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7월호

‘미얀마의 봄’이 쉽지 않은 이유

G2 격돌하는 新냉전 속 아세안도 외면

  • 장준영 한국외국어대 동남아연구소 교수

    koyeyint@hotmail.com

    입력2021-07-06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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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부 800여 명 학살, 탄압받은 소수민족

    • 첨예한 국제정세 속 군부 선택지 다양

    • 美 인도·태평양 전략 요충지

    • 미얀마 짜욱퓨 항은 中 원유 수송 생명선

    • 핵개발 교육, 헬기 구입…군사 협력하는 러시아

    • “미얀마 내부 문제”…외면하는 국제사회

    2월 8일 미얀마 네피도 거리에서 시민들과 군인이 대치하고 있다. 시민들은 민아웅 흘라잉 군 총사령관 모습 위에 크게 ‘X’자를 쳐놓은 사진을 들고 있다. [AP 뉴시스]

    2월 8일 미얀마 네피도 거리에서 시민들과 군인이 대치하고 있다. 시민들은 민아웅 흘라잉 군 총사령관 모습 위에 크게 ‘X’자를 쳐놓은 사진을 들고 있다. [AP 뉴시스]

    어느덧 미얀마 사태가 시작된 지 넉 달째다. 4월 24일 아세안(ASEAN) 특별정상회담에서 미얀마 군부는 즉각적인 폭력 행위 중단에 합의했지만 이를 지키지 않았다. 2월 1일 군부 쿠데타 이후 군‧경의 시위대 강경 진압으로 사망한 이들은 7월 1일 기준 885명(미얀마 정치범지원협회 집계)이다. 구금·행방불명된 시민도 수 천 명이라고 한다. 이제는 군부의 탄압으로 거리를 가득 메운 시민 행렬도 대부분 사라졌고, 간간이 게릴라식 시위만이 목격된다. 군부는 선거제 개편을 통해 정치권력을 다시 장악할 준비를 하고 있다.

    미얀마 상황은 전 세계 언론을 통해 보도되고 있다. 양곤 거리에 울려 퍼진 총성, 쓰러진 시민들의 모습은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이들의 마음을 울린다. 미얀마에 우리 국민도 적지 않은 관심을 보인다. 군부 세력이 무자비하게 폭력을 행사해 정권을 찬탈한 역사는 우리의 얼룩진 현대사와 닮은 점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얀마의 평화는 아직 요원하다. 우선 주류 민족인 버마족과 소수민족 간의 갈등을 봉합해야 군부에 대항할 수 있다. 강대국의 역학관계도 군부에 유리하게 작용한다. 미·중 갈등에 러시아·아세안까지 각자의 이익을 얻고자 군부의 폭력을 사실상 묵인하고 있다. 현 상황에 대한 진단을 통해 미얀마가 민주주의로 향하기 위해 넘어야 하는 허들을 정리해 봤다.

    미얀마에서 발생한 사태를 간략하게 되짚어 보자. 2월 1일 군부는 쿠데타를 일으켜 국가고문인 아웅산 수치와 윈 민 대통령, 여당 지도자들을 가택 연금하고, 민아웅 흘라잉 군 총사령관에게 권력을 이양했다고 밝혔다. 미얀마는 1962년 이후 군사정권 지배를 받았으나 2011년부터 국민민주주의연맹(NLD)이 이끄는 민주주의 정권으로 권력이 이양되는 추세였다. 2020년 11월 총선에서 NLD는 476석 중 396석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런데 군부가 선거 부정을 명목으로 석 달 만에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다시 장악한 것이다.

    반군부 세력은 자체 무장투쟁을 선언했다. 군부에 저항할 힘을 가지려면 NLD가 출범시킨 임시정부인 국민통합정부(NUG) 연방군에 소수민족 반군이 참여해야 한다. 하지만 소수민족을 설득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미얀마 국민의 약 70%를 차지하는 버마족과 나머지 소수민족은 그리 좋은 사이가 아니다. 소수민족은 1948년 미얀마 독립 후 현재까지 미얀마 연방의 변방으로 취급받았다. 군사정권뿐 아니라 2015년 총선에서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NLD 역시 이들을 적대시했다. 미얀마 군부가 소수민족인 로힝야족(族)을 학살할 때 아웅산 수치는 국제사법재판소에 출석해서 군부를 옹호하기도 했다.

