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호

‘게으른 보수’ 부지런해져야 민주당 정신 차린다

[금태섭의 In & Out]

  • 금태섭 前 국회의원

    입력2022-05-24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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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옆에서 지켜본 보수의 본질적 문제는 ‘게으름’

    • ‘검수완박’ 부작용 해소할 대안조차 제시 안 해

    • ‘이대남’ ‘여가부 폐지’… 국민 편 가르기 행태 지양해야

    • 전통적 보수의 강점은 ‘말’ 아닌 ‘실적’에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5월 10일 국회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을 마치고 자동차를 타고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향하며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5월 10일 국회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을 마치고 자동차를 타고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향하며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이른바 ‘검수완박’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검찰개혁이 중요한 과제인 것은 맞다. 그간 검찰의 행태에 대해서 문제를 삼는 목소리는 좌, 우를 가리지 않고 높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뻔뻔하게 입장을 바꾸는 정치적 편향성,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전관예우’라는 용어를 만들어낸 부패 문제, 진실을 찾기 위한 수사가 아니라 망신 주기가 목적인 듯한 인권침해 행태 등 지적할 점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의 정확한 원인을 찾아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검찰개혁을 구실로 지지층 결집을 노리고 형사사법의 수준을 오히려 후퇴시킨 더불어민주당의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대안 제시 없이 닥치고 민주당案만 반대

    그런데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지점이 있다. ‘검찰개혁 문제에 대한 보수의 해법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검수완박’이 기대효과보다 부작용이 훨씬 더 큰 잘못된 방안이라면, 그에 대한 대안으로 보수 진영이 제시한 것은 무엇일까. 이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본 입장에서 말한다면, 그 대답은 ‘없다’이다.

    보수는 우리 사회의 중요한 문제에 대해 구체적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그저 민주당의 방안을 반대하기만 한 것이다. 그 이유는? 다양한 분석이 가능하겠지만, 노골적으로 말한다면 보수가 게으르기 때문이다. 옆에서 지켜본 대한민국의 보수는 게으르기 짝이 없다.

    검수완박 이전에는 이른바 ‘수사권 조정’이 있었다. 그 이전에는 ‘공수처’가 있었다. 검찰개혁이라는 이슈는 문재인 정부 내내 민주당을 비롯한 진보 진영에서 활용해 온 주제였다. 보수 진영도 검찰개혁의 필요성을 부정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과제 선정 자체가 잘못됐다고 주장했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민주당의 방안에 대응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했어야 한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그런 임무를 다하지 않았다.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이면서도 대선공약이자 당론인 공수처 설치에 반대하던 시절, 나 나름대로 활로를 모색하려고 국민의힘 의원들을 열심히 찾아다녔다. 보수정당은 전통적으로 권력기관의 개혁이라는 구호에 반감을 표해 왔지만, 마침 그때는 탄핵 이후 몰아친 ‘적폐청산’ 물결에 타격을 입은 야당 의원들도 검찰이 무소불위의 힘을 행사하는 것에 대해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을 때였다. 합리적 대안을 마련할 수 있다면,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인 검찰개혁을 이뤄내면서 야당과의 협치도 달성할 수 있지 않을까. 그게 정치의 성공 아닐까. 당시 초선의원인 나의 순진한 생각이었다.



    그러나 국민의힘 의원들과의 대화는 별로 소득이 없었다. 한국 검찰이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점에 대해서는 공감하면서도, 그 해결책으로는 ‘인사의 중립성’만을 얘기했다. 검사에 대한 인사권을 가지고 있는 대통령이 중립적, 객관적으로 그 권한을 행사하면 검찰이 청와대의 눈치를 보거나 정치적 편향성을 보이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이런 입장은 두 가지 면에서 크게 틀린 것이다.

    검찰 인사 중립 요구가 무기력한 이유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와 상임위원장, 간사단 의원들이 4월 27일 국회 본관 2층 계단에서 열린 ‘검수완박 강행처리 저지를 위한 연좌농성 선포식’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와 상임위원장, 간사단 의원들이 4월 27일 국회 본관 2층 계단에서 열린 ‘검수완박 강행처리 저지를 위한 연좌농성 선포식’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우선 첫째로 실질적 내용이 없다는 점이다.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정권을 잡기만 하면 대통령이 인사권을 통해서 검찰을 장악하고 집권 세력의 구미에 맞는 수사를 하도록 한 것이 대한민국 검찰의 가장 큰 문제다. 따라서 어떻게 하면 대통령이 자의적으로 인사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할 것인지 혹은 어떤 시스템을 만들면 검찰을 이용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유혹을 느끼지 않게 될 것인지에 관한 해법이 필요하다. 그런데 단순히 ‘인사권을 잘 행사하면 된다’라고 답하는 것은 그냥 ‘그런 문제가 없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말하는 것 이상의 내용이 없는 것이다. 병을 고치려면 치료법이 있어야 한다. 치료법을 마련하자는데, ‘병을 치료하면 된다’라고 말하는 것은 동어반복일 뿐이다.

