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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스터 박영순의 커피 인문학

커피, ‘마시는 공간’을 창조하다

  • 박영순 | 커피 테이스터, 경민대 호텔외식조리학과 겸임교수 twitnews@naver.com

커피, ‘마시는 공간’을 창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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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커피는 한 시절 유행으로 그칠 것 같지 않다. 역사 속에서 커피는 후퇴를 모르고 한없이 질주해왔다. 커피를 잔에 담아 판매하는 매장도 형태를 바꾸며 진화했지만 그 공간이 축소된 적은 없다. 커피 전문점의 주인이 바뀔 뿐, 매장 수와 커피를 파는 공간은 계속 늘고 있다.
세계엔 얼마나 많은 카페가 있을까. 카페는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까. 기세가 꺾여 내리막을 향하게 될까.

미국 최대 커피 프랜차이즈 스타벅스의 움직임은 그 답을 찾는 지표가 될 만하다. 1971년 원두 소매점으로 개점한 스타벅스는 1987년 현 회장 하워드 슐츠가 인수하면서 커피 음료를 파는 전문점(카페)을 열었다. 10년 만인 1996년엔 북미 지역을 벗어나 일본과 싱가포르에도 매장을 개설하면서 전 세계 매장 수가 1만 개를 넘어섰다. 2007년엔 7834개(미국 6281개)로, 올해 5월 현재는 2만3187개로 늘었다. ‘카페 거품’ 논란 속에서도 기세가 꺾일 줄 모른다.

스타벅스는 중국 대륙을 흔들어 깨우며 세계 커피 시장의 빅뱅을 이끌어낼 태세다. 중국에선 1999년에 스타벅스 1호점을 냈다(한국에도 그해 1호점이 들어섰다). 현재 매장 수는 상하이에만 300개를 비롯해 100개 도시에 2100개로, 머지않아 중국 내 매장 수가 미국을 뛰어넘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스타벅스는 남아시아 전통차 차이(Chai)를 즐기는 12억 인도인의 입맛도 바꾸려는 전략을 세웠다. 2012년 타타그룹 지주회사 타타선스와 공동 출자로 합병회사를 설립해 인도 공략에 나선 이후 지난해 말까지 6개 도시에 80개 매장을 만들었다.  

한국에선 5, 6년 전부터 “카페가 포화상태” “지금 카페를 차리면 상투 잡는 격”이라는 둥 비관적 전망이 쏟아졌지만, 정작 카페는 지속적으로 세를 불리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4년 기준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 가맹점은 1만2022개. 2013년 8456개에서 1년 만에 42.2%나 늘었다.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과 개인 운영 매장을 합치면 지난해 말 기준 4만9600여 개로 추산된다.





古代 여성 바리스타

카페의 무엇이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걸까. ‘커피(coffee)’와 이를 마시는 공간인 ‘카페(cafe)’는 어원이 같다. 커피가 처음 발견된 에티오피아의 지명 ‘카파(Kaffa)’에서 따왔다는 설, 기운을 북돋우는 커피의 효능에 주목해 아랍어로 힘을 뜻하는 ‘카와(kahwa)’에서 비롯됐다는 설이 있다.

술을 금기시하는 이슬람 교도들이 커피를 마시며 대리만족하는 통에 아랍어로 술(wine)을 의미하는 ‘카와(qahwa)’로 불리다가 발음이 변했다는 주장도 있다. 17세기 초 커피를 처음 접한 유럽인들은 ‘아라비아의 와인’이라며 ‘카와’라 불렀다. 그러다 1650년쯤 영국에 전해졌을 때 헨리 블런트 경이 ‘커피’라고 칭한 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졌다. 카페는 커피를 즐기는 장소로 의미를 굳혀갔다.

