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호

영화

미드웨이 탑건 007 스타워즈…‘추억 돋는’ 명작 · 대작의 귀환

  • 최창근 객원기자 caesare21@hanmail.net

    입력2020-01-23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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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첨단 컴퓨터그래픽스 기술로 재현한 大海戰 미드웨이

    • “파일럿의 시대는 끝을 향해 가고 있어, 매버릭.”

    • 43년 이어진 우주 대서사시의 대단원

    • 이제 본드걸은 없다? 최초의 여성 007

    ‘미드웨이’(2019) 포스터

    ‘미드웨이’(2019) 포스터

    2020년 영화계 키워드는 ‘명작의 귀환’으로 요약할 수 있을 듯하다. 찰턴 헤스턴 주연의 명작 ‘미드웨이’(1976)의 리메이크작을 필두로 ‘스타워즈’의 마지막 시리즈, 항공 영화의 최고봉 ‘탑건’의 속편, 25번째 ‘007 시리즈’가 차례로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① 미드웨이

    ‘미드웨이’(1976) 포스터. [Universal Pictures]

    ‘미드웨이’(1976) 포스터. [Universal Pictures]

    “바다는 그들을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지난해 12월 31일 공식 개봉한 영화 ‘미드웨이(Midway)’ 마지막 대사다. 1941년 12월 7일 일본 해군 연합함대의 진주만 공습으로 제2차 세계대전의 화염은 태평양으로 옮겨붙었다. 기습 선제공격에 일격을 당한 미국은 이듬해 4월 18일 둘리틀 중령이 지휘한 B-25 미첼 경폭기 편대가 도쿄 공습을 감행해 구겨진 자존심을 세웠다. 이후 5월 4~8일 호주 북동부 산호해(Coral Sea)에서 미국과 일본은 역사상 첫 ‘항공모함 함대 결전’을 벌였다. 전력 열세 속에서 치러진 혈전에서 미국은 태평양함대 소속 항공모함 렉싱턴이 침몰했고, 요크타운이 전투 불능 상태에 빠졌다. 일본 연합함대는 경항공모함 쇼호가 격침되고 항공모함 쇼카쿠가 대파되는 타격을 입었다. 항공모함 손실 면에서는 일본 해군의 판정승, 함재기와 병력 손실 면에서는 미국이 우세한 전투였다. 

    연합함대 사령장관 야마모토 이소로쿠(山本五十六)는 미국 태평양함대를 궤멸해 제해권을 장악할 작전을 수립했다. 전장(戰場)은 ‘AF’라는 암호로 불리던 미드웨이섬, 미국의 최전방 기지였다. 베일에 싸여 있던 일본군 공격 목표 ‘AF’가 미드웨이임을 밝혀낸 것은 로슈포르(Joseph Rochefort) 중령이 지휘하던 암호 해독반 블랙체임버였다. 일본군 무전 해독, 정찰기 비행경로 추적을 통해 ‘AF’가 미드웨이섬이라는 심증을 굳힌 로슈포르는 역공작을 펼쳤다. ‘미드웨이섬에 담수(淡水) 시설이 고장 났다’는 가짜 전문을 평어로 송신한 것이다. 이후 블랙체임버는 ‘AF에 물 부족’이라는 일본군 무전을 도청했다. 

    일본 해군의 작전 목표는 명확해졌지만 객관적 전력 열세는 피할 수 없었다. 일본 연합함대는 사상 최대의 거함이던 기함(旗艦) 야마토를 위시해 전함(戰艦) 11척, 항공모함 6척의 전력이었다. 미국 태평양함대는 전함은 한 척도 없고, 항공모함 4척, 순양함 2척에 불과했다. 설상가상으로 항공모함 USS 요크타운은 산호해 해전에서 파손돼 전투 투입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미국 태평양함대 사령관 니미츠(Chester William Nimitz) 제독은 불리한 상황을 극복하고 승리를 거두기 위해서 필사의 전략을 수립했다. 미드웨이로 향하는 일본 함대를 매복 기습 공격하는 것이었다.



