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호

운동권 후배가 거꾸로 읽는 유시민 [민경우 586칼럼⑫]

‘나의 한국현대사’와 ‘거꾸로 읽는 세계사’ 속 유시민

  • 민경우 민경우수학교육연구소 소장

    mkw1972@hanmail.net

    입력2021-02-02 10:00:01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검사들의 말 전적으로 불신” 사과

    • 84학번이 믿고 의지했던 78학번 운동권

    • 소련 붕괴 뒤에도 책에서 사회주의 운운

    • 자유주의? 마음 속 깊이 마르크스주의

    • 1960~70년대 운동권의 유산

    *586세대 NL(민족해방 계열) 이론가이자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사무처장 출신인 필자가 문재인 시대에 표하는 유감.

     2018년 10월 15일 서울 마포구 신수로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에서 열린 이사장 이·취임식에서 유시민 신임 이사장이 취임사를 하고 있다. [동아DB]

    2018년 10월 15일 서울 마포구 신수로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에서 열린 이사장 이·취임식에서 유시민 신임 이사장이 취임사를 하고 있다. [동아DB]

    나는 지금 1월 22일자 유시민(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사과문을 보고 있다. 사과문에서 그는 2019년 12월 24일 시사 유튜브 ‘알릴레오’에서 검찰이 노무현재단 계좌를 사찰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데 대해 “사실이 아니었다고 판단한다”며 검찰과 재단 후원회원, 시민들에게 사과했다. 또 자신의 행동이 “대립하는 상대방을 ‘악마화’하고 공직자인 검사들의 말을 전적으로 불신했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많이 부끄럽다. 다시 한 번 깊이 사과드린다”라고 마무리했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일단 필자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편을 가르고 사실보다는 믿음에 기초해 상대방을 판단하고 단죄해 왔다. 이런 경향을 주도했던 문재인 정권과 추종 세력들은 이른바 ‘추-윤 갈등’이 끝났음에도 변화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유시민의 사과문이 상황을 바꾸는 단초가 되었으면 한다. 

    유시민이 2020년 정치적 갈등의 중심지였던 검찰을 직접 겨냥한 점, 2020년 7월 당시 논란의 중심이었던 한동훈 검사장의 실명을 거론한 점 등은 예사롭지 않다. 검찰과 관련된 권력투쟁의 성격도 있어 보인다. 사건의 추이는 지켜보기로 하자. 필자가 다루고자 하는 주제는 30년 가까이 정치의 중심에 있던 운동권 스타 정치인의 사상적 궤적과 공과(功過)다.


    대학 시절의 유시민

    1960~70년대 학생운동권은 민주화를 추구하면서 우리 민족이 외세의 억압에 빠져 있고 그로 인해 민중이 도탄에 빠져있다고 생각했다. 1984~85년 즈음 학생들은 이를 ‘삼민(민주, 민중, 민족)’으로 정식화했다. 84학번인 필자의 기억에 따르면 ‘삼민’은 공안기관에서 만든 개념이었다. 그럼에도 당시 학생운동권이 갖고 있는 생각을 잘 표현하고 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학생운동권의 이념은 모호했다. 그러다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있었다. 이후 학생운동권의 이념은 주체사상과 마르크스-레닌주의 같은 명료한 바탕 위에서 발전했다. 논의를 위해 학생운동권의 이념 단계를 세 가지로 구분하자. 첫째 삼민. 둘째 추상적인 마르크스-레닌주의. 셋째 명료한 또는 실천적인 마르크스-레닌주의. 

    서울대 경제학과 78학번인 유시민은 ‘삼민’에 더해 추상적인 마르크스-레닌주의 단계까지 이르렀던 것으로 보인다. 유시민이 쓴 책 ‘나의 한국현대사’에는 이와 관련해 흥미 있는 기록이 있다. 

