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망 반도체가 스마트폰 경쟁 핵심
삼성-애플 용호상박… 화웨이 맹추격
스마트폰 안으로 들어온 AI
삼성전자 갤럭시 폴드. [삼성전자 제공]
지난해 9월 삼성전자가 폴더블폰을 시장에 내놓은 지 4개월이 지났다. 안타까운 얘기지만 주변에서 폴더블폰을 사용하는 사람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공공장소에서 관찰해 봐도 사정은 비슷하다.
물론, 삼성전자는 프리미엄 전략을 통해 일정 부분 판매 성과를 거뒀다. 최고의 기술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중국에서는 하루 만에 출시 휴대전화를 모두 팔았으며 지난해 말까지 전 세계에서 50만 대를 판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는 결코 큰 숫자가 아니다. 갤럭시S10이 2개월 만에 1600만 대 판매 실적을 거둔 것과 비교해 보라.
삼성전자 폴더블폰이 보편화한 상품이 되지 못한 까닭은 뭘까. 혁신이 부족해서일까. 답은 비싼 가격에 있다. 폴더블폰 가격은 200만 원 이상이다. 최신 스마트폰 가격의 2배가 넘는다. 휴대가 편한 일반 스마트폰과 넓은 화면을 제공하는 스마트폰 2대를 구매하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다.
1억 화소 넘는 센서 ‘아이소셀’
1억800만 화소를 가진 삼성전자 ‘아이소셀’. [삼성전자 제공]
폴더블폰은 장기적 제품이다. 대중화가 이뤄지려면 비용을 낮춰야 한다. 그러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현시점에서 플렉서블 혁신은 스마트폰 시장의 핵심 경쟁 지표로 보기 어렵다. 폴더블은 특정 구매층 수요를 충족하는 ‘전략적 기능’으로 보는 게 적합하다.
그렇다면 2020년 스마트폰 시장에서 어떤 요인이 주요 경쟁 지표가 될까. 폴더블 기능 외에 ‘5세대무선통신(5G) 지원 여부’와 ‘카메라 화소’가 우선 떠오른다.
먼저 5G부터 살펴보자. 5G는 스마트폰 제조사가 아닌 통신사 영역이다. 스마트폰 기기는 5G를 잘 지원하면 그만이다. 5G 속도는 통신사 능력에 따라 결정되지 스마트폰 기기 성능에 좌우되지 않는다. 5G 스마트폰을 먼저 개발했더라도 보편화하면 경쟁 우위가 지속되지 않는다.
스마트폰 탑재 카메라의 능력은 지금껏 그래왔듯 올해도 주요 경쟁 요소가 될 전망이다. 카메라 화소는 앞으로도 계속 발전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8월 삼성전자는 1억 화소가 넘는 이미지 센서 ‘아이소셀’을 공개한 바 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2020년 가장 주목받을 스마트폰 경쟁 지표는 인공지능(AI) 성능이다. AI는 가장 핫한 정보통신기술(ICT). 지난해 10월 문재인 정부는 “AI 강국으로 도약하겠다”고 공언했다. 정부의 이 같은 발표에 신선한 느낌을 받은 사람은 별로 없다. 어느 정부나 할법한 당연한 소리로 들려서다.
시장조사 전문기관 가트너(Gartner)가 ‘2020년 10대 유망 기술’을 발표했다. 그중 △초자동화(Hyperautomation) △전문성의 민주화(Democratization of Expertise) △강화된 에지(Empowered Edge) △자동화 사물(Autonomous Things) △AI 보안(AI Security) 등 5개 유망 기술이 AI와 관련돼 있다.
스마트폰도 이러한 추세에 비켜 설 수 없다. 현재도 각종 AI가 스마트폰에서 구현된다. 음성 및 이미지 인식, 번역 서비스가 AI를 기반으로 했다. 예컨대 아이폰의 ‘시리’는 AI를 기반으로 사용자의 음성 명령에 따라 작동한다. 갤럭시의 스마트렌즈는 AI를 활용해 이미지를 분석한다.