    스토리 라인은 ‘진주만’과 같아

    ‘미드웨이’(2019) 스틸컷 [누리픽쳐스 제공]

    ‘미드웨이’(2019) 스틸컷 [누리픽쳐스 제공]

    진주만 공습을 지휘한 나구모 주이치(南雲忠一) 중장이 이끄는 일본군 제1항공함대는 미드웨이섬 점령을 위해 발진했다. 아카기·가가·히류·소류 등 항공모함 4척, 기리시마·히루나 등 전함 2척, 순양함 3척, 구축함 12척에 함재기 248기의 전력이었다. 이에 맞서는 미 해군 17기동함대는 엔터프라이즈·호넷 등 항공모함 2척, 순양함 8척, 구축함 14척이 전부였다. 니미츠 제독은 산호해 해전에서 대파된 요크타운을 48시간 동안 1400여 명의 인력을 동원해 긴급 수리, 전장에 투입할 것을 명령했다. 

    초기 전투는 일본군에 유리하게 전개됐다. 미국 뇌격기·전투기 편대가 일본 항공모함을 향해 공격을 개시했지만 노후하고 느린 항공기들로는 기동성·민첩성을 자랑하며 ‘제로센’이란 별칭을 가진 일본 함상전투기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미군 조종사들은 일본군의 포화에 산화(散華)했다. 미국 조종사들이 희생을 치르는 사이 일본군 조종사들의 피로도도 상승했다. 함재기의 연료·탄약도 소모돼 모함에 착함해 재정비를 해야 했다. 그 틈을 미국 급강하 폭격기 대대가 노렸다. 일본 항공모함을 집중 공격해 가가, 아카기, 소류가 격침된다. 불과 5분 사이에 벌어진 사건이었다. 마지막 남은 항공모함 히류도 엔터프라이즈에서 발진한 급강하폭격기 대대의 공격에 수장되고 만다. 미국의 항공모함 손실은 요크타운 한 척에 불과했다. 단 하루 만에 일본 연합함대 핵심 전력이 궤멸되는 전투로 태평양전쟁의 향방도 바뀌었다. 

    영화 ‘미드웨이’는 치밀한 고증, 컴퓨터그래픽스의 힘을 빌려 관객을 78년 전 치열한 전장으로 안내한다. 진주만 공습, 도쿄 공습을 거쳐 미드웨이로 이어지는 스토리 라인은 ‘진주만’과 같다. 다만 ‘진주만’이 전쟁 블록버스터 영화라기보다 로맨스 영화의 색채가 강하다는 평을 받은 것과는 달리, ‘미드웨이’는 역사적 고증, 전투 장면의 사실성 면에서 호평을 받았다. ‘인디펜던스 데이’ ‘고질라’ ‘투모로우’ 등을 연출한 블록버스터 거장 롤랜드 에머리히의 진가가 빛나는 대목이다. 주연배우들과 더불어 패장(敗將) 나구모 주이치 역을 ‘곡성’의 외지인 역할로 한국에도 친숙한 구니무라 준(國村隼)이 맡은 점도 주목할 만하다. 태평양전쟁과 미드웨이 해전을 더욱 깊이 알고 싶다면 ‘도라 도라 도라’(1970), ‘미드웨이’(1977),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2011) 등을 함께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② 탑건 : 매버릭

    ‘탑건 : 매버릭’(2020) 스틸컷(위).
‘탑건’(1986) 스틸컷. [©Paramount Pictures, GettyImage]

    ‘탑건 : 매버릭’(2020) 스틸컷(위). ‘탑건’(1986) 스틸컷. [©Paramount Pictures, GettyImage]

    “파일럿의 시대는 끝을 향해 가고 있어, 매버릭.” 

    “그럴지도 모르지만 오늘은 아닙니다.” 

    지난해 공개된 ‘탑건 : 매버릭’ 예고편에서 ‘매버릭’이라는 콜 사인(호출 부호)의 미첼 대위(톰 크루즈 분)와 항공모함 전단장의 대화다. 1986년 개봉 후 34년 만에 개봉하는 영화 ‘탑건’ 속편 주인공은 여전히 현역 미국 해군 항공대 파일럿이다. 30년 넘게 복무하면서 수많은 훈장을 받았고 적기 3기를 격추한 파일럿으로 별 두 개 정도는 달았어야 하지만 진급이 계속 누락돼 ‘대령’ 계급으로 전투기를 몰고 있다. 34년 세월 동안 어떠한 일들이 있었을까? 무인항공기 시대에 파일럿의 존재 의의는 무엇일까? ‘탑건 : 매버릭’은 이러한 의문을 풀어줄 것이다. 

