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호

“가장 보고 싶은 거요? 여자친구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싶어요”

“자료 읽는 눈은 이어폰” 시각장애인 판사 김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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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입력2023-02-05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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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 건 ‘희망’

    • 로스쿨 재학 때 의료사고로 시신경 잃어

    • 하루 3000배 한 달 기도 후 ‘마음의 눈’ 떠

    • 새해 소망? 수의사 여자친구와 결혼

    • ‘쇼다운’ 세계대회 국가대표로 출전하고파



    수원지방법원 1504호 판사실에서 ‘신동아’와 만난 김동현 판사. [지호영 기자]

    수원지방법원 1504호 판사실에서 ‘신동아’와 만난 김동현 판사. [지호영 기자]

    나는 일하는 방식이 조금 다릅니다.

    빼곡하게 쌓인 서류 더미 대신
    사건 기록을 한 장씩 넘기는 대신
    이어폰 양쪽을 귀에 꽂습니다.

    제게는 노트북이
    철제 캐비닛이고
    이어폰 두 짝이 자료를 읽는 눈입니다.

    어둠이라는 조금 특별한 상황에서
    오늘도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 책 ‘뭐든 해 봐요’ 중에서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읽는 대신 듣는다. 양쪽 귀에 낀 이어폰으로 내용을 파악한다. 컴퓨터 모니터에는 여러 파일을 동시에 띄우고 일한다. 귀로 듣고 필요한 내용은 메모장에 기록해 둔다. 이 파일 저 파일 옮겨가며 몇 번이고 자료를 듣고 또 듣는다. 컴퓨터로 글을 쓰는 것은 여느 사람과 다를 바 없다. 자판을 두드리며 능숙하게 글을 써 내려간다.

    ‘귀’로 듣고 ‘손’으로 일하는 그의 직업은 판사다. 법령에 따라 주어진 사건에 대한 총체적 판단을 하는 게 그의 임무다. ‘눈’ 대신 ‘귀’로 일하는 이유는 시각장애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의료사고가 바꿔놓은 삶

    처음부터 장애가 있던 건 아니다. 과학고와 카이스트 졸업 때까지 전도유망한 과학도였다. 군 복무를 마치고 IT 전문 변호사를 꿈꾸며 연세대 로스쿨에 진학했다.

    창창하던 미래는 간단한 시술 도중 발생한 의료사고로 일순간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는 달라진 상황을 인정하지 못했다. 컴퓨터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MRI)을 찍고, 각종 안과 검진을 수없이 받았다. 달라진 건 없었다. 시신경 손상은 회복이 불가능했다.
    현실을 받아들이자 분노가 치밀었다. ‘도대체 왜 나에게 이런 일이…’ 화를 낸들 손상된 시신경이 돌아올 리 없다. 이번엔 우울감이 덮쳤다. 꿈도 희망도 사라졌다는 좌절감에 몸서리쳤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는 시각장애인이 됐다는 지독한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건 ‘희망’이다.

    나에게는 희망이 있었다. 다니던 로스쿨을 2년만 더 다니면 졸업할 수 있었고, 변호사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미 이 길을 걸어간 선배들이 있었다. (…) 여기서 포기하면 다음은 없다. 이제 남은 건 하고자 하는 내 의지뿐이었다. -책 ‘뭐든 해 봐요’ 중에서

    할 수 없는 것과 할 수 있는 것부터 구분했다. 그러곤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나씩 해나갔다. 첫 시작은 3000배 기도였다. 그는 독실한 불교신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하루 100배씩 한 달에 3000배를 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기도를 시작했다. 3000배 기도는 하루 3000배를 30일 동안 하는 것이었다.
    첫날 새벽 5시에 일어나 시작한 기도는 밤 9시를 훌쩍 넘겨서야 끝났다. 힘겹게 3000배를 마치고는 짐승처럼 엎드려 소리 내 울었다. 둘째 날엔 첫날보다 30분 일찍 3000배를 끝냈다. 이날도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렇게 일주일을 울고 또 울었다. 30일 동안 하루 3000배씩 모두 9만 배를 마친 그에게 스님이 이렇게 말했다.

