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호

전리품 나누다 세월 보낸 文, 이재명·윤석열도 닮아간다

[강준만의 회색지대] 선거 기술자·파벌·자리 사냥꾼 양산하는 ‘캠프 정치’

  •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입력2022-01-01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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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소 자아낸 與 전용기·현근택의 말

    • 공당 대변인들의 언어가 악플 수준

    • ‘닥치고 승리’ 외치는 ‘캠프 마인드’

    • 선거 시즌에 벌어지는 ‘인재 영입 쇼’

    • 정권 획득만 꿈꾸는 ‘영원한 캠페인’ 체제

    • 공적 책임은 설 땅 없는 戰利品 정치

    • “캠프 특별보좌관만 합쳐도 100만 명”

    • 삼성·현대 모두 지원서 내듯 캠프 저울질

    • ‘촛불민심’ 횡령한 문재인 정권의 독선

    • ‘조국 사태’ 이후엔 캠프 정치+팬덤 정치

    2017년 5월 9일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된 직후 국회에 차려진 제19대 대통령선거 개표상황실을 찾아 선거대책위원회 관계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동아DB]

    2017년 5월 9일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된 직후 국회에 차려진 제19대 대통령선거 개표상황실을 찾아 선거대책위원회 관계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동아DB]

    2021년 11월 실소(失笑)를 자아낸 세 건의 작은 사건이 있었다. 모두 더불어민주당(민주당)이 만들어낸 사건이다.

    같은 달 16일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 전용기는 민주당이 진중권(전 동양대 교수)을 ‘보수 논객’이라 칭한 데 대한 논란과 관련, “지금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 시대도 아니고 ‘보수 논객’을 왜 ‘보수 논객’이라고 부르지 못하는지 모르겠다”라며 “국민의힘에 열심히 구직활동을 하는 모양새인데 국민의힘만 모르는 진 전 교수의 진심을 이제는 받아달라”고 했다.

    진중권·이수정이 野에 ‘구직활동’ 중?

    다음 날엔 민주당 선대위의 또 다른 대변인 현근택이 나섰다. 그는 진중권이 1년 전 이해찬(전 민주당 대표)의 자서전 만화 출판을 비판한 걸 상기시킨 뒤, 진중권의 김종인(국민의힘 총괄선거대책위원장) 출판기념회 참석을 겨냥해 “김종인 위인전은 어떤가? 이것은 해괴하지 않은가?”라고 했다. 이어 “직접 출판기념회까지 가셨으니 한마디 하는 게 어떤가? 파리 떼, 하이에나 몰아내면 한자리 줄 것 같아서 못 하겠는가?”라며 “그래봐야 자리 사냥꾼들 틈에서 살아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시나?”라고 했다.

    그러나 이들의 비판은 ‘되로 주고 말로 받는’ 격이 되고 말았다. 진중권은 같은 달 18일 “노무현이 불러도 안 간 사람인데…”라며 “그건 그렇고 몇 달 전에 이재명이 내게 문자를 보내온 적은 있지. 내가 그냥 씹어버렸지만. 이재명 캠프의 문제는 정치를 ‘구직활동’으로만 이해하는 자들로 구성됐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너희들이 너저분하게 산다고 나까지도 그렇게 산다고 생각하지 마. 불쾌하니까”라고 덧붙였다.

    아무리 유명 논객이라 하더라도 유력 대선후보가 손수 보내주신 문자를 받고 그걸 씹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구직활동을 하는 자리 사냥꾼이 그럴 수 있겠는가? 진중권이 어떤 유형의 사람인지 아직도 그걸 모르나?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약 열흘 후인 2021년 11월 29일 현근택의 ‘자리 타령’은 국민의힘 공동선거대책위원장으로 영입된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이수정을 겨냥했다. 그는 이수정이 “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관련된 교제살인 사건에 대한 보도가 제가 결심하는 데 영향을 줬다”고 말한 걸 문제 삼으면서 “솔직하게 ‘정치에 관심이 많다. 국회의원 한번 하고 싶다’고 하면 안 되나”라고 했다.

