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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간 지켜온 의리가 방산·화학·금융 3대 축 일군 ‘한화’ 혁신의 원동력

창립 70돌 한화그룹 ‘도전과 개척의 역사’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70년간 지켜온 의리가 방산·화학·금융 3대 축 일군 ‘한화’ 혁신의 원동력

  • ● 석유파동·외환위기·금융위기 겪으며 체질 바꿔
    ● 김승연 회장 취임 후 기업 자산 300배 늘어
    ● 계열사 1981년 19개 → 2021년 91개
    ● 위기의 기업 인수해 흑자로 바꿔낸 승부사
    ● 신용과 의리로 피인수사 임직원 마음 얻어내
    ● ‘돈 먹는 하마’ 방산에서도 ‘잭팟’
    ● ‘다이너마이트 킴’ 때부터 지켜온 신용과 의리
10월 8일 밤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 일대에서 코로나19 이후 3년 만에 열린 ‘2022 서울세계불꽃축제’에서 화려한 불꽃이 밤하늘을 수놓고 있다. 이 행사는 2000년부터 한화그룹이 주관하고 있다. [뉴스1]

10월 8일 밤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 일대에서 코로나19 이후 3년 만에 열린 ‘2022 서울세계불꽃축제’에서 화려한 불꽃이 밤하늘을 수놓고 있다. 이 행사는 2000년부터 한화그룹이 주관하고 있다. [뉴스1]

“현재를 파괴하는 기업만이 새로운 미래를 가질 수 있다. 창조는 파괴의 또 다른 이름이다.” ‘창조적 파괴’ 개념을 만든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가 저서 ‘자본주의, 사회주의 그리고 민주주의’를 통해 남긴 말이다.

한화그룹은 한국 사회에서 창조적 파괴를 자주 이뤄온 기업이다. 화약 산업을 시작으로 화학 전반으로 업을 넓혔으며 이후 화학과는 무관한 금융 산업을 거쳐, 최근에는 재생에너지, 우주산업 등에 도전하고 있다. 방위산업 강자이기도 하다.

한화의 창조적 파괴는 슘페터의 이론보다 한발 더 나아간다. 기존 주력 사업을 유지한 상태에서 새로운 사업에 도전한다. 전통을 지키는 동시에 혁신을 해온 것. 그 덕분에 한화는 다재다능한 회사로 성장했다. 1981년 19개이던 계열사는 지난해 기준 91개로 늘었다.

취임 41년 만에 한화그룹을 100배 성장시킨 김승연 회장은 10월 11일 창립 70주년 기념사에서 한화를 100년 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 “성공 방정식을 허물어서라도 새로운 패러다임을 이끌자”고 강조했다.

인수합병으로 기업 자산 300배 성장

한화그룹 창업주 고(故) 현암 김종희 전 회장. [한화]

한화그룹 창업주 고(故) 현암 김종희 전 회장. [한화]

한화는 1952년 창업주인 현암(玄岩) 김종희(金鍾喜·1922~1981) 전 회장이 부산에서 설립한 한국화약이 모태다. 이후 조선유지 인천공장을 인수해 사업 기반을 닦았다. 1956년부터는 이 공장에서 화약을 만들었다. 1959년에는 탄약 등 군용 화약을 납품해 방위산업을 시작했다. 같은 해 다이너마이트 국산화에 성공했다. 한국은 일본에 이어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다이너마이트 생산국이 됐다. 이때부터 1963년까지 한화는 화약 산업에 전념했다.



1965년 한국화성공업(현 한화케미칼 및 한화 L&C)을 설립, 플라스틱 산업에 진출하면서 석유화학산업의 발판을 마련했다. 한국화약 무역 부서에서 취급해 온 무역, 소비재, 화약 등의 업무는 1966년 태평물산(현 ㈜한화/무역)으로 계열 분리했다. 이외에도 1969년 경인에너지(현 SK인천석유화학) 설립, 1972년 한국프라스틱공업 인수합병을 통해 석유화학산업 진출이라는 결실을 일구었다. 1973년에는 동원공업을 인수했으며 태평개발(현 한화호텔&리조트)을 설립해 플라자호텔을 개관운영했다. 1974년 유니온포리마(현 한화컴파운드)를 설립했고 1976년에는 성도증권(현 한화증권)을 인수했다.