커피가 그것을 마시는 공간까지 아우르는 용어가 된 사연은 뭘까. 이 대목에선 상상력이 필요하다. 카페를 단지 서로 어울려 커피를 마시는 공간이라 정의한다면 그 기원을 커피가 발견된 에티오피아까지 거슬러 올라가도 좋다. 에티오피아인의 주장대로라면 그 시기는 기원전 2~3세기다. 부족 간 전투를 앞두고 전사들의 힘과 정신을 북돋우려고 치러진 ‘커피 의식’은 시간이 흐르면서 귀한 손님을 대접하는 ‘분나 마프라트(Bunna Maffrate)’라는 관습으로 뿌리를 내렸다.

한 여인이 부족을 방문한 사람들을 위해 커피 생두를 물로 씻고 두터운 철제 용기에 담아 화톳불 위에서 볶아낸다. 볶은 원두를 갈아 제베나(Jebena)라는 작은 항아리에 담아 달이면서 경험적으로 적절한 수율에 도달했을 때 작은 잔에 따라 한 사람에게 반복해 석 잔을 대접한다. 이것이 카페의 모태다. 커피를 대접한 여인은 지금으로 치면 바리스타다. 바리스타 중에서도 커피 생두의 특성을 올바르게 해석해 로스팅으로 향미를 표현해내는, 요즘으로 치면 근사한 스페셜티커피 전문점의 수석 바리스타이자 로스터인 셈이다.

그러나 세계 최초의 카페는 16세기 터키에서 찾는 게 보편적이다. 마호메트가 이슬람교를 창시한 것이 614년. 커피의 유래와 관련해 무슬림들 사이에 전해지는 ‘마호메트의 전설’에 따르면 7세기쯤 서남아시아, 그러니까 사우디아라비아 반도엔 커피가 제법 널리 퍼져 있었다.


사지 튼튼하게, 피부 맑게

커피는 에티오피아에서 나일 강 루트를 통해 이집트로, 다른 하나는 홍해를 건너 예멘으로 전해졌다. 이라크 바그다드병원장이던 라제스(865~923)는 ‘의학보고’에 “커피가 사지를 튼튼하게 하고 피부를 맑게 한다. 커피를 마시면 좋은 체취가 난다”고 썼다. 이는 커피에 대한, 현존하는 가장 오랜 기록이다. 9세기에 이미 예멘뿐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를 지나 이라크에까지 커피 음용 문화가 전해졌다는 방증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를 중심으로 이슬람권에 커피를 널리 퍼뜨린 일등공신은 신비주의 수피즘(Sufism) 수도승들이다. 이슬람 성지 메카의 카바(Kabah) 신전을 관장하던 수피들은 8~16세기에 걸쳐 아라비아 반도는 물론 동쪽으로 이라크와 페르시아, 서쪽으로는 북아프리카의 모로코, 더 멀리 동남아시아의 인도네시아까지 세력을 확장했다.

이슬람교는 종교의식에서 음악을 거의 쓰지 않는다. 굳이 종교음악이라고 한다면, 기도할 때를 알리는 소리인 ‘아잔’과 코란을 읽는 소리 정도다. 그러나 시아파의 한 분파인 수피는 적극적으로 노래하고 춤추면서 신을 만나려는 독특한 행태를 보였다. 이들은  격렬하게 빙글빙글 도는 ‘수피 댄스(Sufi Whirling)’를 하면서 무아경에 빠져들었는데, 춤을 추는 수피와 이를 구경하는 사람들은 커피를 즐겼다. 그래서 수피들이 가는 곳엔 어김없이 커피가 따라다녔다.

수피들이 알라와 소통하는 매개체로서 춤과 커피를 애용하면서 커피는 이슬람의 음료로 굳건히 뿌리를 내렸다. 이런 과정에서 커피가 동굴에서 죽어가는 마호메트를 살렸다는 스토리텔링이 만들어지면서 무슬림들은 기꺼이 커피를 만끽했다.