    이에 이수정은 “나는 지금 직업이 있는 사람이다. 다음 학기에 학교 강의도 정해져 있는 상태”라며 “국회의원을 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그렇게 착실하게 답할 필요가 있었을까? “저질”이라는 진중권의 한마디로 족하지 않았을까 싶다.

    왜 김문수는 “캠프 민주주의 타파” 외쳤나?

    정치 언어가 너무 거칠다고 우려하는 이들이 많지만, 나는 거친 것 자체에 대해선 불만이 없다. 알맹이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콘텐츠를 중시한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가끔 문자 그대로 촌철살인(寸鐵殺人)을 날리는 정치인이나 논객의 말을 사랑한다. 아무리 거칠다 해도 촌철살인이라면 용서가 된다. 하지만 거칠건 부드럽건 상대방을 비방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득력이 전혀 없는 말을 하는 걸 들으면 짜증이 난다.

    누군가의 정치적 언행을 무조건 ‘한자리 차지해 보려는 탐욕’으로 폄하하는 건 익명의 댓글 공간에 철철 흘러넘친다. 공당의 대변인이라는 막중한 역할을 맡은 분들의 언어가 그런 악플 수준에 머무른다는 건 딱한 일이다. 아니, 그게 아닐 수도 있겠다. 전용기와 현근택은 진심으로, 진정성을 갖고 한 말일 수도 있다. 그들은 정말 정치참여를 ‘구직활동’으로만 이해하거나 “내가 그러면 남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는 그런 생각을 ‘캠프 마인드’라고 부르련다. 아니, 자신이 믿지 않는 내용의 말을 하는 것 역시 ‘캠프 마인드’다. 캠프는 공익을 추구하는 조직이라기보다는 당면한 선거에서 이기는 걸 지상 과제로 삼는 조직인바, 그곳에 들어가면 ‘닥치고 승리’ 이외의 다른 사고 능력이 사라지거나 유예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기 때문이다.

    ‘캠프 마인드’는 민주당에만 있는 게 아니다. 민주당이 때마침 너무도 적절한 사례를 보여줬기에 소개했을 뿐, 국민의힘에도 있다는 건 두말할 나위가 없다. ‘캠프 마인드’를 낳는 ‘캠프 정치’는 제법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것으로, 이미 많은 문제 제기와 비판이 있었다.

    2011년 6월 당시 경기지사 김문수는 한 정치개혁 관련 세미나에서 “캠프 민주주의 타파”를 주장했다. 캠프 정치가 정당을 분열시키고 국정 운영을 망가뜨린다는 이유에서였다. 그가 말한 캠프 민주주의란 “대선에서 정당 대신 후보의 캠프 중심으로 선거운동이 벌어지고 대선 후 당선자의 캠프가 소속 당과 국정을 좌지우지하려는 현상”이다. 2007년 17대 대선 때 이명박 후보 캠프 활동과 집권 이후 실태를 토대로 한 주장이었던지라 많은 공감을 얻었다.

    한국일보 논설실장 이계성은 ‘캠프 정치’(2017년 2월 27일)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김문수의 위 주장을 거론하며 2012년 18대 대선 과정과 이후 국정 운영에서 캠프 정치는 더 강화된 형태로 되풀이됐다고 개탄했다. 새누리당이라는 공조직보다는 박근혜 캠프 중심으로 대선이 치러졌고, 집권 후 국정 운영의 주도권은 캠프를 주도한 ‘친박’들에게 돌아갔으며, 친박 패권주의 논란 속에 친박·비박 갈등으로 지고 새다 국정농단 정국으로 이어졌다는 얘기다.

