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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 실수로 모든 것 잃지 말라”

강동희 승부조작 파문 후 최초 인터뷰

  • 이영미|스포츠 전문기자 riveroflym22@naver.com

“한순간 실수로 모든 것 잃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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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을 처음 받은 게 언제인가.

“이후에도 계속 제안은 있었다. 만약 승부조작에 대한 ‘예방접종’이 있었다면 후배의 얘기가 무서운 제안이라는 걸 금세 파악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경기 앞두고 하루 쉬는 날이 있었다. 그때 또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술 한잔 살 테니 만나자고 했다. 선약이 있다니까 기다리겠다고 했다. 그래서 지인과 저녁을 먹은 후 늦은 시간에 후배를 만났다. 만나자고 한 곳은 강남의 유명한 유흥주점이었다.

그 후배 외에 2명이 더 있었는데, 그 자리에선 다른 얘기 없이 일상적인 대화만 나누다 다음 날 경기 때문에 내가 먼저 그곳을 나왔다. 그때 후배가 따라나왔다. 그런데 후배가 ‘형, 술값이 300만 원 넘게 나왔어요. 혹시 돈 좀 있어요?’ 하는 게 아닌가. ‘네가 산다고 해서 그냥 왔는데 내가 현금 300만 원이 어디 있냐’라고 하니 후배는 그 말을 듣자마자 이런 제안을 해왔다.

‘형, 내일 1쿼터에만 비(非)주전 선수를 내보내줘요. 사실 형이 좀 도와주면 아는 형이 1000만 원을 준다고 하는데, 그걸로 여기 술값 300만 원 계산하고 형이랑 저랑 700만 원 나눠 써요.’

내가 황당해서 ‘야,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그래. 어차피 순위가 정해진 다음엔 플레이오프 앞두고 비주전 선수를 내보내게 돼 있어. 그건 내가 널 도와주지 않아도 원래 그렇게 하는 거야’라고 답했다. 그러자 후배는 ‘아, 그럼 아무 문제없는 거네요?’라고 했다. 그런데 그게 문제가 된 것이다.





호텔 방에 놓고 간 700만 원

만약 후배가 술을 마시기 전에 그런 제안을 했더라면 내가 자리를 박차고 나왔을 것이다. 그런데 자기가 술을 사겠다고 해놓고선 술값이 300만 원 나왔다 했고, 내게 돈을 빌려달라고 했다가 없다니까 은근히,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유혹해 왔는데, 난 거기서 무너지고 말았다. 원래 내 계획이 다음 날 경기 1쿼터에 비주전 선수를 내보내려 했고, 그들의 요구대로 한 게 아니기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스스로 합리화한 것이다. 이게 엄청난 잘못이었다.”

▼ 그 후배와 700만 원을 나눠 가졌나.

“다음 날 자고 있는데 후배가 숙소로 찾아와선 호텔 방 테이블에 700만 원을 놓고 가려 하더라. 내가 놀라서 이게 뭐냐고 물었더니 ‘형, 오늘 1쿼터 해주시고 쓰시면 돼요’라더라.  나는 ‘인마. 그건 원래 내가 하려고 한 계획이야. 너희 말 듣고 해주는 게 아닌데 왜 이런 걸 주고 그래?’라고 반문했다. 후배는 ‘형, 그냥 쓰세요’라며 돈을 두고 나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5만 원짜리 140장이 테이블에 놓여 있는 걸 보고 내 마음이 흔들린 것이다. 그들은 사람의 심리를 교묘히 이용했다.

그런데 그날 우리가 비주전 선수를 내보냈는데도 큰 점수차로 이겼다. 그래서 경기 후 후배에게 전화해서 돈을 가져가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형, 걔네들이 1쿼터 주전 안 나온 거 보고 그냥 쓰시라고 하네요’라며 전화를 끊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 후배가 날 해코지하리라곤 상상조차 못했다. 10년 넘게 맺은 인연인데, 나한테 이상한 짓을 할 사람이 아니라고 믿었다. 이후 모비스, KT, 오리온스와의 경기를 앞두고 전화가 왔다. 주전들이 빠지냐고 물었고, 나는 이미 언론을 통해 비주전들로 경기를 운영한다고 말한 터라 사실대로 빠진다고 말해줬다. 그때 세 경기 합해서 3000만 원을 받았다. 모두 합쳐 3700만 원을 받은 거다. 나중에 그들은 내게 4700만 원을 줬다고 주장했다.”

▼ 그렇게 큰돈이 오갔는데 걱정되는 게 없었나. 돈의 출처가 궁금하지 않았나. 그런 돈을 건넬 때는 분명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듯한데.

“나 스스로 합리화하며 어리석음을 자초했다. 농구 선수로, 또 곧장 코치, 감독하면서 세상 물정을 잘 몰랐던 것 같다. 내가 승부조작의 덫에 걸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게 솔직한 얘기다.”

▼ 돌아가는 사정을 눈치챈 건 언제쯤인가.

“LG와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있을 때다. 후배가 또 제안을 해왔다. 그때는 8000만 원을 주겠다고 했다. 그 순간 겁이 덜컥 났다. 그래서 내가 화를 내며 한 말을 정확히 기억한다.

‘야, 내가 몇 번을 얘기했어. 전에 비주전 선수를 내보낸 건 너희가 해달라고 해서 한 게 아니야. 너한테 돈을 받아서 해준 게 아니라고. 내가 일부러 져준 것도 아니잖아.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당장 이 돈 가져가!’

그제야 상황이 파악됐다. 아, 이거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는구나. 내가 잘못 말려들었구나 싶더라. 그런 불안함을 갖고 플레이오프를 치렀다. 그 후론 후배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 그해(2011년) 5월 축구에서 승부조작 사건이 터졌다.

“그 사건을 기사로 접한 후 나는 그야말로 ‘멘붕’ 상태가 됐다. 축구선수의 자살 소식도 들려왔다. 그때부턴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다. 후배에게 전화를 걸어 돈 보내줄 테니 다 가져가라고 했다. 그래서 계좌 이체로 3700만 원을 다 돌려줬다.”



낯선 번호의 전화 한 통

▼ 그렇게 하면 없던 일이 될 거라 생각했나.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이었다. 아내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다. 아내도 크게 충격을 받았다. 그때 절감했다. 돈을 받으며 나 자신을 합리화한 행동이 얼마나 잘못된 것이었는지를. 3개월 남짓 매일 지옥을 경험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공포였다. 밥을 먹지도, 잠을 자지도 못했다. 체중이 10㎏ 빠졌다.

8월 이후부터 축구 승부조작 파문이 조금씩 수그러들었다. 그러다 2011-2012 프로농구 시즌이 시작됐고 우리 팀은 연승가도를 달리며 치고 올라갔다. 그러던 12월 초 어느 날이었다. 휴대전화로 낯선 번호의 전화가 왔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혹시나 싶은 생각이 든 것이다. 낯선 번호의 남자는 전화를 받은 내게 ‘강동희 감독님이시죠?’라고 물었다. 아, 큰일이 벌어지겠구나 싶은 생각에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는 내게 승부조작을 제안한 후배의 이름을 거론하며 돈이 필요하다고 했다. 나는 ‘후배에게 이미 돈을 다 돌려줬고, 나는 그 녀석이 원하는 대로 해준 적이 없다’고 말하고선 전화를 끊었다. 눈앞이 아득했다. 이게 말로만 듣던 조폭들의 협박이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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