    두 번째로는 전략적으로 무기력하기 짝이 없는 태도라는 점이다. 정치는 무엇보다 주도권을 잡기 위한 경쟁이다. 그리고 판을 주도하기 위해서는 귀에 쏙 들어오는 구호성 정책을 적극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단순히 방어적으로 상대방의 방안을 반대하기만 해서는 끌려다니는 처지를 벗어날 수 없다. 대표적 예가 ‘무상급식’이다. 소득수준에 관계없이 모든 학생에게 급식을 무료로 제공하자는 방안이 합리적인지 아닌지를 떠나 과거 진보 진영이 주장한 무상급식은 당시의 시대적 과제인 복지와 동의어로 다루어졌다. 무상급식에 반대하는 보수 진영은 복지 증진 자체에 반대하는 것으로 비쳐서 선거에서 큰 어려움을 겪었다. 검찰개혁도 마찬가지다. 공수처 설치, 수사권 조정 등 진보 진영이 끊임없이 내놓는 방안의 문제점만 지적하다 보면, 자칫 권력기관 개혁 자체에 반대하는 걸로 보이게 되고 결국 상대방의 안을 조금 약화시켜서 수용하는 선에서 타협하게 되기 십상이다. 이번에 검수완박과 관련해 국민의힘이 국회의장의 중재안에 동의한 것도 그런 모습이나 다름없다.

    보수정당의 전략적 판단까지 언급하는 것은 지나치게 오지랖이 넓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을 수 있겠지만, 동의하기 어렵다. 우리 사회가 한 단계 성장하기 위해서는 진보, 보수 양 진영의 역할이 모두 필요하기 때문이다. 보수가 무기력하게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면 균형 있는 사회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흔히 진보는 사회개혁과 불평등 해소에 관심이 깊고 약자와 소수자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인다고들 한다. 이에 비해 보수는 시장경제와 개인의 자유를 더 중시한다고 한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사회적·경제적 약자의 지위를 향상하는 데 어느 쪽의 공이 컸는지 살펴보면 보수의 공헌이 진보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대표적인 사회보장제도인 의료보험이나 산재보험, 연금보험이 최초로 도입된 것은 보수주의자인 비스마르크가 활약하던 시절의 독일이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의료보험 등 획기적인 복지제도의 상당수가 도입된 것은 보수 정권 때의 일이다.

    진보는 문제 제기, 보수는 실제 해결

    보수가 그런 조치를 취한 것은 혁명이나 급진적 사회변동을 무력화하고 기득권층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시선이 있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러나 실제로 복지제도의 혜택을 받은 수많은 사람의 처지에서 볼 때 중요한 것은 의도가 아니라 결과다.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노동자의 수, 그들이 처한 환경과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극심한 사회갈등을 예측하고 선제적으로 사회보장법을 입안한 비스마르크의 업적은 보수의 강점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사례이자 ‘부지런한 보수’의 승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보수가 가장 중시하는 경제성장도 실제로 빈곤층에 큰 도움이 됐다. 386세대가 대학에서 민주화운동을 할 때 자식들을 말리던 부모들이 “이놈들아 보릿고개 없애준 사람이 누군 줄 알아?”라고 하면서 박정희의 공을 얘기하던 것이 크게 맥락에서 벗어난 말은 아닌 것이다.

    검찰을 비롯한 권력기관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보수는 마찬가지로 대응했어야 한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실질적 성과를 내면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진보 세력이지만 실제로 해결하는 것은 보수 진영’이라는 인상을 국민들에게 심어줄 수 있었다면 지금과 같은 무기력한 처지에 놓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때문에 구체적인 방안 하나 제대로 내지 못하는 국민의힘으로 대표되는 현재의 대한민국 보수 세력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보수가 아니다”라는 비판이 가해진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했다. 탄핵으로 영원히 몰락하나 싶었던 보수 진영이 불과 5년 만에 정권을 되찾아 집권 세력이 됐다. 여기서 국민의힘이 지금까지처럼 게으르고 소극적인 모습을 계속 보인다면 그 결과는 단순히 한 정파의 불행에 그치지 않고 나라 전체를 파탄에 빠뜨릴 수도 있다. 반면 보수가 원래의 활력을 복원해서 강해진다면 그 영향 역시 한쪽에만 미치지 않는다. 극렬 지지층만을 의식하고 천박한 발언을 일삼는 민주당이나 진보 진영에도 강력한 자극제가 돼 정신을 차리게 만들 수 있다. 결과적으로 보수가 한국 정치를 건강하게 만드는 역할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표를 던져서 정권교체를 만들어낸 유권자의 상당수는 그런 기대를 갖고 투표장으로 향했을 것이다. 그 기대에 부응하는 것이 새 정부의 임무다.