    6월 1일 현지 매체에 따르면, NUG는 미얀마 서부에서 활동하는 반군 친국민전선(CNF)과 첫 동맹을 맺기도 했지만 다른 소수민족 반군과 동맹이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소수민족이 사는 지역을 지배하는 반군은 자신이 실효적으로 지배하던 지역의 부존자원을 독식하고, 자치권 획득을 희망한다. NUG는 이들의 요구를 전적으로 수용할 상황이 아니다. 만약 아웅산 수치가 자유의 몸이 됐을 때 자신이 결정하지 않은 일이라며 무장단체와의 약속을 파기하면 국가는 다시 혼란의 소용돌이로 빠져들게 될 것이다.



    이해관계가 각기 다른 이들이 얽혀 있는 미얀마 인종문제는 미얀마 사태가 장기화하는 이유 중 하나다. 그간 군부를 포함한 정부가 행한 소수민족에 대한 차별을 대다수 국민이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점이 이번 쿠데타에서 얻은 예상치 않은 성과다.

    일대일로·원유 수입 숨통…미얀마 포기할 수 없는 中

    미얀마 동북부 지역은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중국은 인도양과 남중국해를 연결하는 말라카 해협이 미군에 의해 막힐 염려를 대비해 미얀마 짜욱퓨 항을 통해 육로로 원유를 수송하고 있다. [구글 맵스 캡처]

    미얀마 동북부 지역은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중국은 인도양과 남중국해를 연결하는 말라카 해협이 미군에 의해 막힐 염려를 대비해 미얀마 짜욱퓨 항을 통해 육로로 원유를 수송하고 있다. [구글 맵스 캡처]

    잠시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떠올려보자. 당시 전두환 군부는 동맹국인 미국과 손을 잡았다. 카터 행정부도 전두환 정부를 인정하지 않아 반미 정권이 한국에 탄생한다면 한반도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줄어들어 공산화할 위험을 배제할 수 없었다. 광주 상황을 묵인하는 미국 정부와 한국 군부의 이익이 상보적이었던 셈이다.

    미얀마 군부는 신냉전 상황 속에 다양한 선택지를 가지고 있다. 지정학적 중요도가 높은 미얀마에 분쟁이 터지기를 바라지 않는 강대국의 이해관계는 미얀마 사태의 해결을 늦추는 또 다른 원인이다.

    우선, 미얀마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국이 있다. 중국은 1990년대부터 미얀마에 남다른 공을 들였다. 서방세계가 미얀마 군부에 대한 제재에 나설 때도 중국은 군부를 정치적으로 후원하고 그 대가로 경제적 이득을 취했다.

    중국이 일대일로(一帶一路·육·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를 달성하려면 미얀마가 꼭 필요하다. 중국은 영토 동쪽,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에서 미국의 지원을 받는 동남아 국가와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다. 대신 미얀마를 발판으로 삼으면 안다만해(벵골만 중 미얀마 쪽 바다·지도 참고)와 인도양에 진출할 수 있다.

    미얀마는 중국이 에너지 안보를 지키는 데도 핵심 지역이다. 미군이 해군력으로 말라카 해협을 장악하면 중국이 원유 수입에 차질을 빚게 된다. 말라카 해협은 인도양과 남중국해를 연결하는 좁은 해협이다. 중국이 수입하는 원유 일부는 말라카 해협을 통과하는 대신 미얀마 서부 짜욱퓨 항에서 육로를 가로질러 중국 윈난과 난닝에 도달한다.

    중국이 짜욱퓨 항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보여주는 일례가 있다. 2017년 미얀마에서 로힝야족 대량학살 사건이 발생하자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황급히 미얀마로 날아가 경제발전을 포함한 3대 해결책을 제시했다. 로힝야족 거주 지역은 짜욱퓨 항과 인접해 내전 상황이 발생하면 원유 수송에 타격을 받는다. 이번 군부 쿠데타 이후에도 중국 정부는 미얀마 군부에 수송관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달라는 요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에 미국은 인도·태평양 전략으로 맞선다. 미국은 아시아 패권 전략에서 미얀마를 가장 허약한 연결고리(weak link)로 인식한다. 오바마 행정부 당시 동아태차관보를 맡았던 커트 캠벨은 그의 책 ‘피벗(Pivot)’에서 미얀마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미얀마는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어 미국이 미얀마를 자국의 영향력 아래 두면, 중국의 동남아 남하뿐만 아니라 인도양 진출 자체를 막을 수 있는 가상의 안보 벨트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미얀마 주목하는 美, 군사협력하는 러시아