    전작 ‘탑건’에서 소련의 미그 28기를 격추한 후 탑건스쿨(미 해군 공중전 학교) 교관을 자원한 미첼은 후배들을 교육하고 있다. 탑건스쿨 교육생 중 눈에 띄는 인물은 브래들리 브래드 쇼(마일즈 텔러 분)다. 지난날 미첼의 후방 조종사로 공중전 훈련 중 제트기류에 휘말려 비상 탈출 중 사망한 콜 사인 ‘구스’의 아들이다. 아버지의 유지를 이어 해군 항공대 조종사가 됐다. 콧수염을 기른 모습까지 아버지를 빼닮았다.

    톰 크루즈 전투기 조종술 배워

    1986년 ‘탑건’과 2020년 ‘탑건 : 매버릭’의 타이틀롤을 맡은 톰 크루즈. [©Paramount Pictures]

    1986년 ‘탑건’과 2020년 ‘탑건 : 매버릭’의 타이틀롤을 맡은 톰 크루즈. [©Paramount Pictures]

    학생들을 교육하던 매버릭은 긴급 명령을 받고 항공모함으로 향한다. 전편에서 조종한 F-14 톰캣은 2006년 퇴역해 박물관 전시품 신세가 됐고, 그를 기다리는 것은 미국 해군의 주력 전투기 F-18 슈퍼호넷이다. 전편에서 ‘가상국가’가 적이었다면 이번의 적은 드론(무인항공기)과 비약적인 과학기술이 만들어낸 새로운 유형의 적이다. 

    ‘탑건 : 매버릭’의 메가폰은 조지프 코신스키가 잡았다. 전작의 대성공 후 토니 스콧 감독은 속편을 제작하려 했으나 2012년 자살함으로써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후 ‘오블리언’(2013)에서 톰 크루즈와 호흡을 맞춘 조지프 코신스키가 크루즈와 의기투합했고, 원제작자 제리 브루마이어도 힘을 보탰다. 촬영감독은 ‘라이프 오브 파이’(2012)로 아카데미 촬영상을 수상한 클라우디오 미란다가 맡아 시각적 화려함을 더했다. 

    ‘탑건 : 매버릭’은 군사영화의 새로운 기록을 쓴 ‘탑건’의 향수를 불러일으킬 만한 장면들로 채워졌다. 기예에 가까운 비행술, 장교들이 주점에서 피아노 치며 노래하는 장면, 해변의 비치발리볼 경기, 오토바이를 타고 도로를 질주하는 톰 크루즈까지. 추억을 돋우는 것은 음악이다. 해롤드 폴트마이어, 한스 짐머가 음악감독으로 참여했다. ‘탑건’ 도입부에 나오는 ‘위험지대(Danger Zone)’를 부른 케니 로긴스도 새로운 버전으로 곡을 녹음했다. 

    주인공 미첼의 인생역정과 더불어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도 궁금증을 더 한다. 콜 사인 ‘아이스맨’의 톰 카잔스키(발 킬머)가 출연하지만 극 중 역할은 공개되지 않았다. 탑건스쿨 민간 교관으로 미첼과 연인 관계가 됐던 찰리(켈리 맥길리스 분)의 뒷이야기도 베일에 싸여 있다. 이밖에 컴퓨터그래픽스를 사용하지 않고 배우들이 실제 중력가속도 아래에서 촬영한 실감 나는 공중전 장면도 놓칠 수 없는 백미다. 출연작에서 스턴트 배우를 쓰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톰 크루즈는 이번 작품을 위해 전투기 조종술까지 배웠다.

    ③ 스타워즈 : 라이즈 오브 스카이 워커

    ‘스타워즈 9: 라이즈 오브 스카이 워커’ 포스터. [©Disney]

    ‘스타워즈 9: 라이즈 오브 스카이 워커’ 포스터. [©Disney]

    ‘오래전 멀고 먼 은하계에(A long time ago in a galaxy far, far away)…’ 

    은하계를 항해하는 우주선을 보여주는 듯한 검은색 배경 화면에 비스듬히 올라가는 노란색 자막이 인상적인 ‘스타워즈’의 유명한 첫 구절이다. 관객들은 이제 오래된 은하계 이야기와 작별을 고해야 할 때가 왔다. 스타워즈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할 ‘스타워즈 에피소드 9’가 개봉했기 때문이다. 1977년 ‘스타워즈 4 : 새로운 희망’이 은막에 오른 후 장장 43년 만이다.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라는 부제가 붙은 이번 편의 주인공은 전작과 동일한 레이(데이지 리들리 분)다. ‘스타워즈 8’에서 마지막 제다이 루크 스카이 워커(마크 해밀 분)의 죽음 후 ‘어둠의 힘(Dark Force)’으로 은하계를 지배하려는 퍼스트 오더 카일로 렌(애덤 드라이버 분)에 맞서 싸우는 유일한 희망이다. 