김종희 창업주가 1981년 지병으로 타계한 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사령탑에 올랐다. 승계 당시 김 회장의 나이는 29세. 기업 총수로는 너무 젊은 나이가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재계의 우려와는 달리 김 회장은 적극적 인수합병으로 회사를 키웠다. 인수합병의 시점이 절묘했다. 경제위기가 끝나는 기점마다 회사를 사들였고, 이 회사들이 한화의 주요 사업이 됐다. 김 회장이 한화를 이끌기 시작한 1981년 한화 총자산은 7548억 원. 현재 총자산은 229조 원으로 300배 넘게 늘었다. 연간 매출액도 같은 기간 1조1000억 원에서 61조1000억 원으로 늘어났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빠르게 성장했다. 1981년 7개에 불과하던 해외 거점은 470여 개로 늘었다. 해외 매출은 2020년 기준 16조7000억 원에 도달했다. 다종다양한 계열사 해외 진출은 앞으로도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은 2020년 직원과의 대화에서 “둥지만 지키는 텃새보다는 먹이를 찾아 대륙을 횡단하는 철새의 생존 본능을 배우라”며 각 계열사의 글로벌 시장 진출을 독려했다.

29세 김승연, 경영진 만류 뿌리치고 석유화학산업 키워내

김승연 회장이 취임한 1981년은 제2차 석유파동(1979~1981) 시기였다. 원자재 상승으로 석유화학산업은 물론 대부분의 산업이 위기에 처했다. 이때 김 회장은 석유화학기업 인수 계획을 세웠다. 이후 오일쇼크가 잦아든 1982년 한양화학과 한국다우케미칼을 인수해 석유화학을 한화그룹의 주력 사업으로 키워냈다.

당시 한양화학과 한국다우케미칼은 각각 75억 원, 430억 원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었다. 경영진은 두 회사를 인수하겠다는 김 회장을 만류했다. 석유화학기업의 장래가 밝지 않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김 회장은 인수를 강행했다. 선구안은 정확했다. 한화는 인수 1년 만에 이 두 회사를 흑자로 전환했다. 인수 4~5년 뒤에는 명실상부 한화의 효자 기업이 됐다. 한화 계열사 총매출도 1980년 7300억 원에서 1984년 2조1500억 원이 됐다. 이 회사들은 성장을 거듭해 현재의 한화솔루션의 케미칼·첨단소재 부문이 됐다.

1986년 빙그레 이글스(현 한화 이글스)를 창단하고 정아그룹(현 한화호텔&리조트)과 한양유통을 인수했다. 한양유통이 운영하던 한양쇼핑센터는 한화그룹에서 갤러리아백화점으로 이름을 바꿨다. 갤러리아백화점은 한화의 품에 들어온 지 2년 만에 매출액 2100억 원을 기록했다. 인수전 평균 매출액의 2배를 넘는 수치다. 이외에도 국내 최초 명품관 개관 등 백화점 사업 트렌드를 이끌었다.

한화호텔&리조트는 종합 레저·서비스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410개 객실을 갖춘 특급호텔 더 플라자와 100실 규모인 호텔 벨메르를 운영 하고 있다. 2021년 7월 강원 양양군에 국내 최초 서핑&힐링 콘셉트의 브리드호텔 양양을 오픈하기도 했다. 한화호텔&리조트는 또한 총 5200객실인 국내 12개 리조트와 해외 리조트 1곳(사이판 월드리조트), 국내외 골프장 5곳(총 108홀)을 운영하고 있다.

회장 취임 후 5년 만에 산업 영역을 화약·방위산업(방산)에서 석유화학, 유통, 레저까지 확장했다. 이를 계기로 한화는 단숨에 재계 10대 그룹 반열에 올랐다.

무보수로 일하며 대한생명 업계 최고로

1990년대를 거치며 석유화학 전문기업으로 성장한 한화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사태를 계기로 다시 한번 체질을 바꾼다. 외환위기 사태가 끝난 2002년 적자를 지속하던 대한생명(현 한화생명)을 인수했다. 당시 누적손실액만 3조 원에 달하는 회사였다. 한화 관계자는 “인수 전 대한생명은 대주주의 전횡 및 계열사의 부실대출로 금융감독원의 특별 감사를 받고 있었다”며 “영업조직도 사실상 붕괴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당시 한화의 상황도 좋지 않았다.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계열사 수가 37개에서 17개로 줄어든 상황. 1998년 2월에는 주요 계열사인 한화에너지가 부도 위기에 봉착했다. 김 회장은 계열사 주식과 금융자산, 부동산 등 사재를 담보로 정부 긴급자금 지원을 받았다. 자금 지원을 위해 당시 김 회장은 한화에너지 경영권 포기 각서까지 제출해야 했다.

