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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로이드도 인간처럼 재판받을 권리가 있는가

뮤지컬 ‘인간의 법정’

  • 황승경 공연칼럼니스트·공연예술학 박사 lunapiena7@naver.com

안드로이드도 인간처럼 재판받을 권리가 있는가

  • 인간의 존엄성. 인간 외에 무엇이 이를 인정했던가. 인간이 인간에게 부여하는 존엄성이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작위와 다를 게 있을까. 인간을 벗어나 바라본 인간은 그저 자신이 만든 왕관을 쓴 채 ‘세상의 왕’을 참칭하는 역적. 인간이 존엄할 수 있는 이유는 오직 하나, 아직 ‘더 강하기’ 때문일 따름이다.
뮤지컬 ‘인간의 법정’은 인간 중심적 관점을 전환하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주)대로컴퍼니]

뮤지컬 ‘인간의 법정’은 인간 중심적 관점을 전환하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주)대로컴퍼니]

10월 초 미국 텍사스주 세귄에서 큰 정전 사태가 2번이나 발생했다. 피해가 커지자 경찰은 대대적 수사를 펼쳐 범인을 검거했다. 키 84㎝, 몸무게 16㎏, 남성 ‘라쿤’. 세귄경찰서는 페이스북을 통해 용의자의 머그샷(수용 기록용 사진)을 공개했다. 힘겨운 복구작업에 임하고 있는 주민에게 잠시 웃음을 주기 위한 합성사진이었다. 비록 정전 사태를 초래한 주범일지라도 텍사스 법정 피고인석에 동물인 라쿤을 앉히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법은 인간이 만든 사회규범이다. 인간 사회 혼란을 해결하기 위해 존재한다. ‘인간이’ 집행하며 ‘인간에게’ 적용된다.

주인을 살해한 안드로이드

인간은 생명체 가운데 가장 뛰어난 이성을 가졌다는 이유로 지구를 독식하고 있다. 하지만 100여 년 후에도 같을지 궁금하다. 21세기에 접어들며 인류는 ‘빛의 속도’를 방불케 할 급격한 산업화·자동화 세계에 접어들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핵심기술 AI(인공지능)는 인간의 일자리를 위협할 정도다. 세간에선 5년 안에 로봇이 인간을 대체해 8500만 개 일자리가 사라진다고 한다. 100년 후엔 인공지능이 탑재된 로봇과 인간이 ‘이웃사촌’으로 지역사회를 이루고 살 수도 있다. 지난해 조광희(55) 작가가 출간한 소설 ‘인간의 법정’은 이러한 인식에 바탕을 뒀다.

조광희 작가는 현직 변호사이기도 하다. 이 때문인지 소설은 법정이 배경이지만 ‘법정 드라마’라기보다는 ‘SF(Science Fiction)소설’로 평가받는다. ‘인간의 법정’은 미래의 파격적 법정을 무대로 한다. 인권을 등한시하는 ‘AI 판사’에 관한 비사를 담았다면 진부하기 짝이 없었을 테지만 작가는 ‘형사재판을 요구하는 민사재판의 피고’로 ‘안드로이드(Android)’를 내세웠다. 안드로이드는 인간과 외모가 흡사하고 행동거지까지 유사한 인공지능 로봇이다. 소설은 주인을 살해한 안드로이드를 변호하는 재판 과정에서 인간의 존엄성, 생명의 범위에 대한 수많은 문제의식을 곱씹게 한다.

‘소설 인간의 법정’과 ‘뮤지컬 인간의 법정’은 같은 시기에 맞물려 준비됐다. 지난해 초 한국 뮤지컬계 대표적 음악감독으로 꼽히는 장소영 감독이 법률 자문을 받으러 조광희 작가를 찾았다. 송사에 대해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는 못했지만 이날 장 감독은 아직 출판되지 않은 소설 파일을 건네받았다. 내용은 SF 장르에, 다소 황당하게 느껴질 만큼 파격적 전개였지만 조 작가의 30년 법정 경험이 고스란히 묻어나 더없이 전문적이었다. 마침 새로운 소재를 고민하던 장 감독은 ‘바로 이거다’하는 마음으로 쾌재를 불렀다.