동남쪽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선 12세기 것으로 추정되는 커피 원두가 발굴됐다. 13세기 몽골이 바그다드를 침략하자 피난길에 오른 수피들을 따라 커피는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터키에까지 퍼져나갔다. 페르시아에선 지배세력이 예멘을 점령하면서 15세기 중엽에 커피 문화가 형성됐고, 1501년 사파비 왕조의 시작과 함께 커피하우스까지 등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시장 독점한 예멘

커피 연대기에서 14~15세기의 주인공은 예멘이다. 에티오피아에서 발견된 커피가 홍해를 건너고 아라비아 반도를 거슬러 마침내 지중해를 넘고 터키로 전해지는 일련의 과정에서 예멘은 스토리를 잇는 가교 구실을 한다.

커피가 수피들을 통해 이슬람권 전역으로 퍼지자 수요를 댈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자 예멘은 직접 커피를 재배하기 시작한다. 수확한 커피는 당시 아라비아 반도 중심지인 메카로 보내졌다. 예멘은 커피의 유일한 공급원으로, 시장을 독점한다. 아라비아 반도가 사막과 험준한 계곡투성이인 탓에 물류는 홍해에 접한 항구도시 모카(Mocha)를 통해 퍼져나갔다. 1600년대 중반 모카를 통해 수출된 커피 생두는 연간 8만 포대(1포대=60kg)에 달했다. 모카 항은 그야말로 커피의 대명사가 됐다. 지금도 모카는 커피를 지칭하는 말로 통한다.

커피가 큰 부(富)를 안겨주자 예멘은 커피가 타국으로 유출되지 않게 철저히 관리했다. 예멘을 벗어나는 커피 생두엔 열을 가해 번식력이 없도록 만들었는데, 이 과정에서 커피를 볶아 먹는 법을 깨우치게 됐다는 설이 있다. 바그다드와 메소포타미아에선 1500년대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커피 생두 로스팅용 철제 국자가 발굴되기도 했다. 이는 당시 커피를 전문적으로 볶아내는 커피하우스가 존재했음을 뒷받침하는 ‘물증’이다.

1511년엔 메카의 통치자가 “사람들이 모여 커피를 마시며 음탕한 짓을 한다”는 이유로 커피 음용을 금지했다가 되레 카이로의 군주에게서 파면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는 카페가  그만큼 널리 확산됐음을 강하게 뒷받침하는 ‘정황증거’다. 그러나 딱 꼬집어 카페 이름을 댈 자료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15세기 후반쯤 메카에 ‘카베 카네스(Kaveh kanes)’라 불리는 커피하우스가 생겨났다고 전하는 정도다. 카베 카네스가 간판에 적힌  고유명사인지, 커피를 마시는 공간을 지칭하는 보통명사인지는 분명치 않다.  



터키가 카페 元祖라고?

커피 역사에서 16세기 터키가 등장하고 17세기 초 이탈리아 베니스를 통해 커피가 유럽에 상륙한 이후의 사연은 많은 기록물 덕분에 비교적 상세히 서술된다. 그러나 여기에도 앞뒤가 맞지 않는 대목이 적지 않다.



예를 들면, 교황 클레멘스 8세가 이슬람 음료인 커피에 축복을 내리고 기독교인에게도 음용을 허용했다는 부분이다. 적잖은 커피 관련 서적이 “당시 로마 사제들이 교황에게 진정을 넣어 기독교인들이 사탄의 음료인 커피를 마시는 것을 금해달라고 간청했다. 하지만 교황은 커피를 맛보고는 ‘이렇게 좋은 음료를 이슬람교도만 먹게 할 수 없다’며 커피에 세례를 줘 기독교인의 음료로 만들었다”고 전한다. 클레멘스 8세의 재위 기간은 1592년부터 선종한 1605년까지다. 그러면서도 커피가 유럽 땅을 처음 밟은 것은 1615년 이탈리아 베네치아 항구라고 소개하는 책이 많다.  

고증을 거쳐야겠지만, 커피가 유럽의 기독교 사회에 전해진 건 16세기 오스만 제국에 의한 것으로 의견이 모아진다. 일각에선 이보다 훨씬 앞서 1099년 시작돼 1365년까지 270년 동안 지속된 십자군전쟁 와중에 커피가 유럽으로 흘러들어갔다고 주장한다. 터키가 지정학적으로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교류가 왕성한 곳이자 당시 모든 문화의 유행을 이끈 곳이란 점에서 나온 이야기인 듯하다.

