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키스와 같은 가볍고 기분 좋은 스트레스는 교감신경을 자극해 정신을 맑게 해준다. [Gettyimage]
실제로 정신과 육체가 따로 존재하는지에 관한 답은 함부로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송과선 안에 정신이 깃들어 있다는 주장엔 공감하기 힘들다. 송과선은 단일 조직이긴 하지만 발생학적으로 두 개의 조직이 합쳐진 것이며, 정신이 깃든 부분이 아니다. 대부분의 척추동물 뇌 안에 존재하며 세로토닌(serotonin)에서 유래된 멜라토닌(melatonin)이라는 호르몬을 분비해 수면 양상을 조절하는 작은 내분비기관일 뿐이다.
그렇다면 정신과 육체를 연결하는 것은 무엇일까. 필자 생각으로는 자율신경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
자율신경은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상호작용을 조절한다. [Gettyimage]
말초신경계에 속하는 자율신경계는 우리가 스스로 조절할 수 없는 내장기관의 기능을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상호작용으로 조절해 주는 역할을 한다.
교감신경은 위기 시에 투쟁 혹은 도피, 경직(fight or flight or freeze) 반응을 관장한다. 누군가와 전투에 돌입하기 직전과 같이 동공이 커지고, 심장이 두근거리며, 입이 바싹바싹 마른다. 식욕이 뚝 떨어지며 배변이 억제되는 상황을 일으킨다.
부교감신경은 평화 시에 휴식과 식사와 번식(rest and feed and breed) 반응을 관장해 오후에 기분 좋은 낮잠을 자기 전과 같이 긴장이 풀리고 편안히 호흡한다. 군침이 돌며 소화가 잘되고, 배변 활동이 잘 일어나는 상황을 만들어준다.
한의학에서는 인체를 우주와 비교했을 때, 일월성신(日月星辰) 중에서 성신(星辰)에 해당하는 것을 자율신경이라고 본다. 해가 의식이 있을 때 양적인 정신활동을, 달이 의식이 없을 때 음적인 신체 활동을 관장한다고 했을 때, 자율신경은 별처럼 해나 달과 상관없이 항상 그 자리에 서 고요히 전신을 지배하며, 양적인 교감신경과 음적인 부교감신경의 상호작용을 도와 동적인 균형을 유지하는 연결고리가 돼 준다.
하지만 이상적 낙원에서 평생을 살 수 없는 이상 사람은 언제나 환경적, 사회적, 육체적 변화와 자극을 받는다. 우리는 이것을 스트레스(stress)라고 한다. 친구들과 하는 가벼운 내기, 연인과 나누는 첫 키스 같은 가볍고 기분 좋은 스트레스는 교감신경을 자극해 정신을 맑게 해주고, 심박출량을 늘려 인체가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게 해준다. 이후 부교감신경이 긴장을 부드럽게 풀어주며 신체를 안정시키지만, 극심한 스트레스가 지속되면 자율신경계가 조절 능력을 잃어버리고 망가지게 된다. 이를 자율신경실조증이라고 한다.
언제까지고 당연히 나와 함께 신체를 조절해줄 것 같던 자율신경이 유명한 영화 대사와 같이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알아”라고 외치며 조절 능력을 잃어버려 교감신경 혹은 부교감신경 중 어느 한쪽만 폭주하는 상황은 사람에게 큰 공포를 일으킨다.
과도한 스트레스에 교감신경이 폭주한다면 이유 없이 심장이 두근거리고 가슴이 답답해지며 숨을 쉬기 힘들고, 식은땀이 쏟아지듯 흐른다. 목 어깨가 굳어지고 두통이 생기며 밤에 잠을 이루기 힘들다. 입맛이 사라지며 신물이 올라오고 변비가 생긴다. 이명이 울리고 신경이 예민해지며 불안해진다. 부교감신경이 폭주한다면 쇼크가 생기고 저혈압이 오며, 기관지가 수축해 호흡곤란과 천식이 생긴다. 장운동이 과민해지고 증세가 심할 경우 실신에까지 이를 수 있다.
