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는 못 할 일, 인건비 부담에 잘려서 왔어요”
교육 없이 작업 투입…안전모 하나 쓰고 화물과 사투
인대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일해도 딱 최저임금
경기 남부 한 물류센터. 기자가 ‘까대기’를 한 곳이다. [이현준 인턴기자]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게시된 아르바이트 후기 모음이다. 이 아르바이트는 속칭 ‘까대기’로 불리는 택배 상하차. 통조림 뚜껑을 까듯 화물을 깐다는 데서 비롯된 말이다. 까대기는 젊은 층에서 최악의 아르바이트로 손꼽힌다. 취업 포털 ‘알바몬’이 20대 294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복수응답)에서 ‘겨울철 극한알바’ 1위(52.2%)를 차지했다. ‘노가다’로 불리는 건설 일용직(42.1%)보다 응답률이 10%포인트 이상 높았다.
아르바이트 구인구직 애플리케이션을 실행해봤다. 수백 개 업체에서 까대기를 뽑고 있었다. 그중 한 업체를 클릭해 보니 최근 1년간 지원자 수가 1960명에 달했다. 하루 평균 5명 이상이다. 지원자 연령은 20대 89%, 30대 8%로 나타났다. 자자한 악명에도 청년의 지원이 몰리는 상황. 이렇게 많은 청년이 왜, 그리 힘든 일이라 하는데도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에 뛰어드는 것일까. 혹시 생각보다 할만한 일인 것은 아닐까.
한 업체에 이름과 나이, 지역, 희망근무 시간대를 적은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업체 담당자는 딱 한 가지만 물었다. “언제부터 출근할 수 있나요?” ‘내일 당장 가능하다’고 하자 아침 7시까지 구인 광고에 적혀 있는 주소로 나오라고 했다.
“내일 아침 7시까지 오세요”
이 업체 휴게실에는 계약서 작성법과 종이컵을 아껴쓰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이현준 인턴기자]
‘고용계약서를 쓰고, 유의사항을 들으며 이런저런 준비를 하기엔 너무 늦은 시간 아닐까.’ 마음이 급해 뛰어 들어갔다. 괜한 걱정이었다. 근로계약서에 이름과 주소, 계좌번호 등을 쓴 뒤 지급된 안전모를 쓰고 작업복을 입는 데까지 채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어떤 교육도, 유의 사항 안내도 없었다. 한 켤레씩 나눠주는 목장갑을 끼자 일할 준비가 끝났다.
공정은 다음과 같았다. 트럭이 싣고 온 화물을 내려 컨베이어 벨트(레일)에 올린다. 공식 명칭 하차, 보통은 ‘까대기’라고 하는 작업이다. 그다음엔 벨트 위에 있는 화물을 송장이 보이게 정렬한다. 이것은 분류라고 부른다. 여기까지 끝내면 다음 단계는 택배기사 몫이다. 레일 주위에 길게 늘어선 기사들이 송장을 보고 자기 담당 구역에 해당하는 짐을 골라 각자의 배달 차에 싣는다. 이후 즉시 배송길에 오른다.
택배기사 처지에서 보면 까대기가 신속히 진행돼야 배송을 빨리 시작하고 퇴근도 일찍 할 수 있다. 아무래도 독촉할 수밖에 없다. 앞 단계 ‘일꾼’들은 그 압박을 느끼며 서둘러 화물을 ‘까야’ 하는 구조다.
오전 7시, 하차 작업이 시작됐다. 신참인 기자 옆에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고참이 한 명 붙었다. 현장 책임자 같았다. “레—일!” 그가 소리치자 컨베이어 벨트가 짐이 실려 있는 트럭을 향해 다가왔다. “스—도오옵!” 벨트가 멈췄다. 이때부터 키보다 높이 쌓여 있는 화물을 정신없이 내리기 시작했다. 아니 ‘내린다’ 보다 ‘던진다’는 표현이 적절할 듯하다. “무조건 빨리, 그냥 다 집어던져 버려요!” 고참 직원이 조언했다. 높이 있는 짐은 끌어내려 던지고 밑에 있는 짐은 들어 올려 레일에 놓았다.