그러나 터키에 커피가 전파된 것은 십자군전쟁이 끝나고도 150년쯤이 지난 16세기이므로 이런 시각은 교정이 필요하다. 십자군전쟁 시기에 베네치아인들이 한때나마 터키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했기에, 이를 토대로 베네치아 상인들이 터키에서 커피를 가져와 유럽에 뿌렸다는 소문이 훗날 퍼지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커피가 터키 이스탄불에 본격 소개된 것은 1519년 셀림 1세가 이집트를 정복하고 돌아온 시점으로 전해진다. 이어 1536년 오스만 제국이 예멘을 점령한 후 커피 생두가 터키의 중요한 수출품으로 부상했다는 기록도 있다. 어쨌든 예멘으로 커피가 들어와 수피들을 통해 아라비아 반도에 퍼지기 시작한 지 거의 900년 만에 터키에 커피가 입성한 것이다. 사정이 이러한데, 세계 최초의 카페를 터키에서 찾는 게 온당할까.



커피로 富를 쌓다

터키뿐 아니라 국경을 접한 시리아에서도 1530년 커피 문화가 꽃을 피웠다고 월리엄 우커스가 저서 ‘올 어바웃 커피(All about coffee)’에 기록했다. 더욱이 1554년 콘스탄티노플에 처음 개점한 커피하우스는 시리아인 2명이 만든 것이다. 전일본커피상공조합연합회는 이를 ‘세계 최초의 본격적인 커피하우스’라고 평가한다. 몇몇 서적에 ‘카페 키바 한(Cafe Kiva Han)’이란 용어가 이 커피하우스를 지칭하는 말로 등장하는데 이것이 간판 이름인지, 당시 카페들을 총칭하는 건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1475년 콘스탄티노플에 문을 연 키바 한이 세계 최초의 커피하우스라고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1544년 이스탄불에 문을 연 ‘차이하네(Cayhane)’가 세계 최초의 카페라고 하는 것도 옳지 않다. 이 말은 일본 책에서 가끔 발견되는데, 어떤 경로를 거쳐 국내 일부 서적에 세계 최초의 카페 이름인 것처럼 소개됐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커피가 이슬람권에서 유럽 기독교권으로 전파된 경로를 추정할 때 또 하나의 큰 축을 이루는 것이 ‘오스만 제국의 베오그라드 점령’이다. 터키에 커피를 처음 들여온 셀림 1세가 1520년에 죽자 그의 아들 술레이만 1세가 제10대 술탄이 된다. 26세에 재위에 오른 그는 46년간 통치하면서 13차례의 대외 원정을 통해 오스만 제국 최고 전성기를 이룩했다. 지중해 해상권도 거머쥐었다. 이 시기에 커피가 유럽에 전해졌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교황 클레멘스 8세가 1615년 베네치아를 통해 커피가 유럽 땅을 밟기도 전에 커피에 세례를 줘 기독교인도 마음껏 마시게 했다는 부분에 대한 궁금증이 풀린다.

정확한 연도는 확인되지 않지만, 1600년대 들어 커피는 거의 1000년 동안 갇혀 있던 아라비아 반도를 벗어난다. 그 주역은 17세기 이슬람 학자이자 수피로 추앙받는 인도의 바바부단이다. 그는 사우디아라비아 메카를 순례하고 예멘을 거쳐 귀국하면서 커피 씨앗 7개를 몸에 숨겨 왔다. 바바부단은 커피 씨앗을 카르나타카(Karnataka)의 마이소르(Mysore) 근처에 있는 찬드라기리 힐(Chandragiri Hill)에 심었다. 그에 의해 아랍의 커피 독점은 막을 내리고, 커피는 더 넓은 지역에서 경작됐다. 인도를 식민 지배하던 영국과 네덜란드 상인들이 커피를 대량 본국으로 보내면서 인도는 거대한 커피 수출국으로 부상했다.