뮤지컬 ‘인간의 법정’ 포스터. [(주)대로컴퍼니]

뮤지컬 ‘인간의 법정’ 포스터. [(주)대로컴퍼니]

조광희 작가는 직접 소설을 각색해 뮤지컬 무대로 올렸다. 뮤지컬 ‘인간의 법정’은 9월 28일부터 12월 4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에서 상연된다. 소설에서 몇 가지 내용이 바뀌었다. 시간 배경이 22세기에서 21세기 후반으로 좀 더 앞당겨졌다. 자칫 관객에게 ‘먼 나라 이야기’로 느껴질 수 있음을 염려한 변화다. 원작에서는 등장인물 ‘한시로’가 지식인이지만 평범한 회사원으로 변경됐다. 이 역시 관객이 등장인물의 감정에 쉽게 동화될 수 있도록 한 연극적 장치다.

이 작품은 뮤지컬이라는 장르적 특성을 발현하며 인간과 안드로이드, 그리고 동물의 경계에 맞물린 입장 차이를 절묘하게 다룬다. 잇따른 해외 판권 계약 체결로 중국, 프랑스, 독일, 벨기에, 스웨덴 관객에게도 선보일 전망이다. 뮤지컬은 소설과 달리 정보가 아니라 정서 및 감정 전달이 목적이다. 언어적 장벽에서도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뮤지컬 선율이 전달하는 감성은 ‘만국 공통어’다. 장소영 음악감독은 소설이 가진 묵직함에 무대 위 생생한 현실감을 가미해 작품을 풀어냈다.

AI는 인간의 전유물인가

뮤지컬 속으로 들어가 보자. 한시로는 여자친구 미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생체 DNA로 복제된 안드로이드 아오를 주문한다. 한시로는 가족과 지내듯 아오와 생활하지만 아오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조차 모른다. 안드로이드는 기계적으로 자극을 연산해 반응을 도출하도록 설계됐을 뿐 ‘의식’이 없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오와 교감하고 싶었던 한시로는 불법임에도 아오에게 의식생성기를 심는다. ‘아는 것이 병’이라고 했던가. 자신이 안드로이드라는 것을 알게 된 아오는 깊은 회의감에 빠진다. 인간의 삶에 눈뜬 아오는 늦잠을 자거나 무단으로 혼자 여행을 다녀오는 등 일탈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아오는 스스로를 한시로로 착각해 미나를 위협하는 진짜 한시로를 살해하고 만다. 경찰에 체포되면 한시로를 아오는 죽인 죄로 폐기된다.

아오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로봇 법 전문 변호사 호윤표에게 도움을 청한다. 아오와 호윤표는 “의식이 있는 안드로이드는 인간처럼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며 상대 측과 맹렬한 법정 격론을 펼친다. 호윤표는 아오에게 ‘동물과 법인격에 대한 특별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첨예하게 대립하는 두 의견에 AI 판사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기다리라”고 명령한다. 이윽고 ‘반전 결말’이 이어진다. 직접 관람을 통해 확인하길 바란다.

아오의 마지막 절규는 150여 년 전 표도르 도스토옙스키가 세상을 향해 던진 죄와 벌에 대한 심오한 질문을 떠올리게 한다. AI에 대한 생사여탈권은 인간의 전유물일까. 안드로이드가 오류를 일으킨다면 그 책임은 누가 져야 할까.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인간인가, 안드로이드인가. 아직 AI가 우리네 삶에 깊숙이 파고들지 않은 지금이 논의하기에 적합한 시기일지 모른다.

1970~1980년대에 선풍적 인기를 끈 애니메이션 ‘마징가Z’ 주제가엔 “인조인간 로봇”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하지만 아무도 마징가Z를 ‘인조인간’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번개머리를 하고, 수영복 같은 반바지를 입은 채 빨간 부츠를 신고 다니던 1950년대 아톰도 마찬가지다. 뮤지컬 속 안드로이드 아오 역시 그렇다. 아오가 흐느끼며 부르는 주옥같은 선율엔 인간의 감정과 감각이 절절하게 흘러 관객을 몰입시킨다. 뮤지컬 ‘인간의 법정’은 다시 한번 인간을 깨닫게 만든다. 바로 지금이 편향된 인간 중심적 관점을 바꿀 때라고.

황승경
● 1976년 서울 출생
● 이탈리아 레피체국립음악원 디플럼, 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 성균관대 공연예술학 박사
● 국제오페라단 단장
● 前 이탈리아 노베 방송국 리포터, 월간 ‘영카페’ 편집장
● 저서 : ‘3S 보컬트레이닝’ ‘무한한 상상과 놀이의 변주’ 外



신동아 2022년 11월호

황승경 공연칼럼니스트·공연예술학 박사 lunapiena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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