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호

194㎝·130㎏ 이대호 ‘에이징 커브’ 예측 가능했나

[베이스볼 비키니]

  • 황규인 동아일보 기자

    kini@donga.com

    입력2022-10-26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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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서만 ‘노쇠화 시작’ 의미

    • 원래 뜻은 야구선수 기량 곡선

    • 특별한 선수일수록 예측 힘들어

    • ‘에이징 커브’ 표현 쓸 때 주의해야

    문 : 학창 시절 사회 시간에 배운 ‘수요 곡선’은 영어로 어떻게 표현할까요?

    답 : ‘demand curve’입니다.

    문 : 그럼 ‘공급 곡선’은요?

    답 : 이번에는 ‘supply curve’라고 부릅니다.

    문 : 과학 시간에 배운 ‘생장 곡선’은?



    답 : ‘growth curve’입니다.

    문 : 그래서 말하고자 하는 게 뭔가요?

    답 : 영어로는 곡선 형태 그래프를 ‘커브’라고 부른다는 사실입니다.

    문 : 그러면 ‘에이징 커브(aging curve)’는 어떻게 번역해야 할까요?

    답 : ‘노화 곡선’ 아닐까요?

    네, 그렇습니다. 에이징 커브는 노화 곡선 그 자체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세이버메트릭스(야구 통계학) 세계에서 ‘바이블’로 통하는 책 ‘더 북(The book)’을 펴낸 미첼 리히트만은 2009년 ‘야구선수는 어떻게 나이 먹어 가는가?(How do baseball players age?)’라는 글을 인터넷에 띄우면서 첫 그래프 제목을 ‘기본 에이징 커브(Basic Aging Curve)’라고 붙였습니다. 따라서 에이징 커브는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후 점점 기량을 키워서 전성기에 도달했다가 나이가 들면서 기량이 떨어지는 과정을 나타내는 그래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한국 언론에서는 에이징 커브를 이런 뜻으로 쓰지 않습니다. 한국에서는 “많은 선수가 이 시기를 전후해 스피드와 파워 등이 떨어지면서 개인 성적이 하락하는 이른바 ‘에이징 커브’를 겪게 된다”처럼 ‘노쇠화’를 이야기할 때 에이징 커브가 등장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커브’라는 낱말을 곡선 모양 그래프라는 뜻으로 쓰는 게 아니라 ‘저 앞에 급커브길이 있어’라고 표현할 때처럼 쓰는 겁니다. 그런 이유로 미국에서는 프로야구 선수가 데뷔 때부터 성장, 발전, 노쇠화 등을 경험한 발자취를 기록하면 에이징 커브가 되지만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선수가 어느 날 에이징 커브에 ‘들어서게’ 됩니다.

    국립국어원 ‘에이징 커브’ 설명은…

    한국 프로야구 타자들의 ‘에이징 커브(노쇠화 국면)’를 예측한 그래프. [황규인 기자]

    한국 프로야구 타자들의 ‘에이징 커브(노쇠화 국면)’를 예측한 그래프. [황규인 기자]

    재미있는 건 국립국어원조차 에이징 커브 대신 ‘노화 곡선’이라는 표현을 써달라고 하면서도 이 표현이 ‘일정 나이가 되면 운동 능력이 저하되어 기량이 하락하는 현상’이라고 설명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과문한 탓인지 노화 곡선을 제외하면 어떤 현상 그 자체를 나타내는 표현이 ‘곡선’이라는 낱말로 끝나는 다른 사례가 잘 생각나지 않습니다. 생장은 생장이고, 생장 곡선은 생장 곡선인데 국립국어원은 생장 그 자체를 생장 곡선이라고 부르라고 하고 있는 셈이니까요.