    “육신의 눈을 뜨지 못했지만 이제 마음의 눈을 뜬 거야.”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사고 이듬해인 2013년 봄, 로스쿨에 복학했다. 우등생으로 로스쿨을 졸업했고 변호사시험에도 합격했다.

    서울고등법원 재판연구원, 서울시 장애인인권센터 변호사를 거쳐 2020년 10월 신임 법관으로 임용됐다.

    이 남자의 이름은 수원지방법원 판사로 일하는 김동현이다. 1월 5일 수원지법 1504호 판사실에서 그를 만났다. 그와의 대담은 여느 인터뷰와 달랐다. 명함을 주고받는 대신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라고 목소리로만 인사했다

    두 가지 새해 소망

    새해 어떤 계획을 세웠나요.

    “올해 여자친구와 결혼하면 좋겠어요.”

    그가 수줍게 웃었다. 김 판사는 2020년 초 지인의 소개로 만나 3년째 사귀는 여자친구가 있다.

    여자친구는 어디 살아요.

    “대구요.”

    서울에 사는 김 판사는 여자친구를 만나기 위해 한 달에 한두 번씩 기차를 타고 대구에 내려간다. 이른바 ‘롱디(Long Distance·장거리) 연애’다.

    실례지만 여자친구 분도 장애를 갖고 있나요

    “그렇지 않아요.”

    법조계 쪽에서 일합니까.

    “수의사예요.”

    나이 차이가….

    “열한 살 어려요.”

    그가 겸연쩍게 웃었다.

    1982년생 김동현 판사는 1993년생 여자친구와 결혼을 꿈꾸고 있다. 시각장애 덕분에 그는 여자친구를 소개받은 첫날부터 손을 잡았다. 여자친구가 생긴 뒤 할 수 있는 게 많아졌다고 한다.

    여자친구의 어떤 점이 맘에 드나요.

    “몹시 재밌어요. 말하는 것도 재밌고, 같이 있으면 즐거워요. 시트콤이나 애니메이션에 나올 법한 캐릭터예요.”

    여자친구가 언어유희를 잘 구사하는 분인가 봅니다.

    “그것도 있고요, 음식 솜씨도 좋아요. 이것저것 음식을 잘 해줘요.”

    어떤 음식이 가장 기억에 남나요.

    “제육볶음을 맛있게 잘해요.”

    데이트는 주로 어디서 합니까.

    “여자친구 집에 있거나 백화점에 가요.”

    밥 먹고 차 마시고 영화까지 볼 수 있는 백화점은 두 사람이 가장 즐겨 찾는 데이트 장소다.

    여행도 다녀왔나요.

    “해운대에 함께 다녀왔어요.”

    그가 대구로 기차를 타고 내려가 여자친구를 만난 뒤 다시 새마을호로 옮겨 타고 해운대역으로 이동해 해변을 거닐며 데이트를 즐겼다고 한다.

    가장 보고 싶은 사람

    평소 여자친구와 어떻게 소통하세요.

    “전화하거나 ‘카톡’을 주로 해요.”

    그는 ‘카톡’ 메시지를 주고받는 여러 방법을 소개했다. 스마트폰에는 문자메시지를 음성으로 읽어주는 보이스리더 기능이 탑재돼 있다. PC에도 카톡 메시지를 읽어주는 프로그램이 있다. ‘문자는 눈으로 읽는 것’이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면 소통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일상생활이나 데이트하는 데 어려움이 없는 셈이네요.

    “전혀 어려움이 없는 건 아니에요. 하려고 하면 할 수 있는 거죠.”

    그는 ‘가장 보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는 어리석은 질문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여자친구’라고 답했다.

    “누가 보고 얘기해 주는 것도 들어봤고, 제가 만져도 봤지만 직접 보는 거랑은 또 다르니까요.”

    그의 휴대전화 바탕화면에는 달걀형 얼굴에 동그란 안경을 쓰고 반짝반짝 빛나는 예쁜 눈동자를 가진 미소 가득한 귀여운 소녀의 사진이 떠 있었다.

    여자친구 사진을 휴대전화 바탕화면에 깔아둔 거예요.

    “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고 했다. 얼마나 여자친구 얼굴이 보고 싶을까.