인수 직후 김 회장은 대한생명 살리기에 주력했다. 맡고 있던 모든 계열사 대표이사직을 내려놓고 2년간 무보수로 대한생명 대표를 맡았다. 부실 대출과 무관한 경영진을 중용하며 회사의 기초체력을 유지했다. 이 같은 노력 끝에 한화는 대한생명 인수 6년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대한생명은 2012년 사명을 한화생명으로 바꾸고 2021년 기준 자산 127조 원의 우량 보험사가 됐다. 현재는 삼성생명, 교보생명과 함께 명실상부 국내 3대 생명보험사로 자리매김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인 2012년 10월에는 파산한 독일 태양광 기업 큐셀(현 한화솔루션 큐셀 부문)을 사들였다. 큐셀은 2008년 태양광 셀 생산능력 세계 1위를 기록할 정도로 경쟁력 있는 업체였다. 하지만 태양광산업의 장기 불황과 중국 태양광업체가 대거 등장하며 2012년 4월 파산했다. 6개월 뒤 한화가 큐셀을 인수했을 때는 영업적자만 4420만 달러(635억 원)에 달했다. 공장 가동률도 20~30%에 불과했다.

인수 당시 주변의 반대도 극심했다. 국내외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큐셀이 가격경쟁력이 없다는 부분을 지적하며 ‘매력적이지 않은 거래’라고 평가했다. 게다가 2011년 시작된 태양광 시장 침체로 국내 기업 대부분이 태양광 사업에서 발을 빼는 상황이었다.

파산한 글로벌 1위 태양광업체 되살려

김 회장은 큐셀 인수를 전격 결정했다. 일단 2014년 이후부터는 태양광 시장이 규모의 경제만 갖추면 본격적 성장세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었다. 고심하던 김 회장은 “태양광산업은 회사의 이익이 아니라 국가와 인류에 기여하는 길”이라며 인수를 최종 결정했다.

인수 직후 한화는 큐셀의 체질 변화에 나섰다. 전 직원을 상대로 최고경영자(CEO) 면담과 상황 설명회를 수차례 벌였다. 장기간 파산 상태로 지쳐 있는 임직원들을 독려하기 위해서였다.

인수 후 10년이 지난 2022년 한화솔루션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태양광 업체로 거듭났다. 한화솔루션은 태양광 모듈의 핵심 소재인 에틸렌비닐아세테이트(EVA)를 생산한다. 9월 7일에는 GS에너지와 손잡고 전남여수산업단지에 EVA 생산기업 에이치엔지케미칼을 설립하기로 했다. 이로써 연간 EVA 생산능력은 총 92만t, 미국 엑슨 모빌(79만t)을 제치고 글로벌 1위 EVA 생산기업이 됐다.

한화솔루션은 현재 시가총액 기준 한화 최대 계열사다. 7월 18일 기준 한화솔루션의 시가총액은 6조1849억 원으로 한화 계열사 전체 시가총액(21조 원)의 35%에 달한다.

한화는 2014년 모태 산업 중 하나였던 방산 역량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삼성테크윈, 삼성종합화학, 삼성토탈, 삼성탈레스 등 삼성그룹의 방산 기업을 1조9000억 원에 사들인 것. 한화는 인수 후 물적 분할과 내부 합병을 통해 그룹 지배구조를 개편했다. 각 계열사들의 전문성을 살려 독립법인을 신설했고, 중복 사업은 과감히 합쳤다. 이를 통해 한화에어로스페이스(항공엔진·항공산업), 한화디펜스(방산무기), 한화시스템(IT·방산), 한화정밀기계(정밀·공작기계), 한화파워시스템(에너지), 한화테크윈(시큐리티) 등의 방위사업체를 꾸렸다.

당시만 해도 방산은 이른바 ‘돈 먹는 하마’였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방산의 주 소비자는 국방부인데, 국가기관인 만큼 이윤을 높게 책정하기 힘들다”며 “결국 답은 수출뿐인데 2010년대만 해도 한국 무기가 해외에 수출되는 경우가 드물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삼성테크윈이 만들던 K-9 자주포(이하 K-9)가 인도, 튀르키예 등에 수출되기는 했으나 수출액이 크지 않았다.

