, 11월 국회 예산결산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당시 김황식 국무총리를 상대로 정부의 안이한 태도를 질타했다. 결국 서울중앙지검이 12월 9일 패터슨을 기소한 뒤에야 패터슨을 한국 법정에 세울 수 있었다.“2009년 당시 여당 초선의원으로서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패터슨의 도주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고, 공소시효가 완성되기 전에 기소하라고 여러 차례 몰아붙이는 게 쉽지는 않았다. 둘 중 한 명이 범인인 것이 확실하다면 검찰은 공동정범으로 함께 기소해 법원에서 판결했어야 했다. 이 사건은 대한민국 수도 한복판에서 아무런 죄가 없는 우리 청년이 살해당한 사건이고, 대한민국 주권과 자존심의 문제였다. 당당하게 범죄인 인도를 요청해 우리 법정에 세워야지 정의가 바로 서는 거 아닌가. 이 사건은 국가 존재 가치에 대한 근원적 물음을 던진 사건이다. 당시 청년들은 ’범인이 미국인이어서 수사를 미적미적하는 거 아니냐’고 분노했다. 조국 사건이나 이태원 살인사건은 불공정에 대해 청년들이 분노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신동아 12월호
배수강 편집장
bsk@donga.com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키듯, 평범한 이웃들이 나라를 지켰다고 생각합니다. ‘남도 나와 같이, 겉도 속과 같이, 끝도 시작과 같이’ 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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