    ‘캠프 정치’의 세 가지 문제점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들의 캠프에서 정책을 생산했던 교수들이 2017년 4월 13일 문재인 민주당 대선후보의 싱크탱크 ‘민주정책통합포럼’ 출범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동아DB]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들의 캠프에서 정책을 생산했던 교수들이 2017년 4월 13일 문재인 민주당 대선후보의 싱크탱크 ‘민주정책통합포럼’ 출범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동아DB]

    국정농단 정국의 수혜자인 민주당 정치인들은 캠프 정치의 폐해에 대한 교훈을 얻었을까? 놀랍게도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캠프 정치는 그 어떤 폐해에도 불구하고 선거에서 이기는 데엔 큰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캠프 정치의 핵심은 ‘세(勢)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는 데 있다. 자기 캠프로 더 많은 인사, 혹은 더 나은 실력이나 ‘스토리’를 가진 인사들을 끌어들여야 한다. 그게 유권자의 표심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거 시즌만 됐다 하면 ‘인재 영입 쇼’가 벌어지곤 한다. 문제는 집권 이후다. 캠프 정치의 주요 문제점을 세 가지만 지적해 보기로 하자.

    첫째, 캠프 정치는 국정에 대한 장기적 비전을 무가치한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캠프의 주요 인물들은 집권 후 요직을 차지하거나 실세로 군림하는데, 이들은 대부분 선거 기술자들이다. 이들은 국정 운영을 선거의 연장으로 이해해 여론조사 결과에 집착하거나 정권 재창출만을 꿈꾸는 이른바 ‘영원한 캠페인(permanent campaign)’ 체제를 구축한다. 이런 체제하에선 ‘내일’은 없다. 국가의 장래는 주요 고려 사항이 아니다.

    둘째, 캠프 정치는 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 ‘무책임의 정치’를 불러온다. 캠프의 인적 구성 자체가 공식적인 조직의 경로를 우회해 후보 개인과 주변 참모의 사적인 네트워크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인적 네트워크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후보와 실세에 대한 충성심이다. 이게 공적 책임과 배치될 때엔 충성심을 따르며, 충성심의 강도에 따른 패거리 만들기를 통해 파벌정치를 심화시킨다는 건 그간 축적된 수많은 사례가 입증한다. 이런 상황에서 정당은 특정한 가치를 추구하는 ‘가치 집단’이라기보다는 권력의 향방에 따라 줄을 서는 ‘이익집단’으로 전락한다.

    셋째, 캠프 정치는 집권 후 논공행상에 따라 자리를 배분하는 과정에서 ‘전리품 정치’를 정치의 기본 모델이 되게 만든다. 논공행상에 따른 자리 배분은 정당한 면이 있긴 하지만, 문제는 그 기준이다. 공적 책임과 도덕·윤리는 설 땅이 없다. 법망에 걸리지 않는 선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승리에 기여하면서 후보에 대한 충성심을 과시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이런 풍토에선 정치를 ‘이권 투쟁’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비교우위를 갖게 된다.

    전리품 배분 둘러싼 험난한 투쟁

    2021년 12월 2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왼쪽 두 번째)와 송영길(오른쪽) 민주당 대표가 서울 영등포구 민주당 당사에서 김영희 PD(오른쪽에서 두 번째)를 캠프 홍보소통본부장으로 영입하며 박수로 환영하고 있다. [장승윤 동아일보 기자]

    2021년 12월 2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왼쪽 두 번째)와 송영길(오른쪽) 민주당 대표가 서울 영등포구 민주당 당사에서 김영희 PD(오른쪽에서 두 번째)를 캠프 홍보소통본부장으로 영입하며 박수로 환영하고 있다. [장승윤 동아일보 기자]