    그는 ‘결혼’ 외에 올해 또 하나의 바람을 갖고 있다. 5월 영국에서 열리는 ‘쇼다운’ 세계대회에 국가대표로 출전하는 것이다. 쇼다운은 두 명이 테이블 양쪽에서 소리 나는 공을 배트로 쳐 상대방 골에 넣는 시각장애인 스포츠다. 오락실에 있는 ‘에어하키’와 유사하다. 다른 점은 시각장애인 종목이라 소리만 듣고 공이 어디 있는지 알아채고 공격과 수비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쇼다운은 상대방이 배트로 수비를 하기 때문에 그냥 세게 때린다고 골이 들어가지 않는다. 쿠션을 이용해야 하는데 비루한 당구 실력이나마 소싯적에 치던 게 은근 도움이 되었다. 공은 좀 느려도 코스가 괜찮아서 골이 잘 들어갔다. - 책 ‘뭐든 해 봐요’ 중에서

    그는 2019년 이탈리아에서 열린 쇼다운 세계대회에 출전한 경험을 갖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한동안 대회가 열리지 못했고 올해 4년 만에 다시 개최되는 것이다.

    “3월에 세계대회에 출전할 국가대표 선발전이 있어요. 그때를 대비해 요즘 매일같이 연습장에 가서 훈련하고 있어요. 오늘도 일과 마치면 쇼다운 연습하러 갈 예정이에요.”

    얼굴에 엷은 미소가 번졌다.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에게서 볼 수 있는 즐거움이 표정에 그대로 묻어났다.

    그는 법관 임용 3년차다. 민사합의부 소속 좌배석 판사. 부장판사를 보좌해 원활한 재판과 판결문 작성을 돕는 게 주업무다.

    다른 판사들과 소통은 어떻게 합니까.

    “필요한 경우에는 직접 만나 대화하고요. 주로 법원 내 메신저를 활용해 소통해요.”

    3년차 배석판사

    김동현 판사가 자신의 책상 앞에 앉아 사건 자료를 귀로 들으며 판결문을 작성하고 있다. [지호영 기자]

    김동현 판사가 자신의 책상 앞에 앉아 사건 자료를 귀로 들으며 판결문을 작성하고 있다. [지호영 기자]

    판사 업무를 수행하는 데 어려움은 없습니까.

    “컴퓨터 파일 형태로 자료를 만들어주면 크게 무리 없이 일할 수 있어요. 요즘은 준비 서면 같은 걸 한글이나 워드 파일로 올리게 돼 있어요. 제가 파일을 내려받으면 인식할 수 있어요. 과거에는 종이를 스캔한 경우 인식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었는데, 최근에는 대부분 전자 파일 형태로 문서가 올라오기에 업무하는 데 어려움은 없어요.”

    인터뷰를 마친 후 그가 일하는 모습을 잠시 지켜봤다. 전자 파일 내용을 음성으로 읽어주는 프로그램을 활용해 사건 관련 자료를 빠르게 훑었다. 마우스를 이용해 모니터 위에 띄운 파일을 음성으로 확인해 가며 관련 자료를 귀로 듣고 그 내용을 메모장에 요약한 뒤 판결문을 작성했다. 모니터에 떠 있는 파일을 음성으로 읽어주는 프로그램을 활용했다. 잠시 그의 이어폰으로 내용을 들어봤다. 속도가 워낙 빨라 무슨 내용인지 파악하기 어려웠다.

    “말하는 속도로 읽어주면 한정된 시간 안에 이 많은 자료를 다 파악할 수 없어요. 그래서 빠른 속도로 들어요.”

    눈이 안 보이면 청각이 좋아진다고 한다. 평범한 사람은 알아듣지 못하는 빠른 속도의 음성이지만 그는 아무 어려움 없이 척척 파악하고 메모장에 핵심 내용을 기록했다. 프린트한 종이 서류 대신 모니터에 여러 파일을 열어놓고 일하는 차이만 있을 뿐 사건 자료를 토대로 판결문을 작성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판사의 그것이다.