    은하제국 어둠의 황제 팰퍼틴(이언 맥디어미드 분)이 카일로 렌에게 제다이 수련 중인 레아를 죽이면 파이널 오더로 임명하고 차기 황제 자리도 넘길 것이라고 약속하는 것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더욱 강력해진 포스(Force)로 거듭난 레이는 저항군 동료 핀(존 보예가 분), 포 다메론(오스카 아이작 분)과 더불어 다시 한번 선과 악의 전쟁을 시작한다. 라이트 세이버(광선검)를 이용한 카일로 렌과의 일대일 대결도 피할 수 없다. 

    ‘스타워즈 9: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의 주된 이야기는 밝음과 어둠의 대결, 저항군과 제국군의 전쟁과 더불어 출생의 비밀이다. ‘스타워즈 7: 깨어난 포스’ ‘스타워즈 8: 라스트 제다이’에서 부랑아의 딸로 그려진 레이와 ‘어둠의 힘’의 후계자 시즈의 혈연관계가 밝혀진다. 더불어 팰퍼틴의 어둠의 힘에 넘어가 시스의 암흑 군주(Dark Lord of the Sith)가 돼버린 다스 베이더(헤이든 크리스텐스 분)의 딸 레아(캐리 피셔 분)와 밀수꾼 한 솔로(해리슨 포드 분)의 아들 카일로 렌이 어둠의 힘의 지배를 받기 전 제다이 수련 기사 벤 솔로로 돌아가는 과정도 그려진다. 은하계의 미래를 건 건곤일척의 승부, 선택받은 영웅은 누가 될 것인지 상상하며 영화에 몰입하면 141분의 상영 시간이 짧게만 느껴진다.

    프리퀄→오리지널→시퀄 순서로 감상 추천

    ‘스타워즈 9: 라이즈 오브 스카이 워커’ 스틸컷. [©Lucasfilm]

    ‘스타워즈 9: 라이즈 오브 스카이 워커’ 스틸컷. [©Lucasfilm]

    스타워즈 시리즈를 세상에 내놓은 제작자 조지 루카스(George Lucas)의 삶은 스타워즈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와 더불어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제작에 참여하기도 했지만 삶의 유일한 목표는 스타워즈 시리즈를 만드는 것이었다. ‘루크 스카이 워커의 모험’ 각본을 바탕으로 제작한 첫 작품 ‘스타워즈 4: 새로운 희망’이 부정적 예상을 깨고 흥행에 성공했다. 이후 ‘스타워즈 5: 제국의 역습’ ‘스타워즈 6: 제다이의 귀환’ 등 후속작이 전편을 능가하는 속편으로 평가받으며 스타워즈는 하나의 신드롬을 넘어 역사가 빈천한 미국인에게 ‘새로운 신화(神話)’가 됐다. 

    자신의 꿈을 구현하고자 새로운 기술과 촬영 기법이 필요했던 루카스는 스타워즈를 제작하기 위해 루카스필름을 설립하고 인더스트리얼 라이트 엔드 매직(ILM)이라는 특수효과 스튜디오를 만들기에 이른다. 애초 6부작으로 계획했던 스타워즈 시리즈를 9부작으로 늘리게 되고, 1977~87년 10년에 걸쳐 ‘오리지널 3부작’으로 불리는 ‘스타워즈 4~6’을 제작했다. 이후 1999~2005년 프리퀄(Prequel·전편보다 시간상으로 앞선 이야기를 보여주는 속편) 3부작 ‘스타워즈 1~3’을 완성했다. 그러다 2015~2019년 시퀄(Sequel·전편보다 시간상 뒷이야기를 보여주는 속편) 3부작 ‘스타워즈 7~9’를 완성함으로써 반세기에 가까운 대장정의 막을 내렸다. 

    스타워즈 팬에게는 사족(蛇足)이 되겠지만 스타워즈 9부작을 제대로 즐기려면 1990~2000년대 제작된 프리퀄 3부작-1970~80년대 제작된 오리지널 3부작-2000년대 제작된 시퀄 3부작 순서로 감상해야 한다. 시대별로 달라진 배우들의 모습, 컴퓨터그래픽스의 변천을 비교해 보는 것도 묘미다. 스타워즈에 매료된 독자라면 빠뜨릴 수 없는 것은 스핀오버(번외작) ‘로그 원’(2016) ‘한 솔로’(2018)다. 두 작품은 스타워즈 에피소드의 가교로서 장대한 서사시의 개연성과 흥미를 높이는 감초가 된다. 포스가 여러분과 함께하길!

