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호

사장님은 일 많아 지옥, 알바는 일 없어 지옥

서민 가계 덮친 최저임금 인상 후폭풍 현장

  • 송화선 기자 권희은 인턴기자

    spring@donga.com cathyheun@naver.com

    입력2020-01-26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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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차료보다 더 무서운 게 인건비

    • ‘알바’ 자르고 노모, 자식 동원해 생계 유지

    • “아는 사람 창업한다 하면 도시락 싸들고 다니며 말릴 것”

    • “편의점 알바, 전생에 사람 하나는 구했어야 얻어”

    경기 불황과 최저임금 인상 등의 여파로 자영업 폐업이 늘면서 빈 매장이 많아지고 있다. 서울 종로구 한 상가에 새 주인을 찾는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뉴스1]

    경기 불황과 최저임금 인상 등의 여파로 자영업 폐업이 늘면서 빈 매장이 많아지고 있다. 서울 종로구 한 상가에 새 주인을 찾는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뉴스1]

    서울 성동구 한 빵집에서 야간 ‘알바’로 일하던 20대 김모 씨는 최근 점주에게서 “그만 나와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장사가 너무 안돼 사람을 쓰기 어렵다”는 게 이유였다. 앞으로는 점주 남편이 퇴근 후 가게에 와 있을 예정이라고 했다. 김씨는 그동안 매일 오후 9시부터 자정까지 빵집을 지켰다. ‘묶음 할인’ 상품을 사러 들르는 일부를 제외하면 손님이 거의 없어 몸이 편했다. 그는 “친구들이 다 부러워하던 ‘꿀 알바’ 자리를 잃게 돼 아쉽다”고 했다.

    허리띠 졸라매는 자영업자들

    경기 부천에서 코인노래방을 운영하는 50대 양모 씨는 지난해 10월 매장에 무인결제 장비(키오스크)를 들였다. 이후 알바 근무시간을 줄이고 손님이 많지 않을 때는 혼자 가게를 보기 시작했다. 양씨는 “키오스크 대여료가 월 30만 원인데, 인건비 감소액은 월 60만 원쯤 된다”며 만족스러워했다. 

    양씨 가게 월 매출은 평균 700만원. 예전엔 이 중 280만 원이 인건비로 나갔다. 임차료와 전기료 등 각종 비용을 제하면 늘 살림이 빠듯했다. 양씨는 “지금은 평일 알바 사용 시간만 줄인 상태다. 앞으로 주말 알바도 좀 적게 나오도록 해 인건비 부담을 더 낮출 생각”이라고 밝혔다. 

    한때 편의점 3개를 운영하던 50대 정모 씨는 최근 2년 사이 그중 두 개를 정리했다. 편의점 본사와 맺은 계약기간 5년 중 3년 이상이 남은 상태였다. 시설위약금, 영업위약금 등을 포함해 2000만 원 정도 손해를 봤다. 그래도 정씨는 폐업이 옳은 선택이었다고 믿는다. 해당 매장에서 매달 수백만 원씩 적자가 났기 때문이다. 정씨와 아내, 아들까지 온 식구가 돌아가며 일했지만 3개 점포를 운영하려면 아르바이트생을 쓸 수밖에 없었다. 정씨는 “그들 인건비를 대느라 내 주머니까지 털어야 했다”고 말했다. 

    최근 자영업자들 사이에서 “먹고살기 힘들다”는 아우성이 쏟아지고 있다. 폐업도 속출한다. 서울 강남, 종로 등 중심 상권에서 ‘임대’ 딱지가 붙은 빈 점포를 쉽게 볼 수 있다. 자영업자들은 경영난의 원인으로 경기 불황과 더불어 최저임금의 갑작스러운 인상을 지목한다. 우리나라 최저임금은 2018년 전년보다 16.4%(1060원) 뛰었다. 2019년 다시 10.9%(820원) 올랐다. 올해 인상률이 2.9%로 낮아지긴 했지만 자영업자들이 느끼는 충격은 적잖다. 



    서울연구원이 2018년 10월 관내 소상공인 사업체 503개를 조사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 대상업체의 월평균 운영비용은 735만4000원이었다. 이 중 인건비가 378만4000원(51.5%)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임차료는 월 170만2000원(23.1%) 수준이었다. 경기 부천의 코인노래방 점주 양씨는 “흔히 자영업자가 임차료 때문에 힘들 거라고 생각하는데, 실은 인건비가 훨씬 부담된다”고 밝혔다. 

