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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이 깊어 주름을 새길 때

6화_문화재 조사

  • 글·홍현경 | kirincho@naver.com, 자문·이재혁 | yjh44x@naver.com

고민이 깊어 주름을 새길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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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재 시굴조사는 1월 말에 시작돼 3월 초 마무리됐다. 전면발굴조사는 3월 중순부터 4월 중순까지 진행됐다. 별다른 문화재가 안 나왔으니 지하를 파도 된다는 결론을 얻었지만, 그때까지 겪은 마음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우리 집은 서울 종로구 명륜동. 4대문 안 동네라 문화재 조사를 해야 한다. 예전엔 성균관 옆 양반들이 사는 동네였을 테니 어찌 보면 당연한데, 막상 문화재 조사를 하려니 겁도 난다. 종로 피맛골 부근을 개발할 때 문화재 조사로 빌딩 공사가 지연되는 것을 봤고, 그런 빌딩 1층엔 발굴 실상을 고스란히 남겨 누구라도 볼 수 있게 유리로 덮어놓은 것도 봤기 때문이다.



1월 혹한기 : 문화재 시굴조사

“집터에서 문화재가 나오면 우리가 갖는 거야?”

“갖기는 개뿔, 망하는 거지.”

“설마 문화재는 안 나오겠지? 올림픽기념국민생활관 증축공사도 문화재가 나와서 지연되는 거라던데….”



올림픽기념국민생활관은 국민체육진흥공단이 운영하는 체육시설인데, 우리가 이사 오기 전 공사를 시작했지만 6개월 넘게 재개관 시기가 지연돼 주민들 사이에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았다. 사실은 문화재 때문이 아니라 설계변경 등 여러 행정 절차 때문이었다지만.

“다들 문화재가 안 나올 거라고 예상하던데…. 내가 점쟁이인가, 파봐야 아는 거지 뭐.”

마치 남 얘기하듯 무심히 말할 때면 남편 머리를 한 대 콩, 쥐어박고 싶어진다.

늦어도 3월엔 공사를 시작하려 했다. 땅이 풀리고 싹이 트는 봄에 공사를 하고, 땀나는 여름엔 새집에서 더위를 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전문가들이 별것 없을 거라니 그런 줄 알았다. 문화재 조사의 경우 작은 규모의 땅은 국비 지원을 통해 무료로 해주는 절차도 있지만, 우리는 공사를 빨리 진행하려고 문화재 시굴조사를 사비를 들여 하기로 전격 결정했다.  

문화재 시굴조사를 하던 날, 아이들과 친정에 다녀오려고 지하철역에서 표를 사고 있었다. 그날 아침 “오늘 문화재 시굴조사 하는데 나도 가봐야 하나?” 했더니 “그럴 필요 없어. 장모님 편찮으시다는데 천왕동에나 갔다 와” 했던 남편에게서 문자메시지가 왔다. 전화도 와 있었다.

‘지금 한옥으로 올 것.’    

무미건조한 문장에서, 뭔가 있다, 직감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서둘러 달려간 문화재 시굴조사 현장은 날리는 눈발과 함께 싸한 냉기가 돌았다.

가뜩이나 날도 추운데 다들 눈치만 본다. 전체 면적의 6분의 1 정도 되는 땅은 다큐멘터리에서 볼 수 있는 장면처럼 솔로 흙을 쓸어내리며 조심스레 작업한 듯 단정하게 돌무더기가 드러나 있었다. 깨진 도자기 조각은 한쪽에 조심스레 모셔놓았지만 그야말로 조각들이었다. 수도계량기가 있던 곳 근처 한 귀퉁이는 1m 이상 깊게 파여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는, 제 형태를 갖춘 문화재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조선 중기 집터 발견!



별것 없을 거라던 전문가 양반은 겸연쩍은 표정으로 돌을 가리키며 조선 중기 집터 주춧돌 밑에 있는 적심초석(積心礎石)이라면서, 이게 나왔으니 전면발굴조사를 해야 한단다.

“문화재가 나온 거예요?”

“집터가 나왔으니 그렇다고 할 수 있죠.”

“집터도 문화재예요?”