규칙적 생활, 스트레스 해소가 해법
필자는 한의원에서 자율신경실조증 환자들을 진료할 경우 대개 4가지 유형으로 나눠 치료한다. 첫 번째 유형은 신경증형 자율신경실조증으로 한의학에서는 간울(肝鬱)이라고 한다. 육체적·내부적 원인이 정신에 영향을 미치는 형태로, 신경과민으로 외부 자극에 민감해지는 여성이 이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다. 여성은 생리, 임신, 출산, 폐경의 과정을 거치며 수시로 에스트로겐 분비량이 달라지는데, 이러한 변화가 자율신경 중추인 뇌의 시상하부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렇기에 한결같은 신체 리듬을 유지하기 어려워 감정 변화가 심해지며 여러 증상이 몸에 나타날 수 있다. 이 경우는 ‘소간해울법(疏肝解鬱法)’과 같이 정상적 신체리듬을 회복시키며 답답한 울화(鬱火)를 소통시켜 주는 처방으로 치료한다.두 번째 유형은 심신증형 자율신경실조증으로 한의학에서는 심화(心火)라고 한다. 정신적, 외부적 원인이 육체에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강박관념에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는 남성에게 많이 발생한다. 남성은 여성만큼 급격한 호르몬 변화는 없지만, 외적인 원인의 영향을 받는 경우가 많다. 타고난 체력과 건강을 자신하며 사회적 목표를 위해 달려가던 남성이 불규칙한 식사나 수면 부족으로 생체리듬이 엉망이 되면 갑자기 ‘번아웃’ 증후군이 생길 수 있다. 또한 은퇴 후 심리적 우울감에 빠져 있으면 정신적 스트레스가 자율신경 기능에 문제를 일으켜 무기력증, 호흡곤란, 극심한 불안감이 닥쳐오는 공황발작에 처하기 쉽다. 이러한 경우에는 ‘승양산화법(升陽散火法)’과 같이 속에 있는 화를 화산처럼 들어 날리거나 ‘청열법(淸熱法)’과 같이 화를 내려주는 처방으로 치료한다.
세 번째 유형은 우울형 자율신경실조증으로 만성적인 스트레스로 인해 체력이 고갈된 것이다.마지막 유형인 본태성 자율신경실조증은 본래 허약해 저혈압이 잘 생기는 사람에게 발생한다. 스트레스보다는 자율신경기능 자체가 허약한 것이 원인이다. 이 경우는 감온(甘溫)한 약재로 열을 없애주고 근본적으로 몸을 보해 주는 처방을 써야 한다.
자율신경을 건강하게 하기 위한 관리법은 정말로 뻔한 것들이다. 규칙적인 생활습관을 유지하면서 감정을 쌓아두지 말고 건강하게 해소하며 술이나 담배, 카페인을 멀리하는 것이다. 필자가 환자들에게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며 건강한 생활습관을 가지셔야 합니다”라고 말하면 모든 환자가 같은 답을 한다. “누가 그걸 모르냐?”
맞는 말이다. 사소하게 가족들과 외식을 하려고 해도 미리 식당을 예약해야 하고, 가는 교통편을 확인하고, 늦으면 웨이팅을 해야 하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는데 어찌 긴장하지 않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며 살아갈 수 있겠는가. 그렇더라도 무대 뒤에서 끊임없이 나의 정신과 육체의 건강을 위해 노력하는 자율신경을 위해서라도 몸이 보내는 자연스러운 신호를 무시하지 말자.
이근희
● 원광대 한의대 졸업
● 前 수서 갑산한의원 진료원장
● 現 경주 안강 갑산한의원 원장
● 경희대 한의대 대학원 안이비인후피부과 석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