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호

적법 비자 없이 활동 코이카 NGO 봉사단

불법체류 신세 전전긍긍… “코이카 나 몰라라”

  • 김건희 객원기자

    kkh4792@donga.com

    입력2020-01-30 14:00:01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코이카, 위탁 맡긴 NGO에 비자 발급 떠넘겨

    • ‘비자트립’으로 체류기한 연장 편법 만연

    • 단속 강화에 단원들 노심초사… 중도 귀국하기도

    • 해외봉사단 평가보고서 ‘비자 문제 심각’ 지적

    • “파견 인원 늘리는 데 급급, 단원들만 피해”

    • 코이카 “봉사단원 안전 소홀했던 게 사실”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에서 주민을 대상으로 보건교육 사업을 진행한 봉사단원 A씨. 그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코이카)이 지원하는 ‘월드 프렌즈 코리아(World Friends Korea·WFK) 비정부기구(NGO) 봉사단’ 자격으로 1년간 이곳에 파견됐다. 

    코이카는 개발도상국에 대한 무상원조 사업을 전담하는 외교부 산하 준정부기관으로 2009년부터 기존 코이카 봉사단을 비롯해 정부의 무상원조 기금으로 운영되는 해외 봉사단을 통합해 WFK라는 이름으로 운영하고 있다. WFK는 총 7개 봉사단으로 구성돼 있는데, 그중 하나가 ‘WFK NGO 봉사단’이다. 이 봉사단에는 여러 개의 NGO 단체가 참여한다. 

    코이카는 2004년부터 이 봉사단 운영을 국제구호 NGO 협의체인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KCOC)에 맡기고 있다. 코이카가 재정을 지원하면 KCOC가 사업을 계획·실행하고 NGO가 개별적으로 봉사단원을 선발한다. A씨는 2007년 설립된 B단체의 봉사단원이었다.

    적법 비자 없이 불법체류

    문제는 정부의 공식 봉사단원 A씨의 신분이 사실상 불법체류자나 다름없었다는 사실이다. 라오스 정부는 비즈니스 비자(상용비자·B2) 발급 전 NGO 활동을 금지하는데, A씨는 관광비자(당시 체류기간 15일) 소지자였다. 라오스로 파견되는 WFK NGO 봉사단원이 발급받아야 하는 비자는 B2다. 이 비자의 체류 가능 기간은 3개월부터 1년까지다(복수비자). 그렇다면 왜 대한민국 정부에서 파견한 공식 WFK 봉사단원 A씨는 관광비자로 라오스에 입국한 것일까. 

    당시 A씨가 소속됐던 B단체는 라오스의 불투명한 행정 시스템을 사유로 꼽았다. 라오스는 비자 발급 처리 속도가 한국에 비해 늦은 편인데, 특히 B2 비자가 서류 심사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는 것이다. 



    B단체 관계자는 “봉사단원이 출국 전 B2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도록 기간을 넉넉하게 두고 신청해도, 출국 당일까지 비자가 나오지 않기도 한다. 더군다나 KCOC는 봉사단원이 교육을 수료한 뒤 예정 날짜에 파견하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단원 파견과 관련해 이 관계자는 “해당 단원에게 관광비자로 입국할 경우 발생하는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양해를 구한 뒤 당사자가 파견을 원할 때만 보내고 있다”고 해명했다. 

    정부의 무상원조기금으로 운영하는 WFK NGO 봉사단은 △수혜국 현지 지역사회 △파견국의 발전 △상호 우호협력 △지속 가능한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2004년 봉사단원 33명을 파견한 이래 16년간 3000여 명의 단원을 파견했다. 개발도상국에서 활동하는 국내 NGO에 19세 이상 성인을 최장 2년까지 파견하는 형태로 운영한다. 올해는 30여 개국에서 330명이 최단 1년간 파견될 예정이다. 이 사업에 2019년 책정된 예산은 88억5000만 원이다. 