    나는 캠프 정치의 이런 세 가지 폐해 가운데 ‘전리품 정치’에 관심이 많다. 정치 지망생들마저 오염시킬 뿐만 아니라 정치 불신과 혐오의 주요 원인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체제하에서 긍정적 개념으로 대접받아야 할 ‘정치참여’가 전리품에 눈독을 들이는 이권 투쟁으로 여겨진다고 생각해 보라. 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2021년 5월 민주당 의원 이광재가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면서 “캠프 정치, 전리품 정치의 시대를 끝내겠다”고 했을 때 나는 마음속으로 박수를 보냈다. 물론 화려한 캠프를 만들 수 없는 처지에서 나온 말일 수도 있겠지만, 캠프 정치가 곧 전리품 정치를 의미한다는 걸 강조했다는 점에서 신선하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전리품 배분이 합리적으로, 무난하게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캠프의 핵심 인사들은 비교적 덜하겠지만, 중간급 이하 참여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전리품 배분을 받기 위해선 험난한 투쟁 과정을 거쳐야 한다. 경남대 교수 이병철은 ‘경향신문’(2021년 11월 23일) 칼럼에서 “선거가 끝나면 승리한 캠프에서는 완장을 찼던 교수, 전직 관료, 박사급 연구원들이 논공행상을 두고 이전투구를 벌이게 되어 있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리를 놓고서는 명예도, 자존심도 내팽개치기 일쑤다. 권력의 풍향계에 예민하게 촉수를 뻗으면서 후보자의 심기에만 의탁하는 ‘정치 불나방’들의 도덕적 타락이다. 자신의 영혼에 불명예를 수치스럽게 자자(刺字)하는 셈이다. 잔치 자리가 곧바로 아수라장이 되는, 후유증이 깊고 오래 남는 이유다.”

    그런데 희한한 건 이런 캠프 정치에 대한 비판이 의외로 약하다는 점이다. 캠프 정치에 대한 언론의 비판은 극소수 칼럼의 형식으로만 제기될 뿐이다. 외려 언론의 평소 선거 보도는 캠프를 존중하고 우대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일반 유권자들이 주로 보고 듣는 건 “어느 캠프가 더 센가”에 관한 뉴스다. 예컨대, 민주당 대선 경선 당시 캠프 간 싱크탱크 세 대결에서 이재명은 1800명을 모았지만, 이낙연은 1000명으로 열세라는 점을 알리는 따위의 기사가 난무했다.

    캠프 정치 비판에서 기댈 건 칼럼밖에 없다. ‘경향신문’ 안보전문기자 박성진은 ‘‘대선 떴다방’ 찾는 장군들’(2021년 9월 7일)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군에서는 요새 “○○○는 △△△ 캠프로 갔다더라” “□□□가 주도해서 멤버들을 모으고 있다더라” 등의 말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전하면서 이런 촌평을 했다.

    “이제 ‘안보에는 여야가 없다’는 말은 설 자리가 없다. 안보도 여야 대선 캠프마다 다른 세상이다. 그러면서 장군들은 ‘철새’가 돼버렸다.”

    각 캠프는 세를 불리기 위해 이른바 ‘특별보좌관’을 양산해 낸다. 2021년 9월 성범죄 혹은 미국 전투기 도입 반대 활동으로 수사를 받게 된 사람들이 5년 전 문재인 캠프에서 각각 조직과 노동 분야 특별보좌관이었던 사실이 밝혀져 비판이 나온 적이 있다. 이에 여당의 한 의원은 “수만, 수십만에 이르는 특보를 어떻게 다 책임지나”라고 일갈했다. 서울대 명예교수 김도연은 ‘동아일보’(2021년 9월 9일) 칼럼에서 “이 말은 사실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는 대통령후보 캠프 특별보좌관만 합쳐도 100만 명쯤 이를지 모르겠다. 정치 초과잉이다”라고 썼다.

    “하이에나” “파리 떼” “자리 사냥꾼” 논란

    2021년 9월 22일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가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외교안보 관련 공약을 발표하는 가운데, 이 자리에 윤석열 캠프의 외교안보 정책자문단에 참여한 교수, 전직 국방·외교 관료 등이 배석해 있다. [신원건 동아일보 기자]

    2021년 9월 22일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가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외교안보 관련 공약을 발표하는 가운데, 이 자리에 윤석열 캠프의 외교안보 정책자문단에 참여한 교수, 전직 국방·외교 관료 등이 배석해 있다. [신원건 동아일보 기자]

    2021년 10월엔 한 네티즌이 자신의 초등학교 6학년 딸이 받은 윤석열 캠프 특별보좌관 위촉장을 공개해 화제가 됐다. 실수로 보낸 거라지만, ‘특별보좌관 100만 명설’에 신빙성을 더해 주는 해프닝이 아닐 수 없다.