내가 기계인가, 기계가 나인가
끝없이 화물을 쏟아내는 컨베이어 벨트(왼쪽)와 바쁘게 배송지로 출발하는 트럭들. [이현준 인턴기자]
“대체 짐이 몇 개인 거예요?”
“한 트럭에 많으면 3000개씩 들었죠. 오늘 트럭 15개 까요. 아직 멀~었어요!”
트럭 하나를 비우는 데 드는 시간은 대략 40분. 그사이 사람당 1500개 안팎의 짐을 ‘던져야’ 한다. 1분에 37.5개, 개당 2초가 채 안 되는 속도다.
하차 작업으로 기진맥진할 때쯤 교대 명령이 떨어졌다. 분류 작업을 맡으라는 것. 잠시 숨을 돌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또한 쉽지 않았다. 초당 3~4개씩 지나가는 짐을 송장이 보이게 배치하려니 잠시도 한눈을 팔 수 없었다. 단 1초만 멍하게 있어도 불호령이 떨어졌다.
“정신 똑바로 안 차려! 야, 정신 차리고 일해!”
눈이 빠질 것 같았다. 다리도 지끈거렸다. 하차 작업보다 근력이 덜 소모될 뿐, 힘든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나마 쉬게 해줬다고 판단한 것일까. 얼마 지나지 않아 고참이 다시 이름을 불렀다. 하차 작업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그렇게 반복되는 작업. 누가 기계이고 누가 인간인지 구별하기 어려웠다. ‘까대기가 생각보다 할만한 알바 아닐까’ 했던 생각은 틀렸다. 극한 아르바이트가 맞았다.
두 시간마다 10여 분의 쉬는 시간이 주어졌다. 그사이 물을 마시고 화장실에 다녀와야 했다. 일하는 동안엔 잠시도 틈이 없기 때문이다. 물이 비치돼 있는 휴게실에서 2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청년을 만났다. 스물두 살이라고 했다.
“편한 아르바이트도 많을 텐데, 왜 이렇게 힘든 데 왔어요?”
말을 붙였다. 청년은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다 해고당했다고 답했다.
“몇 달 전에 쫓겨났어요. 인건비가 부담된다고 하데요. 다른 알바를 찾아봤는데 뽑는 데가 없었어요. 용돈은 벌어야 해서 여기로 왔죠. 오늘 해보니 두 번은 못 하겠네요.”
일하던 데선 잘리고, 일은 해야 하고
다음 쉬는 시간, 이번엔 또 다른 청년을 만났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정도 돼 보였다. 공무원시험 준비생이라는 그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 일과 공부를 병행하는 처지라고 했다. 원래는 편의점에서 일했는데 지난해 나가달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그 편의점 직원이 원래는 저까지 3명이었어요. 그런데 2018년 말 최저임금이 확 오르니까 사장님이 한 명을 내보내더라고요. 작년 4월쯤 저보고도 그만 나오라고 하고…. 그 뒤부터 전업주부인 사모님이 일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한동안은 편의점처럼 공부하며 일할 수 있는 알바가 있나 찾아봤는데 다 사라졌더군요. 저는 나이가 많다 보니 받아주는 곳이 더 없고. 결국 할 일이 이것밖에 없었어요.”
오후 1시 여섯 시간의 노동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 그들의 이야기가 귓전을 맴돌았다. 바로 다음 날 ‘임금’이 통장에 들어왔다. 일한 시간만큼의 최저임금에서 세금 3.3%를 뗀 금액, 4만9839원이었다. 왕복 택시비와 점심값을 빼고 나니 남은 건 채 2만 원이 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