    그는 “음성으로 전환해 주는 프로그램이 발전하면서 이미지를 문자로 추출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과거보다 크게 줄었다”며 “속기사님들이 제게 기록을 만들어주는 데 걸리는 시간이 그만큼 단축됐다”고 소개했다. 다만 그는 “청각 자료로 만들기 어려운 영상이나 도면이 중요한 사건의 경우 일일이 설명을 들어야 해서 그런 사건을 처리하는 데는 아직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지금 사는 곳은 어디예요.

    “서울 도곡동 살아요.”

    부모님과 함께 사나요.

    “가족들은 동탄에 계세요.”

    서울에서 수원까지 거리가 꽤 먼데 어떻게 출퇴근합니까.

    “대중교통이나 택시를 타요.”

    서울 안에서 이동할 때는 복지콜과 바우처콜을 주로 활용한다. 다만 서울 시계를 벗어나 이동할 때는 복지콜이나 바우처콜을 이용할 수 없어 출퇴근 때는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식사는 어떻게 해결합니까.

    “혼자 있을 땐 해먹기 귀찮아서 원하는 음식을 그때그때 사 먹어요.”

    도구를 여럿 사용하는 양식집에도 가나요.

    “제일 빨리 느는 게 그런 거예요. 먹고살아야 하니까, 젓가락질이나 포크, 나이프 이런 것은 위치만 알려주면 그다음부터는 예전처럼 쓸 수 있어요.”



    20명 중 1명이 장애인

    공간을 인식하는 능력이 발달하는 건가요.

    “아무래도 조금 더 발달하죠. 눈으로 보고 행동하는 대신 공간을 머릿속으로 그려 사용하니까요. 여기 사무실도 처음 오자마자 한 바퀴 돌면서 어디에 뭐가 있는지부터 파악했어요. 그래야 다음부터 누가 일러주지 않아도 필요한 일을 할 수 있으니까요. 어딜 가든 ‘라운딩’부터 해요.”

    라운딩요?

    “처음 가는 곳을 한 번 돌아보고 어디에 뭐가 있는지 파악하는 거예요. 그래야 다음부터 혼자 할 수 있으니까요. 다른 사람 집에 가면 최소한 화장실 위치 정도는 미리 파악해 둬요. 그러지 않으면 뭐 할 때마다 누군가에게 얘기해야 하니 불편하죠.”

    장애는 지체부자유, 시각장애, 청각장애와 같은 신체장애와 정신장애로 크게 구분된다. 선천적 장애와 후천적 장애로도 나눌 수 있다. 선천적 장애와 후천적 장애 비율은 1대 9다. 질병과 교통사고, 산업재해 등 다양한 이유로 후천적 장애를 갖는 경우가 많다.

    한국 사회가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장애를 가진 분들이 생활하기에 미흡한 점이 많습니다. 개선이 시급한 사안으로 뭐가 있을까요.

    “누구나 보편적 삶을 살려면 자유롭게 이동하고 생활할 수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 점이 아직 충분하지 않은 것 같아요.”

    이동권 보장을 말씀하는 건가요.

    “이동권도 중요하고요. 장애인이 인간답게 살려면 인적·물적 시스템이 좀 더 갖춰져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 아직 많이 부족한 것 같아요.”

    예를 든다면.

    “유니버설 디자인이라고 하는데요. 처음부터 장애인의 사용 편의까지 고려해 설계한 후 만들면 나중에 큰돈이 들지 않아요. 예컨대 건물을 지을 때 처음부터 계단 없이 설계하면 나중에 경사로를 추가하거나 엘리베이터를 만들 필요가 없거든요. 그렇게 디자인과 설계를 하면 장애인만 편리하게 쓰는 것이 아니에요. 그 시설을 이용하는 사람 모두가 편하게 쓸 수 있어요.”

    유니버설 디자인은 공용화 설계라고도 한다. 장애 유무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무리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도구, 시설, 설비를 설계하는 것을 뜻한다. 최근에는 대중교통의 손잡이는 물론 일용품과 서비스, 주택이나 도로의 설계 등 폭넓은 분야에서 쓰이고 있다.

    유니버설 디자인을 적극적으로 도입한 나라는 독일, 프랑스,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등 유럽 선진국이다. 이들 나라에서는 반려견과 함께 거리를 걷는 장애인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어떤 장애를 갖고 있더라도 활동하기 편리하게 인프라를 갖춰놓은 덕택이다.