“네, 보시면 알겠지만 참흙으로 흙이 아주 좋습니다. 이곳은 완만한 남사면 땅이라 조선시대에도 집이 가득 차 있었던 것 같아요.”

담당자는 위안이라도 하려는 듯, 흙이 좋다는 말을 꺼냈다. 세상에 성균관 옆, 집터가 없다면 오히려 이상할 법한 동네에서 집터가 나왔다고 전면발굴조사라니. 그렇다면 애초에 전면발굴조사 가능성이 크다고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랬다면 세입자도 무료로 받을 수 있는 시굴조사 일정에 맞춰 내보내고 전면발굴조사도 무료로 순차적으로 받으면 됐을 것을.

문화재 시굴조사가 200만 원가량 든다면 전면발굴조사는 2000만 원이 든다고 했다. 그런데 소개한 사람도 있고 하니 1500만 원에 조사를 진행해 주겠노라고 한다. 남편은 말이 없어졌다. 아무리 금융비용이 든다고 해도 1500만 원을 추가로 낼 바엔 지금이라도 기다려서 국비 지원을 받는 게 낫다는 판단이 들었다. 전면발굴조사를 받았다는 경우를 본 적이 없어서 너무 안일하게 시굴조사에 임한 것이다. 구청이라도 찾아다니며 좀 더 알아봤어야 하는데, 그동안 너무 남편에게만 의존한 건 아닌지 후회가 밀려왔다.

문화재 시굴조사가 끝나고 나서도 리포트 제출까지 한 달쯤 걸렸다. 그 리포트가 있어야 국비 지원 문화재 전면발굴조사 신청서를 내는데….

문화재 전면발굴조사를 무료로 받으려고 알아봤다. 시굴조사가 끝난 1월 말엔 상담 담당자 왈 ‘4개월 후 진행할 수 있다’고 답변했는데, 리포트가 제출될 시점에 다시 확인해보니 갑자기 조사 신청이 많이 밀려 6, 7개월 후에나 착수할 수 있을 거란다.



남편은 9월 이후에 공사를 시작하면 중간에 겨울이 끼어 공사를 중단해야 할 수도 있고, 겨울엔 무리하게 마감하다가 하자가 날 가능성이 많다고 했다. 그리고 전면발굴조사가 끝난다고 해도 이렇게 리포트가 늦게 나오면 올해 착공 자체가 어려울 수도 있는 노릇 아닌가. 그리고 만약 전면발굴조사에서 청자라도 나온다면 지하를 파는 건 아예 불가능해지고, 여러 단계의 착공 시기도 예측할 수 없게 된다.

실시설계가 마무리되지 않아 공사비도 책정되지 않은 상태라 나의 불안증은 극에 달했다. 가뜩이나 다크서클이 트레이드마크인데, 이젠 만화에서처럼 광대뼈 아래까지 내려온 것 같았다. 밤엔 잠이 안 오고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났다. 아이를 낳는 고통도, 한두 시간만 고생하면, 10분만 지나면 끝난다는 예측이 가능하기에 참을 수 있는 법이다. 그런데 최악의 경우 집을 지을 수 있기는 한지, 빚이 눈덩이가 돼 곧 집을 되팔아야 하는 사태가 벌어지는 건 아닌지…. 예측할 수 없는 미래가 구르는 눈덩이가 되어 나를 짓눌렀다.

밖에 나다니는 횟수도 줄고 가야 할 운동도 빼먹는 날이 많았다. 그나마 삶에 활력을 주는 가드닝(gardening) 수업도 겨울방학 기간이라 쉬고 있었으니 물기 잃은 스파티필름 잎처럼 내 어깨는 늘 처져 있었다. 일은 진행되지 않는데 나가야 할 돈은 시시때때로 생겼다.

결국 돈을 들여 전면발굴조사를 빨리 받는 게 여러모로 낫겠다는 판단에 이르렀다. 문화재 조사를 하는 좀 더 큰 기관에 전화해 여차저차하고 이런 정도의 땅인데 전면발굴조사만 따로 해줄 수 있는지, 못한다면 이전 기관에 얼마까지 해달라고 하면 실례되지 않는 금액일지 상담받았다.