    “우리 가게 임대료는 10년째 월 150만 원이다. 서울 홍대거리나 명동 같은 번화가 상권이라면 모를까, 일반 동네에서는 임대료를 무리하게 올리는 건물주를 보기 힘들다. 반면 인건비는 정부가 정하는 대로 줘야 한다. 최저임금이 단기간에 너무 많이 올랐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불경기가 지속되면서 서울 주요 상권에서도 권리금 없이 거래되는 가게가 나타나고 있다. 종로 한 상점 창문에 ‘권리금 없음’ 안내문이 붙어 있는 모습(왼쪽)과 중고 주방기구 매장에 싱크대 등 업소용 집기가 가득 쌓인 풍경. [원대연 동아일보 기자, 박영철 동아일보 기자]

    불경기가 지속되면서 서울 주요 상권에서도 권리금 없이 거래되는 가게가 나타나고 있다. 종로 한 상점 창문에 ‘권리금 없음’ 안내문이 붙어 있는 모습(왼쪽)과 중고 주방기구 매장에 싱크대 등 업소용 집기가 가득 쌓인 풍경. [원대연 동아일보 기자, 박영철 동아일보 기자]

    문재인 정부가 최저임금을 올린 이유는 명확하다. ‘임금 인상→소비 증대→경기 부양’의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그러나 상당수 서민 자영업자는 “경기 불황으로 매출이 도무지 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임금이 오르니 버티기 힘들다”고 호소한다. 많은 ‘사장님’이 위기 타개책으로 ‘허리띠 졸라매기’를 택하면서 ‘알바’로 생계를 이어가던 서민들 또한 타격을 입고 있다. 

    소상공인연합회가 지난해 4~5월 회원 70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조사 결과, 최저임금이 급등한 2018년 이후 응답자 절반 이상(58.9%)이 종업원 수를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자리를 채우는 건 보통 업주 가족이다. 

    서울 구로구에서 분식집을 운영하는 이모 씨는 최근 매장에 70대 어머니를 나오게 했다. 종업원을 한 명 해고한 뒤 일손이 부족해서다. 이씨가 근처 상가에 배달을 가는 등 여러 일로 자리를 비우면 어머니가 카운터를 본다. 그 외 시간엔 상 치우기 등 매장 내 잔일을 거든다. 이씨는 “어머니께 죄송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고 털어놓았다. 

    충남 천안에서 치킨집을 운영하는 권모 씨도 지난해 개점 당시 잠깐 알바를 고용했을 뿐, 지금은 종업원을 두지 않고 있다. 권씨 아들이 알바생이 하던 일을 도맡아 한다.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가 지난해 7월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자영업자 3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 중 62%는 최저임금 인상 후 ‘가족노동을 늘렸다’고 답했다. 이조차 여의치 않으면 업주 혼자 일하는 쪽을 택한다. 

    경기 구리시에서 11평 규모 초밥집을 운영하는 30대 송모 씨는 1인 사업주다. 그는 “하루 종일 가게에 매여 있다 보니 개인 시간이 없다. 아파도 못 쉰다. 삶의 질이 이렇게 낮은 직업이 또 있을까 싶다”고 힘겨움을 밝혔다. 그러고도 송씨 수입은 월 250만~300만 원 수준이라고 한다. 송씨는 “노동시간을 고려하면 시간당 최저임금도 못 버는 거다. 지인이 자영업을 시작한다고 하면 포기할 때까지 쫓아다니며 말릴 것”이라고 했다. 편의점을 운영하는 정씨도 “정부에서 말하는 ‘주 52시간 노동’은 자영업자에게는 딴 세상 얘기”라고 밝혔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생계형 자영업자들은 대부분 “하루 평균 열두 시간 이상 일한다”고 털어놓았다. 그럼에도 소득수준은 오히려 하락하는 게 현실이다. 대통령 직속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가 1월 9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고소득 자영업자는 줄고 저소득층은 크게 늘었다. 전체 자영업자를 소득에 따라 다섯 분위로 나눌 경우 소득 하위 40%에 해당하는 1~2분위 자영업자 가구가 전년 동기보다 12만7900가구 증가했다. 반면 소득이 가장 높은 5분위에서는 5만700가구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4분위(9만5800가구), 3분위(3만5000가구)에서도 많은 수가 이탈했다. 