    같은 해 11월엔 ‘내일신문’(11월 9일)에 인용된 익명의 윤석열 캠프 관계자가 “대선은 선대위 임명장을 수백만 장 주는 게 가장 효율적인 선거운동”이라며 “대선을 치러보지도 않은 사람들이 제 밥그릇 챙기려고 남의 밥그릇을 걷어차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 말은 윤석열과 갈등을 빚던 김종인과 이준석이 윤석열 캠프에 몰린 인사들을 “하이에나” “파리 떼” “자리 사냥꾼”이라는 원색적 표현을 사용해 비판한 데 대한 대응으로 나온 것이었다지만, ‘특별보좌관 100만 명설’에 이어 ‘특별보좌관 수백만 명설’을 시사한 내용이라 흥미로웠다.

    하이에나, 파리 떼, 자리 사냥꾼이라는 비난은 일리는 있을지언정, 문제는 이게 ‘내로남불’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캠프 구성을 어떻게 하느냐에 대해 생각이 다를 경우, 내가 주도하는 캠프에 몰려든 사람들과 남이 주도하는 캠프에 몰려든 사람들에 대한 평가가 크게 다를 수밖에 없다.

    내로남불은 우리 편 캠프에 오느냐 상대편 캠프로 가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는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우리 편으로 왔으면 극찬을 해댔을 인사들에 대해 상대편 캠프로 갔다는 이유만으로 온갖 비난을 퍼붓고 의혹을 제기하는 게 우리 선거판의 익숙한 풍경이 되고 말았다.

    이젠 캠프 지망생들도 정당이 ‘가치 집단’이라기보다는 ‘이익집단’이라는 걸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일반적인 취업 지망생이 삼성에도 지원서를 내고 현대에도 지원서를 낸 후 둘 다 합격했을 경우 이익 중심의 저울질을 해서 결정을 내리듯이 말이다. 차이가 있다면, 캠프 지망생은 결정 후 명분을 급조해낸다는 점일 게다. 몹쓸 선악(善惡) 이분법에서 자유롭다는 점에선 긍정적으로 볼 소지가 있긴 하지만, 정당이 점점 기업을 닮아가는 걸 반길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文 정권의 ‘캠코더 인사’와 ‘집단 사고’

    캠프 정치를 넘어서야 할 이유는 문재인 정권의 경험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문 정권에 대한 평가를 어떻게 하건, 문 정권이 캠프 정치에 충실한 정권이었다는 건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특히 ‘캠코더(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 인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캠프 출신을 적극 우대했으니 말이다. ‘기관장 45%·감사 82% ‘캠코더 인사’’ “‘문 정부서 임명된 공공기관 임원 1722명 중 372명 캠코더’” ‘지원서에 ‘대선 기여로 민주당 1급 포상’…교육부 산하기관장 합격: 25곳 임명직 187명 중 61명 캠코더’ “‘文정부 3년, 특임공관장 67% 캠프·여권 출신 캠코더’” 등과 같은 기사 제목이 잘 말해 주듯이 말이다.

    캠프 정치가 문 정권에 미친 최대의 악영향은 아무래도 ‘집단사고(groupthink)’가 아닌가 싶다. 이 용어를 만들어낸 미국 심리학자 어빙 재니스는 ‘집단사고’를 “응집력이 강한 집단의 성원들이 어떤 현실적인 판단을 내릴 때 만장일치를 이루려고 하는 사고의 경향”이라고 정의했다. 정책을 결정하는 집단 내부 구성원 사이에 호감과 단결심이 크면 클수록, 독립적인 비판적 사고가 집단사고에 의해 대체될 위험성도 그만큼 커지게 된다는 뜻이다.

