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고려하면 내년 후반기에야 설치될 것
최고 수혜자는 차기 대통령
권력 주변 文 정권 인사들 첫 수사 대상 가능성
DJ ‘대북 송금’ 사건처럼 前정권 부담 더는 데 활용할 수도
공수처 독소 조항은 부메랑, 初心으로 돌아가야
[뉴스1]
수사 대상은 국회의원, 법관과 검사, 차관급 이상 공무원, 국장급 이상의 감사원·국세청 같은 사정기관 공무원, 지방자치단체장, 장관급 장교, 그리고 대통령을 포함한 고위공직자의 배우자, 직계존비속 및 형제자매였다. 다만 기소권은 주지 않기로 했다.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기소권을 부여하자고 주장했지만 수용되지 않았다. 이 공수처 법안은 여야 공방 그리고 집권 세력과 검찰의 갈등 속에 17대 국회 폐회와 더불어 자동 폐기되고 말았다.
노무현, 문재인의 후회
2003년 4월 대통령민정수석 시절의 문재인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 6월 20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제4차 반부패정책협의회를 주재하고 있다(오른쪽). [김경제 동아일보 기자, 청와대사진기자단]
이런 대목도 나온다.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설치를 밀어붙이지 못한 것이 정말 후회스러웠다. 이러한 제도 개혁을 하지 않고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려 한 것은 미련한 짓이었다. 퇴임한 후 나와 동지들이 검찰에 당한 모욕과 박해는 그런 미련한 짓을 한 대가라고 생각한다.”
문 대통령은 2011년 6월 자서전 ‘문재인의 운명’에 이렇게 적었다.
“민정수석 두 번 하면서 끝내 못한 일, 그래서 아쉬움으로 남은 게 몇 가지 있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 불발과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지 못한 일도 그렇다.”
노무현 정부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폐지도 함께 추진했지만, 이 또한 실패했다. 여기에 대해서 문 대통령은 이렇게 적었다.
“중수부 폐지를 본격 논의하기 전에 대선자금 수사가 있었다. 그 수사를 중수부가 했다. 대통령이나 청와대는 검찰이 정권 눈치 보지 않고 소신껏 수사할 수 있게 보장해줬다. 이 수사로 검찰이 국민들로부터 대단히 높은 신뢰를 받게 됐다. 그 바람에 중수부 폐지론이 희석됐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중수부 폐지를 추진하게 되면 마치 대선자금 수사에 대한 보복 같은 인상을 줄 소지가 컸다. 그 시기를 놓치니 다음 계기를 잡지 못했다. 아쉬운 대목이다.”
대검찰청 중수부 폐지론은 역설적이게도 노 전 대통령 서거를 계기로 다시 불기 시작했고,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3년 4월 결국 폐지되고 말았다.
문 대통령은 지난 11월 8일 ‘공정사회를 향한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이렇게 언급했다.
“권력기관 개혁은 이제 마지막 관문인 법제화 단계가 남았다. 공수처 신설 등 입법이 완료되면 다시는 국정농단과 같은 불행한 일이 생기지 않고 국민이 주인인 정의로운 나라로 한발 더 다가갈 것이다.”
공수처 설치 법안은 이미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올라탔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12월 3일 이후 본회의에 상정해 표결 처리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상황이다. 자유한국당이 반대하더라도 민주당과 다른 야당들이 공조하면 처리하는 데 문제가 없다. 이번에는 꿈을 이룰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백혜련안’의 위험성
4월 25일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수처 법안을 접수하려고 국회 의안과에 진입을 시도하자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몸으로 막고 있다. [안철민 동아일보 기자]
두 안의 결정적 차이점은 인사권이다. 공수처장을 임명할 때, 법무부 장관, 법원행정처장,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여당 추천 위원 2명, 야당 추천 위원 2명으로 구성된 ‘추천위원회’가 후보자 2명을 추천하도록 한 것은 동일하다. ‘백혜련안’은 이후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한 반면에, ‘권은희안’은 국회 동의를 거치도록 했다. 공수처 검사를 임명할 때, ‘백혜련안’은 공수처장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한 반면, ‘권은희안’은 공수처장이 임명하도록 했다.
기소권에서도 차이가 난다. ‘백혜련안’은 판사와 검사, 경무관급 이상 경찰에 대해 제한적으로 부여하기로 한 반면에, ‘권은희안’은 부여하지 않도록 했다. 다만 ‘권은희안’은 공수처에서 수사한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을 때, 불기소 처분이 날 가능성에 대비해 ‘이의신청’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경우 기소 여부는 국민배심원단으로 구성된 ‘기소심의위원회’가 최종 결정한다. ‘권성동안’은 대통령의 인사권은 물론 기소권도 배제하는 방안이다. 명칭도 ‘반부패수사청’이고, 경찰 산하기관이어서 수평 비교가 적절한지 의문이 드는 방안이다. 그래서 공수처 무산을 의도하고 내놓은 방안 같기도 하다. 어떤 방안으로 최종 귀결될지 모르겠지만, 일단 주목해야 할 것은 ‘백혜련안’이다. 여기에 문 대통령의 복심(腹心)이 담긴 까닭이다.