    무엇보다 WFK NGO 봉사단은 민관의 교류와 협력을 도모한다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KCOC가 정부의 무상원조기금을 활용해 회원단체 국제개발 사업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실무자의 전문성을 향상시키고 나아가 NGO의 사업수행능력을 강화한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그 결과 WFK NGO 봉사단은 NGO의 전문성과 네트워크를 통해 정부의 국제 원조 효과성은 물론 국격 제고에도 큰 기여를 하고 있다.

    파견 국가 실정법 어기며 봉사활동

    월드 프렌즈 코리아(WFK) NGO 봉사단이 해외로 봉사활동을 떠나기 전 선서하는 모습. [월드프렌즈코리아 NGO 봉사단 페이스북]

    월드 프렌즈 코리아(WFK) NGO 봉사단이 해외로 봉사활동을 떠나기 전 선서하는 모습. [월드프렌즈코리아 NGO 봉사단 페이스북]

    그러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B단체의 사례처럼 여건상 불가피하다는 이유로 파견 국가의 실정법을 위반하며 단원에게 관광비자나 학생비자를 쥐여주는 행태가 다른 곳에서도 발견된다. 

    1년간 탄자니아 시골마을에서 원주민에게 외국어를 가르친 C씨 또한 관광비자(90일 체류 가능)로 입국했다. 탄자니아에서 NGO 활동을 하려면 출국 전 비즈니스 비자(1년 체류 가능)를 취득해야 하지만 비자 서류 심사가 길어졌기 때문이다. 탄자니아 정부가 사회 기강을 확립하는 차원에서 대대적인 사정 활동을 전개하자 C씨의 불안감이 더 커져만 갔다. 현지의 한국인 NGO 지부장에게 비자 문제로 인한 불안한 심경을 호소하자 “비자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는 “비자 문제로 언제 쫓겨날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걱정으로 늘 마음이 무거웠다. 단원들 사이에선 최근 네팔에 파견된 한 단원이 학생비자를 소지했는데, 네팔 정부의 단속이 강화되자 불안감을 호소하며 도중에 귀국했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전했다. 이는 사실로 확인됐다. 코이카 고위 관계자는 “해당 사례는 사실이 맞다”고 밝혔다. 

    국제개발협력 감시단체인 ‘대안발전 피다’ 한재광 대표는 “정부 재정을 지원받은 NGO들이 구호 사업의 성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적합한 비자를 발급받지 못한 단원을 파견하는 것은 잘못”이라며 “더욱이 국제 구호에 앞장선다는 NGO가 파견 국가의 법을 위반하면서까지 봉사활동을 하는 게 과연 의미가 있는지 깊이 고민해 봐야 할 일”이라고 지적했다.

    비자 발급은 알아서 해라?

    WFK 소속으로 해외에 봉사활동을 떠난 한국 청년들이 현지에서 비자 문제로 곤란을 겪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13년 7월 31일 코이카의 후원을 받아 KCOC가 발간한 ‘2004~2012 민간단체 해외봉사단 파견사업 평가보고서’에는 WFK NGO 봉사단의 비자 문제 실태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보고서는 “실태 조사 결과 케냐에서 대다수 NGO가 취업비자를 취득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케냐에 장기간 체류하기 위해서는 취업비자를 신청해 발급받아야 한다. 하지만 취업비자를 발급받는 데 7개월 넘게 소요된 사례도 있었다. 

    한국 정부에서 파견하는 WFK 봉사단 가운데 유독 WFK NGO 봉사단에서만 비자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코이카가 이 사업을 KCOC에 위탁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WFK NGO 봉사단은 봉사단원과 파견 계약을 체결한 해당 NGO에서 비자 발급을 신청하게 된다. 봉사단원들은 비자 발급 지원비를 해당 NGO에서 받고 있다. 