    이에 따르면 유시민은 1983년 5월 군에서 제대했다. 당시 그는 학습지진아였다. 읽은 책이라고는 ‘공산당 선언’과 ‘자본론’ 정도였다. 주체사상이 대세라고 해서 후배들과 어렵게 약속을 잡아 토론을 했다고 한다. 토론 주제는 ‘휴전선을 어떻게 볼 것인가’와 ‘한국사회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였다. 그는 38선이 휴전선에 가깝고, 북한은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전체주의 독재국가여서 남북이 각기 할 일을 하면 된다는 요지로 발언했다. 그 뒤 후배들에 의해 ‘구제 불가능한 자유주의자’로 찍혔다는 것이다. 

    이 기록은 사실에 부합할 가능성이 크다. ‘삼민’이라는 애매한 이념은 1980년 이후 점차 급진화하기 시작해 1985~86년을 기점으로 분화한다. 내 경험도 그렇지만, 주체사상 및 레닌주의를 수용하는 것과 이에 따라 실천에 나서는 것은 매우 다르다. 대학 시절의 유시민은 넓은 의미의 사회주의, 공산주의에는 동의하지만 실천에는 나서지 않는 상태였다고 보인다. 

    1988년 출간된 ‘거꾸로 읽는 세계사’(이하 ‘세계사’)에는 그의 생각이 잘 녹아 있다. ‘세계사’는 평이하고 유려한 문체로 공전의 히트를 친 대중교양서다. 필자도 재미있게 읽었다. 

    ‘세계사’는 각국의 운동사(史)를 살핀다. 운동사의 핵심은 사회주의와 혁명이다. ‘세계사’는 제1~2차 세계대전, 히틀러, 대공황, 중국 혁명, 러시아 혁명, 베트남전쟁 등을 다룬다. 이중 러시아 혁명이 단연 ‘세계사’의 중심에 있다. 사실 이 책은 1984~1985년 무렵 학생운동권의 커리큘럼을 대중적으로 쓴 것이다. 학과 사무실이나 교정에서 소규모 서클 단위로 공부했던 내용을 책으로 옮긴 것에 가까웠다. 당시 비슷한 시도가 적지 않았는데, 조성오의 ‘철학 에세이’나 박세길의 ‘다시 쓰는 한국 현대사’가 대표적이다.


    그의 사상적 궤적에 주목하는 이유

    2014년 초판이 나온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나의 한국 현대사’. [돌베개 제공]

    2014년 초판이 나온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나의 한국 현대사’. [돌베개 제공]

    ‘세계사’의 결정적인 문제점은 책의 틀이 만들어졌을 1980년대 중반과 책이 실제 출간돼 인기를 끈 1990년대 사이에 결정적인 정세 변화가 있었다는 점이다. 유시민이 옹호했던 사회주의권은 줄줄이 붕괴하거나 시장경제로 돌아섰다. 제3세계의 무장투쟁 세력도 속속 의회주의를 표방하며 정당으로 변신했다. 

    따라서 유시민 처지에서는 어떤 형태로든 수습이 필요했다. 1995년 그는 ‘세계사’ 개정판 서문에 사회주의권 붕괴에 대해 아래와 같은 해명의 글을 첨부했다. 

    “적어도 경제제도와 정치체제에 관한 한 냉전시대가 막을 내린 지금 시점에서 분명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복수정당제와 자유선거를 핵심으로 하는 의회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토대로 하는 사회주의 이상을 결합한 경제체제다.” 

    서울대 국사학과 84학번으로 주사파(주체사상파) 운동권이었던 내게 유시민은 믿고 의지했던 선배였다. 덕분에 나는 그의 사상적 궤적에 주목하는 편이다. 나는 유시민의 글을 1990년대에도 읽었고 2021년에도 읽는다. 나는 그의 글을 읽을 때마다 그에 대한 생각이 변화한다. 1990년대 초반 어느 시점에 나는 유시민의 글에 동의했고 그에 의거해 30대를 보냈다. 2010년 무렵에는 그의 글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유시민과 우리가 그런 생각을 했었구나’ 싶다. 