최소한 중수부 부활? 장기집권사령부?
수사, 특히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의 ‘정치적 중립’을 지향해서 만드는 것이 공수처다. 그런데 ‘백혜련안’은 살아 있는 권력 핵심인 대통령의 개입 여지를 열어놓은 방안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기소권은 본래 대통령의 행정권에 속한다. 그것을 검사에게 위임한 것이다. 그럼에도 대통령의 자의적 판단에 따른 개입을 최대한 배제하는 것이 정치 선진국의 일반적 추세다. 민주화 과정을 통해 우리나라도 그런 방향으로 끊임없이 움직여왔다. 노 전 대통령이나 문 대통령 역시 본래 의도는 그것이었다. 하지만 ‘백혜련안’에는 독소 조항이 섞여 있다.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민주당은 아니라고 부인한다. 공수처장 ‘추천위원회’에 야당 추천 위원이 2명 들어가고, 7명의 위원 가운데 6명 이상이 찬성해야 인선이 이뤄질 수 있기 때문에, 대통령의 인사권은 충분히 견제 가능하다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보수 야당들은 여기에 의문을 제기한다. 2명의 처장 후보를 추천하는 현재 구조에서 여당이 선호하는 인물 1명과 야당이 선호하는 인물 1명이 추천될 것이고, 대통령이 결국 전자를 선택할 거라는 지적이다.
공수처장 이외에도 검사 임명에 대한 대통령 권한을 인정한 부분도 독소 조항이다. 공수처장이 제청한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대통령이 임명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공수처가 ‘장기집권사령부’가 될 것이란 지적을 내놓았다. 이 또한 과도한 우려라고 생각하지만, ‘백혜련안’은 결과적으로 제2의 대검 중수부 부활로 귀결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대통령, 곧 정권의 하명수사를 전담하는 조직을 말한다. 여기에서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를 할 것이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총선, 대선 감안하면 차기 대통령이 ‘칼자루’
4월 23일 국회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긴급 의원총회에서 발언하는 황교안 대표(왼쪽). 4월 26일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원총회를 하기 위해 회의장에 들어선 이해찬 대표. [안철민 동아일보 기자, 장승윤 동아일보 기자]
총선이 끝난 뒤에도 곧바로 ‘추천위원회’가 만들어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총선 결과에 따라 정국이 요동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어느 정당이건 패배한 쪽은 지도부가 사퇴할 것이고,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접어들 것이다. 이런 마당에 공수처장 ‘추천위원회’ 구성에 신경 쓸 여력이 있을까. 혹시 민주당이 그런 처지에 봉착한다면 더할지도 모른다. 극심한 레임덕 국면으로 접어들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어렵사리 내년 후반기에 공수처가 만들어지더라도 실제 활동에 들어가는 데에는 준비기간이 필요하다. 2021년 전반기부터 가동에 들어가더라도 대선 국면에서 활동에는 상당한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변수들을 고려하면, 차기 정부에 들어가서야 비로소 조직을 완비하고 본격적인 수사 활동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1차 수사 대상은 누가 될까. 지난 정부, 곧 문재인 정부의 고위직 공직자가 될 공산이 크다. 문재인 정부 시절 야당 의원들보다는 여당 의원들이 수사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새로운 대통령과 집권 세력이 의도하지 않더라도 그렇게 될 것으로 봐야 한다. 비리와 부패는 언제나 권력 주변에서 발생해왔기 때문이다.
종편의 역설, 선진화법의 역설
더욱이 ‘백혜련안’대로라면, 대통령의 공수처에 대한 개입도가 매우 높아 정권 차원에서라도 그렇게 끌고 갈 위험성이 다분하다. 정권 교체가 이뤄진다면 그 위험성은 더 높아진다. 그래서는 안 되지만, 정치 보복의 도구로 활용할 여지가 없지 않다는 것이다. 정권 교체가 이뤄지지 않더라도 차별화 차원에서 지난 정권의 비리를 털고 넘어가려는 경향성은 배제하기 어렵다. 노무현 정부 초기 문재인 민정수석도 김대중 정부 시절 대북송금 사건을 그렇게 처리했다.이와 관련해, ‘종편(종합편성채널)의 역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명박 정부 시절 만들어진 종편의 최대 수혜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었다. 2012년 대선 과정에서 진보 진영이 종편을 외면하는 바람에 홍보 면에서 상당한 이익을 봤다. 하지만 탄핵 국면에서 가장 큰 기여를 한 것도 종편이었다. 공수처를 만들었지만 공수처에 당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국회선진화법(2012년 5월 여야 합의로 국회의장 직권 상정과 다수당의 날치기를 통한 법안 처리를 금지하도록 한 법안)을 만든 결과, 오히려 선진화법에 발목 잡힌 한국당을 보더라도 이해가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도 새로운 제도를 만들 때는 신중해야 한다. 무엇보다 순수했던 초심을 잃지 않아야 한다. 사심이 개입돼 한두 가지 독소 조항을 섞으면, 그것은 결국 화(禍)로 돌아오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