    ④ 007 : 노타임 투 다이

    ‘007 노타임 투다이’(2020) 한국 포스터. [©MGM]

    ‘007 노타임 투다이’(2020) 한국 포스터. [©MGM]

    4월 개봉 예정인 25번째 007 시리즈의 부제는 ‘노타임 투 다이’다. 이야기는 전작 ‘007: 스펙터’(2015)에서 이어진다. 영국 비밀정보부(MI6) 수장 M(랄프 파인즈 분)은 “MI6 힘으로는 막기 버거울 정도로 세상이 위험에 처해 있다”고 탄식한다. M은 미국 중앙정보국(CIA) 요원 펠릭스 라이터(제프리 라이트 분)에게 제임스 본드(대니얼 크레이그 분)를 찾아올 것을 부탁한다. 마들렌 스완(레아 세이두)과 함께 영국 비밀정보부(MI6)를 떠나 자메이카에서 평온한 삶을 즐기던 제임스 본드는 도움을 청하는 옛 동료의 청을 뿌리치지 못하고 다시 한번 위험이 도사리는 현장으로 복귀한다. 

    ‘007 : 노타임 투다이’에서 주목할 점은 제임스 본드에게 ‘007’이라는 살인면허가 없다는 점이다. 은퇴한 그를 대신한 인물은 MI6 소속 비밀요원 노미(러샤나 리치 분)다. 백인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007’ 역할을 흑인 여성이 맡은 것 자체가 파격이다. 실제 대니얼 크레이그는 전작인 스펙터 이후 “세상은 바뀌고 있다. 성차별적이고 바람둥이인 제임스 본드 이미지도 변해야 한다. 마초 캐릭터의 대명사인 제임스 본드를 더는 연기하기 힘들다”고 밝히며 차기작 출연을 고사했다. 

    ‘스펙터’와 더불어 원작자 이언 플레밍의 작품에 기반을 두지 않고 연출된 ‘007 : 노타임 투 다이’의 각본 작업에는 영국 BBC 코미디 드라마 ‘플리백’의 기획·각본·주연을 맡아 2019년 에미상 코미디 부문 여우주연상·각본상을 수상한 피비 월러 브리지가 참여하고 있다. 다만 21번째 시리즈 ‘카지노 로얄’(2006)부터 24번째 시리즈 ‘스펙터’(2015)까지 5편의 작품에 출연한 대니얼 크레이그의 은퇴작인 이번 작품을 마지막으로 007 시리즈 주인공이 여성으로 바뀔지 살펴보는 것도 영화를 봐야 할 이유다.

    ‘슈퍼 악당’役 라미 말렉

    라미 말렉이 ‘007 노타임 투 다이’에서 ‘슈퍼 악당’역을 맡았다. [©MGM]

    라미 말렉이 ‘007 노타임 투 다이’에서 ‘슈퍼 악당’역을 맡았다. [©MGM]

    영화의 또 다른 화젯거리는 MI6와 제임스 본드를 괴롭히는 ‘슈퍼 악당’으로 ‘보헤미안 랩소디(2018)’에서 프레디 머큐리 역을 맡아 골든글로브·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석권한 라미 말렉이 캐스팅됐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출연을 사양하던 그가 어떠한 악당 캐릭터로 변신했을지는 극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감독 교체, 주연배우 대니얼 크레이그의 촬영 중 부상 등 악재가 이어지며 제작·개봉이 늦어져 차기작을 기다려온 팬들의 마음을 졸이게 한 새로운 007 시리즈가 ‘파격’을 시도한 만큼 팬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007 시리즈 팬들에게 드리는 팁. ‘MI6’라는 별칭으로 더 잘 알려진 영국 비밀정보부(SIS)를 창설한 맨스필드 스미스 커밍(Sir Mansfield Smith-Cumming)은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 서명할 때 자신의 이름 커밍(Cumming)의 첫 이니셜 ‘C’를 사용했다. 이러한 전통이 이어져 이후 MI6 부장들은 ‘수장(Chief)’을 뜻하기도 하는 ‘C’로 사인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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