    2월 28일 미얀마 북부 카친주에서 한 수녀가 양손을 들고 경찰의 진압 자제를 당부하고 있다. [AP 뉴시스]

    2월 28일 미얀마 북부 카친주에서 한 수녀가 양손을 들고 경찰의 진압 자제를 당부하고 있다. [AP 뉴시스]

    바이든 행정부는 캠벨에게 다시 외교 중책을 맡겼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인도·태평양조정관으로 임명한 것이다. 인도·태평양 전략의 확장판으로서 미국은 쿼드(Quad·미국 일본 인도 호주 집단안보체제)를 통해 중국을 노골적으로 견제하고자 한다. 미얀마는 원유관과 가스관을 중국에 개방하고, 국경과 대도시를 중심으로 중국 자본을 받아들였다. 미국의 미얀마 압박 수위가 높아질수록 미얀마는 중국과 관계를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쿼드에 부정 영향을 끼친다. 5월 24일 미국인 저널리스트가 미얀마 당국에 체포돼 행방을 알 수 없으나 미국은 군사적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미국이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미얀마를 배제하긴 어려워 보인다.

    러시아도 주목해야 할 국가다. 특히 미얀마와 러시아는 군사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해 왔다. 1995년 미얀마는 러시아산 헬기 7대를 구매한 것을 시작으로 2007년에는 일부 장교가 러시아로부터 핵개발 기술교육을 받기도 했다. 이번 쿠데타의 주역인 민아웅 흘라잉 군 총사령관은 2013년부터 현재까지 여섯 번 러시아를 방문해 중국과 군사외교적 균형을 맞췄다. 2020년 6월 방문 당시에는 한 러시아 언론(Zvezda News Agency)과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직에 대한 개인적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러시아는 중국과 함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미얀마 문제는 내정(內政)이라고 정의하고 유엔 차원의 어떠한 조치에도 반대하고 있다. 미얀마 군부로서는 든든한 우군이 생긴 셈이다. 만약 군부가 정권을 완전히 접수하면 서방의 압력에 맞서는 방편으로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러시아가 동남아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크지 않고, 미얀마와의 협력이 군사 분야로 국한됨에 따라 중국처럼 후견국이 될 가능성은 적다.

    스러져 가는 민주주의, 외면하는 국제사회

    G2가 주도하는 신냉전 구도 속에서 미얀마 군부는 전략적 헤징(hedging·위험 분산)으로 외교 자원을 이용하고자 한다. 이런 이유로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미얀마 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하기에는 힘이 부쳐 보인다.

    내정 불간섭 원칙을 견지하는 아세안도 마찬가지다. 아세안은 폭력 중단 합의를 이행하지 않은 미얀마 군부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아세안은 미얀마에서 군부 주도로 총선이 이뤄지고, 그 결과에 따라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기를 기대하고 있을지 모른다. 군부가 집권하는 태국이나 장기 독재 중인 캄보디아 등 정치적 자유도가 높지 않은 국가가 많은 아세안이 군부에 편향된 행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회복을 열망하는 미얀마 국민이 양곤의 길거리에서 쓰러져도 자국의 이익 앞에 눈을 감는 냉엄한 국제질서 속에서 인류애나 세계시민이라는 용어는 애초에 실현 불가능한 수사인 듯하다.

    미얀마 현대사에서 미얀마를 두고 강대국의 이해관계가 이토록 첨예하게 대립한 적은 없다. 반드시 민주주의를 회복하겠다는 미얀마 젊은이들의 결기와 끊이지 않는 저항 정신을 목격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패배로 점철된 과거이지만 군부가 통치하는 미얀마 땅에서 더는 살고 싶지 않다는 청년들의 절규 속에서 속도는 더딜 수 있지만, 민주주의는 반드시 회복되리라 믿는다.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이들의 목소리가 국제사회에 전달되는 희망도 조금이나마 품어본다.

    #미얀마 #쿠데타 #신냉전 #아세안 #신동아

    장준영
    ● 1975년 출생
    ● 서강대 동남아학과 정치학석사, 한국외대 국제관계학박사
    ● 現 한국외대 동남아연구소 교수
    ● 저서: ‘미얀마 정치경제와 개혁개방’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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