“우리가 인수받아 진행한다고 해도 비용이 크게 다르진 않을 겁니다. 오히려 1차 보고서를 인수받는 절차로 인해 시간을 끌 수 있으니 1차로 진행한 곳과 가격을 좀 더 협의해보시죠.”


우울할 땐 꽃과 햇빛




협의 담당은 남편. 조언대로 가격을 좀 더 줄여 전면발굴조사를 진행키로 했다. 가전, 가구, 조명, 정원 등 내가 줄일 수 있는 품목에서 비용을 최대한 줄여보기로 했다. 다행히 남편이 친한 자재업체에서 협찬을 받아 가장 비용이 많이 드는 창호를 생각보다 저렴한 가격에 받을 수 있게 됐다. 정말 다행이다.

문화재 시굴조사 리포트를 기다리는 동안 측량에 들어갔다. 구도심은 공식적인 지적도가 있어도 정확한 우리 땅의 범위를 확신할 수 없다. 오래된 집일수록 옆집 담장이나 집이 침범하고 있을 수도 있는데, 우리 집 짓자고 옆집을 헐 수는 없으므로 최악의 경우 설계를 변경해야 할 수도 있다.   

측량하는 날, 옆집 한옥 아주머니도 지켜보는 가운데 측량기사가 파란 점을 똑똑 찍어줬다. 그 점 안쪽이 진짜 우리 땅이라 했다. 대문 쪽에서 보면 옆집 한옥이 우리 집 쪽으로 약 40cm 침범했지만 크게 문제 될 정도는 아니었다. 나중에 옆집이 새로 집을 지으면 그때 돌려받게 될 것이다. 우리 집은 전체적으로 지적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기다리고 시간이 흐르는 사이 봄이 오고 시민정원사 심화 과정이 새롭게 개설됐다. 축 처졌던 내 어깨도 햇빛을 받고 꽃을 가꾸니 언제 그랬냐는 듯 힘이 난다. 삼육대 수업을 듣고 매주 받아오던 나리, 글라디올러스 구근, 각종 실내 식물과 씨앗들이 내겐 자양강장제가 돼줬다. 다 자란 식물보다 구근이나 씨앗을 심고 싹이 터 자라는 모습을 관찰하는 즐거움은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 이상의 성취감을 준다. 왜? 리스크 없이 빠르니까. 열흘 정도면 싹이 트고 굉장한 속도로 잎이 나고 줄기가 뻗고 꽃이 피어난다. 나리는 꿉꿉한 냄새 가득한 사춘기 남자아이의 방도 자꾸 들여다보게 만드는 마법의 향기를 선사한다.

시민정원사 과정에서 교수님 왈, 정원은 70%에서 시작해 100%로 나아가는 과정이 행복하다 하셨다. 정원을 꾸밀 때 돈을 많이 들여 큰 나무를 심어야 완성도 있는 정원이 될 것 같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큰 나무들은 적응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 큰 나무들이 시들시들한 틈을 타 어린 나무가 성목이 되고 제자리를 잡아 그 정원의 주인이 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처음엔 나도 제대로 된 정원을 만들려면 큰돈을 들여 나무를 사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정원 일을 배우고 나니 삽목하는 법만 잘 알면 나무를 안 사도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물론 정원 일에는 부지런함과 인내심이 필요하다. 나무가 좋아하는 환경을 알아 적소에 심고 쉼 없이 보살피고 최소 5년 이상은 기다려야 제 모습을 갖출 테니. 아무려면 어떤가!  


3월 : 문화재 전면발굴조사

문화재 시굴조사는 1월 말에 시작해 3월 초 마무리됐고, 전면발굴조사는 3월 중순부터 4월 중순까지 진행됐다. 다행히 백자나 청자는 나오지 않았고, 조선 초기 것으로 보이는 적심초석이 또 나왔다. 대대로 이 땅에서 사람이 살았다는 이야기다. 그 상태로 자료용 사진을 찍고 리포트를 낸다. 별다른 문화재가 안 나왔으니 지하를 파도 된다고 했다.

