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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심’도 ‘상심’도 주는 위장, 생활 습관 정직하게 보여준다

[이근희의 젊은 한의학]

  • 이근희 경주 안강 갑산한의원장

‘밥심’도 ‘상심’도 주는 위장, 생활 습관 정직하게 보여준다

위장은 위에서 아래 방향으로 연동운동을 하는데 이를 거스르면 역류성 식도염이 발생한다. [Gettyimage]

위장은 위에서 아래 방향으로 연동운동을 하는데 이를 거스르면 역류성 식도염이 발생한다. [Gettyimage]

우리나라가 세상 어느 나라보다 먹는 데 진심인 것은 TV 채널만 돌려봐도 알 수 있다. ‘생생정보통’ 같은 지방 음식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에서부터 다양한 요리사가 나오는 쿡방, 맛집을 소개하는 미식 방송 등이 유행했고, 엄청난 음식을 먹는 대식가가 나오는 먹방, 최근에는 조금씩 먹는 소식가들의 먹방까지 즐겨 보는 사람이 많다.

인간의 쾌락 중 하나인 식도락을 즐기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급하게 음식을 먹은 뒤 생기는 일시적인 체증이 아니라 소화 기능 자체가 만성적으로 떨어진 경우가 그렇다. 이들은 항상 상복부가 답답하면서 배가 더부룩하며 설사 혹은 변비로 고생하고, 영양분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해 몸에 힘이 없어지는 증상을 안고 산다. 먹고 싶어도 제대로 먹지 못해 일상이 우울하며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그렇다면 소화불량은 어떻게 해서 발생할까.

먹어야 살 수 있는 사람의 몸은 도넛과 같이 중간이 뻥 뚫린 구조로, 구강부터 항문까지 연결된 우리 몸의 내부이자 외부인 관을 가지고 있다. 우리 몸은 이 관을 통해 외부에서 공급된 음식물을 소화시켜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영양분을 흡수하며 에너지를 만든다. 입에서 부순 음식을 위장이 강력한 위액으로 섞고 녹인 후 소장이 각종 소화효소로 잘게 분해한다. 이후 필요한 영양소를 흡수하고 남은 것은 대장으로 보내 물을 뺀 뒤 항문으로 찌꺼기를 배출한다.


스트레스가 최대 적

이 중에서도 위장은 식도 바로 밑에 붙어 있는 핵심 소화기관이다. 인간이 음식을 삼키면 8초 만에 위장에 도달해 저장된다. 소화가 시작되는 첫 번째 단계다. 흔히들 위장을 밥통이라고도 하는데, 위장의 역할이 음식을 일단 받아들인 후 짧게는 2시간 길게는 8시간 가까이 품고 있다 소장으로 내려보내기에 붙은 별명이다. 이러한 위장에 궤양이나 위암과 같은 구조적 문제가 없다면 어떤 기능에 문제가 생겨 소화가 안 될까.

첫째, 위장의 수납 기능 문제다. 구강과 식도를 통해 내려온 음식이 위장에 잘 안착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다.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신축성이 좋은 위장은 음식이 들어오면 자연스럽게 압력의 증가 없이 늘어나 음식물을 쌓아야 한다. 위장이 부풀어 오르면서 생기는 자극은 신경을 통해 뇌에 전달돼 포만감을 느끼게 해준다. 하지만 신경계가 과민해져 위장이 조금만 부풀어 올라도 바로 뇌에 신호를 보내면 조금만 먹어도 배가 지나치게 부르며, 윗배가 답답해지며 트림이 자주 발생해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한다.



둘째, 위장에 들어온 음식물이 다음 타자인 소장이 흡수할 수 있는 형태로 잘 찌고 삭혀지지 않았을 때도 문제다. 음식물이 들어와 위장이 팽창하면 위장 신경계가 신호를 보내 강력한 소화액인 위산을 분비해 음식물을 녹여주며, 위장 근육을 움직여 음식물을 잘 섞이도록 그라인더와 같이 꿀렁꿀렁 위액과 버무린다. 이 과정을 통해 음식물이 수 시간 동안 잘게 분해되는데 위장 근육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거나 소화액 분비에 문제가 생기면 음식이 제대로 소화되지 않는 체증이 발생하게 된다.