    한국에서는 어쩌다 에이징 커브를 이렇게 쓰게 된 걸까요. 과거 기사를 찾아보면 2015년부터 한 스포츠 전문 방송사 인턴기자가 “통산 30~32세부터 운동능력 저하가 시작되는 에이징 커브” 같은 표현을 꾸준히 사용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른 매체에서 ‘나이에 따른 기량 변화 추이’ ‘나이에 따른 능력 증감’처럼 미국에서 쓰는 것과 같은 뜻으로 에이징 커브를 설명하기도 했지만 결국 ‘급격한 노쇠화’ 쪽이 이겼습니다. (그래프에서 우하향 하는 부분만 ‘커브’라고 표현한 건 아마 ‘커브 볼’ 때문일 겁니다.) 개그맨 정종철 씨가 ‘옥동자’라는 낱말 뉘앙스를 정반대로 바꾼 것처럼 이 인턴기자도 에이징 커브라는 개념을 재창조한 셈입니다.

    노파심에 말씀드리면 (노화 곡선은 몰라도) 에이징 커브를 미국에서 쓰는 의미로 바꿔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미국에서 ‘위닝 시리즈’라는 표현을 쓸 때는 ‘winning the world series’처럼 문자 그대로 ‘시리즈에서 이긴 일’ 그 자체를 뜻할 때밖에 없습니다. 한국에서처럼 ‘3연전 가운데 2승 이상을 거두는 일’로 위닝 시리즈라고 표현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이렇게 입에 착 감기는 표현을 쓰지 말자고 할 수 있나요. 그냥 ‘위닝 시리즈’라는, 영어에 뿌리를 둔 한국어 표현이 생긴 것뿐입니다. 에이징 커브도 마찬가지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야구선수 평균적 전성기는 언제일까

    1950~2008년까지 미국 메이저리그 타자들의 에이징 커브 그래프. 27~28세를 기점으로 역량이 떨어진다. [황규인 기자]

    1950~2008년까지 미국 메이저리그 타자들의 에이징 커브 그래프. 27~28세를 기점으로 역량이 떨어진다. [황규인 기자]

    에이징 커브라는 단어의 개념 자체가 다르다 보니까 활용법도 다릅니다. 미국에서 에이징 커브를 다룰 때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표현은 ‘(the) peak age’입니다. ‘도대체 (야구) 선수는 몇 살 때가 전성기인가’에 초점을 맞추는 겁니다. 에이징 커브가 그저 노쇠화만 다루는 개념이라면 당연히 이런 표현이 이렇게 자주 등장할 필요가 없습니다.

    리히트만이 위에서 언급한 저 글을 쓴 이유는 JC 브래드버리 미국 케네소주립대 교수(경제학)가 ‘야구선수 전성기는 29세’라고 주장하자 ‘아니다. 27세다’라고 반박하려는 이유였습니다. (브래드버리 교수는 정우영 SBS스포츠 아나운서가 번역한 책 ‘괴짜 야구 경제학’ 저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전성기가 언제인지 따지는 게 중요한 이유는 물론 ‘돈’ 때문입니다. 선수와 장기 계약을 맺으려면 이 선수 기량이 언제까지 어느 정도나 올라갈 것이고 그 뒤로 얼마나 내려올 것인지 예측하는 작업이 꼭 필요하니까요.

    그런 이유로 미국의 에이징 커브는 결국 선수 미래 성적을 예상하는 ‘프로젝션(projection)’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리히트만과 브래드버리가 야구선수 전성기를 각각 다르게 계산한 건 계산 과정이 서로 달랐기 때문입니다. 같은 이유로 선수 미래 성적을 예상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 버전이 있습니다. 그중 가장 유명한 방식 한 가지를 꼽으라면 ‘PECOTA’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야구선수가 나이 먹는 방법

    PECOTA는 ‘Player Empirical Comparison and Optimization Test Algorith’을 줄인 말로 ‘선수의 경험적 비교 및 최적화 테스트 알고리즘’ 정도로 번역할 수 있을 겁니다. 억지로 짜 맞춘 느낌이 드는 건 사실 PECOTA라는 명칭은 빌 페코타(62)라는 선수 이름에서 따왔기 때문입니다. 이 기법을 개발한 네이트 실버는 2012년에 펴낸 책 ‘신호와 소음’을 통해 “1980년대 캔자스시티 로열스에서 페코타는 2류 외야수였지만 내가 좋아한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에는 언제나 골칫덩어리였다”면서 “페코타는 메이저리그 통산 타율이 0.249였지만 (본인이 응원하던) 디트로이트를 상대로는 0.304를 쳤다”고 소개했습니다.