서구 열강이 커피 재배에 뛰어든 것을 통해 당시 유럽에서 얼마나 많은 커피가 소비됐는지 짐작할 수 있다. 네덜란드는 1616년 예멘의 아덴에서 커피나무를 빼돌려 스리랑카와 인도의 자바에서 대대적으로 재배한다. 여러 나라가 커피 재배에 혈안이 된 건 바야흐로 유럽 시장이 열리면서 커피가 큰 부를 안겨주는 아이템으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커피’에서 만납시다

유럽 최초의 커피하우스는 1645년 베니스에서 문을 연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1650년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 야곱이라는 유대인이 커피하우스를 연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는지, 급한 사람은 바리스타에게 급전을 치르고 커피를 먼저 받아갔다. 바리스타도 너무 바쁜 나머지 돈을 손으로 받을 여유가 없어 상자를 놔두고 넣게 했는데, 이것이 팁(tip)의 유래다. 옥스퍼드 커피하우스는 최초의 레스토랑으로도 기록된다. 1652년엔 런던 최초의 카페 ‘파스카 로제(Pasqua Rosee)’가 문을 연다.

프랑스는 귀족층에서 먼저 커피 열풍이 일었다. 궁정에 머물던 터키 대사 슐레이만이 고국에서 커피를 가져가 터키식으로 추출해 대접했다. 프랑스 최초의 카페는 이탈리아 출신이 만든 ‘카페 르 프로코프(Cafe le Procope)’다.

미국에서 커피를 마셨다는 첫 기록은 1668년의 것이다. 보스턴에 살던 도로시 존스라는 인물이 최초의 커피 판매 허가를 받은 것은 1689년이며, 이는 미국 최초의 커피하우스로 알려졌다. 뉴욕 최초의 커피하우스는 ‘킹스암스(King's arms)’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이 모여 커피를 마시는 곳엔 비나 바람을 피하는 시설이 만들어졌고, 이곳에서의 모임이 점차 정례화하면서 카페 공간의 편의시설물도 하나둘 늘어났다. 당초엔 간판도 없었기에 사람들은 ‘커피’라는 말로 그 장소를 특정했다. 카페를 만든 뒤 하나의 메뉴로 커피를 판매한 게 아니라 커피가 카페라는 공간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것이 커피를 뜻하는 카페가 마시는 공간까지 아우르는 용어가 된 사연이다.



거대 보험사의 탄생

뒷날 영국의 어느 항구에서 커피로 잠을 쫓으며 배가 도착하길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지자 텐트가 쳐졌고 그 공간이 카페로 발전했다. 카페에서 온갖 정보를 주고받는 일이 잦아지고 거래가 늘면서 이곳은 세계 굴지의 로이드 보험회사로 변모한다. 프랑스에서 카페는 혁명을 불러일으키는 각성의 도화선으로 작용했다. 대서양 건너 미국에선 커피가 독립운동을 촉발한 보스턴차(tea) 사건의 중요한 오브제로 한몫했다.

세계 최초의 카페에 대해선 명확한 스토리텔링이 완성되지 못했다. 이는 카페가 글로벌 문화에서 주류를 이루는 기독교 국가권에서 탄생하지 않은 탓도 작용했을 것이다. 8~15세기 아라비아 반도에선 커피 음용과 관련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이 문제를 풀면 언제부터 커피 열매의 과육을 벗기고 씨앗만 골라내 볶아 먹었는지에 대한 드라마틱한 사연도 드러날 것이다. 카페의 기원에 대한 궁금증은 아직 명쾌하게 풀리지 않았다.  

박 영 순


● 충북대 미생물학과 졸업, 고려대 언론대학원 석사
● 세계일보 기자, 메트로신문사 취재부장, 포커스신문사 편집국장 
● 現 인터넷신문 커피데일리 발행인, 커피비평가협회장, 경민대 호텔외식조리학과 겸임교수, 경민대 평생대학원 바리스타과정 전담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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