별일 없이 문화재 조사가 마무리돼 감사한 마음이지만 한편으론 논리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지상은 주인의 땅, 지하는 나라의 땅이라는 논리라면 ‘왜 문화재 발굴을 원하는 주체(지하의 주인)가 돈을 내지 않고 지상의 주체인 우리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야 하나’ ‘시간에 쫓겨 먼저 진행하는 경우라면 사후에라도 비용을 정산해줘야 하지 않나’ ‘몽촌토성이 있는 송파구는 지하를 개발하지 않는 경우 문화재 조사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데 형평성에 어긋나지 않나’…많은 것이 합리적인 방법으로 바뀌어야 할 것 같다.

드디어 착공 날짜가 확정됐다. 그동안 일이 너무 지체되면서 일정이 꼬여 뉴마이하우스가 공사를 진행할 수 없게 돼 인사이트가 공사를 맡기로 했다. 인사이트도 마감이 깔끔하기로 유명한 팀이라 믿음직스러웠다. 착공 전 인사이트와 계약하는 날, 건축주 자격으로 에이디모베 건축사사무실을 찾았다. 계약서는 간단했지만 공사 내역서는 두툼했다. 화장실 변기, 세면대, 수전 모델명도 기재돼 있다. 계약서에 사인을 할 때는 원래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히 읽는 버릇이 있지만 이번만큼은 남편이 알아서 했을 테지 하는 마음이었다.

두툼한 내역서의 내용은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세밀하다. 층별로 어떤 자재를 사용하고 단가는 얼마인지, 노무비는 얼마인지 이윤은 얼마인지 나와 있다. 내역서를 몇 장 넘겨보다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며 덮었다. 사실 마감재는 인터넷으로 찾아보면 알 수 있는 재료도 있다. 그러나 철근이며 콘크리트 등 구조재는 어떤 수준의 재료인지 그 가격이 합리적인지 알 수 없다. 게다가 모델명도 암호문 해독 수준이어서 문외한인 내가 그 자리에서 내역서를 검토한다는 게 의미 없어 보였다.

“일하는 동안 소장님께 멱살 서너 번은 잡히겠죠.”

잘 부탁드린다는 인사치레 뒤에 돌아온 말이다. 공사 중 설계대로 되지 않으면 다시 다 뜯고 재시공하는 남편의 악명을 익히 알고 있다는 듯 농담 섞인 말 속에서 기대와 설렘도 느껴졌다. 제발 별 탈 없이 진행되길 기도하는 마음으로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5월 : 샘물

5월 11일, 드디어 첫 삽을 떴다. 포클레인이 들어와 땅을 파기 시작했다. 문화재 조사의 기억을 잊고 예쁜 집 지을 꿈에 부풀었다.  

5월 12일, 포클레인이 작업을 멈췄다는 연락을 받았다. 어디선가 꾸역꾸역 물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3, 4월 쏟아진 소나기가 빠지지 못하고 모여 있는 걸까, 동네 빗물이 우리 집 쪽으로 다 흘러든 걸까. 문화재 조사에서 수도계량기 옆 1m 이상 땅을 팠을 때 물은커녕 참흙이라고 땅이 좋다, 하지 않았던가. 조금만 단층이 잘 보였다면 선사시대까지 연구 대상이 될 뻔했던 곳인데, 왜 지금 착공 시점에는 물이 나오는 걸까. 퍼내면 맑은 물이 샘물처럼 어느 높이까지만 계속 차올랐다.

오우 세상에! ‘미치고 팔짝 뛴다’는 이런 때 쓰는 표현일 것이다.



홍 현 경
‘가드너’로 불리고 싶은 전직 출판편집자. 책을 기획하고 편집하는 일을 20년 동안 해오다 2014년 가을 퇴직했다. 요즘 정원 일의 즐거움에 푹 빠져 ‘시민정원사’로 활동하고 있다.




이 재 혁
‘놀이터 같은 집’을 모토로 삼는 건축가. 재미있는 공간이 삶을 풍요롭게 한다고 믿는다.
서울시 공공건축가이자 한국목조건축협회에서 시행하는 5-star 품질인증위원으로 활동한다. 2004년 신인건축가상, 2008년 올림픽공원 내 올림픽프라자 리모델링으로 서울시건축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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