스마트폰 안으로 들어온 AI
ICT산업 경쟁력의 핵심인 AI 기술. [Flickr]
언뜻 생각하면 스마트폰 자체의 AI 구동은 필요 없어 보일 수도 있으나 최근 ‘에지 컴퓨팅’이 주목받고 있다. 에지 컴퓨팅은 개별 기기에서 발생하는 데이터를 현장 혹은 실사용자 근거리에서 실시간으로 처리하는 방식을 말한다. 중앙 서버가 있는데 개별 스마트폰을 활용해 AI 서비스를 구동하는 이유는 ①수용성 ②실시간성 ③사생활 보호와 관련이 있다.
①수용성은 중앙 서버의 처리 능력을 뜻한다. 사물인터넷(IoT)이 중앙 서버가 처리할 작업량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리고 있다. IoT가 컴퓨터뿐 아니라 각종 사물로 네트워크 연결을 확장함으로써 데이터 생성량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인터내셔널 데이터 코퍼레이션(IDC)에 따르면 올해 44조 기가바이트의 데이터가 중앙 서버에서 처리될 전망이다. 고화질 영화 11조 편을 내려받는 규모다. 중앙 서버에 처리할 작업이 몰리면 부하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를 피하려면 중앙 서버뿐 아니라 개별 기기에서 자체적으로 작업을 처리해야 한다.
②실시간성은 서비스 제공 속도를 뜻한다. 중앙 서버를 통하는 것보다 각각의 기기가 제공하는 서비스가 실시간성이 더 높을 수밖에 없다. 원격에 있는 중앙 서버가 아니라 근거리에서 서비스를 제공해서다. 미국 윌리엄앤드메리 대학이 에지 컴퓨팅과 중앙 서버 방식의 속도 차이를 비교했다. 비교 대상 서비스는 인증이었다. 중앙 서버와 통신은 4G를 통해 이뤄졌다. 비교시험 결과, 에지 컴퓨팅 방식이 10배 정도 속도가 더 빨랐다.
경량화하는 AI 알고리즘
[GettyImage]
결론을 요약하면 AI 서비스가 스마트폰 자체에서 구동되는 경우에는 어떤 회사의 스마트폰을 사용하는지에 따라 서비스 질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갤럭시S8 이후의 삼성전자 스마트폰이 제공하는 음성인식 서비스인 빅스비(Bixby)를 생각해 보자. 빅스비는 ‘하이 빅스비’라는 명령어에 반응하면서 음성인식 기능이 가동된다. “하이 빅스비, 벅스에서 최신 음악 틀어줘” “하이 빅스비, 에어컨 켜줘” 식으로 말하는 것이다. 빅스비는 허가된 사용자의 목소리가 아니면 반응하지 않는다. 화자 인식 기능을 탑재한 덕분이다.
빅스비의 이 같은 기능이 중앙 서버를 통해 구동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해당 스마트폰은 도청 장치가 될 수밖에 없다. 또한 음성 명령을 분석하려면 모든 음성을 중앙 서버로 보내야 하기에 스마트폰이 청취한 음성을 처리하는 중앙 서버에는 과부하가 걸린다. 쉽게 말해 스마트폰 사용자가 지하철에 있다면 그곳에서 나는 모든 소리가 중앙 서버로 보내진다.
이렇듯 음성 및 얼굴 인식을 비롯한 다수의 AI 서비스는 스마트폰 자체에서 구동될 수밖에 없다.
아직은 스마트폰에서 자체 구동되는 AI 서비스가 많지는 않다. 중앙 서버에서 제공하는 AI 서비스를 스마트폰이 보조하는 역할을 하는 경우가 다수지만 자체 구동 AI는 빠른 속도로 확대될 전망이다. ‘스마트폰 전용 AI 경량화 알고리즘’과 ‘AI 전용 프로세서 탑재’라는 두 가지 흐름이 스마트폰 산업에 등장해서다
학계에서는 AI 알고리즘을 경량화하는 연구가 한창이다. 스마트폰과 같은 작은 기기에서도 AI를 구현하기 위해서다.