    1990년대 초반 소련 및 사회주의권이 붕괴했다. 이를 기점으로 유시민은 두 개의 상이한 사상적 지판 위에 섰다. 하나의 지판에는 5·18 이후 급진화 된 운동권이 혁명과 건설의 모범국가로 본 소련이 있었다. 다른 지판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사회주의가 있었다. 즉 사회주의라는 거대한 성채가 무너진 지 4~5년이 되는 시점에 그는 ‘세계사’ 개정판에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러시아 혁명과 사회주의를 논하고 있던 것이다. 

    유시민만이 아니다. 돌이켜 보면 운동권 모두가 그랬다. 주사파는 소련·사회주의권의 붕괴를 무시했다. 주사파는 민족주의에 깊이 사상의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따라서 사회주의권 붕괴는 우리가 처한 현실과 다르거나 우리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있었다. 나와 내 동료가 그랬다. 나는 동료들과 사회주의권 붕괴에 따른 충격을 애써 무시하고 조국통일 운동에 열중했다. 

    마르크스주의에 심정적으로 가까웠던 좌파들은 비교적 사회주의권 붕괴에 민감했다. 그런 그들에게도 도피의 경로가 있었다. 그들은 사회주의권 붕괴를 사회주의 전체가 아니라 민주주의나 휴머니즘이 결여된 특정 사회주의의 붕괴라고 폄하했다. 위에 소개한 유시민의 글처럼 여전히 ‘사회주의의 이상’은 살아있는 식이었다. 유시민은 이렇게 쓰기도 했다. 

    “혼합경제, 복지국가, 사회적 시장경제, 사회주의적 시장경제 등 그 이름이 무엇이든 중요하지 않다. 다만 시장 기능을 무시하는 중앙집권적 계획경제는 물론이요, 기회균등과 공정한 경쟁, 사회정의와 생활안정을 보장하지 않은 채 약육강식과 같은 자본주의 경쟁체제 역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이 중요하다.”


    마음 속 깊은 곳의 마르크스주의

    1985~1986년 마르크스주의자였던 청년의 일부가 레닌주의자가 됐다. 그들은 1990년대 사회주의권이 붕괴하자 레닌주의를 감추고 다시 마르크스주의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시대 변화에 맞춰 민주주의와 사회복지를 중시하는 형태의 마르크스주의자로 변신했다. 이것이 사회주의권의 붕괴에도 1990년대 이후 마르크스주의가 유지될 수 있던 역사적 배경이다. 

    유시민은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1990년대 이후 유시민의 사상에서 여전히 중심은 마르크스주의였다. 유시민을 비롯해 청년시절 운동권이었던 인사들이 꺼내는 사회민주주의나 사회적 경제 같은 담론은 마르크스주의와 대결하면서 성장했던 서구식 사민주의가 아니다. 마르크스주의자가 1990년대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 현실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채택한 개념이다. 

    유시민은 많은 책을 남겼다. 그의 책 대부분은 대중 교양서다. 책에서는 정치인일 때보다 자신의 생각을 털어 놓는 게 자유로웠던 것 같다. 책 대부분에서 그는 특별히 마르크스를 언급하며 각별한 애정을 보인다. 그는 자신이 자유주의자라고 주장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마음 깊은 곳에서 마르크스주의자다. 

    유시민만이 아니다. 1960~1970년대 운동권 다수가 마찬가지였다. 1970년대 박정희의 유신 체제가 부과했던 중압감을 고려하면 1980년대 중반 대학생들이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경도된 것은 이해할만 하다. 정작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사회주의권이 붕괴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 다수가 여전히 마르크스주의자였다는 점이다.


    ● 1965년 출생
    ● 서울대 국사학과 졸업
    ● 서울대 인문대 학생회장
    ● 조국통일범민족연합 사무처장·진보연대 정책위원회 부위원장
    ● 저서 : ‘수학 공부의 재구성’ ‘새로운 보수의 아이콘’ 外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