    최저임금 인상 등의 영향으로 무인결제 시스템을 도입하는 업체가 늘고 있다(왼쪽). 최근 이른바 ‘꿀알바’가 줄면서 청년들은 인형 탈 쓰고 전단지 돌리기 같은 좀 더 힘든 아르바이트로 내몰리고 있다. [뉴스1]

    최저임금 인상 등의 영향으로 무인결제 시스템을 도입하는 업체가 늘고 있다(왼쪽). 최근 이른바 ‘꿀알바’가 줄면서 청년들은 인형 탈 쓰고 전단지 돌리기 같은 좀 더 힘든 아르바이트로 내몰리고 있다. [뉴스1]

    자영업 불황은 저소득 임금노동자의 삶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신동아’ 인턴기자 권희은(27) 씨는 이번 취재를 위해 알바 구직에 나섰다가 일자리 가뭄에 깜짝 놀랐다. 그는 20대 초반 각종 알바를 섭렵해 친구들 사이에서 ‘알바왕’으로 불리던 인물이다. 1월 6일부터 8일까지 알바 전문 포털에 구인광고를 낸 업체 25개에 ‘알바 경험 다수’를 어필하는 이력서를 냈다. 편의점, 프랜차이즈 카페, 식당 등 청년 사이에서 인기 높은 업종을 주로 공략했다. 그중 면접에 오라는 통보를 해온 곳은 2곳에 그쳤다. 한 업체는 전화로 나이를 확인한 뒤 “우리는 대학생을 선호한다”며 연락을 끊기도 했다. 서울 성동구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한 업주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대학생 알바를 구하기 힘들었다. 요즘은 다르다. 구인광고를 내면 순식간에 구직자 연락이 쏟아져 조건에 맞는 사람을 골라 쓸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권씨는 다시 ‘급구, 전단지 아르바이트’라는 광고를 낸 업체들 문을 두드렸다. 두 곳 중 한 곳은 답이 없었고, 나머지 한 곳도 “일반 전단지 배부 알바는 선착순 마감됐다. 인형 탈을 쓰고 하는 일만 남았는데 내일 바로 가능하겠느냐”고 물어왔다. 알고 보니 전단지 배부는 대학생과 취업준비생 사이에서 ‘그나마 쉽게 구할 수 있는 알바’로 통했다. 한 대학생은 “요즘 경쟁 없이 구할 수 있는 일자리는 몸으로 때우는 초단기 알바가 대부분이다. 전단지 배부, 단기간 뷔페 서빙, 배달 대행 같은 것”이라고 전했다. 

    이제는 편의점 업계에서도 주 15시간 이상 일하는 알바를 찾아보기 어렵다. 식당 역시 점심, 저녁 등 사람이 몰릴 때만 몇 시간 단위로 종업원을 쓰는 곳이 늘고 있다. 업주가 주휴수당 및 연차휴가 등의 부담에서 벗어나고자 알바시간 ‘쪼개기’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상당수 노동자가 시간당 임금이 올랐는데 월 소득은 줄어드는 역설을 겪고 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1월 6일 펴낸 ‘최저임금 인상이 임금불평등 축소에 미친 영향’ 보고서 내용이다.

    사장도 지옥, 알바도 지옥

    연구소가 통계청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19년 1분위(하위 10%) 노동자의 시간당 임금인상률은 8.3%였다. 반면 이들의 월 임금인상률은 –4.1%였다. 그 배경에 있는 게 바로 노동시간 감소다. 통계청 조사 결과 1분위 노동자의 주당 노동시간은 전년에 비해 2.8시간 줄었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은 이 보고서에서 “2018~19년 최저임금 인상 이후 고용주가 노동시간 쪼개기로 대응하면서 1분위에 초단시간 노동자가 증가했다. 월 임금 기준으로 임금 격차가 확대됐고, 저임금계층이 증가하는 부작용이 나타났다”고 밝혔다. 

    아르바이트 구인구직 전문 포털 ‘알바천국’은 최근 자영업자들에게 알바 고용을 권하는 내용의 방송 광고를 내보냈다. ‘사장님’이 주방, 서빙, 배달, 청소 일을 혼자 다 하느라 어쩔 줄 모를 때 젊은 ‘알바’가 등장해 “그러지 말고 알바를 쓰라”고 하는 내용이다. 이 광고는 “사장님은 숨 돌려서 천국, 알바님은 일 구해서 천국”이라는 메시지로 마무리된다. 현실은 정반대다. 사장님은 혼자 일하느라 점점 더 숨이 차고, 알바는 일자리가 없어 숨이 막힌다. 알바로 생계를 꾸리려면 하루에 서너 가게를 전전하며 일해야 할 상황이다. 

    최근 빵집 알바에서 ‘잘린’ 김씨는 요즘 친구들 사이에서 떠도는 우스개 하나를 소개했다. ‘편의점 알바를 구하려면 전생에 나라까지는 아니어도 사람 한 명쯤은 구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요즘 20~30대 남자들이 택배 상하차나 노가다에 몰리는 건 다른 알바 씨가 말랐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이에 대해 “최근 몇 년간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으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부담이 가중되면서 일자리 질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 정책 변화가 없다면 악순환이 반복될 소지가 크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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