    그러자 일부 봉사단원들은 “‘NGO가 단원을 파견하는 형태이니 비자 발급도 단체에서 알아서 하라’고 떠넘기는 게 아니냐’며 불만을 표시한다. 미얀마에서 2년간 단원으로 근무한 K씨는 “코이카는 WFK NGO 봉사단이 정부 봉사단이라고 하는데, 정작 비자 발급 문제로 신변에 불안을 느끼는 문제에 대해서는 나 몰라라 식의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상황에서 NGO에 대한 개발도상국의 비자 정책이 갈수록 까다로워지고 있다. 필리핀이나 몽골처럼 정부가 수월하게 취업비자를 내주는 국가에서는 단원이 장기간 체류하는 데 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이외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봉사단원은 물론 한국인 파견 직원 일부도 취업비자 발급에 수개월 넘게 소요돼 그동안 관광비자나 학생비자를 소지한 채 활동한다. 

    네팔은 비자 단속이 특히 심한 국가에 속하지만, 단속이 느슨한 국가라도 비자 발급에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개발도상국이 비자 정책을 바꾸면 언제든 비자 발급 상황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전까지는 비자 발급에 문제가 없었던 나라에서 갑자기 비자 발급을 거부하는 경우도 늘고 있는 실정이다.

    ‘비자트립’으로 편법 체류기한 연장

    한 NGO 활동가는 “네팔 같은 개발도상국은 NGO를 반정부 단체로 간주하고 있어 NGO 차원에서 대응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봉사단 파견 인원이 사업 성과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문제 요인으로 지적된다. 또 다른 NGO 활동가는 “소규모 NGO는 파견하는 단원 규모가 나라별로 1~2명에 불과하다. 1명만 파견하지 않아도 해당 NGO의 사업 성과가 크게 낮아질 수 있다. 그렇다 보니 목표 인원을 채우는 방향으로 일을 진행하고, 불법인 줄 알면서도 봉사단원에게 ‘관광비자나 학생비자를 받으라’고 안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WFK NGO 봉사단의 취업비자 발급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는 사이 일부 봉사단원들 사이에서는 체류기한 연장을 위한 이른바 ‘‘비자트립(visa trip)’이 관행처럼 굳어지고 있다. 관광비자로 입국한 후 체류기한이 종료될 즈음에 인접 국가로 비자여행을 다녀오는 것이다. 외국 관광객의 체류기한은 입국한 날로부터 다시 계산하기 때문에 비자 체류기간이 지나기 전 이웃 국가로 잠깐 출국했다 다시 귀국하면 체류기간을 편법으로 연장할 수 있다. 취업비자 없이도 장기간 체류할 수 있는 셈이다. WFK NGO 봉사단 사이에서는 나라마다 비자트립을 떠나는 방법과 노하우가 공유될 만큼 편법적인 체류기한 연장이 빈번하다. 

    앞에서 언급한 A씨 역시 취업비자를 발급받기 전까지 세 차례 비자트립을 떠났다. 라오스에 파견된 단원들은 주로 태국으로 가는데, A씨도 라오스와 태국을 오가며 비자 체류기한을 연장했다. 비자 체류기한 연장을 위한 여정은 이렇다.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에서 자동차로 30분가량 이동한 뒤 라오스 출입국사무소에서 출국 사실을 신고한 후 라오스 국경을 통과해 메콩강 건너편에 있는 태국 출입국사무소로 향한다. 입국 사실을 신고한 뒤 다시 태국에서 라오스로 되돌아간다. 그러면 관광비자 체류기한을 갱신할 수 있다. 

    A씨는 “2주에 한 번 시간을 따로 내 비자 체류기한을 연장하러 태국에 나가는 것도 피곤한 일이었지만 편법을 저지른다는 점이 마음에 걸려 정신적 스트레스가 컸다. 행여나 라오스 정부의 비자 단속에 걸릴까 봐 애를 쓰며 속을 태워야 했다. 게다가 태국에 한 번 다녀오면 하루가 훌쩍 지나가는 탓에 봉사활동에 전념할 수가 없었다. 라오스 지역 주민들에게도 미안했다”고 말했다. 

