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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 이제는 예방이다

“마음의 병 충분히 예방할 수 있어요”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마음의 병 충분히 예방할 수 있어요”

  • ● “슬플 때는 언제든 울러 오세요”
    ● 눈물 흘리고 싶은 사람을 위한 특화 공간 ‘티티존’
    ● 청년을 위한 맞춤형 정신건강센터 ‘마인드링크’
    ● 소아청소년, 청장년, 노년 생애주기별 맞춤 대응
경기 화성시에 마련된 티티존. 마음껏 울고 싶은 사람을 위한 공간이다. [지호영 기자]

경기 화성시에 마련된 티티존. 마음껏 울고 싶은 사람을 위한 공간이다. [지호영 기자]

“슬프면 좀 슬퍼해도 괜찮아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아픔이 있다면 아프다고 이야기해도 괜찮아요.” 

혜민스님 책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의 한 부분이다. 경기 화성시 동탄호수공원어울림센터 안에 있는 화성시정신건강복지센터(센터) 앞. 유리문 옆에 쓰인 이 문장이 시선을 붙들었다. ‘슬퍼해도 괜찮다’ ‘울어도 좋다’는 이 공간을 관통하는 메시지다. 센터 문을 열고 들어서면 마음껏 울고 싶은 사람을 위해 만든 ‘눈물의 방’, 이른바 ‘T.T ZONE(티티존)’을 만나게 된다. 소파와 곰 인형, 은은한 조명에 든든한 방음벽까지 갖춘 곳이다. 지역 주민 박은주 씨는 얼마 전 이곳을 찾아 펑펑 눈물을 쏟아냈다. 그는 “직원이 티티존 문을 닫으면서 ‘여기 방음시설이 아주 좋아요. 걱정 없이 우셔도 돼요’ 하는데 마음이 놓였다. 이내 눈물이 흐르더라”고 털어놓았다. 

“특별히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니다. 엄마로, 아내로 살면서 그동안 꾹꾹 눌러둔 감정이 많았던 것 같다. 다들 그렇지 않나. 자기가 처한 환경에서 힘들어도 슬퍼도 ‘어른인데 이겨내야지’ ‘울면 지는 거지’ 하며 숨겨온 감정 말이다. 그렇게 뭉쳐 있던 것들이 ‘울어도 좋다’ 한 마디에 확 녹아내렸다. 혼자만의 공간에서 실컷 눈물을 흘리고 나니 마음이 가벼워지고 힘이 났다.” 

박씨 얘기다. 그는 동네 친구 김현진 씨 소개로 티티존을 처음 알았다고 한다. 김씨는 이 공간에서 먼저 눈물을 흘려본 ‘선배’다. 그때 치유의 감정을 느끼고 친구한테도 가볼 것을 권했다고 밝혔다. 그는 말했다. 

“돌아보면 나는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눈물은 참아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그게 습관으로 굳어져 혼자 있을 때조차 제대로 울지 못했다. 티티존에서 울음을 쏟고 나니 이것이 굉장히 힘 있는 행위라는 생각이 들더라. 한때 웃음치료가 유행했는데, 내 경험으로는 슬픔을 이기자고 억지로 웃는 것보다 감정을 숨기지 않고 펑펑 우는 편이 마음 건강에 훨씬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울어도 괜찮아”

9월 초 문을 연 티티존에는 벌써 많은 이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10월 말 현재 방문자 수가 103명에 이른다. 11월 초 센터에서 만난 최보민 간호사는 “오늘 오전에도 육아휴직 중인 38세 아빠가 이곳을 다녀갔다. 타인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편하게 울 공간을 찾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성별 연령에 관계없이 환영한다”고 밝혔다. 

센터에는 티티존 외에도 사별한 사람을 추모하며 애도 기록을 남길 수 있는 ‘메모리 존’, 여러 사람이 함께 슬픈 영화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눈물을 흘릴 수 있는 ‘힐링 존’ 등이 마련돼 있다. 전준희 화성시정신건강복지센터장은 이 공간들이 지역 주민의 정신건강 증진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여기 와서 한번 울고 감정적 어려움이 해소돼 다시는 안 오게 된다면 좋은 일이다. 그러지 않고 좀 더 깊이 있는 상담 등을 받기로 마음먹는다면 그 또한 좋다. 센터에는 그분들을 도울 전문가가 상주하고 있다. 현재 전국적으로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수백 곳에 이르지만 ‘우울증 검사하러 오세요’ 하면 여전히 방어적인 반응을 보이는 시민이 많다. ‘슬플 때 울러 오세요’ 하면 훨씬 가볍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겠나. 이처럼 정신건강복지센터 문턱이 낮아지면 여러 긍정적인 변화가 시작될 거라고 본다.” 전 센터장 설명이다.