    단, ‘경험적’이라는 표현을 억지로 넣은 건 아닙니다. PECOTA는 ‘옛날 선수’ 기록을 활용해 미래 선수 성적을 예측합니다. ‘홈런왕’은 다른 홈런왕처럼 나이를 먹을 확률이 높고 ‘똑딱이’는 다른 똑딱이처럼 나이 들어갈 확률이 높다는 걸 전제로 선수 성적을 예측하는 겁니다. 이 과정에서 기록뿐만 아니라 키와 몸무게 같은 신체 특징도 활용합니다. 그러니까 어쩌면 처음부터 ‘야구선수 전성기는 27세다’ ‘아니다. 29세다’ 하는 논쟁은 의미가 없는지도 모릅니다. 선수는 각기 다른 방법으로 나이를 먹는 법이니까 말입니다.

    ‘조선의 4번 타자’ 이대호는 한국 나이로 서른아홉이던 2020년 시즌이 끝난 뒤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었습니다. 이대호는 이듬해 1월 29일 롯데 자이언츠와 2년간 총액 26억 원에 FA 계약을 맺었습니다. 계약 소식이 들리기 약 3주 전 한 인터넷 매체는 “이대호는 ‘에이징 커브’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라는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이 기사를 쓴 기자는 “패스트볼에 대한 대처 능력이 떨어졌고 타구 스피드도 평균을 밑돌았다”면서 “힘으로 이겨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님을 보여주는 수치들”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에이징 커브에 대처하는 자세

    재미있는 건 이로부터 8개월 뒤 같은 기자가 “이대호 ‘에이징 커브?’ 데이터는 걱정 없다 말하고 있다”는 제목으로 기사를 내보냈다는 점입니다. 그러면서 그 기자는 “에이징 커브를 의심하는 목소리도 있었다”면서 “현재로서는 ‘아직은 아니다’라는 분석에 좀 더 힘이 실리고 있다”고 북도 치고 장구도 쳤습니다.

    이 기자가 이렇게 주장한 근거는 “이대호의 에이징 커브는 왼손 투수 상대 성적을 보면 어느 정도 점을 쳐볼 수 있다고 볼 수 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7월까지 왼손 투수 상대 타율이 0.231에 불과했는데 8월에 0.250까지 올랐으니 에이징 커브가 아니라는 겁니다. 이대호는 결국 왼손 투수 상대 타율 0.236으로 시즌을 마쳤으니 그럼 에이징 커브였던 걸까요. 그럼 은퇴 시즌인 올해 남긴 이 무지막지한 기록(타율 0.331, 179안타, 101타점, 23홈런)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노쇠화를 에이징 커브라고 쓰는 게 문제가 아니라 이렇게 밑도 끝도 없이 입맛에 맞는 기록만 가져다가 쓰는 게 문제입니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프로야구 선수는 ‘평균적으로’ 20대 후반부터 기록이 ‘꾸준히’ 떨어집니다. 어느 해에 갑자기 기량이 떨어지는 걸 에이징 커브라고 불러야 한다면 사실 ‘평균적으로’는 그런 나이를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한국 프로야구에서 뛰었던 선수 가운데는 이대호처럼 ‘홈런을 칠 줄 아는 교타자’ 또는 ‘정확도를 갖춘 홈런 타자’부터 찾기가 쉽지 않은 데다 그 덩치(194㎝·130㎏)에 그렇게 유연한 선수까지 찾기는 더더욱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이대호 같은 타자에게는 ‘에이징 커브가 찾아왔다’는 표현을 쓸 때는 특히 조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궁금합니다. 지난해 1월 롯데가 이대호에게 2년이 넘는 계약 기간을 보장했다면 올해 개인 성적은 어땠을 것이고 또 팀 성적은 어떻게 됐을까요? 내년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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