    미국의 쿠바 피그만 침공 사건이 처참한 실패로 돌아간 직후, 대통령 존 케네디는 “내가 어떻게 그렇게 바보 같을 수가 있었지?”라고 탄식했다지만, 바보짓을 한 건 그 혼자만이 아니었다. 케네디 백악관에 고문으로 참여했던 역사학자 아서 슐레진저는 훗날 이렇게 자책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변명은 당시의 토론 분위기 때문에 소극적인 질문 몇 가지를 제기하는 것 이상으로 그 터무니없는 계획에 대한 반대 의견을 개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문 정권에선 터무니없는 계획이 많았지만, 권력 핵심부에 소극적인 질문 몇 가지를 제기한 사람은 있었을망정 반대 의견을 낸 사람은 없었다. 이게 문 정권의 핵심 의사결정 그룹이 곧 캠프 실세였다는 것과 무관할까? 문 정권의 초대 경제부총리였지만 핵심 그룹엔 속하지 못했던 김동연은 2021년 11월 문재인을 향해 “자화자찬보다는 진솔하게 사실대로 말하면서 이해를 구하는 소통이 아쉽다”며 현직에 있을 때 그런 말을 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사실 문 정권 핵심부의 독선과 오만은 집권 초기부터 드러났다. 문재인이 제19대 대선에서 얻은 득표율은 41.08%에 불과했지만, 이에 어울릴 법한 ‘관용’과 ‘자제’는 없었다. 문 정권은 무엇보다도 ‘촛불민심’을 전유, 아니 횡령했다.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2016년 12월에 이루어진 조사에 따르면 원래 새누리당 지지자 중에서 박근혜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 사람이 60%를 넘었다. 이런 민심을 반영하듯, 새누리당 의원 중 탄핵에 찬성한 사람이 62명이었다. 그럼에도 문 정권은 혼자 잘나서 정권을 차지한 것으로 오인했다.

    문재인의 초기 지지율은 한동안 80%대 중반까지 치솟을 정도로 높았다. ‘대통령이 잘하고 있다’며 지지를 보낸 국민이 80%를 넘은 것은 1993년 10월 김영삼(86%) 이후 24년 만이었다. 이런 높은 지지율이 취임 100일까지 이어지자 지지자들은 “이 정도로 높을 줄 몰랐다”며 ‘우리 이니 하고 싶은 거 다 해’라고 외쳐댔다. 2018년부터 지지율은 크게 떨어지기 시작하지만, 적어도 2017년은 내내 ‘문재인의 시간’이었다.

    민주당은 친문 팬덤 지배받는 하부 기구

    문 정권이 망가지기 시작한 결정적 분기점은 2019년 8월 27일이었다. 여야가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일정을 결정한 상황에서 돌연 검찰이 조국 주변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인 날이다. 이른바 ‘조국 사태’가 전개됐다.

    이후 문 정권은 검찰개혁을 위해 태어난 정권처럼 행세했지만, 그건 거짓말이었다. 그 이전까지 문 정권은 적폐청산을 앞세워 검찰개혁에 역행하는 일만 해왔다. 정치컨설턴트 박성민이 잘 지적했듯이, “검찰개혁이 그토록 중요한 과제였다면 (탄핵 연대의 에너지가 충만했던) 2017년 개혁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말았어야 했다.”

    그 이후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와 같다. 조국 사태가 적나라하게 폭로한 문 정권의 위선과 기만으로 인해 문 정권은 지지율 하락의 길을 걸었다. 이게 바로 선거 1등 공신들을 중심으로 의사결정을 내리는 캠프 정치의 폐해였지만, 문 정권은 이전 정권들과는 다른 독특한 면을 보였으니 그건 바로 ‘캠프 정치’와 ‘팬덤 정치’의 결합이었다.

    고려대 명예교수 최장집은 2020년 6월 ‘한국정치연구’에 발표한 ‘다시 한국 민주주의를 생각한다: 위기와 대안’이라는 논문에서 “진보파들의 정치가 보수보다 훨씬 더 캠프 정치에 의존하는 것도 특기할 만하다”며, 문 정권의 캠프 정치가 “‘빠’라고 불리우기도 하는 일종의 ‘컬트적(cultist)’ 운동과 결합”되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는 이런 결합은 ‘시민사회 공론장의 황폐화’와 더불어 ‘정당의 주변화’를 초래했다고 말한다.