AI 개발 툴로는 구글의 텐서플로(Tensorflow), 페이스북의 파이토치(Pytorch), 마이크로소프트(MS)의 코그니티브툴킷(CNTK) 등이 있다. 구글이 2017년 11월 선보인 ‘텐서플로 라이트’는 스마트폰에서도 AI 서비스를 구현할 수 있도록 경량화된 AI 개발 툴이다. 안드로이드가 구글에서 개발한 운영체제(OS)라는 점을 고려하면, 텐서플로 라이트 활용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텐서플로 라이트를 통해 안드로이드 기반 스마트폰에서 다양한 AI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따라서 스마트폰 내에서 구동되는 AI 서비스가 많아질 수밖에 없고, 이는 스마트폰의 AI 성능이 중요해짐을 뜻한다.
신경망 반도체가 스마트폰 경쟁 핵심
엑시노스990. [삼성전자 제공]
스마트폰 성능은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속도에 따라 달라진다. AP에 중앙처리장치(CPU) 같은 연산처리 장치가 탑재돼서다. AI 성능 또한 AP가 가진 능력에 따라 달라진다. 다만 CPU만으로는 스마트폰에서 AI를 구동하기 어렵다.
AI가 주목받은 계기는 ‘딥 러닝(Deep Learning)’ 기술 개발 이후다. 각종 AI 서비스가 딥 러닝을 기반으로 이뤄진다. 딥 러닝은 신경망 구조를 본뜬 AI 알고리즘. 학습을 바탕으로 각종 요인을 분석한다. 딥 러닝에서 핵심은 각종 요인을 한 번에 분석하는 것이다.
CPU는 직렬로 연산을 처리하기에 딥 러닝에 적합하지 않다. 그래서 등장한 게 그래픽처리장치(GPU)다. GPU는 영상정보를 처리하고 화면에 출력시키는 일을 하는데 병렬로 연산을 처리하게끔 고안돼 있다. 하지만 GPU만으로도 딥 러닝을 구현하는 데 한계가 있어 스마트폰에 탑재된 것이 뉴로모픽 프로세서(Neuromorphic Processor)와 AP다. 뉴로모픽(Neuromorphic)은 용어에서 추론되듯 신경망을 본떠 만들어진 연산처리 반도체. 쉽게 말해 뉴로모픽은 딥 러닝 맞춤형 프로세서다.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AI 성능을 향상시키기 위해 수년 전부터 뉴로모322601픽프로세서유닛(NPU)이라고 하는 딥 러닝 전용 반도체를스마트폰에 탑재하고 있다. 퀄컴이 뉴로모픽 프로세서 시장을 주도해 왔는데 최근 삼성전자와 화웨이가 자체 AP뿐만 아니라 NPU 또한 탑재하기 시작했다. AI 능력을 높이고자 AP부터 제조하기 시작해 자체 NPU 개발까지 나아간 것이다.
삼성-애플 용호상박… 화웨이 맹추격
삼성전자는 엑시노스라고 하는 자체 AP를 보유했다. 지난해 11월 선보인 엑시노스9820부터 NPU를 탑재했다. 삼성전자에 따르면 엑시노스 9820의 AI 성능은 기존 제품보다 7배 넘게 빠르다.화웨이 또한 기린(KIRIN)이라고 하는 AP를 제조한다. 기린 970버전부터 NPU를 탑재했다. 현재는 기린 990이 출시돼 있다. 애플 또한 자체 AP에 NPU를 탑재하기 시작했다. 애플이 설계하고 대만 TSMC가 제조한 A11(애플의 AP) 버전부터 NPU를 탑재했다.
이렇듯 스마트폰 AI 성능 향상을 놓고 삼성전자, 애플, 화웨이가 치열하게 경쟁한다. 삼성전자와 애플이 용호상박 경쟁하는 와중에 화웨이가 맹추격하는 게 현재 판세다. 경쟁은 혁신을 가속화한다. 스마트폰 AI 능력은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향상될 것이다. 삼성전자, 애플, 화웨이 중 승자는 과연 누구일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