행복하지 않은 한국인

청년에게 특화된 정신건강센터 마인드링크 로비. [미인드링크 제공]

청년에게 특화된 정신건강센터 마인드링크 로비. [미인드링크 제공]

우리나라는 경제 발전 정도에 비해 국민 삶의 만족도가 높지 않다.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고, 성인 4명 중 1명이 평생 한 번 이상 정신건강 문제를 경험한다는 통계도 있다. 정신질환으로 병원을 찾는 사람의 수도 급증하는 추세다. 관련 통계를 보면 2014년 58만 명이던 우울증 환자가 2018년 75만 명으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불안증(53만→69만명), 불면증(46만→59만명) 환자도 크게 늘었다. 전문가들은 사회·경제적 비용 절감과 국민 행복 증진을 위해 정신건강 분야에 대한 투자 확대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정부 또한 이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2020년 예산안에 반영된 정신건강 관련 예산은 2019년에 비해 18% 늘었다. 보건복지부는 향후 △소아청소년, 청장년, 노년 등 생애주기에 따라 정신건강 위험 요인을 제거하는 예방 중심의 정신건강증진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누구나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는 정신건강-심리상담 서비스 제공 체계를 마련하며 △정신건강 문제가 심각해지기 전 해결할 수 있도록 조기 발견-전문치료 연계 프로그램도 활성화할 계획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관련 정책을 가장 잘 추진하는 지역으로는 광주광역시가 손꼽힌다. 

광주시는 정신과 전문의를 관내 정신건강복지센터 및 중독관리센터 등에 파견해 지역 주민에게 전문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는 ‘마음건강주치의’ 제도를 운영한다. 마을 단위로 자살예방협력체계를 구축해 공동으로 위기에 대응하는 생명지구대 사업도 벌인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정신질환 진단을 받았거나 고위험군에 해당하는 15~30세 주민을 대상으로 한 특화 센터 ‘마인드링크’를 운영한다는 점이다. 

마인드링크 센터장인 김성완 전남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에 따르면 조현병 등 만성 정신질환은 대부분 25세 이전에 발병한다. 환자들은 청소년기 무렵부터 크고 작은 정신적 문제를 겪다 점차 증상이 심해지는 게 일반적이다. 이들이 조기에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면 무리 없이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 만큼 증상을 관리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적 편견과 관련 시스템 부족 등의 문제로 상당수 환자가 병을 키운다고 한다. 마인드링크는 이런 문제를 풀고자 설립된 공간이다. 이곳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정신건강전문요원들은 젊은 회원의 정신질환 증상을 관리할 뿐 아니라 학업 및 취업 등도 지원한다. 자녀의 정신질환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가족 대상 치료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서로 도우며 건강 찾는다

마인드링크 회원들 사이에서는 또래 친구들과 관계를 맺고 도움을 주고받는 자조 모임에 대한 만족도도 높다. 기타 전공으로 대학 입시를 준비했을 만큼 기타를 잘 치는 한 청년 조현병 환자는 바로 그 자조 모임 활동을 통해 다시 삶의 희망을 갖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조현병 발병 후 큰 좌절을 겪었다. ‘내가 뭘 할 수 있겠나’ 하는 생각에 대학 진학도 포기했다. 그러나 마인드링크에서 다른 회원에게 기타를 가르치는 봉사활동을 하면서 자존감을 회복하고 입시에 재도전, 올해 대학생이 됐다. 김성완 교수는 “마인드링크에 등록한 회원들을 보면 입원율과 자살 시도 건수가 크게 줄어드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그만큼 안정적으로 증상을 잘 관리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이 프로그램에 대한 입소문이 퍼지면서 최근에는 스스로 찾아오는 젊은이가 크게 늘고 있다고 한다. 개소 초기인 2016~17년에는 등록 회원의 45%가 대학병원 의뢰를 받은 케이스였다. 본인 요청은 4%에 불과했다. 반면 2018년에는 본인 요청 비율이 40%에 달했다. 마인드링크 홈페이지에 상담 글을 올리거나 전화를 걸어 상담을 요청하는 젊은이도 크게 늘었다. 정부는 이른바 ‘광주형 모델’로 불리는 광주의 통합정신건강증진사업 시스템을 2022년까지 전국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나성웅 보건복지부 건강정책국장은 “급속한 고령화로 인해 정신건강에 대한 수요는 앞으로 더욱 커질 전망”이라며 “국민 생애주기별 정신건강 수요에 따른 맞춤형 대응을 통해 원인 예방, 조기 발견, 적시 치료로 이어지는 시스템을 구축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신동아 2019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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