10월 10일 미국 워싱턴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AUSA (AUSA 2022 Annual Meeting & Exposition) 방산 전시회 한화 부스에 K-9자주포와 K-10 탄약보급장갑차가 전시돼 있다. [한화]

10월 10일 미국 워싱턴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AUSA (AUSA 2022 Annual Meeting & Exposition) 방산 전시회 한화 부스에 K-9자주포와 K-10 탄약보급장갑차가 전시돼 있다. [한화]

‘돈 먹는 하마’ 방산에서도 ‘잭팟’

지난해부터 상황이 바뀌었다. 호주가 K-9을 대거 구매했다. 계약 금액만 1조 원에 달한다. 올해 2월에는 이집트와 2조 원 규모의 K-9 수출 계약을 맺었다. 7월에는 폴란드와 전투기, 전차, 자주포를 모두 판매하는 계약을 맺었다. 계약 총 규모는 145억 달러(20조5000억 원). 방산업계 관계자는 “K-9이 팔리면 이후 계약에서 탄약수송장갑차, 지휘장갑차 등 다른 무기도 자연히 팔리게 된다”며 “이외에도 판매한 무기를 유지·보수하는 과정에서 계속 수익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한화는 호주의 육군형 보병전투장갑차 사업에 도전하고 있다. 한화가 내놓은 제품은 AS-21 레드백. 이 사업에 최종 선정되면 판매 매출만 5조 원, 유지보수 비용까지 합하면 10조 원의 매출을 올릴 수 있다.

천덕꾸러기 방산 계열사들이 실적을 내며 알짜로 변하자 한화는 다시 한 번 방위사업체 부문을 재구성했다. 7월 29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산하에 그룹 내 방산 역량을 집중시켰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항공산업 외에도 국산 차세대 전투기 KF-21의 엔진을 조립·생산하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측은 “그룹 방산 역량을 집중시켜 2030년까지 글로벌 10위권의 방산업체가 되겠다”고 밝혔다.

각 계열사는 방산 시장에서 쌓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미래산업에 도전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 예가 한화에어로스페이스. 6월 발사에 성공한 한국 최초 우주발사체 나로호의 엔진을 개발했다. 3월에는 인공위성 제조업체 쎄트렉아이 경영권을 인수했다. 이곳은 국내 최초 인공위성인 ‘우리별 1호’를 개발한 기업이다.

국내 독자 기술로 개발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Ⅱ)가 6월 21일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되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누리호의 엔진을 개발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국내 독자 기술로 개발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Ⅱ)가 6월 21일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되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누리호의 엔진을 개발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이외에도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순수 국내 기술 우주발사체 누리호의 개발을 주도할 계획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10월 7일 우주개발진흥실무위원회를 열고 누리호 기술이전을 위한 체계종합기업 우선협상대상자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라고 밝혔다.항공우주연구원과 기술이전 등 협상을 거친 뒤 11월에는 체계종합기업으로 선정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관계자는 “누리호를 포함해 다수의 우주 사업에 적극 참여했던 한화의 노력이 결실을 보았다”며 “우선협상대상자로서 남은 절차에 충실히 임해 항우연으로부터 관련 기술을 성공적으로 이전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화시스템은 도심항공모빌리티(UAM) 시장에 진출해 에어택시 ‘버터플라이’를 개발하고 있다. UAM 기체 개발과 함께 항행·관제 부문 정보통신기술(ICT) 솔루션 구축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적자 회사들이 한화에만 입성하면 알짜 기업으로 변모해 온 이유는 무엇일까. 한화 측은 적자기업 급속 성장의 원인을 사람에서 찾았다. 한화 관계자는 “통상 기업을 인수하면 구조조정을 통해 운영비용을 줄인다”면서 “한화는 대부분 고용을 유지하고 기존 직원을 중용했다”고 밝혔다.

인수 후 임직원 끌어안아 높은 성과 기록

이는 한화의 경영 철학이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 사가 첫 소절도 “신용과 의리로 가꾸어온 우리 한화”일 정도. 김 회장의 경영활동 전반에 녹아 있는 경영 철학도 바로 이 ‘신용과 의리’다. 임직원을 믿어주고, 그들에 대한 의리를 다하면 자연히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이야기다.

김 회장의 직원 사랑은 회장직 취임 때부터 돋보였다. 1981년 취임식을 대신해 가진 신입사원과의 대화에서 그는 “함께 보람 있는 삶,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세계 속으로 뻗어나갑시다”라고 말했다. 단순히 말로만 그치지는 않았다. 김 회장은 대한생명 인수 때도 직원들의 고용보장을 최우선 조건으로 내걸었다. 한화 측은 “피인수사 직원들을 차별 없이 대우하는 것은 물론, 이들의 장점을 배우는 열린 태도가 빠른 흑자 전환의 비결”이라 밝혔다.