셋째, 위장 운동은 항상 위에서 아래 방향으로 흐르는 연동운동인데 이를 거스를 때도 소화 기능에 문제가 생긴다. 외부의 음식이 우리 몸에 흡수되려면 단계별로 차근차근 차질 없이 진행돼야 한다. 이를 위해 위장 위쪽엔 분문, 아래쪽엔 유문이라는 차단벽이 설치돼 있다. 하지만 이 문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아 음식물이 위로 역류하면 강한 위산이 식도를 녹이는 역류성 식도염이 발생하고, 아래로 너무 빨리 내려가면 소장이 흡수하기 힘든 형태의 음식물을 받게 돼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또한 소화 기능에 영향을 주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가 스트레스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속 좁다’ ‘비위를 맞추다’ 같은 표현이 생긴 것도 위장과 마음의 상관관계를 보여준다. 우리 몸의 자율신경 중 부교감신경은 편안하고 안정을 취하는 상태에서 위장에 혈액 공급을 늘리고, 소화샘의 분비를 촉진해 소화를 원활하게 한다. 하지만 스트레스를 받은 상황에서는 교감신경이 당장 급하지 않은 위장의 피를 빼앗아가 당장 힘을 내기 위한 근육과, 산소와 혈액을 공급하기 위한 심장과 폐로 혈액을 몰아주게 된다.

우리가 오랜 시간 과로에 시달리고,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며, 카페인을 지나치게 많이 마셔 교감신경이 흥분된 상태가 계속되면 입맛이 없어지고 소화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처럼 위장 기능 자체의 문제로 소화불량이 오랫동안 지속되면 위장 점막에 비정상적 염증이 발생해 점막을 침범하는 궤양이 생길 수 있으며, 추후 위암으로 발전할 수 있으므로 검사상 특별한 문제가 없더라도 조속히 치료해야 한다.

찬 음식 피하고 배 따뜻하게

한의학에서는 우리 몸에서 가장 중요한 장기로 비위(脾胃)를 꼽았다. ‘동의보감’에 있는 신형장부도(身形藏府圖)를 보면 비위가 인체의 중앙에서 축과 같은 역할을 하며 모든 장부가 움직일 수 있는 에너지원을 생성해 인체 말단까지 전달하는 기관임을 알 수 있다.

기능성 소화불량은 식상증(食傷症)으로 불린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식상증은 음식이 소화돼 내려가지 않고 명치끝에 머물러 발생한다. 배가 불러오고 답답하며 음식을 싫어하거나 먹지 못하고 신트림을 하며 냄새나는 방귀가 나온다’고 한다. 한의학에서는 비위의 소화작용을 부숙수곡(腐熟水穀)으로 본다. 물과 음식(水穀)을 삭히고(腐) 쪄서(熟) 맑은 것은 흡수해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고, 탁한 것은 대장을 통해 배출한다.

위장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밥솥과 같이 열이 필요하다. 동의보감에는 “솥에 쌀을 넣고 불을 때지 않으면 쌀이 익지 않는다. 단전의 불길이 위를 데워야 음식이 소화된다”고 적혀 있다. 또 “부숙수곡을 위해 찬 음식 섭취를 줄이고, 소화가 되지 않을 때는 쑥을 넣은 복대로 배를 따뜻하게 하라”고도 했다. 이를 통해 체온이 올라간다면 위장의 혈류 순환이 개선돼 소화가 원활해진다는 것이다.

소화 기능에 이상이 생겨 한의원에 내원한 환자들을 보다 보면 환자 층이 매우 다양함을 느낀다. 지나친 다이어트 이후에 위장이 음식을 잘 받아들이지 못해 오는 사람, 살이 쪘는데 기름지고 자극적인 음식을 즐겨 수시로 위산이 역류하며 음식이 잘 내려가지 않는 사람, 스트레스와 충격 등으로 인해 식욕이 떨어지며 위장 운동이 느려진 사람, 노화로 소화 기능 자체가 약해진 사람 등 참으로 다양한 환자가 체기를 이유로 찾아와 ‘한 방’에 낫기를 바란다.

한의사의 도움으로 당장의 어려움은 넘길 수 있을지라도 그것이 근본적 해결책은 아니다. 위장만큼 정직하게 개인의 생활 습관을 보여주는 신체기관은 없기에 평소 꾸준히 위장 건강에 힘써야 한다. 평생 동안 우리 몸에 에너지를 공급하고자 일하는 위장은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밥심’을 줄 수도 있고, ‘상심’을 줄 수도 있다.


이근희
● 원광대 한의대 졸업
● 前 수서 갑산한의원 진료원장
● 現 경주 안강 갑산한의원 원장
● 경희대 한의대 대학원 안이비인후피부과 석사



신동아 2022년 11월호

이근희 경주 안강 갑산한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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