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세기의 철녀들 ④

군소 정당에서 전단지 돌렸던 앙겔라 메르켈

‘긍정의 힘’과 ‘단호한 원칙’으로 국민 마음 샀다

  • 허문명 동아일보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

군소 정당에서 전단지 돌렸던 앙겔라 메르켈

4/7
메르켈은 학창 시절 우등생이었고 당의 공식노선을 추종하는 교사들의 눈 밖에 나지 않으려고 애쓴 신중하고 평범한 학생이었지만 급우들과 반(反) 사회주의적 내용을 담은 시(詩)를 낭송하다가 퇴학을 당할 뻔한 당돌한 학생이었다.

청년기는 종교인의 딸에게 가해진 압력에 순응하며 ‘자기실현’이라는 과제를 충족시켜야 했던 모색의 시간이었다. “속마음을 말해도 좋을 때와 하지 말아야 할 때를 정확하게 구분하는 그의 본능적 감각은 이런 독특한 체제 경험에서 우러난 것”이다.

메르켈에게 ‘사회주의 체제’는 하나의 한계였지만, 그 한계 속에서 최대한의 결과물을 내기 위해 성실하게 노력했다. 쉽게 저항하기보다 주어진 것을 받아들이며 최선을 다하려 한 것이다. 이런 성실함이 결국 그의 성취를 가능케 해준 동력이었다.

“필요에 의한 결혼이었다”

메르켈은 인문학이나 언어학에 관심이 많았지만 대학에서는 물리학을 선택한다. 인문계열학과는 이데올로기에 더 묶일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었다. 원자폭탄을 개발한 오펜하이머가 대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도 알고 싶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물리학을 선택하면 정치적인 것에 얽매이지 않아 대학 추천서를 쉽게 받을 수 있었다.”

그는 1973년 작센 주 라이프치히 대학에 입학한다. 대문호 괴테가 나온 곳이고 작곡가 슈만과 바그너 등이 공부한 명문대학이다. 동독에서 가장 큰 대학이기도 했다. 하지만 체제에 비협조적이어서 당 입장에서는 ‘눈엣가시’였다.

교수들은 마르크스레닌주의보다는 전공 지식을 가르치는 것에 더 비중을 두어 학생들이 학문에 몰두할 수 있는 분위기이긴 했다. 하지만 정치상황이 거칠어지면서 심적 방황을 겪는 학생이 많았고 메르켈 역시 그중 하나였다.

그가 대학에 입학하던 해 동독은 건국 25주년을 맞아 서독과의 연관성을 암시하는 모든 것을 폐지하는 내용으로 헌법을 개정하는 등 사회주의 국가 건설에 박차를 가했다. ‘하나의 조국’이라는 가사가 포함된 국가를 가사 없이 악기로만 연주하라는 지시가 떨어질 정도였다. 저항 문인들이 추방당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메르켈이 가장 좋아하던 작가 라이너 쿤체도 동독작가동맹에서 제명당하고 저항시인이자 가수인 볼프 비어만도 추방당했다. 그는 충격을 받긴 했지만 이것 때문에 반정부 시위에 참여하지는 않았다.

메르켈은 졸업시험에서 최고점을 받았다. 학부 졸업논문이 미국 전문학회지에 공동명의로 게재될 정도였다.

졸업하던 1977년에는 동급생인 울리히 메르켈과 결혼했다. 그의 첫 남편이다. 본래 이름이 앙겔라 카스너에서 앙겔라 메르켈이 된 것은 남편 성을 따랐기 때문이다(그는 나중에 이혼을 했는데도 첫 남편 성을 버리지 않고 있다).

군소 정당에서 전단지 돌렸던 앙겔라 메르켈
스물셋에 한 결혼이었지만 당시 동독 여성들이 워낙 결혼을 일찍 하는 풍조라 이른 것도 아니었다. 결혼을 하면 부부가 같은 지역에서 일자리를 얻을 수도 있고 주택도 배정받았기에 조혼이 많았다. 메르켈 부부 역시 화장실과 욕실을 세 가구와 공동으로 써야 하는 주택을 배정받긴 했지만 결혼과 동시에 일자리, 주택문제를 해결한다.

결혼은 4년 만에 파경을 맞았다. 활동적인 메르켈과 달리 남편은 한적한 자신만의 생활을 즐기려 했다는 것이 주된 이유로 알려졌다. 한 인터뷰에서 메르켈은 “진정한 사랑에서 우러난 결혼이었다기보다 필요에 의한 결혼이었다. 남이 다하니까 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서독 체제가 분명히 옳다’

대학을 마치고 잡은 첫 직장은 베를린 동독 학술아카데미 산하 물리화학연구소였다. 그전에 공대 조교가 되려고 면접을 보기도 했는데, 면접관은 메르켈이 서독의 라디오를 얼마나 자주 들었고 서독 청바지를 언제 입고 다녔는지 등 사적인 내용을 모조리 알고 있었다. 대학 당국이 친구들을 상대로 정보를 캐낸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매사 감시받는다는 것을 의식하고 살았지만 이렇게 옴짝달싹할 수 없을 정도인 줄은 그때 처음 느꼈다.

4/7
허문명 동아일보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
목록 닫기

군소 정당에서 전단지 돌렸던 앙겔라 메르켈

댓글 창 닫기

2023/0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