한화는 최근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착수했다. 산업은행은 9월 26일 대우조선과 한화가 2조 원의 유상증자 방안을 포함한 조건부 투자합의서(MOU)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 계약에 따르면 한화는 대우조선 앞으로 2조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실시해 49.3%의 지분과 경영권을 확보하게 된다.

유상증자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 한화의 공정자산(일반계열사 자산총액+금융계열사 자본총액)은 80조3880억 원에서 91조8030억 원으로 11조4150억 원 늘어난다. 공정자산규모 재계 6위인 포스코(94조5280억 원)와의 격차는 2조7197억 원으로 줄어든다. 더불어 재계 8위인 GS그룹과의 자산 차이는 16조5000억 원으로 늘어난다.

일각에서는 대우조선을 ‘독이 든 성배’라고 한다. 산업은행이 지난해 공적자금 13조 원을 대우조선에 투입했지만 흑자 전환에 실패했다. 올해 반기 손실액만 1조2400억 원이다. 재계 관계자들은 한화가 이번에도 흑자전환에 성공할 것이라고 봤다. 한 관계자는 “내년을 기점으로 배의 가격이 올라가고 있다”며 “한화는 방산에도 진출해 있으므로 상선 외에 군함 등 신사업 도전도 가능하다”고 진단했다. 한화 측도 “한화가 사들인 기업은 대부분 위기였다”며 “이번에도 위기의 대우조선을 한화가 살려 그룹의 새 먹거리로 키워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용과 의리

한화의 경영이념 ‘신용과 의리’의 뿌리는 김승연 회장의 아버지이자 창업주인 김종희 전 회장이다. 김 전 회장의 별명은 ‘다이너마이트 킴’. 한국 최초로 다이너마이트 개발에 성공해서이기도 하지만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그의 성정을 잘 나타내는 별명이기도 하다. 별명대로 그는 회사 안팎에서 신용과 의리를 잘 지키는 인물이었다.

김 전 회장의 인물상을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1940년 경기도립상업학교(현 경기상고) 재학 시절 김 전 회장은 싸움에 휘말렸다. 하굣길에 같은 학교 럭비부의 일본인 학생 4명이 조선인 학생 3명을 구타하는 모습을 발견한 것. 열세에 몰린 조선인 학생을 보는 순간 김 전 회장은 앞뒤 가리지 않고 조선인 학생 편에 가세했다. 이 사건으로 퇴학 처분을 받은 김 전 회장은 원산상업고등학교로 편입했다.

이후 한국화약을 세우고 화약 산업이 번창하던 1977년 11월 11일 대형 사고가 터진다. 광주역으로 가던 한국화약의 화물 열차가 다이너마이트와 전기뇌관 등 폭발물 40t을 싣고 이리역(현 익산역)에서 정차하던 중 폭발했다. 이 사고로 역에서 근무하던 철도 공무원 16명을 포함해 59명이 사망했고 1343명이 중상 및 경상을 입었다. 광복 이후 가장 큰 규모의 사고였다.

김 전 회장은 당시 그의 전 재산인 90억 원을 내놓겠다는 큰 결단으로 사태 해결에 나섰다. 당시 90억 원은 현재 물가로 환산하면 5000억 원이 넘는 거금이다. 모든 한국화약 임직원도 재해복구에 총동원했다. 계열사 전 직원들은 사고로 다친 사람들을 위해 헌혈에 참여했다.

김승연 회장의 성정도 김종희 창업주와 비슷하다. 선대가 불의에 저항하고 회사의 실수에 책임감 있게 대응했다면 2대는 숭고한 희생을 한 숨은 영웅들을 격려하고 문화·예술 분야 발전을 도모하는 일에도 힘썼다.

2010년 천안함 피격 사건이 벌어지자 김 회장은 희생자 유가족 특별 채용 제도를 마련했다. 희생자 46명 중 38명의 가족 가운데 유가족의 연령, 경력 등을 종합해 계열사에 24명이 취업했다. 국가가 포기한 애국자 로버트 김을 후원한 것도 한화였다. 1996년 강릉무장공비 침투사건 직후 미국 해군 정보분석관으로 근무하던 로버트 김은 한국 정부가 알아야 하는 정보 중 미국 정부가 알려주지 않은 정보 등을 주미 한국대사관에 알려준 혐의로 체포돼 징역 9년형, 보호관찰 3년형에 처해졌다. 도움을 받은 한국 정부는 동포인 로버트 김에 대한 구명 활동에 전혀 나서지 않아 국내외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2016년 9월 29일 서울 중구 청계천로 한화빌딩에서 만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오른쪽)과 로버트 김 씨가 저서 ‘로버트 김의 편지’를 함께 들고 포즈를 취했다. [한화]