    보수 정부가 시급히 추진해야 할 과제

    대선 당시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 페이스북에 올라왔던 ‘여성가족부 폐지’ 일곱 글자 공약. [윤석열 페이스북]

    대선 당시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 페이스북에 올라왔던 ‘여성가족부 폐지’ 일곱 글자 공약. [윤석열 페이스북]

    보수 정부가 국민들로부터 신뢰와 믿음을 얻기 위해서는 시급히 추진해야 하는 몇 가지 과제가 있다. 그중 두 가지를 언급하고 싶다.

    우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통합이다. 문재인 정부가 저지른 여러 실책 중에서 가장 큰 잘못은 국민들을 편가르기 해서 정치적 입장이나 견해가 다른 사람들을 적대시하게 만든 것이다. 건강한 사회는 다양성이 보장되는 사회다. 국민 중에는 정치적으로 진보 성향을 가진 사람도 있을 수 있고, 보수 성향을 가진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대통령을 지지하는 유권자도 있겠지만 야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도 당연히 존재한다. 국가 전체를 이끌어가는 집권 세력은 이 모든 사람을 존중해야 한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에서는 정권에 비판적인 정치인이나 국민들을 친일파, 토착왜구로 부르면서 공격하는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강경파 국회의원들은 폭력에 가까운 ‘문자폭탄’이나 ‘댓글공격’을 독려했고, 민주당 지휘부나 심지어 대통령마저 이런 행태를 “당의 에너지원”이니 “경쟁을 더 흥미롭게 만드는 양념 같은 것”이니 하면서 방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지층만을 의식하는 편가르기는 단기적으로 선거에서 효용을 볼 때가 있다. 의견이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것은 어렵지만, ‘우리 편’을 자극해 투표소로 이끌어내는 것은 그보다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 정부가 민주당을 흉내 내서 그런 값싼 전술에 한눈을 판다면 정권을 마칠 때쯤에는 양식이 있는 사람들로부터 외면을 당한 문재인 정부와 비슷한 처지에 놓이게 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대선 캠페인 과정에 등장한 ‘이대남 전략’이나 ‘여가부 폐지 공약’은 대단히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었다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기준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국민들을 편가르기 하는 행태이기 때문이다.

    국민 편가르기 행태 극복해야

    정권이 교체되면서 슬슬 얘기되기 시작하는 ‘과거 정부의 잘못에 대한 단죄’에 대해서도 극히 신중해야 한다. 집권 세력이 주도하는 과거 청산은 결코 합리적 범위에서 멈추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의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나 문재인 정부 때의 적폐청산도 시작할 때는 적절한 수준에서 끝날 것으로 여겼겠지만, 결국은 우리 정치사에 큰 상처를 남기고 말았다. 법률적 판단을 넘어서는 정치적 판단이 필요하다.

    두 번째로는 정치적 거버넌스(governance)의 재정비다. 우리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통치 구조는 권한의 지나친 집중으로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평을 듣고 있는데 최근 몇 번의 정부에서는 그나마 존재하는 견제 장치도 무력화돼 책임과 권한이 따로 노는 기형적 시스템이 등장했다. 장관이 대통령을 만나려면 측근인 비서관을 통해야 하는 박근혜 정부의 ‘문고리 권력’ 그리고 중요한 결정은 대부분 청와대가 하고 국무위원들은 집행만을 담당하는 인상을 준 문재인 시절의 ‘청와대 정부’가 대표적 예다. 시스템이 그렇다 보니 통치 구조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의 리더십도 왜곡돼 칭송을 받을 장면에만 등장하고 비판을 받을 상황에는 뒤로 숨는 모습이 연출되곤 했다. 한 분야를 책임져야 할 장관은 청와대만 바라보다가 정작 필요할 때나 위기가 발생했을 때는 제 역할을 못 했다. 박근혜 정부 때의 세월호 참사, 문재인 정부 때의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장기간 극한 대립은 국가적으로 리더십이 실종된 대표적 사례다.

    보수의 강점은 말보다 실적

    새 정부에서는 당연히 이런 모습이 바뀌어야 한다. 다극화되고 국가들의 각자도생이 논해지는 새로운 세계질서 아래서 국가의 리더십이 분명하지 못하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밝을 수가 없다. 낡은 구조를 깨기 위해서 필요하다면 과감히 개헌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는 감동적이었다.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 한분 한분도 저의 국민이고,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습니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라는 구절은 두고두고 회자됐다. 그에 비해서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사는 크게 인상적이지 않았다. 수사(修辭)로는 보수가 진보에 못 미칠지 모른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보수의 강점은 말보다는 실적에 있었다. 낮은 지지율로 염려와 걱정 속에 출범하는 보수 정부지만, 성실하게 결과를 만들어낸다면 오히려 더 큰 성취라는 반전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새로 시작하는 정부가 부지런한 보수의 강점을 한껏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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