    민주당은 ‘주변화’ 정도를 넘어 친문 팬덤의 지배를 받는 하부 기구처럼 보였다. 팬덤을 이끄는 인플루언서들은 소셜미디어를 넘어 유튜브로 진출하면서 일종의 ‘산업’으로 진화했다. 사실상 문 정권을 끌고 다닌 친문 팬덤에 절대적 영향을 미친 인플루언서들의 선의를 의심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건 그들이 가진 영향력 행사의 메커니즘이 사업화됐다는 사실이다. 쇼도 계속돼야 하지만 사업도 계속돼야 한다. 민주적 대화와 소통? 그들이 그걸 반대한 소신도 있었겠지만, 그걸 하게 되면 사업은 완전히 죽는다. 아무리 정의를 표방할망정 정치 팬덤은 반대편에 대한 증오로 움직이는 법이니까 말이다.

    민주당 대선 경선을 앞두고 분화 과정을 거친 친문 팬덤은 유튜브만을 놓고 보자면 대부분 인플루언서 관리(또는 사교)에 뛰어난 이재명의 팬덤으로 흡수됐다. 이재명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대통령’일 뿐만 아니라 ‘유튜브 대통령’이기도 했다. ‘경향신문’(2021년 9월 2일)의 취재 결과, 유튜브 구독자 수 기준으로 ‘친(親)이재명 283만 대 친이낙연 10만’이었다. 친이재명 쪽이 28배나 넘는 화력 우세를 보이는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으니 더 말해 무엇 하랴. 당시 이낙연 캠프는 ‘이낙연 때리기’에 앞장선 친이재명 유튜브에 대해 경기도가 금전적 지원을 했다고 의혹을 제기했지만, 이미 확 기울어버린 유튜브 운동장을 바로잡기엔 역부족이었다.

    ‘조국 사태’가 한창이던 2019년 9월 28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검과 대검찰청 정문 앞 도로에서 이른바 ‘조국 수호 집회’가 열렸다. [김동주 동아일보 기자]

    ‘조국 사태’가 한창이던 2019년 9월 28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검과 대검찰청 정문 앞 도로에서 이른바 ‘조국 수호 집회’가 열렸다. [김동주 동아일보 기자]

    이권 앞에서 이성은 작동하지 않는다!

    ‘전리품 정치’는 그 속성상 ‘승자독식’이다. 타협과 협치? 승자가 왜 전리품을 패자에게 나눠줘야 한단 말인가? 이게 바로 문 정권의 국정 운영을 지배한 사고방식이었다. 팬덤과 팬덤 산업의 리더들(또는 사업가들) 역시 그런 사고방식으로 움직였다. 그런 독식 행위가 멋쩍어 ‘적폐청산’이란 간판을 내걸긴 했지만, 이는 그들이 만들어낸 ‘신(新)적폐’엔 해당되지 않았다.

    ‘전리품 정치’에 기반한 캠프 정치는 정치를 ‘이권 투쟁’으로 전락시킨다. 이게 바로 캠프 정치가 사라지기 어려운 결정적 이유다. 이권 앞에선 이성은 잘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은 “정치인과 기저귀는 둘 다 자주 갈아줘야 하는데, 그래야 하는 이유는 똑같다”고 했다. 이는 거대 정당들이 밥그릇을 챙기더라도 번갈아가면서 챙기라는 ‘밥그릇의 분배 정의’를 위한 금언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공익을 추구하기 위한 선의와 진정성을 갖고 정치에 참여하려는 사람들도 많이 있으니, 그들마저 ‘자리 사냥꾼’으로 매도하는 자해(自害) 행위는 우리 모두 자제하는 게 좋겠다.

    #대선캠프 #자리사냥꾼 #논공행상 #이권투쟁 #강준만 #신동아


    강준만
    ● 1956년 출생
    ● 성균관대 경영학과 졸업, 미국 위스콘신대 메디슨캠퍼스 언론학 박사
    ● 現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 저서 : ‘발칙한 이준석: THE 인물과사상 2’ ‘싸가지 없는 정치’ ‘부동산 약탈 국가’ ‘한류의 역사’ ‘강남 좌파’ ‘노무현과 국민사기극’ ‘김대중 죽이기’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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