2016년 9월 29일 서울 중구 청계천로 한화빌딩에서 만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오른쪽)과 로버트 김 씨가 저서 ‘로버트 김의 편지’를 함께 들고 포즈를 취했다. [한화]

불꽃축제, 이글스… 문화·스포츠 지원

한화는 로버트 김을 후원한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2005년 보호관찰 집행정지로 자유의 몸이 된 로버트 김이 라디오방송 인터뷰를 통해 이 같은 사실을 직접 알렸다. 로버트 김은 “한화 김승연 회장께서 상당히 오랫동안 뒷바라지해 주셨다”고 밝혔다. 로버트 김은 2016년 9월 김 회장을 만나 환담을 나누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김 회장은 “20년 전 선생님께서 겪은 고초를 언론으로 접하면서 많은 국민은 선생님께 ‘빚을 졌다’고 생각했다”며 “저 역시 작은 뜻을 전한 것도 그런 마음에서였다”고 소회를 전했다.

한화그룹의 생일잔치 격인 여의도 불꽃축제를 시작한 것도 김 회장이다. 그는 1999년 12월 한화의 전통 사업인 화약 기술을 바탕으로 국민에게 즐거움을 전달하기 위해 불꽃놀이를 공익적 문화 축제로 만들라고 지시했다. 이듬해 10월 첫 행사를 시작해 매년 총 10만여발의 불꽃이 하늘을 수놓는다.

한화그룹은 스포츠 분야에 대한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2002년 6월부터 대한사격연맹 회장사로 올림픽 대표팀을 지원하고 있다. 매해 100억 원이 넘는 사격발전기금을 지원하며 한화회장배 사격대회를 열어 선수 육성에도 나서고 있다.

프로야구단 한화 이글스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15년간 한화 이글스를 응원해 왔다는 임모(33) 씨는 “다른 구단은 나이 든 프랜차이즈 스타에 대한 예우를 소홀히 하는 경우도 많은데 한화 이글스는 은퇴식도 잘 열어주는 등 의리를 지키는 구단”이라고 평했다. 김 회장도 유명한 야구광이다. 10대 기업 총수 중 야구단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인물은 김 회장이 유일할 정도. 김 회장은 1999년 한화 이글스가 첫 우승을 했을 때 선수들을 끌어안고 기뻐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代 이어가는 승부사 기질

최근 한화는 다음 세대를 준비하고 있다. 김승연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39) 한화솔루션 부회장은 8월 29일 한화그룹 9개 계열사 대표이사 인사에서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김 부회장은 기존 한화솔루션 전략 부문 대표이사에 더해 ㈜한화 전략 부문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전략 부문 대표이사도 맡게 됐다. 김 부회장은 2006년 미국 하버드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2010년 한화그룹 회장실에 차장으로 입사해 경영 수업을 받아왔다.

재계에서는 김 부회장에게도 M&A 승부사 기질이 보인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실제로 그는 2012년 한화 큐셀 인수 당시 부친인 김 회장을 도와 세부 작업을 진두지휘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부회장은 최근 사모펀드(PEF), 기업금융(IB) 부문에 몸담았던 인사를 적극적으로 영입해 M&A 기회를 물색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한화 관계자는 “김 부회장이 한화그룹의 미래 사업 구상을 구현해 나가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며 “주요 주주로서 책임경영을 강화하는 측면도 있다”고 밝혔다.

차남인 김동원(37) 한화생명 부사장은 금융 사업을 맡고 있다. 2014년 한화생명 디지털팀장으로 입사, 2019년 최고디지털전략책임자에 올라 한화생명을 포함한 금융 계열사 디지털 전환을 주도했다. 삼남인 김동선(33) 한화 호텔&리조트 전무 겸 한화솔루션 갤러리아 부문 신사업전략실장은 호텔·리조트·유통 사업에서 일한다. 최근 미국 햄버거 체인 파이브가이즈와의 협상을 주도해 갤러리아 백화점에 한국 최초로 파이브가이즈 1호점이 들어온다. 한화 관계자는 “승계 구도를 확실히 했다기보다는 각자 특기 분야를 두고 경영 수업을 받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신동아 2022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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