    A씨를 화나게 만드는 건 태국에서 라오스로 재입국할 때마다 출입국사무소 공무원에게 돈을 따로 챙겨줘야 했다는 점이다. A씨가 비자 체류기한을 연장하려 태국으로 나갔다 다시 들어온다고 생각한 공무원이 이를 함구하는 조건으로 대가를 노골적으로 요구했기 때문이다. A씨가 공무원에게 건넨 금액은 30달러 수준이다.

    출입국사무소에 돈 주기도

    태국 치앙마이에서 주거환경이 열악한 현지 주민을 위해 집을 짓는 봉사단원들. [뉴스1]

    태국 치앙마이에서 주거환경이 열악한 현지 주민을 위해 집을 짓는 봉사단원들. [뉴스1]

    최근 라오스·미얀마·태국 등 일부 국가에서는 외국인의 비자 단속을 강화하는 추세다. 적법한 비자 없이 해당 국가에 장기간 체류하면서 불법 근로하는 이들이 주요 단속 대상이다. 네팔 정부는 2018년 5월 관광비자나 학생비자 소지자가 체류 목적을 위반한 행위에 대해 집중 단속을 실시했는데, 당시 단속 대상에는 관광비자로 NGO 활동을 하는 외국인이 포함됐다. 

    비자 발급은 봉사단원의 안전과 직결되는 사안이다. 비자 발급이 원조받은 정부의 소관 사항이긴 하지만 봉사단원이 적합한 비자를 확보하는 것은 이들의 신분을 보호하는 외교부와 코이카의 책무이자 과제다. A씨는 “자칫 단원이 인근 국가로 출국했다가 다시 입국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KCOC 측은 “비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비자 발급이 불가한 국가에는 단원을 보내지 않는다는 게 기본 방침”이라며 “코이카와의 지속적 협의를 통해 올해부터는 코이카가 단원의 비자 발급을 지원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NGO 활동가들은 10여 년 전부터 WFK NGO 봉사단의 비자 취득 문제가 발생해 왔다며 코이카의 늑장 대응을 비판한다. NGO 활동가들은 “지금이라도 코이카가 WFK NGO 봉사단원의 비자 문제를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코이카의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NGO 활동가는 “단원이 불법체류 신분으로 봉사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이어지는 그의 말이다.

    “WFK NGO 봉사단 제대로 점검해야”

    “WFK NGO 봉사단원의 경우 파견 국가에서 취업비자를 내주지 않거나 발급이 늦어지는 일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이런 경우는 대개 파견 국가와 코이카 사이에서 소통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은 것이 첫째 요인이다. 무엇보다 코이카가 파견 국가와의 협력관계를 강화하지 못한 상황에서 사업 성과를 위해 무리하게 단원을 파견하는 행태가 가장 큰 문제다. WFK NGO 해외봉사단원의 비자 문제는 출국 전에 매듭짓는 게 맞다. WFK NGO 봉사단의 파견 사업에 대해 엄격한 기준과 평가가 마련돼야 한다.” 

    한재광 대표는 “일각에서는 자칫 WFK NGO 봉사단 규모가 축소되고 위축될 수 있다고 우려하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제도화하고 양성화해야 한다. 봉사단원의 안전보다 사업 성과가 위에 있을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코이카 측은 “그동안 WFK NGO 봉사단원의 비자 발급이 불가능할 경우 코이카 해외사무소에서 비자 발급을 요청하는 공식 서한을 발송해 오고 있다”며 “봉사단원이 원조받는 나라와 우리 정부 간 체결된 무상원조 기본협정 또는 봉사단 파견협정에 따라 대한민국 정부에서 파견한 공식 해외봉사단임을 설명하고, 적정한 비자를 발급해 줄 것을 요청해 오고 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코이카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높다. 코이카 내부 고위 관계자는 “16년간 WFK NGO 봉사단이 양적 팽창을 이뤄왔으나 그에 걸맞게 봉사단원의 안전을 도모하는 데는 소홀했던 게 사실”이라며 “국민의 안전과 보호가 어느 때보다 중요한 가치로 떠오르는 상황에서 코이카가 봉사단원의 안전 문제를 인식하기 시작한 게 1~2년밖에 안 됐다”고 말했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