    한국은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성장했지만 장애인 편의를 고려한 인프라까지 세계 10위권 수준으로 구축됐는지는 의문이다. 우리나라 등록 장애인 수는 263만 명에 달한다(2020년 기준). 국민 20명 중 1명이 장애인인 셈이다. 등록 장애인 중 후천적 장애 비율이 월등히 높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금 건강하더라도 질환이나 교통사고, 산업재해 등으로 누구든 장애인이 될 수 있다.

    그는 “장애인까지 고려해 만든 제품과 서비스는 비단 장애가 있는 사람에게만 그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다”며 “그 제품과 서비스를 이용하는 모두가 수혜자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새로 등장한 장애물

    비대면 주문을 위해 도입한 키오스크는 시각장애인에게 또다른 장애가 되고 있다. [Gettyimage]

    비대면 주문을 위해 도입한 키오스크는 시각장애인에게 또다른 장애가 되고 있다. [Gettyimage]

    지상에서 승강장으로 이동하는 지하철 엘리베이터의 경우 이용자 열 명 중 아홉 명은 장애인이 아니라 일반인이다. 특히 고령화 사회로 노년층이 크게 늘면서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 지하철 승강기를 주로 이용한다. 장애인의 이동 편의를 고려한 시설이 국민 누구나 편리하게 이용하는 시설로 활용되는 것이다.
    그는 최근 도입된 신제품과 서비스 중에는 장애인을 고려하지 않아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새로운 장애 요인이 되는 것들이 적지 않다고 토로했다. 특히 음성 지원을 하지 않는 신규 웹페이지나 커피전문점과 패스트푸드점 등에서 적극 도입한 키오스크가 그렇다고 한다.

    “표준에 따라 만든 웹페이지는 음성 인식 기능이 있어 무리 없이 쓸 수 있어요. 그런데 그걸 지키지 않은 웹페이지는 사용할 수 없어요. 나중에 그것을 쓸 수 있도록 추가하려면 새로 웹페이지를 구축하는 정도의 비용과 노력이 들어요. 스마트폰 앱이나 키오스크도 마찬가지예요. 음성 지원 없이 터치스크린 방식으로만 사용하게 하면 저 같은 (시각장애를 가진) 사람은 혼자서 쓸 수가 없어요. 키오스크에 음성 안내 기능을 추가하거나 블루투스로 스마트폰과 연동되는 기능만 추가해도 키오스크를 조작할 수 있거든요.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 때 그런 부분까지는 고려를 잘 하지 않는 것 같아요.”

    인건비를 절약하기 위해 도입한 키오스크에 음성 인식 기능이 없어 시각장애인에게 새로운 장애 요인으로 등장한 것이다.

    “키오스크를 음성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하면 시각장애인뿐 아니라 눈이 침침한 어르신도 더 잘 이용할 수 있을 거예요. 지체장애인을 위해 높이 조절이 가능하도록 키오스크를 만들면 어린아이들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을 거고요. 새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할 때 누구나 편리하게 이용하도록 하려면 어떤 기능이 필요한지 설계 단계에서부터 조금만 더 고려하면 좋겠어요.”

    그는 책 ‘뭐든 해 봐요’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눈먼 자가 눈 뜬 자들의 도시에서 살아가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첫 번째는 개인이 그 상황에 적응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사회가 접근성과 합리적 편의를 제공하는 것이다.

    세계 10위 경제대국 대한민국은 국민 20명 중 1명꼴인 장애인에게 얼마나 충분한 ‘접근성’을 보장하고 ‘합리적 편의’를 제공하고 있을까. 인터뷰를 마치고 신청사로 이전한 경기도청을 들러 취재원을 만난 후 대중교통으로 서울로 돌아오는 길은 초행자에게 난관의 연속이었다. 그가 지팡이에 의존해 매일같이 서울과 수원을 오가며 출퇴근하고, 일을 보려 구석구석을 방문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대구에 사는 여자친구를 만나러 간다는 사실이 경이롭게 여겨졌다.



    구자홍 기자

    구자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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